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30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41 주님,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주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내게 베풀어 주십시오.

42 그 때에 나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게 응수하겠습니다.

43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간절히 바라니,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44 내가 주님의 율법을 늘 지키고, 영원토록 지키겠습니다.

45 내가 주님의 법도를 열심히 지키니, 이제부터 이 넓은 세상을 거침없이 다니게 해주십시오.

46 왕들 앞에서 거침없이 주님의 증거들을 말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47 주님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그것이 나의 기쁨이 됩니다.

48 주님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두 손을 들어서 환영하고, 주님의 율례들을 깊이 묵상합니다.

 

[ESV]

I will also speak of your testimonies before kings and shall not be put to shame, for I find my delight in your commandments, which I love. I will lift up my hands toward your commandments, which I love, and I will meditate on your statutes(46-48절).

 

[주석]

41절. 다른 무엇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이는 여호와의 약속된 ‘인자하심’과 ‘구원’이다. 이 ‘인자하심’은 알고, 보살피고, 공급하고,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며, ’구원’은 필요한 모든 상황에서 건져내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시인은 율법을 기뻐한다. 

주님의 계명과 율법은 주님의 뜻의 반영이다. 

율법을 기뻐하는 것은 명령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주님의 뜻이 이뤄지는 통로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율법은 주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의 증거다. 

그분이 베푸신 은혜와 자비, 구원이 사회적으로 구현된 실체가 바로 율법이다. 

그분의 자비와 구원은 단순히 구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거룩히 살아가도록 안내한다. 

율법와 계명이 안내자가 된다. 

시인이 계명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환영하고 묵상하는 이유다. 

구원받은 백성이 가야할 길이다. 

인자하심을 맛본 백성들이 따라야 할 길이다. 

그러니 시인은 규례를 간절히 바라고, 진리의 말씀을 입에 두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그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약시대 하나님의 법은 산상수훈에 잘 담겨 있다. 

로마서의 12장 이후에도 분명히 등장한다. 

예수님과 성령님이라는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며, 따라야 할 명령이다. 

그 명령들을 과연 기뻐하는가? 

그 명령들을 과연 사랑하고 환영하고 깊이 묵상하는가? 

신약 백성들의 신앙 생활에도 이 시인의 마음이 묻어나야 한다. 

 

시인은 세상의 왕들 앞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언하려고 한다.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자랑하는 것이 수줍고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신들은 눈에 보이는 신상이 있고, 사람들이 원하는 축복을 대놓고 준다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물질의 축복이 아니라, 지극히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제시하시는 분이시다. 

시인의 자랑은 돈이 아니라, 율법이다. 

물질의 풍요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비전이다. 

경제가 아니라 국가 철학이다. 

왕들은 돈과 군사력으로 자웅을 겨룬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비전에 사로잡혀 그분의 뜻인 규례와 율법을 자랑한다. 

왕들은 비현실적인 시인의 집착을 비웃는다. 

그러나 시인은 계속 꿈을 꾸고 비전을 되씹는다. 

 

한낮에도 꿈을 꾼다. 

노동의 재료는 재즈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다. 

주변 상황과 환경을 뚫고 주님만 바라본다. 

강인한 의지, 자유로운 감정, 집중된 지성이 가져다 주는 선물은 상상 이상이다. 

주님께 순종하는 의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만 바라보는 생각이 시너지를 내는 사람에겐 두려움이 없다. 

온전한 신앙 인격으로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주목한다. 

응시한다.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오늘 하루도 그런 날이 되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라의 법을 알려주신 주님, 

당신의 비전과 꿈이 저의 것이 되게 해 주소서. 

주께서 바라보시는 것을 저도 함께 바라보게 하소서. 

한 낮에도 주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주님 바라보기를 기뻐하게 하소서. 

세상은 비현실적이라고 놀리더라도 제 영혼은 기뻐합니다. 

주님이 이루실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모두가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새로운 하늘과 땅을 봅니다. 

주님만이 홀로 영광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1월 25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는,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틀림없이 그는 강한 손에 밀려서, 그들을 내보내게 될 것이다. 강한 손에 밀려서야, 그들을 이 땅에서 내쫓다시피 할 것이다."

2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3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는 나타났으나, 그들에게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

4 나는 또한, 그들이 한동안 나그네로 몸붙여 살던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을 세웠는데,

5 이제 나는 이집트 사람이 종으로 부리는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듣고, 내가 세운 언약을 생각한다.

