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1월 14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1   사람들이 땅 위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3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체요,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다." 4   그 무렵에, 그 후에도 얼마 동안, 땅 위에는 네피림이라고 하는 거인족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었다. 그들은 옛날에 있던 용사들로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5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7   주님께서는 탄식하셨다.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NIV

The LORD saw how great the wickedness of the human race had become on the earth, and that every inclination of the thoughts of the human heart was only evil all the time. The LORD regretted that he had made human beings on the earth, and his heart was deeply troubled. (5-6절)

 

 

주석

4절: ‘네피림’은 인종적 칭호가 아니라 특정한 유형의 개인에 대한 묘사다. 민수기 13:13에서 그들은 아낙 자손들과 함께 가나안 땅의 일부로 밝혀진다. 아낙 자손은 거인들로 묘사되지만, 네피림은 거인들로 간주할 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 그 용어는 영웅적 전사들, 아마도 무술 수련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일 가능성이 더 크다(IVP 성경배경주석).

 

 

——

본문 해석이 어려움이 있다. 

하나님이 아들들은 누구며, 사람의 딸들은 누군가? 

쉽게 답하기, 해석하기 어렵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이고,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인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손쉽게 해결하는 길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자칫 가인의 후손들이 문명/문화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죄인들로 낙인찍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문명 자체를 죄로 여기는 것은 지극히 이원론적 접근이다. 

 

IVP 성경난제주석에서도 다루고 있듯이,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당시 권력을 쥐고 흔들던 고관대작, 사람들의 딸들이란 평범한 여인들일 것이다(월터 카이저).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자들이 평범한 여인들을 자신들의 힘과 권세로 마음대로 데리고 가서 아내로 삼았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면, 그들의 후손은 너무 많아지고, 권력이 더욱 강해진다. 하나님은 그들의 수명을 줄이시는 방법을 쓰신다. 

 

하나님은 후회하시는가? 

이 부분도 어려운 점이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후회하시는 분으로 등장하신다. 

사람들의 죄악이 가득찼다. 

가인의 죄, 즉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라멕의 죄, 즉 자신의 욕망대로 약자를 취하는 폭력적 일상이 가득하다. 

권력자의 아들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농락하며, 폭행한다.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인간의 날 수(수명)를 줄여봐도 죄악의 밀도는 점점 커진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인원도 줄었을 뿐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것과 별개로 죄를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방법이 없다. 

하나님은 후회하신다. 

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당신에게 반역할 수 있는 인간을, 서로를 죽이는 인간을, 왜 왜 왜 만들었는가? 

 

천만다행으로 노아는 그 죄악에서 벗어나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한다.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한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은혜를 베푸신다. 

노아를 긍휼히 여기신다. 

 

어찌보면, 후회라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후회에 갇혀사는 것은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삶을 되돌아 보면서 후회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비인간적이다. 

인간의 선택은 좋은 선택, 나쁜 선택이 혼재한다. 

꼼꼼히 되돌아보면 후회스런 선택이 분명히 있었다. 

억지로 후회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그건 그대로 인정하자. 

다만 후회의 감정이 산을 이루어 쏟아지게 만들지는 말자. 

 

후회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한다. 

그분은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사랑으로 대하시는 분이시다. 

오늘도 이런 하나님을 바라본다. 

 

 

——-

은혜의 하나님, 

그 옛날, 노아시대 하나님의 분노, 진로를 바라봅니다.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슬프시고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 

인간의 죄악이 선을 넘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완전히 망가뜨릴 때.. 

그 때 하나님이 느끼셨던 감정을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 

오늘 저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제 주변 사람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아픈 사람이 참 많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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