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6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나와 아볼로에게 적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라"는 격언의 뜻을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배워서, 어느 한 편을 편들어 다른 편을 얕보면서 뽐내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7 누가 그대를 별다르게 보아줍니까?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받아서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두가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왕이나 된 듯이 행세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왕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노릇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인 우리를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영광을 누리고 있으나,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11 우리는 바로 이 시각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닙니다.

12 우리는 우리 손으로 일을 하면서, 고된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13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전반부는 계속 같은 주제의 연속이다. 

교회 파벌의 원인을 지적하고 해결을 위한 방책을 제시한다. 

교회는 어떤 개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그 기초는 그리스도다. 

분열의 모습이 사람들 눈에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서로 편을 나눠 자기 편에 대해서는 무한한 칭찬과 격려를 다른 편에 대해서는 날까로운 비판과 비난을 쏟아낸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싸움이 겉으로 보일진대 속에서는, 안보이는 곳에서는 얼마나 심할까!

바울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찢어진 그분의 몸이다. 

하나님 사랑은 결국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그렇게 외쳤건만, 돌아오는 것은 이웃 사랑은 커녕 같은 식구, 형제 자매도 사랑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회의가 들 수도 있겠다. 

과연 성령님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을 수도 있겠다.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울, 아볼로, 게바와 같은 사도들도 덩달아 구경거리가 되었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인 우리를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름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이름 뒤에 숨어서 싸운다. 

사도들 사이에도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때로 갈등이 불거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봉합되고 서로 이해하면서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 사이의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도들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서로 라인을 형성하고 서로를 공격한다. 

그러다보니 사도들의 이름만 부끄럽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이름도 부끄럽게 된다. 

 

교회를 섬기면서 리더십의 역할을 감당하느라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다. 

외부적 어려움과 고통은 참을만 했다. 심각한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은 내부의 분열이며 자기 분열적 내부 총질이다. 

사도 바울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은 교회 내부의 비난과 저주다. 

책잡히지 않기 위해 손으로 일하면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사역해 왔다.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해진 거처 없이 여기저기 다니며 복음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해산을 고통을 겪으면서 나았던 공동체와 성도들이 서로 분열되어 사도들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사형수, 쓰레기, 만물의 찌꺼기 등으로 느껴지곤 한다. 

슬픈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빛나고 영광스런 자신을 느꼈던 순간이 왜 없었을까! 

그러나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순간엔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이고 초라해 보인다. 

최소한 성도들이라도 자신의 상황을 인정해주고, 축복해주고, 격려해주길 바랬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비판이 쏟아지고 비난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사도는 인내한다. 

쉽게 분노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비방과 비난에 대해 축복의 말로, 좋은 말로 대답하고자 노력한다. 

외부에 대해서도 그랬다면, 내부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통을 주는 말들이 많이 떠돌아다닌다. 

깍아내리는 말들이 많다. 

뒷담화와 험담은 사람들의 안주거리요 소일거리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섬겼던 사람들도 비난 듣기 일쑤다. 

현실이 그렇다. 

 

이상적인 바램일 수 있겠지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신뢰하는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파벌과 라인과 편당이 아니라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뿌리내린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어떻게 민들어 갈 수 있을까? 

세대차이, 지역차이, 성별차이에 의해 발생한 그룹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갈 수 있을까? 

계속되는 질문이며 과제다. 

무턱대고 신뢰하라고 요청한다고 서로 신뢰가 되겠는가!

강력한 뭔가가 우리 내면과 공동체에 흐르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다. 

어쩔 수 없이 주님께 부탁할 수 밖에 없다. 


사랑으로 연합해 계신 하나님, 

아무리 노력해도 이상적 공동체를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세요. 

강력한 역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시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게 하시고,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기독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게 도와주세요. 

각자의 유익과 자기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해주세요.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 기도합니다. 

좋은 교회되게 해주세요. 

사랑의 말이 더욱 번지게 해주세요. 

성령님께서 더욱 강하게 역사하셔서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고백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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