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27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다윗의 시]1 나의 반석이신 주님을 내가 찬송하련다. 주님은 내 손을 훈련시켜 전쟁에 익숙하게 하셨고, 내 손가락을 단련시켜 전투에도 익숙하게 하셨다.2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산성,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뭇 백성을 나의 발 아래에 굴복하게 하신다.3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생각하여 주십니까? 인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하여 주십니까? 4 사람은 한낱 숨결과 같고, 그의 일생은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5 주님, 하늘을 낮게 드리우시고, 내려오시며, 산들을 만지시어 산마다 연기를 뿜어 내게 하십시오.6 번개를 번쩍여서 원수들을 흩으시고, 화살을 쏘셔서 그들을 혼란에 빠뜨려 주십시오.7 높은 곳에서 주님의 손을 내미셔서 거센 물결에서 나를 끌어내시고, 외적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8 그들의 입은 헛된 것을 말하며, 그들이 맹세하는 오른손은 거짓으로 속이는 손입니다.
9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새 노래를 불러 드리며, 열 줄 거문고를 타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10 왕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신 주님, 주님의 종 다윗을 무서운 칼에서 건져 주신 주님,11 외적의 손에서 나를 끌어내셔서 건져 주십시오. 그들의 입은 헛된 것을 말하며, 그들이 맹세하는 오른손은 거짓으로 속이는 손입니다.
12 우리의 아들들은 어릴 때부터 나무처럼 튼튼하게 잘 자라고, 우리의 딸들은 궁전 모퉁이를 장식한 우아한 돌기둥처럼 잘 다듬어지고,13 우리의 곳간에는 온갖 곡식이 가득하고, 우리가 기르는 양 떼는 넓은 들판에서 수천 배, 수만 배나 늘어나며,14 우리가 먹이는 소들은 살이 찌고, 낙태하는 일도 없고, 잃어버리는 일도 없으며, 우리의 거리에는 울부짖는 소리가 전혀 없을 것이다.15 이와 같은 백성은 복을 받은 백성이다. 주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백성은 복을 받은 백성이다.
NIV
O LORD, what is man that you care for him, the son of man that you think of him?(3절)
I will sing a new song to you, O God; on the ten-stringed lyre I will make music to you,
to the One who gives victory to kings, who delivers his servant David from the deadly sword(9-10절).
주석
3절. 하나님이 구원자라는 진리는 인간이 구원받을 자격도 없고 그 구원을 위해 어떤 공헌도 한 것이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 사람이 무엇이기에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생각하여 주십니까?”라고 묻고 있다.
모든 인생을 돌아보며 나온 결론이기보다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크심을 자각하며 터져나오는 찬양의 메시지다.
철학적 진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다윗 자신의 경험적 진술이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그동안의 경험이 흘러 나온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철학적 진술, 객관적이고 보편적 진술을 선호한다.
경험적 진술, 개인적 진술은 주관적이고 순간적이다.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기가 경험하지 않는 보편/객관적 진술이 무슨 소용인가?
다윗처럼 하나님을 자신의 반석, 요새, 산성, 구원자, 방패, 피난처라고 부를 수 없다면, 얼마나 비참한가!
하나님은 다윗에게만 그런 존재가 아니시다.
당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반석이요 요새시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가진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했던 예언자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이런 분들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이고 깊은 관계를 맺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개인적으로 경험했다.
특히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이 보여주시는 능력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고 요새가 되신다.
이 경험을 한 사람과 안한 사람은 극명한 차이를 가진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그저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부활을 의심하던 도마는 결국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을 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송인규 목사님은 이 고백이 말씀을 아침마다 묵상하는 사람들의 고백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큐티를 소개하는 책의 이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지었다.
온 우주의 하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고통과 혼란에서도 구원을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다.
어제 <600미터>라는 스릴 넘치는 영화를 보았다.
곧 철거될 낡은 방송 철탑, 600미터 꼭대기까지 올라갔는데, 사다리가 부서지는 바람에 조난을 당한다.
두 여주인공이 올라가는 모습에 나도 같이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쪼그라든다.
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최선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영화는 심리적인 환상에 의해 구상된 친구의 격려와 도움을 받아 위기를 극복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 위기의 순간에 붙들어야 하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임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분명 하나님께 애원했을 것이다.
길을 열어 달라고, 지혜를 달라고, 마음을 지켜 달라고…
오늘도 위기의 순간이 왜 없겠는가?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왜 없겠는가?
빠르게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결정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결정이 이후의 일들에 영향을 준다.
주님께서 결정의 순간에 지혜를 주시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오늘도 주님을 부르며, 주님을 신뢰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찾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도우실 것을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어쩔 수 없는 것은 주님께 맡깁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소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결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하시고, 가능하면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정확한 판단력을 주시고, 주저하지 않는 결단력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냇가에 심은 나무 >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145:10-21_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0) | 2024.06.10 |
---|---|
시 145:1-9_하나님을 찬양할 이유 (0) | 2024.06.03 |
시 143편_내가 주님을 의지합니다. (0) | 2024.05.20 |
시 141편_내가 주님을 부르니 (1) | 2024.05.06 |
시 140:1-7_나를 보호하여 주십시오 (0) | 2024.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