6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나는 주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이 너희를 강제로 부리지 못하게 거기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고, 그 종살이에서 너희를 건지고, 나의 팔을 펴서 큰 심판을 내리면서,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7 그래서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곧 너희를 이집트 사람의 강제노동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나는 주다.'"

9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와 같이 전하였으나, 그들은 무거운 노동에 지치고 기가 죽어서, 모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10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이집트의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의 나라에서 내보내라고 하여라."

12 이에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이스라엘 자손도 저의 말을 듣지 않는데, 어찌 바로가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 저는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

13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명하셨는데, 이 사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알리고 이집트 왕 바로에게도 알리라고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셨다.

 

주석

‘여호와’로 알리지 않음(3절) ‘여호와’라는 이름이 모세 시대 이전에도 알려졌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학자들의 답변은 엇갈린다. 일부 학자들은 창세기에서 이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른 학자들은 창세기에서의 이 용어의 출현이 후대의 첨가라고 제안한다. 하나님의 다른 이름, 특별히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3절)는 족장들 사이에서 이미 잘 알려진 이름었음이 분명하다(IVP 성경주석). 

 

주님은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반대에 직면한 모세의 호소에 응답하십니다. 주님은 바로가 주님의 능력의 손 앞에서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절). 또한 모세에게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이전에 세우신 언약을 상기시키십니다(2-8절).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가 진정 자신들의 하나님이시며, 자신들은 여호와의 백성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7절).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의 괴리감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이때 주님은 상황을 당장 바꾸시기보다, 당신이 누구신지에 대해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 모세는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찾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재확신을 가져야 할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을 의지하여 여전한 현실로 나아갑시다. 

 

[오늘의 묵상]

하나님은 이 상황을 예상하고 계셨다. 

파라오가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셨다. 

하나님의 강한 손에 의해 큰 피해를 입어야 억지로 이스라엘 민족을 내보낼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다. 

그들의 조상들과 맺었던 언약을 드디어 실행하시기로 결정하셨다. 

이집트의 죄악에 대해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출하고, 광야에서 새로운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려고 하신다. 

문제는 지금 이 시점에서 이 모든 일은 희미한 미래의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지 믿기가 너무 어렵다. 

이건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현실은 매일 매일 고된 노동 뿐이다. 

가중된 노동 강도에 이스라엘의 리더들 누구도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되었다. 

 

무거운 노동에 지치고 기가 죽어 버렸다. 현실이 아닌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모세, 아론, 그리고 하나님… 

이들과 변론하고 토론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빨리 한 시간이라도 더 자고 싶고, 십분이라도 더 쉬고 싶다. 

차라리 건설 현장 저 아래로 몸을 던져 이생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 현실을 바꿔 줄 어떤 지도자, 장로도 없어 보인다. 

파라오를 죽이지 않는 한, 암살 조직을 만들지 않는 한… 

나야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곧 노동 현장으로 불리게 될 아이들, 자녀들을 생각하니, 목이 매인다. 

내 아이들도 이런 삶을 평생 살아야 한다니… 

그렇게 제 수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니… 

모세와 아론이 오기 전에는 현장에서 잠시 쉴 때, 다른 노동자들과 가끔씩 농담이라도 건네면서 웃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어렵다. 

하루 이틀 상간에 죽어나가는 동료들이 몇 명이던가!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미안하다. 

인생이 이런 거라면, 인생을 만든 모든 신들을 증오한다.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분, 그분도 밉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우리들에게 기껏 말 몇마디로 희망을 불러 일으키려는 시도가 헛되다. 

군대를 숨겨 왔는가? 암살단을 데리고 왔는가? 쿠데타를 일으킬 내부 조직을 갖추었는가? 

도대체 어떻게 구출시켜서,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광야로 간단 말인가? 

모두 미친 것 아닌가? 

피곤하다. 자고 싶다. 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내 모든 존재가 태워졌으면 좋겠다. 

 

모세는 이런 사람들의 정서를 보고 있다. 

분노를 넘어 무기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삶의 희망, 그 한 줄기를 붙들다가 시들어 버리는 사람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그들에겐 기력이 남지 않았다. 

죽음의 기운만이 그들 눈동자에 비친다. 

도대체 동족들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않는데, 파라오와 그의 측근들, 권력자들, 이집트 사람들은 어쩌겠는가? 

