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05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9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20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21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주석

19-21절. 이 행위들은 네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성적 불순함, 우상 숭배, 불화, 술취함이 그것이다. 바울이 나열하고 있는 죄들은 대부분은 세 번째 범주에 속하며, 그것이 갈라디아인들이 인간관계와 관련된 죄에 특별히 취약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자유를 누리되 이웃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그 자유를 사용하라고 강조했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는 길을 가라고 권면했다. 

자유를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과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은 동일한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성령님은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하도록 성도들을 안내한다. 

성령님은 성도들을 억압하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성도들의 자유를 더욱 극대화하신다. 

하지만 방종으로 나아가길 원치 않으신다. 

이웃을 사랑하도록 이끄신다.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끄신다.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다. 

 

성령님의 역사에 반하는 움직임이 있다. 

바로 육체의 정욕과 그 행실이다. 

육체의 정욕과 행실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를 자유를 훼손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자신과 이웃에게 해를 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육체의 행실은 본문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음행, 더러움, 방탕은 성적 불순함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 당시 로마의 사회상은 성적인 방종이 심각했다. 

상류층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성적인 불순함과 불결함이 가득했다. 

성적 봉사를 하는 노예가 따로 존재했으며, 상류층은 사창가를 드나드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태어나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이 부족했다. 

기독교가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로마 상류층이 성적 순결을 지키려는 아내를 기독인 외에서는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중 문화가 그러하니, 혼자서 성적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이 극도로 힘들다.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자유을 얻은 성도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로 가능한데, 그것에 반대하는 육체의 행실에 첫 번째 부류는 바로 성적 불순함이란다. 

유혹을 받을 수 있으나, 행실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우상숭배나 마술 같은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으로 섬기려는 사람들의 본성에서 나온 죄악이다. 

구약에서부터 금지해온 것들이다. 

사탄과 귀신을 주인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는 행위는 버려야 한다. 

마술, 요술, 신접, 무당, 굿…. 버려야 한다. 

결국 이런 것들은 성도의 자유를 짓밟고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한다.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는 이웃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죄악이 판을 칠 수 있다. 

분탕질을 하고 서로를 미워한다. 

뒷말을 하고 과도하게 비판한다. 

시도때도 없이 비판한다. 

생각날 때마다 언급하고 사람을 희화화한다. 

웃음거리의 소재로 삼는다. 

그렇게 파당이 만들어지고, 다툼이 거세지고 교회는 분열된다. 

이렇게 되면 이웃 사랑의 모델이 되어야 할 교회가 무너지고, 예수님의 이름이 더렵혀진다.

현대 교회들도 이런 죄악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술취함, 흥청망청 노는 것… 이것은 정말이지 현대 문화에 그대로 녹아 있다. 

너도 나도 즐거움과 쾌락에 중독되어 있다. 

즐겁다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 

즐거움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곤 한다. 

 

바울은 이런 죄의 행실이 결국 성령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며, 자유를 이웃사랑으로 사용하는 성도들을 타락시키는 길이기에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 강조한다. 

심지어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성령님을 따르는 삶은 이런 것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삶이다. 

성적 불결함, 우상숭배, 관계 훼손, 쾌락추구는 성령님의 길이 아니다. 

육체의 욕망의 길이다. 

사탄의 길이며, 다시 하나님께 반역하는 길이다. 

 

기독인의 윤리와 세상의 윤리가 차별성이 점점 없어지는 세상에서 사도 바울의 경고는 의미가 크다. 

세상을 떠나 살 수 없는 우리들에게 세상 윤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고 버려야 하는가? 

기독교 윤리를 어떻게 성도들의 삶에 뿌리를 내리게 하고 체화시켜서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가? 

모두 자기만의 세계관이 있으며, 보편적 윤리가 아니라 기호가 있다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과연 성경적 세계관과 성경의 보편적 윤리관을 어떻게 심어 줄 수 있는가?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이 질문 앞에 다시 선다.  

 

[오늘의 기도]

선악 구분의 참된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은 분명히 말해줍니다.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은 당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섬기는 우상숭배를 싫어하셨습니다. 

성적 부도덕, 성적 불결함을 싫어하셨습니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쾌락에 중독되어 하나님보다 즐거움과 쾌락을 찾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저도 싫어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저도 좋아하게 하소서.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주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쇼츠 시청을 줄이고, 더욱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결심합니다. 그 결심을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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