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7월 24일 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2 유다는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쳤고, 요단 강은 뒤로 물러났으며,

4 산들은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

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쳤느냐? 요단 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6 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았느냐?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

7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

8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신다.

 

주석

8절. 하나님은 자비 안에서 자신을 연약한 자, 심지어 ‘야곱’과 같이 비열한 자와 동일시하시며, 선한 일을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그분은 또한 백성의 순례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시인은 출애굽의 영광을 기억한다.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열어준다. 

온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행군을 돕는다. 

반석이 열려 샘이 된다. 

만나가 내리고, 메추라기가 떨어진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은 광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유다는 하나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통치의 영토가 된다. 

그들 존재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사명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와 영토가 된 것이다. 

특별한 은혜가 그들에게 쏟아진다. 

의와 공도를 행하는 민족으로 우뚝 선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드러내는 민족으로 대표된다. 

그들의 할 일은 점점 분명해 진다. 

 

시인은 몇 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출애굽 사건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 이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인류를 위한 그분의 희생, 

그리고 나를 위한 그분의 보호하심. 

잊기 전에 기록하고 그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그분이 일하심의 일기장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일하신 일, 

다른 청년에게 일하신 일.

기억하고 되새기고 묵상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사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하신다. 

그걸 잘 몰랐다. 

그저 인류를 구원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씀을 좀더 깊이 보면,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조금씩 다르게 접근하신다. 

사랑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시다. 

예수님은 각 사람을 주목하고 계신다. 

그 사람에 맞게 치유하고 회복시키신다. 

지금도 예수님의 한 사람에 대한 주목은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 오장육부를 가동시키는 힘, 심장의 고동, 머리의 뇌류, 

세포 하나 하나 주님의 은혜로 작동한다. 

회복된다. 

정신이 다시 맑아진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다시 시작한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 보호하시는 주님, 

몸과 마음을 주님께 맡깁니다. 

마음은 쉽게 흐트러지고, 몸은 쉽게 지칩니다. 

병균은 언제가 제 주위에 있고, 

스트레스는 눈 앞에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나이 들어 호르몬도 이상하게 분비됩니다. 

정서도 불안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붙들어 주소서. 

몸과 마음을 정상 범위로 유지시켜 주시고, 

평안과 사랑을 전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이번 한 주를 주님께 맡깁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복음밥 캠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23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11 "주님께서, 당신들과 당신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당신들을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이르게 하셔서 그 땅을 당신들에게 주시거든,

12 당신들은 태를 처음 열고 나오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당신들이 기르는 짐승이 처음 낳는 수컷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13 그러나 나귀의 맏배는 어린 양을 대신 바쳐서 대속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대속하지 않으려거든, 그 목을 꺾으십시오. 당신들 자식들 가운데서 맏아들은 모두 대속하여야 합니다.

14 뒷날 당신들 아들딸이 당신들에게 묻기를,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거든, 당신들은 아들딸에게 이렇게 일러주십시오.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이집트 곧 종살이하던 집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셨다.

15 그 때에 바로가 우리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으므로, 주님께서, 처음 난 것을, 사람뿐만 아니라 이집트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죽이셨다. 그래서 나는 처음 태를 열고 나온 모든 수컷을 주님께 제물로 바쳐서, 아들 가운데에서도 맏아들을 모두 대속하는 것이다.

16 이것을 각자의 손에 감은 표나 이마 위에 붙인 표처럼 여겨라. 이렇게 하는 것은,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다.'"

 

주석

초태생을 제물로 바침(12-16절) 초태생 가축은 야웨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제물로 바쳤으나, 나귀는 제물로 바칠 수 없었다. 아마도 나귀는 짐을 실어 나르는 동물로서 중요하기 때문에 제물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귀는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구제되고 그 대신 다른 제물이 드려졌다(IVP 배경주석). 

 

태를 처음 열고 나오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나귀와 사람의 처음 난 것은 어린양으로 대속, 즉 다른 제물로 바치는 것이 가능합니다(12-13절). 초태생을 봉헌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바로의 고집을 꺾기 위해 이집트 땅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죽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대속으로 초태생 죽음의 재앙을 모면한 이스라엘 백성은, 앞으로도 동물들의 초태생을 바치는 것을 통해 맏아들을 대속해야 합니다(15절).

