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20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석]

7절. 경건한 유대인은 세리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의 음식을 먹는 것을 몹시 싫어했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8절. 그가 약속한 배상은 바리새인의 율법에서 규정한 양보다 훨씬 많았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사람들이 수군댄다. 

그 소리가 삭개오(스가랴_히브리말)에게도 들린다. 

오랫동안 수군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살았다. 

대놓고는 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한쪽 구석으로 가서 말한다. 

‘저놈은 민족의 배신자야. 죄인이야’

안들리게 말한다고 하지만 다 들린다. 

사람들이 모여서 말할 때마다 신경쓰인다. 

그들은 삭개오를 비난하고 정죄한다. 

어쩔 수 없다. 

그게 그의 직업이다. 

먹고 살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벌써 많이 들었다. 

그가 죄인들의 친구라는 소문도 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세리도 있다더라. 

어린 아이, 창녀, 과부, 여인들… 그야말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이 많은 분이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병도 고쳐주셨고, 귀신들린 사람들도 낫게 하셨단다. 

점점 사람들이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삭개오, 즉 스가랴(깨끗한, 무죄한 -> 의로운 사람)도 관심이 갔다. 

자신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놀림받는 것 같다. 

'결백이는 죄인이야.’

이름과 반대되는 서술어가 붙는다. 

자신의 이름과 반대되는 삶이다. 

그런데 이런 죄인들과도 식사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신단다. 

한번 꼭 보고 싶었다. 

 

어렵게 예수님을 보았다. 

키가 작은 것이 언제나 콤플렉스였다.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언제나 소외되었다. 

세리장이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대로 구경을 못해서기도 하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매번 물어봐야 하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고… 

직접 봐야 하는데, 키가 작으니 보이지도 않고…

애처롭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나무에 올라가 앉는 것이다. 

나이들어 체면이 구기지만, 그래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예수님의 얼굴만이라도 제대로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죄인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구원하신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될 터다. 

 

예수님이 스가랴를 보셨다. 

나무에 올라가 있는 세리장에게 다가가신다. 

그리고 내려오라고, 너의 집으로 가자 하신다. 

무슨 일인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얼떨떨하다. 

집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를 준비하는데, 또 수군댄다. 

‘죄인인 결백이의 집에 예수님이 있대.'

‘결백이는 죄인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거기에서 식사를 하실 생각을 하시지?’

진절머리 나는 저들의 뒷담화.

하지만, 수군대는 소리는 점점 뒤로 흩어지고, 예수님의 얼굴만 부각된다. 

그리고 그분이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기 시작한다. 

 

감사는 곧바로 반응으로 이어진다. 

소유의 절반, 강제로 뺏은 것은 4배로 갚겠다는 결심을 피력한다.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 

오랫동안 해결하고 싶었다. 

정말 결백이가 되고 싶었다. 

죄인이라고 몰아세우는 사람들 앞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죄인을 구하러 오신 분, 이 분 앞에서 결심을 말하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예수님은 구원에 대해 말씀하신다. 

결백이의 집에 구원이 임했다. 

원래 스가랴는 유대 사람이었지만,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손가락질 했었다. 

그러나 이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스가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해 주셨다. 

진정 예수님은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라 오신 분이시다. 

 

자격없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배척받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그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다. 

자신의 자격으로 으시대던 사람들은 부끄럽다. 

지금도 예수님은 스스로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더 극적으로 다가가신다. 

스스로 자격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우회적으로 그들의 교만을 깨닫게 하신다. 

그걸 깨닫는 자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나의 교만을 직시하고 주님의 깊은 뜻에 감탄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스스로 부족하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을 새롭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의 자녀 삼으시고, 당신의 제자로 만들어 주소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15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10 사람이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살며, 고통과 쇠사슬에 묶이는 것은,11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이다.12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고통을 주셔서 그들을 낮추셨으니, 그들이 비틀거려도 돕는 사람이 없었다.

