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6. 김혁수

 

[본문_마가복음 2:1-12_새번역]

1며칠이 지나서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예수가 계신다는 말이 퍼지니, 2많은 사람이 모여들어서, 마침내 앞에조차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3 때에 중풍병 환자를 사람이 데리고 왔다. 4무리 때문에 예수께로 데리고 없어서예수가 계신 위의 지붕을 걷어내고, 구멍을 뚫어서, 중풍병 환자가 누워 있는 자리를 달아 내렸다. 5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사람아! 죄가 용서받았다하고 말씀하셨다. 6율법학자 몇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기를 7‘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한단 말이냐?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나님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있는가?’ 하였다. 8예수께서,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곧바로 마음으로 알아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9중풍병 환자에게 죄가 용서받았다하고 말하는 것과일어나서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거라하고 말하는 가운데서, 어느 쪽이 말하기가 쉬우냐?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려주겠다.” 예수께서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다. 11“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서, 자리를 걷어서 집으로 가거라.” 12그러자 중풍병 환자가 일어나, 곧바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리를 걷어서 나갔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는 이런 일을 전혀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0. 들어가며 

- 1.5m

저는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철책을 지키는 늠늠한 산악 정예병이었습니다. 강원도의 겨울을 유난히 길고 춥습니다. 5 초까지 눈이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97 1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폭설이 내린다는 기상 예보를 듣고 저를 비롯한 모든 군인들이 잠을 포기하고 작업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눈이 쏟아졌습니다. 눈발이 휘몰아쳐서 그야말로 눈보라가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눈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소대장님이 오셔서 명령을 내립니다. 저를 비롯한 몇명에게 지붕위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네모난 나무 판대기를 붙여 만든 눈삽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서 눈이 쌓이자마자 지붕 아래로 눈을 밀어서 치웁니다. 그런줄 아시나요? 그렇습니다. 눈의 무게를 못이겨 지붕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오는 내내 눈을 지붕 아래로 내립니다. 그렇게 밤새 작업을 하고 아침이 되었는데요. 눈이 일층짜리 건물을 둘러쌓고 말았습니다. 1.5미터 이상 쌓인 겁니다. 군대 막사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군대 정문에 이르는 1미터 정도의 길만 남았습니다. 세상이 그야말로 눈으로 뒤덮혔습니다. 지붕위에서 광경을 보는 것도 정말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막사의 지붕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누군가는 지붕을 보호하기는 커녕 뜯어냅니다. 도대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본문을 읽어 보겠습니다. 

 

1. 뚫린 지붕(1-4)

1) 가버나움, 예수님의

오늘 본문의 배경이 예수님의 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저도 오늘 본문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오셨죠. 예수님의 어머님과 그의 동생들이 함께 있었을 겁니다. 갈릴리 호숫가의 여러 회당을 다니면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시니 사람들이 예수님의 집으로 몰려 듭니다. 

 

2) 사람들로 가득  

- 예수님의  

예수님의 안에는 이미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 앉아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했는데요. 읽어봅시다. 

어느  예수께서 가르치시는데갈릴리  유대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므로예수께서는 병을 고치셨다.”(누가복음 5:17)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멀리 예루살렘에도 닿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갈릴리의 예수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무슨 가르침을 펼치는지 어떤 기적을 행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예수님의 집에 있었던 겁니다. 일종의 조사관 같은 사람이겠죠. 예루살렘 이단 감시 위원회의 조사관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도 병을 고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병을 고칠 때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은 도대체 어떤 마술을 쓰는지 눈여겨 보고 있었을 겁니다. 정말 병자가 맞는지부터, 병이 진짜 나았는지, 병을 낫게 사용하는 이상한 약품 같은 것은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관찰하고 있었을 겁니다. 

 

- 예수님의

안에만 사람들이 가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밖에도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병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겠죠. 병자들의 보호자도 같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차례차례 사람들을 안내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혹여라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3) 뚫린 지붕 

- 이상한 소리, 날리는 먼지 

,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천장에서 들리는 소리입니다. 나무가 띁겨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때로는 쿵쿵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병을 고칠 때마다 천장에서 소리가 나니까 모두 무슨 신비로운 힘이 있는지 의아해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먼지가 내려옵니다. 천장에서 후두둑 소리와 함께 오래된 먼지가 뿌옇게 내려옵니다.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가 놀랍니다. 지진이라도 것은 아닌지 눈을 의심합니다. 