 

처음 난 것을 죽이는 하나님의 열 번째 재앙은 이집트에게는 죽음과 심판이요, 이스라엘에게는 생명과 구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구원은 ‘어린 양의 피’라는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대속’은 하나님이 대리 지불을 허용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희생을 통해 누군가를 살리는 것입니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헌신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기도해 보고 실천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대속하는 이유는 기억에 있다. 

죄에 대한 대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증표로서의 대속이다. 

맏아들과 맏나귀가 죄가 있어서 그들을 대신해서 어린 양을 대신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소유라는 사실을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 전체에 공표하는 예식으로서 대속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런 공동체적 예식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절기를 통해서도 기억과 기념의 활동이 일어난다. 

동시에 각 가족마다 첫째가 때어날 때마다 대속의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그 때마다 가족 구성원 모두와 마을 공동체 전체가 대속 제물로 바쳐진 어린 양의 고기를 먹으면서, 기억과 기념의 활동이 일어난다. 

이제 모든 가족의 첫째는 마을 전체가 인정하는 하나님의 것이 된다. 

그 첫째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은 하나님의 소유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에,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환영받고 환대받았기 때문에,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진다. 

이런 독특한 역할 규정으로 인해 가족과 공동체를 영적으로 이끄는 리더가 된다. 

모든 자녀들이 마을 공동체로부터 환영받겠지만, 특히 첫째의 존재는 더욱더 부각된다. 

가족과 마을의 영적 리더로서 성장하게 된다. 

기억의 재생, 영적 교육의 중추, 하나님 중심의 삶에 대한 기준 제시 등등

첫째의 역할은 축복이자 부담이 된다. 

공동체로부터 격한 환대와 축복을 받지만, 동시에 가족과 공동체를 영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부담을 느낀다. 

첫째의 첫째도 그렇겠지만, 둘째 셋째 집의 첫째도 마찬가지다. 

 

첫째 아들을 바쳐야 한다는 이 말씀 때문에/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드려진 바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삶에 적용하는 보수적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셨다. 

첫째 아들을 드려야 한다는 말씀의 적용은 나를 목사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실제로도 천 번의 새벽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를 드리셨다. 

축복과 부담. 이 두 가지를 나는 항상 느꼈다. 

많은 교인들의 축복과 환대를 받았다. 동시에 그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더욱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적 삶의 무게가 오랫동안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가난한 집 맏아들로서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종교적, 영적 역할도 감당해야 했다. 

착해야 했고, 순종적이어야 했고, 탁월해야 했다. 

공부도, 교회 생활도, 사회적 관계도… 

어렸을 때부터 어른처럼 살아야 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인 아이가 되었던 것이다. 

사춘기 시절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범생, 공부, 운동, 찬양 잘하는 교회오빠 스타일이 되어갔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해결되지 않는 정서적 정신적 부담을 안고 있었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 

 

좋은 점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었음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정신적, 정서적 무게가 항상 부담이었다. 

 

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핵심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역을 기억하고, 그분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소유라는 사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고대 사회는 첫째를 드림으로써 그렇게 했다면, 지금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는 성만찬에 참여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절기와 제사를 통해 세대간 교육 및 전수가 있었다면, 지금은 매주 예배과 교회 교육을 통해, 매일 이뤄지는 경건의 시간과 소그룹 나눔을 통해 일어난다. 

한 명에게 모든 영적 부담을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영적으로 이끄는 목사에게도 모든 부담과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삼으셨다. 

목사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평신도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첫째를 대속하는 마음으로 가정과 공동체를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역사를 기념하고, 그분의 소유됨을 기뻐하고, 그분의 뜻을 수행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를 대속하는 마음으로… 

그 진지함으로… 

 

[오늘의 기도]

당신의 일을 기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당신이 하신 인류 구원과 구출의 사건을 기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첫째를 드림으로써 과거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매일 첫마음을 드림으로써 지금의 우리가 그렇게 하게 하소서. 

