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30. 김혁수

 

[본문_마가복음 2:18-28_새번역]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19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있느냐? 신랑을 자기들 곁에 두고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없다. 20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터인데, 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21“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버리게 된다 포도주는 가죽 부대 담아야 한다.”

23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24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되는 일을 합니까?” 25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되는 제단 빵을 먹고,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0. 들어가며 

- 말로 싸우는 전쟁 

민족 고유의 명절 설입니다. 새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많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몸과 마음이 더욱 건강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획을 이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축복하고 덕담을 나눠야 하는 명절에 자칫하면 가족 간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밥상 머리에서 대화하다가 정치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긴장이 고조되면서 결국 말싸움이 되곤하죠. 그래서 밥상머리에서는 취업, 결혼, 그리고 정치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죠. 

 

그러나 TV 틀어 놓으면 어느새 뉴스에서 그리고 하루 종일 종편에서 정치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마치 가족끼리 정치이야기를 하라고 부추기는 같아 보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조심하면서 명절을 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있는 밥상머리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피하더라도, 차나 간식을 먹으면서는 서로 의견을 묻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자신의 의견도 담담하게 말할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작은 토론문화가 정착되어야 성숙할 있거든요. 너무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담담하게 솔직하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 좋아하는 후보와 공약,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적합한 세력과 후보가 누군지 등에 대해 말하는 거죠. 

 

사실 민주주의는 말로 싸우는 전쟁터입니다. 힘과 무력의 싸움을 말싸움으로 전환시킨 것이 민주주의인 거죠.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말싸움을 고상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힘과 무력이 아니라 말과 희생으로 싸우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런면에서 예수님이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았다 봐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그럼 오늘은 어떤 말싸움을 하셨는지 본문을 살펴볼까요? 

 

1. 나는 새포도주다(18-22).

1) 금식하지 않는 제자들

예수님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금식을 정도(월요일, 목요일) 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이 겪었던 슬픈 역사를 떠올리며 금식하는 일은 유대인들에게 당연한 의무였습니다.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바벨론으로부터 파괴되었던 날을 기억하면서 금식을 하곤 했습니다. 여전히 바벨론 포로기에 이어,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시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금식을 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식하는데, 자신만 밥을 먹는 것은 재밌는 경험이 아닙니다. 지금이야 혼밥 혼술이 대중화되어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식하고 있는데, 별로 열지도 않은 식당에 들어가 혼자 먹는다고 생각해보면, 쓸쓸한 느낌이 들기 마련이죠.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통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금식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던 제자들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은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고요. 그들은 정기적으로 금식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나서고는 금식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2) 요한의 제자들의 의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자고로 여호와 신앙운동은 경건한 금식기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었죠. 이렇게 모든 , 모든 끼니에 식사를 하는 종교지도자, 신앙운동 공동체는 거의 처음 보는 현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냥 사람들이 물어본 것으로 나와 있는데요, 다른 공관복음서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살펴보면, 사람들의 누군인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읽어볼까요. 

 

마태복음 5:14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우리와 바리새파 사람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5:33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는군요.”

 

마태가 기록한 내용을 보니, 당시에 예수님께 물어본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을 살펴보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주 금식을 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의 모든 끼니를 먹고 있었던 겁니다. 때마다 과거 요한의 제자였던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 스스로도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약간 헷갈렸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 예수님은 경건하지 않은 유대인들과 어울리느라 금식하는 날들을 굳이 지키지 않았을 아니라, 예수님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제자들도 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금식이 몸에 베어 있던 사람들도 예수님을 따르면서는 굳이 금식하지 않은 것이죠. 

 

3) 새신랑, 새옷, 새포도주

- 혼인 잔치의 새신랑_잔치를 즐겨라

요한의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의 금식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드디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가장 먼저, 지금은 혼인 잔치 기간이라는 겁니다. 이건 유대인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식민지 기간에 있기 때문에 사실은 장례식장 느낌의 살고 있었습니다. BC586년에 바벨론에 멸망당한 뒤로 중간에 잠시 80년간 독립왕조를 이룬 적은 있었지만, BC63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 의해 다시 함락되어 예수님 시대까지 100년을 다시 로마의 식민지로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혼인 잔치가 아니라 장례식장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금은 혼인잔치 기간이며, 특히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새 신랑이신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금식이 아니라 새옷을 입고 새포도주를 마시며 잔치를 벌이라고 하시는 거죠. 슬픔이 아니라 기쁨으로 가득 채우라고 하십니다. 왜냐구요? 새신랑이신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 낡은 옷에 생배 붙이기_새 옷을 입어라