13 그러나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그들을 그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다.14 어둡고 캄캄한 데서 건져 주시고, 그들을 얽어 맨 사슬을 끊어 주셨다.15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16 주님께서 놋대문을 부수시고, 쇠빗장을 깨뜨리셨기 때문이다.

 

17 어리석은 자들은, 반역의 길을 걷고 죄악을 저지르다가 고난을 받아18 밥맛까지 잃었으니, 이미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19 그 때에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다.20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 주셨고, 그들을 멸망의 구렁에서 끌어내어 주셨다.21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22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주님이 이루신 일을 즐거운 노래로 널리 퍼뜨려라.

 

ESV

Some sat in darkness and in the shadow of death, prisoners in affliction and in irons, for they had rebelled against the words of God, and spurned the counsel of the Most High(10-11절).

 

주석

고통과 쇠사슬에 묶임(10절) 이 시를 바벨론 포로 귀환과 연결시키는 것은 일반적인 견해이다(IVP 성경주석).

 

인자하심(15절) 이 개념은 성경에서 여러 용어로 표현되었다. 구약의 주요 용어는 헤세드로, 이는 친절이나 은혜를 의미하며, 그의 백성을 자비롭게 대하도록 되어 있는 은혜로운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리킨다(IVP 성경사전).

 

시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어두운 과거를 언급합니다(10-11절).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17-19절).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덕분에 포로 생활에서 해방된 것입니다(13-16절). 시인은 이러한 놀라운 구원을 경험한 사람 모두에게 주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살도록 촉구합니다(21-22절).

 

이스라엘은 자신의 의로움이나 자격으로 포로에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근거합니다. 그렇기에 고통의 자리에서 해방된 자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게 됩니다. 나는 오늘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일 수 있을까요? 감사의 마음이 어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부르짖는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도와 줄 사람에게 호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당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대상은 사람이나 귀신이 아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인자하심이 영원하며 자비로우심이 위대하다. 

그분은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죄로 인해 멸망했던 이스라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 

그들의 포로 생활을 끝내 주시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도록 인도하신다. 

 

피곤이 고난이 되는 경우는 그 피곤으로 인해 몸이 점점 망가진다는 사실을 알 때다. 

자기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할 일들의 중대성, 의무감 등으로 멈출 수 없을 때, 고통스럽다. 

노동이 고난이 된다. 

이집트의 히브리 노예들의 삶이 그러했다.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렸다. 

최근 몸이 고되다는 것이 느껴진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 

배워야 하고, 소통을 증진시켜야 하고,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고, 읽어야 하고, 만나야 하고, 그리고 기획해야 한다. 

나이 들면 조금은 쉬워질 줄 알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회가 바뀌고, 인구 구조가 바뀌니 과거에 내가 봐 왔던 어른들의 모습은 간 곳 없고, 난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일들에 매달리고 있다. 

아이는 어리고, 가정은 여전히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는 환경… 

사실 가장 큰 원인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 혹은 성격일 수 있다. 

성격상 조용히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환경이다. 

조용히 기도하고 싶고, 조용히 하나님과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이게 점점 어려워진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점점 그 시간이 줄어든다. 

그나마 이렇게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는 시간이 나를 잡아준다. 

고난 같지 않은 이 일상의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나의 묵상은 하나님에 대한 부르짖음이다. 

조용히 글을 적지만, 마음은 불이다. 

 

책임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분의 은혜가 절실하다. 

인자하심이 크신 그분의 도움이 절실하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로 노래를 부르라고 요청한다. 

22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주님이 이루신 일을 즐거운 노래로 널리 퍼뜨려라.

주님이 하신 일들을 노래로 표현하고 그 노래를 널리 퍼뜨리는 것.

그래서 시인도 이런 시들을 많이 쓰고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주님이 하신 구원의 역사를 즐겁고 기쁜 노래로 부르는 것은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다. 

