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20일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45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

46 그들과 헤어지신 뒤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

47 날이 저물었을 때에,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셨다.

48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이 노를 젓느라고 몹시 애쓰는 것을 보셨다. 바람이 거슬러서 불어왔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로 가시다가,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으로 생각하고 소리쳤다.

50 그를 보고, 모두 놀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51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 그래서 제자들은 몹시 놀랐다.

52 그들은 빵을 먹이신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뎌져 있었다.

 

 

[오늘의 묵상]

# 산에 가시다

거대한 무리들이 예수를 쫓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예수님의 기적 때문이었다. 

오병이어,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의 성인 남성을 먹였다. 

전체 인원은 그보다 2-3배는 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모세를 따랐던 사람들이 만나를 처음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먹고 사는 문제, 소위 먹사니즘을 해결해 주시는 장면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귀신을 내어 쫓는 것도 포함되지만,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에서 빛난다. 

사람들은 영생을 맛본다. 

예수님 곁에는 자유와 풍요가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몰려들고 예수님은 쉴 곳을 찾아야 했다. 

제자들을 배에 태워 갈릴리 호수를 건너 맞은 편으로 보내신다. 

본문에서 재밌는 표현은 제자들을 재촉하시는 장면이다. 

급하게 제자들을 불러, 호수를 건너라 하신다.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현재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미래의 상황을 빨리 대비하기 위해서.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제자들을 보내시며,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는 문장을 보면(45절), 아마도 현재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을 빨리 흩으셔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혹자는 오병이어 기적으로 인해 민란 같은 것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사람들을 빨리 흩은 뒤에 기도하시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셨다. 

제자들과도 떨어져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기도가 필요하셨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셨다. 

그 자체로도 의미있는 시간이었으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이니, 수업 집중도는 최상이었다. 

이해 여부와는 별개로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의 칭송과 칭찬, 감사의 표현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셨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어쩌면 더 필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분은 산에 오르신다. 

산에 오르시면서 기도의 제목들을 정리하신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얼마나 기도할 것인가? 

미리 결정해야 할 내용도 있다. 

 

나도 오늘 산에 오르고 싶다. 

물리적인 산이 아니라 영적인 산이다. 

모세가 올랐듯이, 예수님이 올랐듯이, 나도 그 산에 올라 하나님과 독대하고 싶다. 

하나님과 대화하며 기도하고 싶다. 

 

날이 덥다. 

그래서 짜증이 많이 난다. 

기도에 대한 집중력도 많이 약화되었다. 

다시 하나님께 집중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제자들이 놀라다

갑자기 바람이 분다. 

제자들을 재촉해서 호수를 건너라고 등떠미시는 예수님을 봤던 제자들은 갑작스런 폭풍에 어리둥절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죽음에 바다에 몰아넣으신 것은 아닌가?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잠잠했던 바다가 갑자기 돌변하니 두려움이 점점 커져갔다. 

바람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를 저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제자들은 새벽 3-6시까지 그러니까 거의 9시간 이상 바람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점점 힘을 달리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가능한 빨리 건너편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물 위를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들 유령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기 유령이다. 저기 유령이다”

노를 젓다 말고 제자들의 시선은 한 쪽으로 쏠렸다. 

모두가 다 함께 보는 유령이라니, 그들은 모두 놀랐다. 

그러나 그들이 더욱 놀란 것이 있다. 

바로 그 유령이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그보다 더 놀란 것이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바람이 멎은 것이다. 

바람조차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이 기적같은 상황에 제자들이 놀랐다. 

그들이 이렇게 놀랐던 것은, 마가에 따르면 그들의 마음이 무뎌졌기 때문이란다. 

전날, 오병이어의 기적을 봤던 사람들이었다. 

배를 타고 처음 노를 저었을 때,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기쁨에 찬 나눔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칭찬에 입술에 침이 마르지 않았다. 

저마다 그 놀라웠던 광경을 되뇌이면서 감사, 기쁨, 환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을 만나 9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이니 그 감정이 싹 가셨다. 

오병이어의 기억도 거의 사라졌다. 

그들은 현실의 고통과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과거는 빨리 잊고 현재에 집중해야 했다.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러니 마음이 무뎌진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기억이 장롱 뒤로 쳐박혔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당장 지금 현안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그분이 어떤 분인지 그 기억이 희미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새롭게 그분을 깨닫는 것처럼 다시 놀란다. 

놀라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놀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분에 대한 마음이 무뎌지는 것이 문제다. 

그분의 존재를 점점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바람과 싸우다가 예수님의 존재를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과연 오늘도 예수님을 계속 기억할 수 있을까? 

 

 

[오늘의 기도]

기도하시는 예수님, 

숱한 사역 속에서도 기도의 자리를 지키시고

하나님과 깊은 기도로 나아가시는 예수님, 

당신을 본받게 하소서. 

 

분주합니다. 

여전히 할 일 투성이입니다. 

그럴수록 기도하라고 믿음의 선배들이 이야기 했건만, 

기도보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이끄소서. 

 

일상 속 어려움과 현안과 이슈 속에서도 

예수님의 존재를 잊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위대하심과 다정하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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