다른 비유도 말씀하셨죠. 낡은 옷을 고치기 위해 생배 조각을 덧붙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겁니다. 오늘날이야 바느질 하는 분들은 전문가시죠. 하지만 과거에는 모든 사람들이 바느질을 알았을 겁니다. 그리고 옷이 헤어지고 뜯어졌을 , 천으로 떼우고 빨면 옷이 오히려 상하게 된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떡하라는 말일까요? 찢어진 옷을 그대로 두라는 이야기일까요? 아님 조각으로 떼우라는 말일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새 천으로 옷을 입으라 말입니다. 이제 옷은 버리고 옷을 지어 입으라는 거죠. 왜요? 새신랑이 오셨고, 잔치가 열렸으니, 잔치에 참여할 새 옷 지어 입으라는 겁니다. 예수님이라는 새신랑이 왔으니, 썩은 표정을 버리고 기쁨의 시간을 보내라는 겁니다. 많이 웃고, 맛있게 먹고, 멋지게 입고 춤도 추고 즐겁게 지내라는 겁니다. 새신랑과 함께 말이죠. 

 

- 포도주는 부대에_ 부대를 사라

그런데, 그런 잔치에 무엇이 필요하나요? 맞습니다. 포도주가 필요합니다. 잔치를 준비하면서 포도주를 만들텐데, 포도주를 옛날에 만들었던 가죽 부대에 넣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렇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상식 중에 하나가 바로 가죽 부대에 포도주를 넣어서 보관하면 발효되면서 금새 터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도 당시에 상식이었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부대를 만들든지 사야하는 거죠. 잔치에 새포도주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부대 필요한 겁니다. 

 

시대에 대한 관점이 바뀌는 거죠. 이건 우리에게도 요청되는 변화입니다. 예수님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마치 스마트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달라지듯이 말입니다. 옛날로 돌아가자면, 대한민국의 독립 전과 후가 다르듯, 한국전쟁 전과 후가 다르듯이 말입니다. 세상이 바뀐 겁니다. 바뀌었다면 바뀐 흐름에 맞춰 새로운 관점, 새로운 태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갖춰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하시고 있는 겁니다. 

 

2.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다(23-28).

1) 밀밭

오늘의 번째 이야기도 번째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걸어갑니다. 거길 지나가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하지만 배가 고팠던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저 제자들이 지나가다가 밀을 잘랐다고 표현했는데요, 마치 밀이 가는 길을 방해해서 밀을 쳐내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는 조금 다르게 표현했는데요. 

 

누가복음 6: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

 

마태복음 12:1

무렵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서 먹기 시작하였다

 

종합해보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이동중이셨습니다. 사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정 거리 이상을 걸을 없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율법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하위 규정을 613가지나 만들어 놓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단 안식일에 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배가 고프니까 밀밭 사이로 들어가서 밀을 훔쳐 먹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쯤에서 물어볼게요. 제자들은 행동에 대해 예수님께 허락을 구했을까요? 아님 예수님께 묻지도 않고 그냥 몰래 자기들 맘대로 행동한 걸까요? 생각에는 예수님의 허락을 받았을 라고 봅니다. 당시 제자들도 안식일에 해야 일과 하지 말아야 일을 구분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행동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만약에 예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해도되지 않을까' 생각했겠죠. 그리고 예수님께 물어봤고, 예수님은 그렇게 하라고 담담하게 허락을 했을 겁니다. 

 

2) 바리새인들의 문제제기 

그러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합니다. 자신들의 기준에서는 있을 없는 일이니까요. 오랫동안 안식일 규정을 연구하고 규정대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자들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없었거니와 그런 행동을 허락하고 방치한 스승인 예수님에 대해서도 용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24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되는 일을 합니까?”

 

예수님은 생뚝맞은 표정으로그게 어때서라는 식으로 대답하십니다. 읽어 볼까요? 

 

25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되는 제단 빵을 먹고,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자신을 다윗과 같은 위치에 올려놓고 있으십니다. 다윗이 당시에 배가 너무 고파서 제사장들만을 위한 제단 빵을 먹고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에게도 제공한 사건을 언급합니다. 사무엘상 21장에 기록된 사건인데요.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가 배고픔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죠.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의 상황을 다윗에 빗대고 있습니다. 

 

3)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

그러면서 매우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시는데요. 다시 읽어 볼까요? 

 

 27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 사람을 살리는 안식일 

그렇습니다. 안식일의 원래 취지는 사람을 쉬게 하는 겁니다. 매일 반복되는 노동으로부터 쉼과 안식을 통해 새로운 정신적, 육체적 힘을 얻고, 창조적 정신을 유지하라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안식일 규정이 언제 정해졌는지 아시죠? 그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겁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람답게 살아갈 있는 기반 만들어 것이죠. 이집트에서 안식일이 어디있었겠습니까? 그저 죽으라고 일을 해야 했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신 겁니다. 그런데 어느새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는 , 사람을 살리는 일조차 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안식일을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는 중요한 지표라고 봤죠. 거룩한 백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기준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살리는 일도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안식일의 근본 의도와 취지를 말씀하시는 거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겁니다. 사람을 살리고 회복하는 사용하라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쉬면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해야 사람다워집니다. 복잡한 세상사를 내려놓고 편안히 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할 , 사람다워집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질을 다시 천명하신 거죠. 

