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24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7 예수께서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골라잡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8 “네가 누구에게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라. 혹시 손님 가운데서 너보다 더 귀한 사람이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9 너와 그를 초대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이 분에게 자리를 내드리시오’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앉게 될 것이다.10 네가 초대를 받거든, 가서 맨 끝자리에 앉아라. 그리하면 너를 청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친구여, 윗자리로 올라앉으시오’ 하고 말할 것이다. 그 때에 너는 너와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께서는 자기를 초대한 사람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네 친구나 네 형제나 네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되갚아, 네 은공이 없어질 것이다.13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14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The Message

Invite some people who never get invited out, the misfits from the wrong side of the tracks(13절).

 

주석

12-13절. ‘이것은 하지 말고, 저것을 하라’는 식의 표현 방식은 때때로 ‘(단지) 이것만 하지 말고, (또한) 저것도 하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예수님이 여기서 정죄하시는 것은 주로 손에 잡히는 세상적인 보상을 위해서만 선을 행하는 태도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7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골라잡는 것을 보시고

바리새인의 지도자 집에 초대를 받아 수종병 든 사람을 고치시는 장면이 있었다. 

그 집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자리, 돋보이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이 마뜩치 않았다. 

그래서 수종병을 고친 이후에 비유의 말씀을 전하신다.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 좋다.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 더 존경 받는 사람이 올 수도 있다. 

어차피 자기가 주인공이 아닌 경우에야, 그저 평범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좋다. 

주인이 필요하면, 자리를 옮겨주게 될 것이다. 

자칫하면 창피를 당할 수 있다. 

이것은 초대받은 사람의 태도여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초대받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초대한 호스트의 태도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하신다. 

그것은 초대 리스트를 적을 때, 아는 사람, 부유한 이웃만 부르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도리어 앞으로 갚을 일이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라신다. 

 

14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사실 이런 정도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의 큰 메시지에 비하면 비중에 작다고 볼 수 있다. 

잔치에 누굴 초대하는가의 문제, 잔치 자리에 어디에 앉을지에 대한 문제는, 한 개인이 구원을 받거나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큰 관련이 없어보인다. 

지혜로운 처신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한 편으로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원리들이 담겨 있기도 하다. 

첫째, 하나님 나라는 겸손한 자들이 선대받는 곳이다. 

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자신 스스로 높이려는 자들은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가 동의해서 높이게 되면, 높아질 것이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는 곳이 하나님 나라다. 

이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원칙이라기보다, 이런 경우도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생생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부르심의 기준은 먼저 신앙 생활을 했느냐가 아니다. 

그것은 기실 하나님 마음이다. 

늦었지만, 겸손한 자를 찾으시기도 한다. 

예수님는 스스로 낮추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도 하셨다. 

 

둘째, 보상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14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사람에게서 보상을 바라는 태도는 자칫 실망과 미움을 낳는다. 

보상을 바라고 선하게 대하려는 태도는 그 행위 자체는 귀하지만, 동기가 바르지 않다. 

그저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니 선한 행동과 행위를 하는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보상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그리고 그 보상은 의인들이 부활하는 그 때,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이뤄진다. 

하나님은 멋진 축하의 말씀을 해주시고, 잘 했다고 칭찬해 주실 것이다. 

재림 신앙, 소명 신앙, 보상 신앙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에 대한 믿음이 재림 신앙이다. 

부르신 분은 한 분이시며, 그분만을 만족시키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소명 신앙이다. 

사람에게서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께 듣는 칭찬과 인정을 바라는 믿음이 보상 신앙이다. 

이 세가지 신앙의 원리는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태도다. 

 

열심히 사역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판단하실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겸손히 재림 신앙, 소명 신앙, 보상 신앙을 가지고 오늘도 묵묵히 부지런히 살아갈 일이다.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한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자녀의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저녁 시간을 더욱 지혜롭게 알차게 보내야 할 필요가 있다. 

방법이 없을까? 

