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02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12 왕은 밤중에 일어나서 신하들과 의논하였다. “시리아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한 것이 무슨 뜻이겠소. 내 생각에는, 그들이 분명 우리가 못 먹어 허덕이는 줄 알고 진영을 비우고 들에 숨어 있다가, 우리가 성 밖으로 나오면 우리를 생포하고, 이 성 안으로 쳐들어오려고 생각한 것 같소.”13 그러자 신하 가운데 하나가 의견을 내놓았다. “이 성 안에 아직 남아 있는 다섯 필의 말은, 이 성 안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모든 사람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어차피 굶어 죽고야 말 것이니, 이 말에 사람을 태워 보내어서, 정찰이나 한번 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14 그래서 그들이 말 두 필이 끄는 병거를 끌어내니, 왕은 그들을 시리아 군의 뒤를 쫓아가도록 내보내면서, 가서 알아 보라고 하였다.15 그들이 시리아 군대를 뒤따라 요단 강까지 가 보았지만, 길에는 시리아 사람들이 급히 도망치느라 던져 버린 의복과 군 장비만 가득하였다. 군인들은 돌아와서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였다.16 그러자 백성들은 밖으로 나가서 시리아 진영을 약탈하였다.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대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에,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에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17 그래서 왕은 자신을 부축한 그 시종무관을, 성문 관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아 죽였는데, 왕이 그의 부축을 받으며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고 왔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한 그대로 그가 죽은 것이다.
1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내일 이맘때 쯤이면 사마리아 성 어귀에서는,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에 거래할 것이라고 말하였을 때에,19 그 시종무관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비록 주님께서 하늘에 있는 창고 문을 여신다고 할지라도,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 하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당신은 분명히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볼 것이오. 그렇지만 당신이 그것을 먹지는 못할 것이오’ 하고 말하였습니다.20 그래서 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며, 그가 성문 어귀에서 백성에게 짓밟혀 죽은 것입니다.”
주석
15절. 사마리아 사람들은 도망가는 시리아 사람들을 64킬로미터 떨어진 요단 강까지 추적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교만의 결과
시종무관은 왕의 바로 곁에서 왕을 부축했다.
최측근이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다.
위로는 한 분 왕을 섬기되, 모든 백성들을 통치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공식적으로 재상의 직함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시종무관의 힘은 엄청났다.
왕과 함께 엘리사에게 와서 신경질적으로 엘리사의 말에 반응했던 사람이다.
엘리사가 성에 곡식이 공급될 것이라 예언했더니, 하나님도 그렇게는 못하실 거라고 말했던 장본인이다.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을 보아라.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졌던 일을 상기하라.
어디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있단 말인가!
겸손하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대해야 하건만, 그는 교만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과 생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그는 엘리사의 예언대로, 곡식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성문에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백성들이 왜 그를 죽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전쟁을 일으키고 방치한 왕과 통치자들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을까?
시종무관이 곡식을 나눠주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었을까?
뭔지는 몰라도 그는 백성의 발에 밟혀 죽게 된다.
안따까운 죽음이다.
곡식도 충분해서 조금만 지혜롭게 관리했어도, 백성들 대부분을 만족시켰을 텐데, 어디서 잘못된 건지 몰라도 결국 그는 백성들에게 죽음을 당했다.
엘리사와 성경의 저자는 분명히 언급한다.
이는 그의 말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가 큰 이유였다.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대놓고 무시했다.
교만함이 우리의 말에 담겨 나올 때가 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우주의 신비가 풀리는 듯 하고, 양자역학의 신비로움을 활용할 줄 알아도,
우주의 창조주 되신 그분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을 동격으로 두어서는 안된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심판하신다.
작은 말의 실수처럼 보이지만, 그 동안의 자신의 삶의 태도가 그 말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거짓으로 헌금을 숨겼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교만이다.
그 교만을 하나님께서는 현실 세계 속에서 다루실 때가 있다.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순간에는 인간의 교만을 꺾으신다.
꺾지 않으면, 기고만장 자신이 진짜 우주의 왕인 줄 착각하면 살아간다.
위태로운 사람들이 보인다.
교만함으로 무장한 사람들.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사람들.
겸손히 자신의 죄악과 약점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2. 신중함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신중함과 지혜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의 보고를 받은 문지기들이 기쁜 소식을 왕과 대신들에게 전했다.
그들은 적이 함정을 파놓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맞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 전쟁이다.
함부로 성밖으로 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수색대를 통해 상황을 분명히 파악한 것은 정말 잘한 것이다.
그렇게 돌다리로 두드려 봐야 한다.
함정에 빠지면 몰살 각이다.
신중함과 지혜가 필요하다.
일상을 살아감에도 신중함과 지혜가 절실하다.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된다.
기분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된다.
믿음을 가지는 것과 신중한 것은 공존할 수 있을까?
난 도마를 보면서 하나님이 신중한 사람들을 용납하신다고 믿는다.
상식적으로 믿지 못할 수 있지만, 그래서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손으로 직접 만져봐야 믿을 수 있겠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예수님과 하나님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직접 경험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부활에 대해서는 신중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 영역에도 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할 때, 어떤 질문도 하지 말고 복종하라는 말은 아니다.
신뢰하기에 더욱 어렵고 헷갈리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다.
그 신중함과 지혜가 오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는 주님,
제가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손히 주님의 일하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 나오는 교만한 말과 행동을 인식하게 하시고, 고치고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 전체의 유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의 리더들이 교만한 생각, 태도, 말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의 뜻을 구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사안을 신중하게 파악하고, 믿음의 결단을 하도록 이끄소서.
오늘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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