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03 월요일

나를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38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1 주님, 주님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님의 진노로 나를 벌하지 말아 주십시오.

2 , 주님의 화살이 나를 꿰뚫으며, 주님의 손이 나를 짓누릅니다.

3 주님께서 노하시므로, 나의 살에는 성한 곳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때문에, 나의 뼈에도 성한 데가 없습니다.

4 죄의 벌이 나를 짓누르니, 무거운 짐을 내가 더는 견딜 없습니다.

5 몸의 상처가 곪아터져 악취를 내니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6 떨어질 없이 무너져 내린 , 온종일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7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니, 몸에 성한 데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8 몸이 이토록 쇠약하여 이지러졌기에, 가슴이 미어지도록 신음하며 울부짖습니다.

9 , 주님, 나의 모든 탄원, 주님께서 아십니다. 나의 모든 탄식, 주님 앞에 숨길 없습니다.

10 심장은 거칠게 뛰고, 기력은 빠지고, 눈조차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11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이 상처를 바라보곤 비켜섭니다. 가족들마저 나를 멀리합니다.

12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올무를 놓고, 불행을 바라는 자들이 악담을 퍼부으며, 온종일 해칠 일을 모의합니다.

13 그러나 나는 아예 귀머거리가 되어 듣지 않았고, 벙어리가 되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14 참으로 나는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되었고, 입은 있어도, 항변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15 주님, 내가 기다린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나의 , 나의 하나님, 나에게 친히 대답하여 주실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

16 내가 재난에 빠져 있을 때에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 원수들이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발이 힘을 잃고 비틀거릴 때에도, 그들이 나를 보고 우쭐거리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17 나는 쓰러질 같으며, 고통은 잠시도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18 진정으로 나는 나의 잘못을 털어놓고, 나의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19 강력한 나의 원수들은 점점 많아지기만 하고, 나를 까닭 없이 미워하는 자들도 점점 불어나기만 합니다.

20 나의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유익을 도모할 , 오히려 나를 대적합니다.

 

21 주님,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나를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22 빨리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

 

시인은 온몸에 성한 곳이 없습니다. 상처의 고통과 마음의 슬픔이 그를 짓누릅니다. 기력이 쇠하여 생명이 꺼져갑니다. 죄와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시인은 주님의 진노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눈물과 탄식을 쏟아냅니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울부짖습니다(1-10).

 

가까운 사람들마저 시인을 떠납니다(11). 사람들의 거절과 혐오의 시선들도 견뎌야 합니다(12). 가까운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그들의 조롱과 비난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들에게 반응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기다립니다(13-15). 오직 주님께만 귀를 열고 입을 벌립니다. 오직 구원의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

미안하다 상대주의야~

 

1. 인상

시를 처음 읽을 받은 인상은, 예수님의 모습이 아련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심장을 거칠게 뛰고, 기력은 빠지고, 눈조차 빛을 잃고 말았다는 말에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이 떠올랐다. 

게다가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이 상처를 바라보곤 비켜섭니다. 가족들마저 나를 멀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말엔 예수님의 모습이 어린다. 

정말 예수님은 모진 고난을 당하신 분이시다.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났다. 

벌거벗은 몸으로 온갖 피딱지가 붙어 있고, 여전히 피가 흐르기도 순간, 그를 사랑하던 제자들과 가족들이 그의 상처를 보고 있었다. 피흘림을 보고 있었다. 

입은 있어도, 항변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 분은 정말 예수님이로구나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다시 떠올릴 있다니 감사한 순간이었다.  슬픔도 있지만, 그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2. 다른

그렇다고 완전히 예수님하고 등치할 없음도 번째 읽다보니 알게 되었다. 

시편의 시인은 자신의 때문에 징벌을 받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3주님께서 노하시므로, 나의 살에는 성한 곳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때문에, 나의 뼈에도 성한 데가 없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 따라서 여기서의 시인과 예수님을 똑같은 상황이라고 수는 없다. 

시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고초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고초를 주님의 진노로 이해하고 있다. 

 

3. 진노하시는 하나님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항상 불편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성경의 곳곳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그분이 분노가 없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너무 커서 결국 인류의 죄를 그분 스스로 대신 짊어지시지 않았는가!

그걸 잠시 묻어두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할 있다. 그분의 자비에 대해 크게 선전할 있다. 

그렇다고 그분이 진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며, 진리를 호도하는 것이다. 

그분은 진노하실 있는 분이시다. 