나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일에 사용하여 주소서. 

주님의 뜻이 이뤄지는 일에 사용하여 주소서. 

 

게으름을 이기게 하시고, 

더욱 부지런히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기념하고, 사람들을 교육하고, 함께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도우소서. 

 

오늘도 첫 마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15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15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먹어야 한다. 그 첫날에 너희는 집에서 누룩을 말끔히 치워라. 첫날부터 이렛날까지 누룩을 넣은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

16 너희는 첫날에 거룩한 모임을 열고, 이렛날에도 거룩한 모임을 열어라. 이 두 날에는, 너희 각자가 먹을 것을 장만하는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17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바로 이 날에 내가 이집트 땅에서 너희 온 이스라엘 지파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 날을 영원한 규례로 삼아서 대대로 지켜야 한다.

18 너희는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그 달 스무하룻날 저녁까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

19 이레 동안에는 너희 집 안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된다. 누룩 든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외국인이든지 본국인이든지,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진다.

20 누룩을 넣은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야 한다. 너희가 어디에서 살든지, 이 기간 동안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

 

주석

무교절(17절) 무교절은 유월절 이후 칠 일 동안 경축된다. 그것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서두르느라 누룩을 가져올 수 없었으며, 따라서 누룩 없이 떡을 구워야 했던 것을 나타낸다(IVP 배경주석).

 

주님은 유월절 밤부터 칠일 동안을 무교절로 제정하십니다. 무교절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안식하면서 거룩한 모임을 열어야 합니다. 또한 무교절 기간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만을 먹어야 합니다(16, 18절). 유월절과 함께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지켜야 했습니다(17절). 이 기간 동안 누룩을 넣은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집니다(15, 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이후에 더 이상 이집트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급히 떠나야 했기에 발효시킬 여유도 없이 빵을 구워야 했습니다.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던 상황을 기념하는 것이며, 그들이 실제 겪은 상황이었습니다(12:34). 옛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음을 기념하는 데에, 일상에서 누리는 것들에 변화를 주거나 절제하는 일이 도움이 됩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 한주 동안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더 깊이 묵상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거룩한 모임을 상상한다. 

첫째날과 이렛날(제 7일 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거룩한 모임을 한다. 

누룩없는 빵을 먹으며 다른 일들은 일체 금한다. 

모든 사람이 유월의 출애굽 사건을 기념한다. 

함께 모인 모든 무리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그 일의 의미를 서로 나눈다. 

어떤 이야기는 반복이 최선이다. 

하루 종일 과거의 사건을 음미하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고, 어린 양의 피에 대해 말한다. 

그렇게 거룩한 모임은 대대로 이어지는 산 교육장읻다. 

거룩한 모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겹다. 

 

거룩한 모임에서는 과거가 되살아 난다. 

10가지 재앙이 다시 살아난다. 

이집트와 고센 땅 사이의 큰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를 되새긴다. 

위대하신 하나님, 웅장하신 하나님이 드러난다. 

이스라엘을 끝까지 붙드셔서 한 민족으로 독립하도록 이끄셨다. 

거룩한 모임에서는 이런 과거가 되살아 난다. 

 

거룩한 모임 날에는 어떤 노동도 금지된다. 

히브리 노예는 일년 내내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왠만큼 아파서는 쉴수도 없었을 것이다. 

거의 죽을 만큼 아프고 다쳐야 겨우 쉴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들을 다루는데 이집트 관료들은 최신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일하다 죽는 것이 노예의 삶이었다. 

그들에게 예배는 사치다. 

절기를 지키는 것 또한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에게 절기를 만들어 주시고, 일하는 것을 쉴 수 있는 강제조항을 만들어 주셨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휴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회복하지 않으면 인간은 빨리 죽게 된다. 

거룩한 모임 날에는 어떤 노동도 금지된다. 

 

무교절 기간에는 누룩없는 빵을 먹어야 하며, 이는 회중에 있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살려고 하면, 무교절 기간에는 누룩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누룩없는 빵은 사실 맛이 없다. 

맛과는 상관없이 그 빵이 주는 상싱적인 의미가 많기 떄문에 먹는 것이다. 