뒤늦게 찬양사역자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찬양이 즐겁고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고 싶은 열망이 크다. 

하나님의 역사를 즐거운 찬양으로 부르고 다같이 기도하는 광경이 참 좋다. 

 

부르짖음과 노래가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예배다.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과 심사가 쏟아져 나오는 곳,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를 상기하고 기념하는 곳, 

그곳이 예배다. 

제발 그 예배가 더욱 치열하고 아름답게 드려지길 고대한다. 

솔직한 마음들이 쏟아지고, 그 마음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뒤덮는다면, 

인간은 살 용기를 얻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생의 의지를 다진다. 

 

주일의 예배든, 일상의 예배든 상관없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심사+하나님의 구원 역사… 이 둘이 만나는 곳… 

그 예배를 지금 드린다. 

 

 

[오늘의 기도]

사람의 모든 감정과 마음의 일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 

지금 이 순간 피곤함을 잠시 뒤에 두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내 마음을 아십니다. 

연약함을 아십니다. 

다시 시작할 힘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하셨던 그 놀랍고 신기한 일들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을 바꾸시고,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셨던 일들을 기억합니다. 

주님 그 기억이 더욱 선명해지게 하소서. 

선명하다 못해 깊은 찬양으로 터져나오게 하소서. 

저의 일상을 구원하소서. 

수 많은 일들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지켜나가게 하소서. 

그 모든 중요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14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 달을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아서,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알리어라. 이 달 열흘날 각 가문에 어린 양 한 마리씩 곧 한 가족에 한 마리씩 어린 양을 마련하도록 하여라.

4 한 가족의 식구 수가 너무 적어서,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으면,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계산하여, 가까운 이웃에서 그만큼 사람을 더 불러다가 함께 먹도록 하여라.

5 너희가 마련할 짐승은 흠이 없는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골라라.

6 너희는 그것을 이 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해 질 무렵에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모여서 잡도록 하여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다가, 잡은 양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야 한다.

8 그 날 밤에 그 고기를 먹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함께 먹어야 한다.

9 너희는 고기를 결코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서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 할 것 없이, 모두 불에 구워서 먹어야 한다.

10 그리고 너희는 그 어느 것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이 있으면,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11 너희가 그것을 먹을 때에는 이렇게 하여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서 먹어라. 유월절은 주 앞에서 이렇게 지켜야 한다.

 

12 그 날 밤에 내가 이집트 땅을 지나가면서,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모두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의 모든 신을 벌하겠다. 나는 주다.

13 문틀에 피를 발랐으면, 그것은 너희가 살고 있는 집의 표적이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그 피를 보고 내가 너희를 치지 않고 넘어갈 터이니, 너희는 재앙을 피하여 살아 남을 것이다.

14 이 날은 너희가 기념해야 할 날이니, 너희는 이 날을 주 앞에서 지키는 절기로 삼아서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켜야 한다."

 

주석

달력(1-11절) 이 사건 때문에 아빕월(후에 니산월이라고 불림)이 이스라엘 종교력의 첫 달이 되었다. 일반 달력에 의하면 여섯 달 후인 티쉬리월이 첫 번째 달이었으며, 따라서 그 달에 ‘설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달력은 음력으로서 주기적으로 양력에 맞추어 조정했다. 아빕월은 춘분 이후의 첫 번째 초승달이 뜰 때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보통 3월 중순이었으며 4월 중순까지 이어졌다(IVP 배경주석). 

 

어린 양(3절) 바울은 주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신약의 강조점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결정적 새 출발로 부른다(BST 출애굽기).

주님은 유월절 식사에 대해 가르치십니다(1-10절). 유월절이 있는 달이 한 해가 시작하는 달이 되고, 유월절은 영원히 기념해야 할 절기가 됩니다(2, 14절). 유월절 그날 밤에 주님은 이집트 땅의 처음 난 것을 모두 치시고, 이집트의 모든 신을 벌하십니다(12절).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을 피해 살아남습니다(13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은 위대한 새 시작의 날(2절)입니다. 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노예의 비참함에서 해방과 자유로 도약한 놀라운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은 신앙적 행위입니다. 내 인생의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기억하고 기념하는 신앙적 행위를 계획하고 실천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이날을 기다려왔다. 