하나님의 음성은 분명하다. 

그분이 하시겠다고 하니, 그대로 전한다. 

동족에게도, 파라오에게도… 

처량하다. 

말뿐이라서… 

뭔가 능력을 보여주지 못해서… 

지극히 비현실적이라서… 

 

자꾸 말만 전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야속하다. 

그분은 명령을 하시는데, 그 명령에 따른 후속 조치가 없어 보인다. 

여전히 말을 전하라고 하신다. 

시간은 흐른다. 새로운 날이 찾아온다. 말만 남는다.  

 

아마도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가장 어려운 시기가 이런 시간들일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고, 그분의 소명이 있음을 알겠다. 

그러나 그 약속의 성취는 더디고, 그 열매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말씀을 전하라 하시니 최선을 다해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전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말뿐이다.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역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소망에 대해 전달하지만, 여전히 흐릿하다. 

교인들도 점점 지쳐간다. 

믿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오래된 습관만이 남아 교회를 지킨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그렇게 소망했지만, 그건 요원해보인다. 

10-20년을 사역해도 거기서 거기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의 마음 속 한탄이 들리는 듯 하다. 

현상유지만 해도 감지덕지다. 

점점 매말라 간다. 처음엔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면, 시간이 흘러 무기력으로 빠져들어간다. 

꿈을 꾸지만 혼자만의 꿈으로 사그라든다. 

다른 사람들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 해결에만 몰두한다.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문제 해결하다가 하나님의 꿈은 뒷전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계속 명령하신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고. 

내가 너희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실행하겠다고. 

그러니 너는 가서 그 약속의 말씀을 전하고, 나의 계획을 알리라고. 

 

 

[오늘의 기도]

오 주님, 

참 어렵습니다.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 옵니다. 

오손도손 그저 인생의 작은 행복들을 누리면서 살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당신의 계획을 알리고, 그 계획에 따라 실천할 것을 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은 변화도 없어 보이는 그 말, 

그 말에 목숨 걸고, 그 말을 전하라 명령하시니,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위해 불러주셨으니, 그 일을 위해 구원해주셨으니, 

주님, 끝까지 그 일을 하겠습니다.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10. 24. 김혁수

 

[본문_창세기 37:5-11_새번역]

5 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서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일이 있는데, 일이 있은 뒤로부터 형들은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6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 보셔요. 7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 8형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형들은 그의 꿈과 그가 때문에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9얼마 뒤에 그는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들어 보셔요.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 10그가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었다. “네가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것이란 말이냐?” 11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말을 마음에 두었다.

 

0. 들어가며 

-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여러분,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 아세요? 그것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은 나폴레옹의 명언에서 나온 말인데요. 약속은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나요. 일상을 살아가면서 약속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럴 없죠. 놀러 가는 것도 약속이죠. 함께 먹으러 가는 것도 약속입니다. 게다가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결심이라고도 하는데, 나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자신과의 약속을 합니다. 이런 것까지 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죠. 최근에 여러분이 하신 자신과의 약속은 무엇인가요? 

 

- 하나님의 통치 

10 동안 통치의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통치의 방향은 에덴 비전의 회복이요, 방식은 부르심과 은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통치의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에 도달했습니다. 바로 약속입니다.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르죠. 구약은 하나님과 인류가 맺은 번째 약속이라는 뜻이구요, 신약은 번째 약속이라는 뜻이죠. 번째 약속과 번째 약속 사이에는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다른 점이 조금 부각 되기에 구약과 신약을 나눴겠죠. 어찌되었건 하나님의 통치에 있어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어떻게 약속을 만들어 가시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요셉의  

1) 요셉? 

요셉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은 많치 않을 겁니다. 고대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던 이집트의 총리까지 지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실 요셉은 어머니들의 시기 질투,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인해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자매 둘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언니는 레아요, 동생은 라헬이었죠. 야곱이 사랑했던 여성은 라헬이었습니다. 

 

20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동안이나 일을 하였지만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 (창세기 29:20)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였기에 7년을 즐겁게 일했습니다. 게다가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7년을 일해야 했습니다. 라반이 언니 레아를 먼저 야곱과 결혼시켰기 때문이었죠. 