피곤한 육체와 정신을 어떻게 이기고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겸손히 주님께 물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하나님 나라의 원리들을 잘 간직하게 도와주세요. 

마음 속에 두고, 때로는 외우고, 때로는 사용하면서 살게 해 주세요.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게 해 주세요. 

저의 소명을 더욱 분명히 알게 해 주세요. 

주님께만 칭찬듣겠다는 생각으로 일하게 해주세요.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고 교육하도록 도와주세요. 

저의 즐거움에 동원하지 않도록 

자녀들의 삶 그 자체를 깊이 긍정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23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5 백성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던 터에, 모두들 마음 속으로 요한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오. 17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18 요한은 그 밖에도, 많은 일을 권면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19 그러나 분봉왕 헤롯은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관련된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 때문에, 요한에게 책망을 받았고, 20 거기에다가 또 다른 악행을 보태었으니, 요한을 옥에 가둔 것이다.

 

주석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16절) 요한 자신은 메시아의 신발 끈을 푸는 종이 될 자격조차 없다고 말한다(IVP 성경비평주석).

 

성령과 불 세례(16절) 성령과 불 세례는 구원과 심판에 대한 요한의 종말론적 기대를 나타낸다(IVP 성경비평주석). 

 

헤로디아와 관련된 일(19) 헤롯 안티파스는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불륜 관계였다. 그 뒤에 헤로디아는 빌립과 이혼하고 안티파스와 재혼했다. 유대교 율법은 아내가 남편과 이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요한은 헤롯에 맞서 거침없이 말했고, 그 결과를 감수해야 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15절). 그러나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예비하는 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16절). 예수님은 요한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분으로서 불과 성령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실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을 첨예하게 가르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16-17절). 요한은 자신의 권면이 ‘기쁜 소식’이라고 말했습니다(18절). 그리고 그는 그 기쁜 소식을 따라 왕의 행실을 책망했고, 결국 옥에 갇히게 됩니다(19-20절).

 

요한은 자신에게 집중된 기대를 예수님께 돌리며 자신의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갑니다. 동시에 그에 따른 대가 역시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에게는 요한과 같은 겸손함과 충직함이 필요합니다. 나보다 예수님이 더 주목받으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립시다. 또한 옳은 길이라면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타협 없이 충직하게 걸어갑시다. 기쁜 소식을 따라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기도로 시작하고 싶다. 

 

몸과 마음을 주님께 솔직히 보여드립니다. 

꾸미거나 위장하지 않겠습니다. 

좋게 보이려고, 그렇다고 부러 나쁘게 보이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주님, 말씀으로 저를 비춰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요한의 겸손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므온도, 안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분들이었고, 게다가 성령님으로 충만한 분들이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고 싶었다. 

이집트에서 히브리 백성들을 탈출 시켰던 모세처럼, 가나안의 여러 폭력적인 민족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사사들처럼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탈출 시켜주는 새로운 지도자를 원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단순히 제국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요단강에서 회개를 선포하고 물로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실 메시야는 물이 아니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새로운 백성으로 다시 만들어 주는 일, 그 일이 메시야의 역할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기에, 요한은 더욱 겸손해 질 수 있었다.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었다.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러 온 대사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 중 일부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3년간의 공생애를 무사히 시작하고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감당했다. 

분위기를 만들었고, 사람들을 길러냈다. 

예수님의 메시지에 반응할 수 있는 환경과 사람들을 길러냈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탁월하게 잘 감당했다. 

그의 겸손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다. 

 

나는 탁월해지기를 갈망한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특별한 존재로 살고 싶다.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특별한 기여, 역사에 남는 공로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욕구가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보다 더 많은 것을 꿈꾸는 교만함이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겸손하게 내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고, 항상 더 위대한 것을 갈망한다. 

그러니 참 피곤하다. 

나만 피곤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피곤하다. 

탁월함은 유지하면서 겸손할 수 있는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2. 요한의 용기 

요한은 겸손할 뿐 아니라 용기와 결기의 사람이다. 