하나님의 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날,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가 동시에 드러나는 날,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드러나는 날, 

이날을 기다렸다. 

 

편하게 먹는 날은 아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서 먹어야 하는 날이다. 

웃으며 먹기가 어려운 날이다. 

5분 대기조 같은 느낌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엄청난 전쟁을 치르기 전 몸에 단백질을 채우는 과정 같다. 

편하게 즐기면서 먹는 날이 아니다. 

 

이 날은 이집트의 신들이 압사 당하는 날이다. 

이집트의 신들로는 이 재앙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이 기대하고 신뢰하던 우상들은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 

그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야말로 욕망의 투영체다. 

아이돌은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영향력이 커진다. 

군중 심리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더욱 커진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상인지 이제 깨닫는다. 

인생의 실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자신의 세계과 고집에 갇히게만 한다. 

그런 신들의 세계에 핵폭탄을 던지신다. 

이 날은 이집트의 신들이 산산히 부서지는 날이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벌 주신다. 

그들을 심판하신다. 

이집트 신들 배후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그 신들 앞에서 권력놀음을 하던 기득권들을 심판하신다. 

그 신들은 각 가정에서 벌어질 맏이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무력한 신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동안 9가지 재앙으로도 충분히 드러났지만, 이제 카운터 펀치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심판하신다. 

 

이 날은 영원히 기념하고 지켜야 할 날이다. 

우주 역사상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다고 해서 그 재앙이 넘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이나 했을까?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산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그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을 따르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는다. 

그러니 이 날은 영원히 기념하고 지켜야 할 날이 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야 산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이 흘린 피로 가족과 개인의 머리와 몸에 발라야 한다. 

그분의 살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그분께 순종하고 신뢰를 표현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직접 자신의 피와 살을 먹으라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야 산다.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서 다시 성만찬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예수님이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피와 몸을 먹고 마시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십자가의 구원과 심판을 바라본다. 

그리고 계속 상기시켜 나가고 그 곳에 머물 수 있다. 

그분을 묵상하고 상상할 수 있다. 

다시 성만찬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3일간 피정에 들어간다.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시간

성령님을 더 깊이 의지하는 시간

주님의 생각으로 채우는 시간

내 욕심을 버리고, 내 방식을 버리는 시간. 

그렇게 3일간의 피정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놀라운 유월절을 재정하신 하나님, 

당신의 구원을 봅니다. 

구약과 신약이 이렇게 이어지니 감사합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렇게 연결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월절 사건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 기억합니다. 

유월절 사건을 재현하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유월절 사건의 예를 들어 인류 구원의 길을 이해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존중하며 찬양합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합니다. 

저와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주의 일하심을 보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7 19 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고라 자손의 노래]

1 주님은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그의 거룩한 산에서 그지없이 찬양을 받으실 이시다.

2 우뚝 솟은 아름다운 봉우리, 누리의 기쁨이로구나. 자폰 산의 봉우리 같은 시온 산은, 위대한 왕의 도성,

3 하나님은 성의 여러 요새에서, 자신이 피난처이심을 스스로 알리셨다.

4 보아라, 이방 왕들이 함께 모여 맹렬히 쳐들어 왔다가

5 시온 산을 보자 마자 넋을 잃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6 거기에서 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혔으니, 고통당하는 그들의 모습이 해산하는 여인과 같고

7 동풍에 파산되는 다시스의 배와도 같았다.

8 우리가 들은 그대로, 우리는 만군의 주님께서 계신 ,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다. 하나님께서 성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 (셀라)

9 하나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 되새겨 보았습니다.