 

30 야곱이 라헬과 동침하였다야곱은 레아보다라헬을 사랑하였다. 그는 또다시 동안 라반의 일을 하였다. (창세기 29:30) 

 

야곱의 이런 편애는 아들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레아는 많은 아들들을 낳았지만, 라헬은 뒤늦게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요. 라헬이 낳은 첫째 아들이 요셉이고, 둘째 아들이 베냐민이었는데요, 베냐민을 출산하다가 라헬은 산고로 죽게 됩니다. 야곱은 요셉을 나머지 11명의 형제들보다 아끼고 편애를 하게 됩니다. 

 

2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 열일곱 소년 요셉이 아버지의 첩들인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데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3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4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창세기 37:2-4) 

 

야곱이 어떻게 요셉을 편애하는지 보이시나요?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고 있습니다. 야곱은 그런 그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지어서 입혔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형들은 요셉을 미워할 밖에 없겠죠. 10명의 형들에게 따돌림은 당하고 있었습니다. 

 

2) 꿈과 요셉 

이런 와중에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게 만드는 사건이 생깁니다. 일곱 살의 요셉은 꿈을 꿉니다. 꿈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요셉이 묶은 곡식 단은 일어서 있고, 형제들의 단은 요셉의 주위에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형들은 열받았습니다. 꿈도 꿈이지만,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는 꼬락서니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화를 내는 형들의 모습을 그려 있나요?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해와 달과 11개의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이야기를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하고 말았습니다. 형들의 분노에 꾸지람이 지난 이야기 있었는데, 다시 이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눈치를 밥말아 먹었나 싶습니다. 이번에는 야곱도 안되겠는지, 요셉을 꾸중합니다. 

요셉아, 나랑 어머니랑 그리고 형들 모두가 정말 너에게 엎드려 절한단 말이냐!! 이놈!! 오냐오냐 해주니까 간이 배밖에 나왔구나!’ 야곱도 화가 나서 말이긴 하지만, 혼내지 않으면 형들에게 더욱 미움을 것이 분명해 보였겠죠. 이쯤해서 그만 이야기하도록 막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같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이야기를 속에 담아 둡니다. 원해 고대 사회에서 꿈은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로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야곱도 그의 에서에게 도망칠 , 베델에서 자다가 하늘 사다리 끝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꿈을 꾸었잖아요.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요셉의 이야기에 신경을 곤두 세웠던 겁니다. 야곱은 요셉의 꿈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께 물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번도 아니고 번이나 비슷한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3) 요셉의 이해

저는 형들과 야곱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데, 오히려 요셉의 태도가 쉽게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17세라면 아는 나이고, 고대에서는 결혼도 있는 나이잖아요. 그런데 눈치 없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싫어하니까 이야기로 기선제압하려고 하는 걸까요? 어차피 따돌림 받는 인생, 갈때까지 가보자 이런 태도인가요? 

 

저는 요셉과 야곱의 친밀함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이 사는 , 밧단 아람, 혹은 하란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려고 했을 , 가족들은 다들 힘들어 했을 겁니다. 왜요? 아버지!! 우리가 가나안으로 가야 하나요?’ 이렇게 물어볼 , 야곱은 베델의 하늘 사다리 이야기를 종종 했을 겁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했단다. 하나님께서 다시 베델로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해주셨지 꿈에서 말야 아마도 애정을 가졌던 요셉에게는 자주 하늘 사다리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요셉은 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꿈으로 말씀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의 인생을 이끄셔서 약속하셨던 베델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을 요셉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것입니다.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는 몰라도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해서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것이죠. 요셉은 꿈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해했을 겁니다. 모든 꿈이 하나님의 약속은 아니겠죠. 그러나 인생의 하나님은 꿈으로 약속을 주십니다. 요셉은 개의 꿈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해했습니다. 

 

2. 약속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 중에 가장 돋보이는 개념이 바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약속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명령보다 약속이 하나님의 통치 방식에 맞습니다. 그렇다면 약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1) 인격적 관계의 중심 

첫째로, 약속은 인격적 관계의 중심에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사회화 과정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약속한 것을 배우고 지키면서 자기의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전세계 인류가 지켜야할 약속이 있고, 국가의 시민으로서 지켜야 약속있습니다. 반면에, 각각의 개인들이 서로 맺은 약속도 많이 있습니다. 약속이 없으면 깊이 있는 관계로 발전할 없습니다. 하다못해 만나려면 만날 약속을 잡습니다.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도 약속을 해야 합니다. 건강한 데이트를 위해서도, 건강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도 서로 약속을 합니다. 약속은 상호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심지어 왕과 신하 사이에도 암묵적인 약속이 존재합니다. 약속이 없다면 그것은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 주인과 로봇 종과 같은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약속을 통해 인격적 관계를 맺으십니다. 

