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1월 2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다. 셈은, 홍수가 끝난 지 이 년 뒤, 백 살이 되었을 때에 아르박삿을 낳았다. 11   셈은 아르박삿을 낳은 뒤에, 오백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12   아르박삿은 서른다섯 살에 셀라를 낳았다. 13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은 뒤에, 사백삼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14   셀라는 서른 살에 에벨을 낳았다. 15   셀라는 에벨을 낳은 뒤에, 사백삼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16   에벨은 서른네 살에 벨렉을 낳았다. 17   에벨은 벨렉을 낳은 뒤에, 사백삼십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18   벨렉은 서른 살에 르우를 낳았다. 19   벨렉은 르우를 낳은 뒤에, 이백구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20   르우는 서른두 살에 스룩을 낳았다. 21   르우는 스룩을 낳은 뒤에, 이백칠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22   스룩은 서른 살에 나홀을 낳았다. 23   스룩은 나홀을 낳은 뒤에, 이백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24   나홀은 스물아홉 살에 데라를 낳았다. 25   나홀은 데라를 낳은 뒤에, 백십구 년을 더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26   데라는 일흔 살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 하란은  롯을 낳았다. 28   그러나 하란은 그가 태어난 땅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29   아브람과 나홀이 아내를 맞아들였다.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이고,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이다.  하란은 밀가와 이스가의 아버지이다. 30   사래는 임신을 하지 못하여서, 자식이 없었다.31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오려고 바빌로니아의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이르렀다. 그는 거기에다가 자리를 잡고 살았다. 32   데라는 이백오 년을 살다가 하란에서 죽었다.

 

 

주석

30절: 후손을 낳지 못하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한 가정에 내려진 가장 큰 불행이었다. 그것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상속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노년에 부부를 돌보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IVP 성경 배경주석).

 

——

1. 수명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도 가능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건강나이는 그렇게 높지는 않다. 

다들 한 두 가지 만성 질환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수명이 200, 300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과연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최근에 본 영화, 마블 이터널스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했던 테나는 너무 오랜 삶의 기억으로 광기를 뿜어낸다. 

너무 오랜 살면, 삶의 기억들이 혼란을 일으켜 정말 점점 미쳐가지나 않을까 싶다. 

숱한 고통, 아픔, 슬픔의 트라우마가 맑은 정신을 해치고 인간 본성의 악을 분출하게 되지는 않을까? 

 

셈의 자녀들은 참 오래도 살았다. 

그 오랜 세월들을 살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했을까 싶다. 

본문의 족보에는 들어가지 않은 그 긴 세월의 무게와 반복이 주는 허무감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갑자기 걱정과 의문이 동시에 든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그들은 계속해서 아들딸을 낳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그들의 삶의 활력이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자녀의 출생은 인간의 삶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다. 

그전에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의 몸과 에너지는 자녀들에게로 이양된다. 

그렇게 점점 쇠퇴해가는 몸과 정신력을 보면서 허망해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성장하고 성숙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분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자녀를 통해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삶의 의미의 중요한 부분을 깨우칠 수 있다는 점이다. 

 

2. 이주 

그 소중한 경험을 아브람은 하지 못하고 있다. 

고대의 가장 융성했던 도시 바벨론 지역은 무수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시의 광장을 채웠다. 

어린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하다. 

아브람은 아이가 없었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대도시를 떠났던 것은 아니나,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그렇게 자주 거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비교의식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아이가 없다는 것이 고대 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아브람은 잘 알고 있었다. 

쓸쓸히 노년을 맞이해야 한다. 

 

이주를 선택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나, 가나안으로 가려고 출발한 것이다. 

12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고 생각할 때, 아마도 하나님은 데라와 아브람에게 동시에 나타나셔서 가나안으로 출발하라고 말씀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이사를 하기 시작한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디를 가냐고… 

가나안이라고 대답하자 다들 의아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비웃는다. 

그렇게 먼 곳에 가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다들 물었을 것이다. 

설득될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 

가나안 땅이 더 좋은가? 그럴리가… 

데라의 가족과 그에게 딸려있는 식솔과 가축들이 상당했다. 

캐리어 하나 들고 비행기 티켓 하나면 세계 어디든지 가서 정착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몇개월간 준비해야 한다. 

대규면 이주다. 

대도시 바벨론과 그 바벨론의 영향하에 있었던 주변 도시들로부터의 탈출이다. 

도시 문화를 거부하고 완전히 유목민의 삶을 살아야 한다. 

결코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몰고 올 일이다. 

 

부르심의 자리를 옮기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하지만 가라시면 가야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다. 

영원히 거주할 현세의 땅은 없다. 

부르심에 따라 거주지를 옮긴다. 

이 마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

하나님, 

아브람의 인생을 묵상해봅니다. 

큰 족속을 이루었던 자신의 조상들에 대해 그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몇백년에 걸쳐서 아들 손자 증손 고손 들을 낳으며 별처럼 빛났던 자신의 조상을 기억했을 겁니다. 

아마도 자신도 그런 조상님들의 대를 이어 아이들을 낳고 싶었겠죠. 

그러나 그게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교할수록 초라해집니다. 

인생은 초라한 순간으로 종종 채색됩니다. 

남과의 비교가 많아지면 더욱 심해집니다. 

 

하나님, 

비교하지 않고 주님이 저에게 주신 소명의 자리를 잘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부르시는 곳으로 언제든지 이주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항상 마음 준비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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