삼시세끼 7일 동안 그들은 식사 때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되새긴다. 

그 의미를 되새기지 않는다면, 먹는 걸로 불평불만인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먹는 것은 생존과 관련되며 본능에 속한 것이라 조금만 이상해도 불평이 쏟아진다. 

그 맛없는 음식을 7일간 먹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치도록 싫은 일일 것이다. 

외국인들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누룩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외국인, 나그네,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그들도 이스라엘의 절기와 율법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의 조건이다. 주민등록증, 여권 같은 신분증과 유사하다. 

외국인들에게 누룩없는 빵은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회중에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독특함을 기억과 반복에서 찾으신다. 

과거의 일들을 계속 기억하게 하신다. 

시기 마다 반복하게 하신다. 

혈통이나 육체의 징표가 아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고, 반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세대에 걸쳐 전수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징표다. 

그것을 기억하기 쉽도록 절기가 있는 것이고, 절기의 규정들이 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그래서 예수님의 삶을 기억한다. 

그분의 삶과 사역과 가르침과 십자가와 부활을 계속 기억하고 반복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다음 세대에게도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독특함이요 증거다. 

 

그런 면에서 구약과 신약은 긴밀히 연결된다. 

유월절 어린 양은 십자가의 예수님과 연결된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성금요일과 부활절로 연결된다. 

유월절 성회는 예수님의 성만찬과 연결된다. 

출애굽을 기념하듯이 출사탄을 기념한다. 

세상의 권력으로부터 자유했다면, 이제 영적 세력을로부터도 자유한다. 

신약은 구약의 포맷을 많이 차용한다. 

그런 반복이 영원한 하나님의 일관된 성품을 반영한다. 

변화하시지만, 또한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은 구약과 신약의 긴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모델, 전형이 있음으로 밝혀진다. 

그렇게 구약과 신약은 가깝게 연결된다. 

 

오늘도 하나님을 기억한다. 

예수님을 기억한다. 

그분과 더욱 긴밀히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분이 일하실 것을 기대한다. 

피정 2일차이다. 

어제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어떻게 만나주실지 기대가 된다. 

거대한 하얀 산과 웅장하고 힘찬 하얀 독수리 같이 도와주시고 보호하시는 그분을 기대한다. 

그분의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 반복한다. 

내 마음 속에 그분의 세계관으로 가득 채워질 때까지… 

 

 

[오늘의 기도]

절기를 통해 당신을 기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1년에 한 번이라도 당신을 더욱 깊이 경험하길 원합니다. 

그 경험이 자주 반복되어 당신의 세계관, 당신의 관점으로 저의 마음과 생각을 채우길 소망합니다. 

피정 기간, 세상의 일들을 다 내려놓고, 더욱 주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모든 잡념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이렇게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는 시간에 오직 주님께서 가정과 지인들을 보살펴 주시길 위해 기도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주소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살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1월 23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1 너희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2 그에게 노래하면서, 그를 찬양하면서,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여라.

3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을 찾는 이들은 기뻐하여라.

4 주님을 찾고, 그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여라.

5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기억하여라. 그 이적을 기억하고, 내리신 판단을 생각하여라.

 

6 그의 종, 아브라함의 자손아, 그가 택하신 야곱의 자손아!

7 그가 바로 주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8 그는, 맺으신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신다. 그가 허락하신 약속이 자손 수천 대에 이루어지도록 기억하신다.

9 그것은 곧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요, 이삭에게 하신 맹세요,

10 야곱에게 세워 주신 율례요, 이스라엘에게 지켜 주실 영원한 언약이다.

11 "내가 이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물려줄 기업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석

이삭에게 하신(9절) ‘하신’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자르다’(cut)는 의미로, 공식적 언약 제정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다(IVP 성경주석).

율례(10절) 변치 않는 헌신을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시인은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그가 하신 일들을 전하라고 촉구합니다(1-2절). 주님을 찾아 예배하고, 그의 능력을 사모하며,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라고 합니다(3-4절).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은, 맺으신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주님은 허락하신 약속을 아브라함에서 수천 대가 지난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8-10절). 하나님은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11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고 성취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이야기가 곧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아브라함의 소명이 곧 이스라엘의 소명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갈 3:7) 우리의 이야기와 소명입니다. 내가 기억해야 할 주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 약속의 성취를 신뢰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묵상]

시편의 직설적 명령이 맘에 든다. 