 

2) 하나님의 자기 제한 

둘째, 약속은 하나님의 자기 제한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설교 처음에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라는 나폴레옹의 명언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약속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권한이 제한됩니다. 당신 맘대로,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약속, 노아에게 하신 약속,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내려놓고 최선의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바로 자신이 인간의 육체가 되어 사람들 속에 거하면서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다리가 되는 이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거기에서도 엄청난 자기 제한이 일어납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3) 상호 신실성 요청

셋째, 약속은 서로 신실할 것을 요청합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도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속을 했으면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실하신 분이라고 찬양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대담한 행동을 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니 우리에게도 신실함을 요청하십니다. 그분을 주인으로 아버지로 받아들인 이상 관계에 신실하길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3. 사단의 통치 vs. 하나님의 통치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과의 약속을 통해 통치하십니다. 자기를 제한하시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나가는 방식으로 세상을 회복시켜나가는 겁니다. 이것이 사단의 통치와 다른 지점들입니다. 

 

1) 정복, 징집, 경쟁, 그리고 확장

그럼 사단의 통치는 어떻게 구성될까요? 사단의 통치의 방향은 정복입니다. 세상을 자기 맘대로 주무를 있는 장난감이 되도록 정복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그가 사용하는 방식은 자기 휘하에 들어올 군대를 징집하는 겁니다. 회유, 강제, 중독 등을 통해 사람들을 징집합니다. 그리고 경쟁 시키죠. 사람들 사이에 미움이 싹트고 죽고 죽이는 살벌한 정글이 되게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무한 확장시켜나갑니다. 끝에는 파국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격성이 파괴되고 사단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2) 회복, 부르심, 은혜, 그리고 약속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전혀 다르게 작동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향은 정복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은 징집이 아니라 인격적 부르심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은혜의 문화 중심이 됩니다. 자기 권한의 무한 확장이 아니라 약속을 통한 자기 제한과 신실한 실천입니다. 에덴의 비전을 회복하기 위한 그분의 방식은 이렇듯 기묘합니다. 인격적으로 부르시고, 그들이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들과 약속을 하시면서 그들과 지속적인 신실한 관계를 맺어가십니다. 이런 방법으로 세상을 다시 아름답고 보기 좋은 에덴으로 회복시키시는 겁니다. 

 

4. 나가며 

-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가?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통치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나요!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요셉으로 하여금 야곱 일가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단순히 부모와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상하 관계의 역전이 일어나리라는 약속이 아닙니다. ‘그동안 형들에게 당한 많으니 이제 반전을 일으켜 네가 형들을 못살게 만들 있는 위치에 올려 놓겠다라는 약속이 아닙니다. 꿈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을 믿었던 요셉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같습니다. 

요셉아 너를 통해 너의 가족을 세계적 기근으로부터 구출하려고 한다. 과정에서 너는 부모와 형들로부터 감사의 절을 받게 것이다.’ 

이런 약속이었던 겁니다. 꿈을 통해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요셉은 엄중한 하나님의 약속을 부모형제에게 말하지 않을 없었던 겁니다. 그들 가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일 수도 있었으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전히 꿈으로도 약속의 말씀을 주실 있는 분이시죠. 하지만, 이미  위대한 약속들을 명시적으로, 분명하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도록 말씀하셨죠. 그것이 역사 예수님이요, 또한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 다시 오셔서 세상을 온전히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을 이미 주셨습니다. 이런 그분의 약속을 우리는 신뢰하고 있나요? 신실하신 그분은 약속을 지켜나가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약속을 신뢰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통치 방식 하나인 그분의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있는 겁니다. 여러분, 다시 그분의 통치로 들어오세요. 

 

이번 그분의 약속을 여러 가지로 되새길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하나님은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나요? 약속을 기억하고 있나요? 약속을 자주 되새기나요? 아님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약속을 기억할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2. 우리 모두 하나님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실하게 지켜날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분과의 교제를 위한 시간을 떼어 놓을 있게, 그분을 예배하는 시간을 지킬 있게, 신실하게 그분과의 관계를 지켜나갈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여러분은 평소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인가요? 약속을 지키는 못한다면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2. 하나님의 통치 방식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약속을 하실 , 그분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