 

- 사람을 살리는 일의 선두주자

그리고 놀라운 주장을 펼치십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 당신이라는 주장이죠. 이건 뭡니까? 바리새인들 입장에서는 기가 일입니다. 그전에는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질 않나(마가복음 2:10), 최근에는 자신이 의인을 부르러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질 않나(마가복음 2:17), 이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떠들어대는 겁니다. 예수님은 맥락은 이렇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안식일의 원래 취지인데, 취지를 가장 살리는 존재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는 겁니다. 그분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세상에 오셨죠. 하나님과의 회복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의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회복을 위해 오신 겁니다. 그러니 그분이 안식일의 원래 취지를 가장 살리는 분인거죠. 따라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3. 논쟁의 격화 

1) 논쟁의 이유 

여러분 이렇게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에 의문을 갖게 되고 논쟁을 하게 되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그건 예수님이 보시는 세계와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상으로 끌고 들어오신 분이시죠.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겁니다. 

 

최근 개봉한 매트릭스 4, 리저렉션을 봤습니다. 워낙에 매트릭스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스토리가 이어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매트릭스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빨간약을 먹을래, 파란약을 먹을래 하는 장면입니다. 빨간약을 먹으면 컴퓨터 시뮬레이션 세계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파란약을 먹으면 그냥 현재 그대로 남게 됩니다. 시뮬레이션 세계와 진짜 현실 세계가 충돌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빨간약과 같은 분이십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고, 세계로 들어가자고 초대하시는 분이시죠. 그런데, 새로운 세계를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논쟁할 밖에 없습니다. 

 

2) 예수님의 자기 주장

오늘 예수님은 여러 가지 자기 주장을 하셨습니다. 나는 신랑이다. 나는 옷이다. 나는 포도주다.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런 주장을 쏟아내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렇습니다. 신부가 되길 요청하십니다. 신부답게 옷을 입으라고 요청하십니다. 잔치를 위해 포도주를 부대에 담으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진짜 주인인 예수님을 인정하고 안식일의 삶을 재편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자기 주장은 우리에게 변화를 촉구하십니다. 

 

3) 어리둥절한 사람들 

이러니 사람들은 어리둥절 밖에 없죠. 도대체 이분의 세계관을 쫓아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헷갈렸구요. 바리새인들은 저항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파란약을 먹으면서 평생 지금 세계에 만족하며 살고 싶은데, 급격한 예수님의 주장에 당황하다가 지금은 저항하고 있는 겁니다. 

 

4. 나가며 

- 세계관 확장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는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흔들리는 경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제시하신 하나님 나라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 나라와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교회의 모습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던 신앙 생활과 다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두려운 겁니다. 너무 좋은데, 그분이 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사랑하신다니 너무 좋은데, 문제는 그분은 나의 관점을 바꾸길 원하신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두렵기도 거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세계관의 변화와 확장을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내가 자란 가정이 나의 세계의 전부였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에는 선생님과 동네 친구가 나의 세계의 전부였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때에는 학교와 게임과 친구가 나의 세계였죠. 조금씩 우리의 세계는 확장되어왔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문법을 배우면 성장해왔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마세요.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는 생각과 다를 뿐이지 더욱 좋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변화 자체가 두려운 것이지, 내용은 너무 선하고 아름답고 영원하고 행복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마시고,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갑시다. 설을 맞아 일가 친척들을 찾아뵙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그리고 정치 이야기도 적절하게 하세요. 그리고 조금 남는 시간에는 예수님과 말싸움을 하시는 어떨까요? 우리의 세계관을 확장하길 원하시는 예수님과 논쟁을 해보는 거죠. 물론 논쟁은 죽어도 거부하겠다는 식의 논쟁이서는 안되겠죠. 정직하게 사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논쟁이면 정말 좋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진리의 세계관으로 들어가는 누리시길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예수님께 정직하게 물어보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질문들을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두지 말고, 솔직하게 꺼내서 예수님께 물어보는 사람이 되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2. 새해 명절기간 동안 계획해서 너무 삶이 무너지거나 나태해지거나 혹은 너무 달리거나 정치 이야기 등으로 싸우는 없이 기분 좋은 연휴기간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요한의 제자들의 금식에 대한 질문과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질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2. 만약 예수님과 논쟁한다면 어떤 주제로 하고 싶은가요? 혹은 예수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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