당시 권력자의 추한 행동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광야에서 설교를 했을 것이다.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부정을 폭로했다.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일반 백성들의 죄만 아니라 권력자의 죄를 언급한다. 

위험한 일이다. 

권력자들은 언제나 백성들의 인기를 가진 사람들의 발언에 주목한다. 

허약한 권력 정당성을 가지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부족하고 그래서 열등감을 가진 권력자들은 언제든지 권좌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위협을 받는다. 

지금 이스라엘 전역에 가장 핫한 인물이 요한이다. 

그를 내편으로 삼든지, 죽이든지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요한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회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죄를 지은 안티파스와 헤로디아다. 

자신들의 권력으로 율법을 어기고도 버젓이 왕 노릇을 하고 있다. 

구약의 숱한 선지자들이 그러했듯이 세례 요한도 용기있게 비판하는 설교를 한다. 

주저함이 없다. 

두려움이 없다. 

요사이 윤석렬 정부가 하는 일은 이해하기가 참 힘들다. 

일반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일을 감행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영구적으로 정착시키는 일에 매진해야 하는데, 도리어 전쟁 위기를 부추긴다. 

경제 정책이 실패할 수도 있고, 지난 과거 정부의 정책 여파로 현재 상황이 어려울 수도 있다. 

100번 양보해서 그렇다하더라고, 최소한 무기 밀집도가 최상위인 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최대한으로 낮추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최근에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비상용 배낭을 하나 구입해야 할까봐”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찾아온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생각이 든다. 

나라를 더욱 힘든 상황으로 이끌고 있는 윤석렬 정부를 비판한다. 

그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을 이해하는 것도 힘들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에 적을 두고, 세상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다스리기 위해 권력, 권한을 활용해야 한다. 

어떤 정부건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어떤 대통령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아서는 안된다. 

대통령과 관료들은 과거 시대의 왕과 신하들이 아니다. 

지금은 국민을 위해 섬기는 공무원일 뿐이다. 

따라서 국민을 위해 국익을 위해 일하도록 역할과 돈을 맡긴 것뿐이다. 

그렇다면, 기독인들은 하나님 나라 가치를 심사숙고해서 자신의 양심에 맞게 지지와 반대를 보내면 되는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렇기에 기독인들은 회색지대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면서도 혼전성관계를 반대할 수 있다. 

독신주의를 옹호하면서도 비혼주의를 반대할 수 있다. 

민주당의 정책을 옹호하면서도 민주당의 당론을 반대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우리는 정치 단체 자체를 옹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에 반한다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는 동일시 될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비교적 잘 드러내는 정치 집단이 있을 수 있다. 

그 집단과 단체를 일시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어느 집단이나 단체나 할 것 없이 첫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우리는 자신이 옹호하는 집단의 변화를 예민하게 관찰해야 할 것이다. 

 

나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숨고 지냈나 싶다.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내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도 그렇다. 

겸손과 용기, 세례 요한만 가진 자질이 아니라, 예수님도 가졌던 자질이다. 

그러기에 나도 그 자질들을 갖고 싶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주님, 

주님을 닮아 때로는 한없이 겸손하게, 때로는 한없이 날까롭게 해주세요. 

겸손과 용기를 허락하소서.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린이처럼 마음이 여립니다. 

용기가 없습니다. 

새로운 용기를 허락하소서.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6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을 입은 채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4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5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두고서는 내 약점밖에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6 내가 자랑하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NIV

But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e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9절).

 

바울은 십사 년 전에 경험했던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 말합니다(1-4절).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기를 바라며 자랑을 삼갑니다(5-6절). 바울 안에 있는 ‘가시’는 그를 약하게 만들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바울이 교만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7절). 이제 바울은 약함을 자랑하고 기뻐합니다. 그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9-10절).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환상과 계시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비방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염려해서 환상과 계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삼갔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인 ‘가시’가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가시’는 바울이 약해지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합니다. 우리는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해집니다.

 

[오늘의 묵상]

구구절절 설명하는 바울이 못마땅하다. 

