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07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규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1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주십니다.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5 이른바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든 땅에든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6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은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7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그들이 먹는 고기가 우상의 것인 줄로 여기면서 먹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약하므로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8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볼 것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11 그러면 그 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12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주석

10절: 교육도 더 많이 받고 사회적으로도 뛰어난 집단에 속했던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과는 달리 이교도 축제 때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고기를 먹었고, 또 그들을 초대했을 때 고기를 대접할 수 있었던 부유한 친구들이 있었다. 아마 이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을 더 ‘강하다’고 자처했던 자유로운 분파를 대표했을 것이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에 속했던 사람들은 ‘약한’ 자로 분류되었을 것이다(IVP 배경주석).


사랑은 덕을 세운다. 

지식은 자칫 양심이 약한 사람에게 걸림돌이 된다. 

약한 양심의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결심한다.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처음 이 편지를 읽었을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는 결단을 내린단 말인가? 

하지만, 바울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우상에 바쳐진 고기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던 모양이다.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경험한 사람들은 우상 제사에 쓰여진 고기는 그저 고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상 자체가 힘이 없는 존재이며, 사단과 귀신의 무리들은 그리스도 아래에 있고, 단지 사람들을 속이거나 겁을 주어 자신들에게 종속되게 하려는 존재라는 사실을 지식이 있는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은 알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지식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태생적으로 양심이 예민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우상 고기가 불쾌했으며,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처럼 여겨졌고, 그래서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교회에 오는 사람들 중에 그런 예민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상처가 많은 사람, 죄책감이 많은 사람, 완벽주의적 기질을 가진 사람, 두려움이 많은 사람… 사람은 약하고, 교인은 더 약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자유자라 자처하는 사람이 조심해야 한다. 

지식이 많다고 양심이 약한 사람을 쉽게 가르치거나 고치거나 할 수 없다. 

그런게 아니다.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고 마음의 상처도 회복되고 마음의 힘도 생겨서 양심도 건강하게 작동하는 순간이 되어야 우상 고기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술도 비슷하다. 

맥주나 와인은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며, 특히 서양 사람들은 물처럼 마시는 경우도 흔하다. 

술이 독이 되지 않도록 마신다면 그건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도 있다. 

과음이 문제다. 

그래서 자유자는 편하게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술로 인해 고통을 받은 사람이 많다. 

아버지의 알콜 중독으로 가정이 파탄나기도 한다. 

음주 운전자로 인해 날벼락을 맞는다. 

주취자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고 칼부림이 벌어진다. 

이런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술을 먹는 그리스도인을 상상하기 어렵다. 

술을 드시는 예수님, 술을 먹는 바울, 디모데를 상상하기 힘들다. 

양심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금주를 실천할 수도 있다. 

바울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과 비슷하다. 

형제자매, 성도를 위해, 하나님의 성전인 동료 그리스도인을 위해 절제하는 것이 사랑이다. 

지식만으로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결국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랑이 사람을 살린다. 

목회는 사랑의 영향력을 키우는 공간이다. 

사랑이 과연 그런 일을 하는지, 자기 가족 뿐 아니라 남이라 여겨지는 성도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는 공간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목회를 하고 있다. 

편지를 통해서 목회를 하는 것이다. 

바울도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단어 몇개의 차이만이 아니다. 

지식, 사랑, 경험, 덕, 개인, 공동체… 수많은 생각들의 집합이다. 

 

오늘도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있다. 

생각해야 할 일이 많지만, 핵심은 사랑이다. 

공동체가 더욱 건강해지려면 사랑이 커져야 한다. 


하나님, 

주님의 사랑이 더욱 커지기를 기도합니다. 

솔직히 지식도 더욱 많아지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품고 싶습니다. 

기억하고 싶습니다.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한 번 들은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지식과 정보가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그런 야망, 욕망을 내려놓고 사랑의 공간을 넓히고 싶습니다. 

덕을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고,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공간을 확대하고 싶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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