2021 06 03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21 그러자 왕이 직접 요압에게 명령을 내렸다. "보시오, 내가 장군의 뜻대로 하기로 결심하였으니, 가서, 어린 아이 압살롬 데려오시오."

22 요압이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면서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임금님께 복을 베푸시기를 빕니다. 높으신 임금님이 종의 간청을 이렇게 들어 주시니, 종이 임금님의 총애를 입은 줄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23 그리고는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24 그러나 왕의 지시는 단호하였다. "그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여라. 그러나 얼굴은 없다." 그리하여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25 이스라엘에, 압살롬처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미남은 없다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26 그는 머리 숱이 많아 무거워지면, 해마다 연말에 번씩 머리를 깎았는데, 머리를 깎고 나서 머리카락을 달아 보면, 왕궁 저울로 이백 세겔이나 되었다.

27 압살롬에게는 아들 셋과 하나가 있었다. 딸의 이름은 다말인데, 생김새가 아주 예뻤다.

28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해를 지냈는데도, 왕의 얼굴을 번도 뵙지 못하였다.

29 압살롬이 요압을 왕에게 보내 보려고 요압에게 사람을 보냈으나, 요압은 압살롬을 방문하지 않았다. 번째로 다시 사람을 보냈으나, 그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30 그러자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을 불러다가 지시하였다. " 곁에 요압의 밭이 있다. 그가 거기에 보리 농사를 지어 놓았으니, 너희는 가서, 밭에다가 불을 질러라." 그래서 압살롬의 종들이 밭에 불을 질렀다.

31 그러자 요압이 압살롬의 집으로 찾아가서 따졌다. "어찌하여 종들을 시켜, 나의 밭에다가 불을 질렀습니까?"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였다. "이것 보시오. 나는 이미 장군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달라고 부탁을 하였소. 장군을 임금님께 보내어서, 나를 그술에서 돌아오게 하였는지, 여쭈어 보고 싶었소. 여기에서 이렇게 바에야, 차라리 곳에 그대로 있는 것이 더욱 좋을 하였소. 이제 나는 임금님의 얼굴을 뵙고 싶소. 나에게 아직도 무슨 죄가 남아 있으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더라고 말씀을 드려 주시오."

33 그래서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서, 일을 상세히 아뢰니, 왕이 압살롬을 불렀다. 압살롬이 왕에게 나아가서, 앞에서 얼굴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자, 왕이 압살롬에게 입을 맞추었다.

 

왕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지만 얼굴을 마주하지 않습니다. 단호하게 집으로 돌려보내 버립니다(21-24). 해가 지나도록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을 불러온 요압조차 겨우 만난 압살롬은 그간의 마음을 토로합니다. 요압의 중재로 왕은 압살롬을 만나 입을 맞춥니다(28-33). 압살롬은 이스라엘에 칭찬이 자자했습니다(25-27).

 

다시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품어주지 않았습니다. 데려와 놓고서는 외면해 버립니다. 아버지를 향한 압살롬의 거절감은 컸습니다. 만에 겨우 아버지를 만나지만 이마저도 요압을 통해서였습니다. 아버지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기에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웠고, 때도 너무 늦었습니다. 용서와 화해, 관계 회복의 관점으로 오늘 본문을 묵상해 봅시다.

 

——

예수님이 만약 이런 사건들을 접했다면 어떤 평가와 반응을 보이셨을까?

갑자기 이런 궁금함이 생긴다. 

예수님도 분명 구약의 내용을 익히 듣고 배우셨을 것이다. 

다윗이 가지고 있는 우유부단함, 애매모호함, 어정쩡함, 이도저도 아닌, 마지못해서 진정성 없이 허락했던 일들이 결국 왕국 분열의 씨앗을 남기게 된다. 

차라리 그술 땅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압살롬이 추후에 반역을 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외모와 능력과 출중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이런 사실을 몰랐을 없었던 다윗과 요압은 그를 불러다 놓고 적절한 대우를 하지 않았을까? 

해가 지나도록 다윗은 압살롬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왕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다. 

그러나 압살롬, 암논 다음의 왕의 계승 서열 1 순위인 그는 왕의 식탁에 초대받지 못하고 있다. 

다윗의 이런 모호한 태도가 다윗과 압살롬의 사이를 벌어지게 만들고 있다. 

만약 예수님이 이런 사건의 전말을 듣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지 너무 궁금하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품으라고 말하실지

아님 왕으로서 공명정대하게 값을 물으라고 말하실지 

 

없는 죄인들의 삶에는 무한한 애정과 은혜를 베푸셨지만,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과 같은 권력자들에게는 날까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으셨던 . 

세례요한과 궤를 같이 하셨던 , 

세례요한은 헤롯의 잘못을 철저하게 드러내고 분노했었다. 

 

이렇게 고민하고 저렇게 고민해 봐도, 예수님은 이번 사건에 대해 분명하게 죄라고 말씀하시고 죄의 값을 치를 것을 요청하셨을 같다. 

다윗도 어마어마한 지도자이며, 압살롬 또한 그렇다. 

그렇다면 권력을 가진 자의 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술에 있는 압살롬에게 찾아가 그의 삶을 위로할 수는 있겠다 싶다. 

그러나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불러 그의 죄가 것이 아닌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애매하게 관심 밖에 두고 저리 대우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다윗이 아쉽다. 

밧세바를 범하는 죄부터 시작해서 아들 문제를 치리하는 과정이 마뜩찮다. 

맏아들 암논도 그렇고, 다음 왕위 계승 서열인 압살롬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분명히 해야 때가 있다. 

애매하게 두면 오히려 공동체가 위험하다. 

 

사랑으로 은혜로 사람을 대해야 함이 옳다. 

그렇다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죄에 대해 너무 관대해서는 안된다. 

분명하게 치리할 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와 개인을 보호할 있다. 

 

리더의 자리는 부담스런 결정을 하는 자리다. 

그걸 회피하면 개인과 공동체 모두 어려움에 처한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

 

죄의 결과를 누구보다도 아시는 주님, 

죄가 인간과 공동체를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기억합니다.

죄를 짓지 않고 수는 없으나, 선을 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없습니다. 

, 제가 지은 죄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면 주님께서 용서해 주세요.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신 주님을 더욱 묵상하게 하소서. 

죄의 결과를 겸손히 받아들이되, 

주님의 은혜 또한 겸손히 구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다른 처벌은 받겠으나, 주님과의 관계는 포기할 없습니다. 

저를 구원하시고 아들로 삼으신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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