통크게 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비판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그 다음을 준비하면 될 것을, 뭐 이렇게 구구절절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나누려고 하는지, 오늘은 들어주기 싫은 마음이 든다. 

아마도 며칠간 계속되는 바울의 속마음 이야기에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지를 쭉 읽었으면 들지 않을 마음인데, 매일 끊어서 깊이 묵상하다보니 나오는 반응인 것 같다. 

이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본문을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여기서 등장하는 “십사 년 전의 사람”은 바울 자신을 가리킨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바울이 처음 예수님을 믿고, 회개 한 뒤에, 깊은 영적 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계시를 받았다. 

모든 것을 다 알려줄 수는 없겠지만, 그 예언은 바울의 삶과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받았다. 

혹을 말로 드러내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보았다. 

무엇보다 바울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보았던 계시를 닮았다. 

다니엘이나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들이다. 

큰 신상의 환상이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환상…

이런 환상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세계다. 

바울은 어떤 면에서 이런 예언자들의 반열에 올랐다. 

요한도 계시록을 쓸 때, 이런 환상을 경험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이런 환상 전체를 말과 글로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자기 자랑이 될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남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할 것이 걱정되서다. 

바울은 한 명의 그리스도인지, 그 자신이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고린도교회에서 보이는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의 파당짓기에 이름이 올라갈 정도니, 자칫하면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을 것이다. 

자기 자랑이 과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도달할 수 없는 신적존재지만, 대단한 영웅적인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기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 

사람들을 희망을 주는 그 사람을 더 바라보게 된다. 

예수님보다 사람이 높아질 때, 자칫 우상이 된다. 

성도들에게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자기 자랑을 멈춰야 한다. 

 

바울은 도리어 자신의 약점을 노출한다. 

사탄의 하수인인 몸의 가시를 정직하게 말한다. 

그 몸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간곡하게 기도한 적이 있다. 

여기서 세 번은 단순히 식사기도 하듯 일상적인 기도의 일종이 아니다. 

시간을 내서 금식하며 특별 작정 기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네 은혜가 족하다”는 답변을 주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상상해 보건데, 첫 번째 기도에서도 그런 응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번째, 세 번째 작정기도를 이어갔다. 

아마도 그 사탄의 하수인인 몸의 가시가 어지간히 자신을 괴롭혔는지 모른다. 

너무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미루로 짐작컨대, 간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위장병도 아프지 않은 병은 아니지만, 내가 오랫동안 아파왔던 경험으로 볼 때, 못참을 만큼 힘든 병은 아니다. 

게다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하니, 아마도 사역 일정에 큰 지장을 준 것 같고, 더 나아가 성도들에게도 염려와 걱정을 안겨주는 질병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발작증세를 보이는 간질 같은 것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핵심은 매우 심각한 몸의 질병이라는 점이다. 

세 번이나 절실하게 요청했던 기도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도리어 이런 질병이 바울을 겸손하게 했다. 

영적 체험을 했음에도 그는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참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과 성도들을 위해 참고 함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절제의 힘이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경험과 지식을 더 자랑하기보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나선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겸손한 사람들을 통해 이뤄진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겸손을 몸에 익히면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별로 잘 나지 않았는데도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가 없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거만하게 구는 사람들에게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 

그 사람 중 한 명이 전광훈이다. 

그의 말은 거만함으로 가득하다. 

자신이 무슨 신이줄 안다. 

걱정이다. 

 

나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고 싶다. 

부족함과 약점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바울에게 배울 것이 많다. 

 

 

[오늘의 기도]

사람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 

제 속을 잘 들여다 보게 하소서. 

제 마음의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올라오는지 잘 살피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생각들로 채우게 하소서. 

기도의 시간이 깊어지길 원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주님이 제 마음 속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거만하게 자랑하는 사람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저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도리어 저의 약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부족함과 약점을 통해서도 일하시길 원하신다면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정서적, 정신적, 영적, 육체적, 관계적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 더욱 겸손하게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가 그런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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