 

- 빛이 들어오다. 

그러더니 천장이 뜯기고 어둑하던 집안에 빛이 쏟아집니다. 예수님의 지붕이 뜯겨나간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위를 쳐다봅니다. 중동의 쏟아지는 뒤로 사람들이 보입니다. 

 

- 병상이 내려오다. 

그리고 병상이 내려옵니다. 귀퉁이를 천으로 묶어서 천천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병상 위에는 사람이 누워있었습니다. 중풍이 와서 여러곳에 마비가 사람이었습니다. 위에 있던 사람도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내려옵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장면입니다. 집안에 있던 음식은 못먹게 되었습니다. 다들 놀라서 벽으로 붙었습니다. 거실 가운데 떡하니 병상이 놓여 있습니다.

 

2. 죄가 용서 받았다(5) 

1) 안심

여러분, 자리에 모든 사람들이 얼어 붙었지만, 중풍병자도 복잡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지붕을 망가뜨렸던 겁니다. 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것이지만, 막상 내려와보니 종교지도자들이 둘러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은 화를 내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니 당신들 뭡니까? 남의 집을 이렇게 망가뜨려도 되는 건가요? 당신들 모두 고소할 거예요.’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보시오, 당신의 죄는 용서 받았습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지붕을 뚫고 들어온 중풍병자와 명의 친구들 앞에서 병자의 죄가 용서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병자와 친구들은 엄청난 위안을 받았을 겁니다.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진 분이 만약 분노해서 병자를 저주하고 친구를 고소하면 꼼짝없이 죽을 수도 감옥에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습니다. 

 

2) 영적 의미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는 단순히 지붕을 뚫은 것에 대한 용서가 아니라는 느낌이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잘못에 대한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매우 심오한 차원, 영적 차원이 있음을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병자 존재의 죄에 대한 용서로 들렸습니다. 예수님의 속에는 온유함과 동시에 엄청난 권위가 묻어 있었습니다. 

 

3. 바리새인의 생각(6-8)

1) 성전 중심 속죄 신학 

이걸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가장 빨리 파악했던 모양입니다. 그들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끌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죄를 사하는 것은 오직 제사를 통해 하나님만 하실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오랫동안 무엇이 죄인지 확인해주고,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용서의 제사, 속죄제,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언제든 사함은 성전에서 이뤄졌던 거죠. 제사를 드린 후에 제사장들에 의해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함의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지붕이 뚫려서 난장판이 집안도 기가 막혔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기가 막혔습니다. 

 

2) 믿음 중심 속죄 신학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더이상 몇몇 엘리트들에게 독점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함의 방식과 선포에 대해 반대하셨습니다. 이상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믿음,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되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믿음 중심의 속죄 신학을 예수님이 만드신 것이죠. 

 

이건 당시 문화에서는 충격이었습니다. 마치 안식일의 주인은 나다라고 말하는 것의 충격과 버금가는 충격이었습니다. “ 사함은 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사함의 선포 또한 내가 있다라고 사람들 앞에서 버린 겁니다. 

 

4. 용서의 권세(9-12) 

1) 예수님의 권세 

솔직히 병만 낫게 하는 것이 쉽고 안전한 길일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구요. 정말 많은 병자들을 고쳤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 앞에서 사함을 선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죠? 

 

그것은 드디어 예수님의 예수님의 자기 폭로를 시작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0절입니다.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려주겠다.” 예수께서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단순히 병을 고치고 말씀을 해석하고 귀신을 쫓는데 머물지 않음을 보여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진정 하나님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죄사함의 권세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줌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십자가로 가는 발걸음을 떼었다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10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오직 사하는 권세는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하나님이 아니라 땅위의 사람인 예수님에게 권세가 있다는 말에 유대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팔다리가 마비가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한마디에 자리에서 일어나 툭툭 털고 걸어 나가는 겁니다. 

 

지점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을 내쫓으실 때는, 사함을 받았다는 선포는 없었는가?” 일단 마가복음의 기록 상에는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없었던 같습니다. 병을 고치는 일과 사함을 동시에 연결하지는 않았던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점에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저는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시작점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은 이제 조금씩 자신의 진짜 정체를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처럼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2 후반부에 가면 안식일의 주인이 당신이다라는 말까지 하시거든요. 2 28절입니다. 한꺼번에내가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랬으면 곧바로 돌을 맞거나 십자가에 끌려갔겠죠. 예수님의 타임라인에 맞춰 조금씩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병을 고치면서 사함을 말하지는 않다가 시점에 말씀하신 거죠. 