크게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감사하라, 찬양하라, 예배하라.

시인의 존재에서 터져나오는 저 명령에 정신이 확 든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이 그분의 백성들의 당연한 의무다. 

이것 저것 재지 않고, 이리 저리 머리 굴리지 않고, 그저 그분의 영광과 성품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적 행동이 되어야 한다. 

예배적 존재, 경배적 존재.

단순히 생존을 넘어선다. 

본능적 욕구를 넘어선다. 

식욕, 수면욕, 성욕을 넘어선다. 

 

1. 기억하라

특별히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분이 하신 일, 그분이 행하셨던 이적, 그분이 내리셨던 판단. 

이 모든 것을 세밀하게 기억하는 것이 찬양의 중심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기억의 종교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든지, 혹은 마음을 비우든지 하는 수행이 핵심이 아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판단으로 실제 행한 일이 무엇인지 기억해 내는 것이 핵심이다. 

기독교와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다. 

기독교와 성경의 역사성은 밀접하다. 

성경의 뼈대는 역사서다. 

히브리 민족의 구원 역사, 이스라엘 백성의 대안적 나라 건설의 역사, 그리고 인류 구원의 역사… 

그 역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행하셨는지 기억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에 놓여 있다. 

기억에 없는 신을 찬양할 수 있는가! 기억에 없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가!

 

성경을 통독하고 매일 말씀을 읽는 것도 우리의 기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함이다. 

매 사건마다 그분이 하신 판단에 대해 듣는 것, 

매 예배 때마다 그분이 하신 이적과 기적에 대해 듣는 것, 

무엇보다 매 찬양마다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인류 구원의 놀라운 기적에 대해 듣는 것, 

이것이 기억의 종교 기독교의 중심이다. 

 

감동이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그것이 없다해도 일단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기본은 하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니, 매번 예배 때마다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할 수 있다. 

시간이 들더라도 그분의 판단을 면밀히 살펴보고 기억하는 것, 

우리의 뇌 근육을 풀어서, 신경 세포들을 활성화해서 그분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예배 때 일어나야 할 일들이다. 

 

2.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우리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특히 사람들과 하셨던 언약, 약속, 결정, 합의, 논의를 세밀하게 기억하신다. 

그 때의 감정과 생각까지도 다 기억하신다. 

그 기억이 하나님의 판단과 행동의 근간을 이룬다.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심을 그 스스로 증명하신다. 

아담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신다. 

모세, 다윗, 솔로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의 약속을 기억하신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신다. 

그 분 스스로 이 땅 위에 오신다. 

사람들을 살리시고 귀신을 내쫓으신다.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다. 

그렇게 사단의 권세를 깨부수신다. 

더이상 사단은 권위와 권세는 깨지고 만다. 

사단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짓말과 위협이다. 

 

그리고 다시 약속을 주셨다. 

다시 오시겠다고. 

언젠가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겠다고.

그리고 그 약속의 징표로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성령님은 그렇게 우리 안에서 속에서 역사하신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언약을 기억하시는 그분의 성품을 닮아 우리도 언약에 더욱 성실하게 살아간다. 

신실하신 분, 믿을 만한 분, 의지할 분을 닮아 우리도 더욱 신실하게, 믿을 만하게, 의지할 만하게 살아간다. 

 

명절 연휴.

다른 것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 

쉬는 것이 도가 지나쳐 몸을 망치지 않아야 한다. 

쉼은 회복을 위한 것이지, 몸의 흐름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당신의 생각, 판단, 일, 이적… 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싶습니다. 

제 기억을 새롭게 하소서. 

저는 기억이 세밀하지 못합니다. 

자꾸 잊어버립니다. 

이름도 까먹습니다. 

사건도 잘 기억 못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역사의 순간 순간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더욱 기억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더 기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신을 더 기억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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