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23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새 힘을 주십시오.
14 예수께서 다시 무리를 가까이 부르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6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힌다.”
17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 비유를 두고 물었다.
1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9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여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하셨다.
2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나쁜 생각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다.
23 이런 악한 것이 모두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
[오늘의 묵상]
#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대해 일갈하신 뒤, 예수님은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음식에 있지 않고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당시 유대인들은 음식법에 진심이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하는지 정해져 있었다.
부정한 음식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스라엘의 초창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결함과 거룩함이 요청되던 시기, 하나님은 시간, 공간, 사물에 대한 정함/부정함을 구분하도록 요청하셨다.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통해 그 목록을 제시하셨다.
평일, 안식일, 안식년, 희년이 그것이다.
회막, 성소, 지성소가 그렇다.
소, 양, 염소는 먹을 수 있지만, 돼지는 안된다.
정결한 동물은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동물이다.
유대인들의 주변 환경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된다.
그 전에야 그런 것이 어디 있었는가?
그저 파라오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려면 주변 환경을 항상 살펴야 했다.
일상이 불결함, 부정함의 지뢰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급진적이고 본질적이시다.
주변 환경을 구분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마음 속의 욕망을 분별하는 것이 본질이라신다.
진짜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더러운 욕망들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도 있다.
결국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자신을 더럽힌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악이 나에게 다가온다고 해도, 내 속의 악이 반응하지 않으면 그저 밖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선이든 악이든 그들의 소원이나 욕망이 내 속의 악과 조금이라도 반응하기 시작하면 내 자신을 더럽혀지기 시작한다.
나쁜 생각, 나쁜 욕망이 자기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면 어느새 제어되지 않고 악한 행실로 이어진다.
원죄도 해결해야하지만, 더 실제적이고 영향을 주는 것은 자범죄이다.
나쁜 생각과 욕망이 결국 자신을 더럽히는 자범죄가 된다.
21 나쁜 생각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다.
예수님은 욕망과 행실을 따로 굵은 선으로 구분하지 않으셨다.
탐욕과 악의를 말씀하시면서 도둑질과 살인도 동시에 언급하셨다.
악한 시선, 모독, 교만, 어리석음… 내면의 상태도 사람을 더럽히는 것으로 언급하셨다.
굵은 실선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에게 침투한다.
악은 악을 낳는다.
하나님은 거룩을 명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도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9:2)고 하셨다.
예수님 버전은 ‘삼위 하나님 안에 너희도 거하라’(요17:21)이다.
그분의 사랑의 연합 안에 거하는 것은 거룩의 최상위 버전이다.
거룩하지 않고서는 그분의 연합에 남아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내 속에서 나오는 것들을 주위깊게 바라봐야 한다.
세상의 기준, 기업의 기준, NGO의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님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면을 살펴야 한다.
더러운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주님의 대속적 십자가를 의지하여 다시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정결한 마음과 삶으로 하루 하루를 맞이하고 보내야 한다.
당위가 많아 지칠테지만, 결국 성령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불가능하지 않다.
오늘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말을 해야 한다.
어르신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부담이다.
청년 사역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어른들을 만나면 주눅들고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말씀 사역으로 부르셨으니, 다시 용기를 내어 본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내면과 마음을 보시는 주님,
제 마음 속에 있는 수많은 욕망과 탐욕을 알고 계십니다.
마음의 생각을 다 아시는 주님,
있는 그대로 주님께 아룁니다.
하기 싫은 마음도 혹은 잘 하고 싶은 마음도 공존합니다.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그렇기에 짜증나는 마음이 상존합니다.
주님, 저의 욕망과 교만을 다스려 주소서.
생각과 욕망을 어찌 제거하겠습니까?
그저 주님 안에서 잘 다스리고 싶습니다.
성령님 도와 주세요.
오늘도 말씀 사역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깨달은 말씀을 잘 나눌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듣는 분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는 마음과 귀를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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