10 하나님, 주님의 명성에 어울리게,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도 끝까지 퍼졌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구원의 선물 가득 있습니다.

11 주님, 주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시온 산이 즐거워하고, 유다의 딸들이 기뻐서 외칩니다.

12 너희는 시온 성을 돌면서, 성을 둘러보고, 망대를 세어 보아라.

13 너희는 성벽을 자세히 보고, 궁궐을 찾아가 살펴보고, 영광을 전해 주어라.

14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영원토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다하여라.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1절). 하나님의 도성 시온은 영원히 견고할 것입니다(8절). 이 시온은 대적자들이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3절). 하나님께서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시온을 구원하십니다(10절).

 

대적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두려워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그 어떤 대적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고, 구원하십니다. 오늘 하루, 이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기억합시다.

 

——

 

찬양 받으실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분이 거하는 시온산은 그분의 백성들의 피난처이다. 

원수들이 올라오지만 주님의 임재에 혼쭐이 난다. 

하나님은 그의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신다. 

그의 백성들은 그분의 임재 속에서 안전하다. 

평안하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열거한다. 

무엇보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보호하심으로 사랑을 표현하신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분은 모든 군대보다 뛰어나며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신다. 

구원하시는 것을 즐거워하신다. 

구출하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주셨다.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로부터 구원해주셨다. 

이스라엘의 여러 주변국으로부터 구원해주셨다. 

결국 하나님은 사단의 권세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주셨다.

더이상 사단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다. 

고소를 한들 정죄받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고소는 겁을 주는 용도 외에는 쓸모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살아간다. 

보호를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악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믿고 방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악용이다. 

선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믿고 감사하며 주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선용이다. 

 

오늘 시인은 성벽을 둘러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더욱 기리고 기억한다. 

12 너희는 시온 성을 돌면서, 성을 둘러보고, 망대를 세어 보아라.

13 너희는 성벽을 자세히 보고, 궁궐을 찾아가 살펴보고, 영광을 전해 주어라.

성벽의 기능과 아름다움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전과정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서 우리는 더욱 찬양하게 된다. 

구원의 벽돌이 어떻게 쌓아졌는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살피는 일은 감사와 찬양의 재료가 된다. 

구원의 성벽을 살펴보라. 

구원의 역사를 살펴보라. 

우리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찬히 살펴보라. 

그분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신 백성이며 구원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하나님이 하신 , 예수님이 하신 , 성령님이 하신 .. 

삼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돌아보라. 

창조, 언약, 통치, 성육신, 십자가, 부활, 예수님 회상, 은사, 열매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된다. 

세상의 창조와 인류의 창조는 인간의 위치와 정체성을 확보한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원하신다. 

그분은 인간사회에 개입하셔서 통치하신다. 특히 언약을 매개로 그분의 현실 나라를 운영하신다. 

문제는 반역의 인간들로 인해 하나님의 현실 통치가 엇나간다는 것에 있다. 

하나님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원하셨다. 

사람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하셨다. 

직접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인간의 다리가 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새로운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있는 길을 만드셨다. 

부활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가올 세상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셨다. 

성령님은 줄곧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올리기 하신다. 예수님을 닮는 성도들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도록 맡기신다. 

그리고 성품과 실제에서 열매를 맺도록 도우신다. 

삼위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삼위 하나님 안에 거하라고 오늘도 말씀하신다. 

그분의 사랑의 연합안에서 숨쉬고 움직이고 사랑을 느끼리고 말씀하신다. 

 

삼위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시다. 

나의 피난처시다. 

삼위 하나님 안에서 안식한다. 

새로운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주님을 찬양한다. 

 

——

 

삼위 하나님, 

주님의 사랑의 연합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주님 안에서, 평안을 느낍니다. 

저도 사랑의 존재가 되게 해주세요. 

분의 사랑의 연합에 참여하게 주세요. 

그렇게 주님 안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주를 시작하게 해주세요.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그들도 주님의 연합 가운데로 들어와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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