 

다른 하나는, 믿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정말이지 오늘 본문의 중풍병자와 그의 명의 친구는 정말 믿음의 행동을 했습니다. 조금 과격하다싶은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단순히 병을 고치고 싶다 정도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정도의 과격한 행동이 있으려면,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절박함입니다. 다른 하나는 완전한 신뢰입니다. 아마도 중풍병자는 거의 죽음에 가까웠는지 모릅니다. 자신도 친구들도 자신의 상태를 보니 죽겠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줄서서 기다리다가 죽을 있겠다 생각했겠죠. 절박함 위에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약자, 병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분의 지붕을 뚫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을 보여준 사람들에게 사함의 선포를 하시는 겁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던 믿음입니다. 온전한 신뢰. 그것을 다시 복원하시려는 겁니다. 율법 지식과 관습적 행동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셨던 진정한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역사가 말해줍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걸 넘어 온전한 신뢰라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에게 예증하시기 시작합니다. 

 

2) 하나님 나라와 용서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에 대해서는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용서와 은혜는 뒷전에 두는 경우를 봤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긍휼과 은혜와 용서로 시작합니다. 병자들에 대한 긍휼, 약자들에 대한 은혜, 죄인들에 대한 용서로 시작합니다. 그걸 방해하는 권력자들 지식인들 기득권자들에 대한 공의와 정의의 목소리로 성장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성장의 측면을 동시에 있어야 합니다. 용서와 긍휼과 은혜가 없이 공평, 공의, 정의를 말하는 것은 속빈 강정, 직관 없는 개념, 내용 없는 형식에 불과합니다. 용서가 없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되지 않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회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용서와 은혜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회 개조 프로그램 이전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 프로그램입니다. 용서가 없는 공의는 폭력과 복수를 낳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피해가 제일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 나가며 

- 죄인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매일 매일 그분의 용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매주 매주 그분의 사함의 선포가 필요한 약자요 병자입니다. 때로 우리는 죽을 같은 심리적, 정서적, 육체적 고통 앞에서 예수님 집의 지붕을 뚫어야 합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그분의 은혜와 용서를 누리기 위해 때로는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분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보여야 합니다. 목사님, 에이  그런게 어떻게 은혜입니까? 그저 자연스런 일상 속에서 찾아오는 것이 은혜죠. 이렇게 생각하실 있어요. 그것도 은혜 맞습니다. 내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것도 은혜 맞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의존하지 마세요. 그렇게 한정짓지 마세요. 은혜를 하나의 개념 안에 가두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개념 틀에 매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오늘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과감한 신뢰와 믿음의 행동을 칭찬하십니다. 그것이 사함의 선포를 이끌어 냅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분 앞에서 우리의 잘못과 죄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그분이 나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 그분과 건강한 관계로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이런 반복을 너무 지겨워하지 마세요. 제가 살아보니, 관계는 그런 것이더라구요. 아내에게 매일 미안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매일 미안하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실수와 잘못이 두가지가 아닙니다. 실수와 잘못을 계속 반복한다고 해서, 그래서 그것이 지겨워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관계는 멈추게 됩니다. 아니 퇴보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죄와 잘못을 아뢰고 용서를 받는 것을 지겨워하지 마세요. 그건 우리 모든 인간의 일상입니다. 

 

이번 한 주도 주님께 정직하게 고백함으로 그분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길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지난 주의 우리의 죄를 고백합시다. 하나님을 떠나서 맘대로 살았던 잘못을 고백합시다.  하나님의 뜻과 음성에는 눈과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을 회개합시다.  

 

2. 때로 우리는 과감하게 예수님 집의 지붕을 뚫어야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분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그분과의 깊은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때가 있는 겁니다. 혹시 주가 그런 주가 아닐까요? 나에게 그런 주가 수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말씀 읽고, 최선을 다해 신앙 서적을 찾아보고, 최선을 다해 좋은 설교를 찾아 듣고, 최선을 다해 그분의 일하심을 관찰하는 주가 되길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중풍병자의 믿음과 친구들의 믿음 중에 누구의 믿음이 보이나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2. 때로 기독인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과감한 결단최선을 다한 노력 필요하다는 말은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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