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1월 30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24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시리아 왕 벤하닷이 또다시 전군을 소집하여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25 그들이 성을 포위하니, 사마리아 성 안에는 먹거리가 떨어졌다. 그래서 나귀 머리 하나가 은 팔십 세겔에 거래되고,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이 은 다섯 세겔에 거래되는 형편이었다.26 어느 날 이스라엘 왕이 성벽 위를 지나가고 있을 때에, 한 여자가 왕에게 부르짖었다. “높으신 임금님, 저를 좀 살려 주십시오.”27 왕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돕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찌 부인을 도울 수가 있겠소? 내가 어찌 타작 마당에서 곡식을 가져다 줄 수가 있겠소, 포도주 틀에서 술을 가져다 줄 수가 있겠소?28 도대체 무슨 일로 그러오?” 그 여자가 말하였다. “며칠 전에 이 여자가 저에게 말하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오늘은 네 아들을 잡아서 같이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잡아서 같이 먹도록 하자’ 하였습니다.29 그래서 우리는 우선 제 아들을 삶아서, 같이 먹었습니다. 다음날 제가 이 여자에게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잡아서 같이 먹도록 하자’ 하였더니, 이 여자가 자기 아들을 숨기고 내놓지 않습니다.”

30 왕은 이 여자의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혀서 자기의 옷을 찢었다. 왕이 성벽 위를 지나갈 때에 백성들은, 왕이 겉옷 속에 베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31 왕이 저주받을 각오를 하고 결심하여 말하였다.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대로 붙어 있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벌 위에 더 벌을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다.”

 

주석

25절. 나귀 머리는 가장 역겨운 음식 중 하나였다. 비둘기 똥은 긴박할 때 음식으로 이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세겔은 당시 한 달의 표준 임금에 해당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포위된 사마리아

엘리사의 능력을 보았으면서도 시리아 왕 벤하닷은 전쟁의 야욕을 버리지 못했다. 

이게 현실이다. 

아무리 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아도 인간은 자신의 탐욕을 극복하지 못한다. 

벤하닷 왕이 분노에 의해서건, 전투 본능에 의해서건, 땅에 대한 정복욕에 의해서건, 그는 이스라엘을 꼭 점령하고 싶은가보다. 

어떻게보면 그 때 그 기마병들을 살려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는 쳐들어오지 않도록 본때를 보여주었야 했다. 

엘리사의 말대로 했더니, 그 순간에는 전쟁의 야욕을 제어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북이스라엘의 수도에 병력을 집결했다. 

수도까지 오는데, 분명 어떤 저항이 있었을텐데, 성경의 저자는 그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시리아의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다. 

성 외부를 둘러쌓다. 

출입이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봉쇄된 성은 점점 먹을 것이 부족해졌다. 

죽음의 기운이 온 성을 뒤덮고 있다. 

물가가 상상을 초월한다. 

비둘기 똥조차 금값이다. 

심지어는 자기의 자녀를 잡아 먹는 일도 벌어졌다. 

오죽하면 서로의 자녀를 잡아먹기로 약속을 했을까!

그 와중에 잔머리를 굴리는 여자도 있었다. 

자녀를 내 준 것도 이해가 안되고, 그 아이를 같이 먹고 다른 자녀를 먹자고 달려드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인간성이 상실되었다. 

 

전쟁이 원래 그렇다. 

더는 인간이기를 거부한다. 

생존 욕구로 똘똘 뭉쳐 있다. 

살기 위해 적군을 죽이고, 살기 위해 자신의 인간성을 죽인다. 

악은 그렇게 모든 인간을 잡아 먹는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극단적인 악이다. 

악의 구조의 최극단이 전쟁이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말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 

전쟁을 반대하고, 끝까지 평화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차라리 내 한 몸이 죽는 것이 낫지, 국가간의 전쟁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생명이 죽는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규탄한다. 

탐심이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낳는다. 

전쟁을 막으려는 숱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조금이라도 전쟁 발발에 기여하지 마라. 

대결이 아니라 대화다. 

그 기조를 무너뜨리려고 하지 마라. 

 

2. 왕의 절망

북이스라엘의 왕은 절망한다. 

백성이 자신들의 아이를 잡아먹고, 서로 죽이려고 달려든다. 

왕은 더는 왕일 수 없다.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왕이다. 

시리아의 공격을 막아낼 준비를 철처하게 했어야 했다. 

엘리사의 도움을 더 적극적으로 요청했어야 했다. 

 

이 정도로 심각한데, 엘리사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백성이 이성을 잃고 자녀를 잡아먹고 있는 실정인데, 엘리사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선지자 학교에 있었던 많은 선지자들은 대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북이스라엘로 분열될 때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의 죄악을 그대로 답습했다. 

하나님 대신 바알 신을 섬겼다. 

혼합주의가 발호했다. 

왕이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선대해야 했다. 

이제와서 절망하며 엘리사를 원망하는 것은 떠난 버스 뒤에서 손 흔드는 격이다. 

 

인생에는 절망의 순간이 있다. 

자신의 인간성이 바닥나서 절망하기도 하고,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공동체의 비극적인 모습에 절망하기도 한다. 

절망의 순간에 원망으로 스스로를 더럽히기 전에 미리 하나님께 다가가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났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살다보면 최악의 순간이 있다. 

그 최악의 순간에 그나마 최악의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아이를 잡아 먹어서도 안되고, 하나님을 떠나서도 안된다. 

최악의 순간에서도 최선의 인간성이 발현되게 하자. 

인간의 고귀함이 끝까지 유지되도록 주님께 기도할 일이다. 

 

 

[오늘의 기도]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당신의 고귀한 형상이 오늘도 드러나게 하소서. 

세상을 지혜롭게 관리하고, 상대를 사랑으로 대하고, 기꺼이 섬기고 헌신할 줄 아는 당신의 형상의 보배로움이 드러나게 하소서. 

절망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고, 고통 속에서도 형상을 지키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당신께서 심어 두신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끝까지 잃지 않길 기도합니다. 

고통 속 한숨과 신음 속에서도 찬양의 선율이 멈추질 않고,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함과 찢어질 듯한 근육 속에서도 주께 올리는 손이 자연스럽게 하소서.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원천이신 주님을 전하고, 

각 개인들에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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