사실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다른 여러가지 방식의 설명을 통해 진노를 합리적으로 풀어볼 수는 있지만, 그분이 심판하시는 , 진노하시는 분이심을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한다.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 

불의에 대해 분노하시는 , 

당신의 영광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화를 내시는

 

받은 은혜 때문에 그분께 나아갈 수는 있지만, 

그분이 우주의 왕이시며 판결하실 있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실이 오히려 방종을 가로 막는다.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최소한 그분의 분노를 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는 자유롭다. 

그분의 진노의 심판을 받는 것까지 열려 있는 자유로움은 우리 영혼에 해가 된다. 

당장 그분이 심판하시지는 않겠지만, 죄에 대해 그분이 결국 훗날에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르게 설명할 있지만, 다른 설명이 진실에 가까운 것은 아니다. 

다른 설명은 다른 설명일 뿐이다. 누군가가 설명했다고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동의를 얻어낼 있다고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 

진리는 여전히 저기 어딘가에 존재한다. 

 

4. 미안하다 상대주의야~

미안하다 상대주의야 

어쩔 없이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근대적 인간이다. 

진리되신 예수님이 여전히 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존재한다. 

개인이 받아들이면 진리가 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진리가 되는 그런 진리가 아니라, 개인이 받아들이건 말건 진리되신 예수님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것을 믿는다. 

마음에 존재하시는 예수님 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점유하시는 분으로서, 혹은 시공간을 통제하시는 분으로서 예수님이 존재하신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그걸 교묘하게 비비꼬아서 진리는 마음에 있다는 소리는 맞는 말이지만, 일부만 맞는 말이다. 

진리되신 그분은 예전에는 역사속에 시공간에 존재하셨고, 지금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신다. 인간이 인식범위 바깥에서 움직이신다. 

포스트모던이 가져다 주는 유익은 있지만, 그렇다고 객관적 진리를 포기하지는 않겠다. 여전히 그분이 진리되심을 믿는다. 

그런면에서, 사랑의 하나님의 존재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동시에 믿는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요. 딜레마에 매여 있는 하지만, 어김없이 딜레마를 뛰어넘으시는 분으로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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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때로 진노하시는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저의 죄를 가르쳐 주옵소서. 

겸손하게 사랑하는 주님의 권면과 충고를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죄라고 하시면, 더욱 적극적으로 끊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분노를 거두어주시고, 더욱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고, 공동체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1 04 26 월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3-4월호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32악인이 의인을 엿보며 그를 죽일 기회를 노리지만,

33주님은 의인을 악인의 손아귀에 버려 두지 않으시며, 판결을 내리실 때에 의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지 않으실 것이다.

34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법도를 지켜라. 주님께서 너를 높여 주시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니, 악인들이 뿌리째 뽑히는 모습을 네가 보게 것이다.

35악인의 세력을 내가 보니, 본고장에서 자란 나무가 무성한 잎을 뽐내듯 하지만,

36한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흔적조차 사라져, 아무리 찾아도 모습 찾아볼 없더라.

37 없는 사람을 지켜 보고, 정직한 사람을 눈여겨 보아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으나,

38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할 것이니, 악한 자들은 미래가 없을 것이다.

39의인의 구원은 주님께로부터 오며, 재난을 받을 때에, 주님은 그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40주님이 그들을 도우셔서 구원하여 주신다. 그들이 주님을 피난처로 삼았기에, 그들을 악한 자들에게서 건져내셔서 구원하여 주신다.

 

시인은 악한 자가 의로운 자를 해치려고 하지만, 주님께서 의로운 자를 지켜주신다고 말합니다(32). 의인이 주님을 의지하여 말씀을 붙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얻으며, 악인이 심판받는 것을 보게 것입니다(33-34). 악인들은 지금 잎이 무성한 나무를 자랑하지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의인들은 미래에 번성할 것입니다(35-38).

 

주님은 의로운 자들의 피난처이시며 그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구원하시는 분입니다(39-40). 자신이 가진 힘을 붙들고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은 영화가 오래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처럼 금세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기에 약한 같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을 붙잡는 인생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나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오늘은 말씀이 위로가 된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다. 

하나님은 평화를 사랑하시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신다. 

그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악인들은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엿보며, 죽일 기회를 노린다(32). 

도대체 그들은 사람들을 해하려고 하는 걸까? 

그들은 악인이 되었는가? 

길이 없다. 답답하다. 서로 사이좋게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을까? 

사람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심지어는 죽이느냔 말이다. 

 

우리 주님을 평화를 사랑하시고,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신다. 

평화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선사하신다. 

 

마태복음 5장

3“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5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7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8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것이다.

9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너희가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예수님도 시를 발표하셨다. 

그분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호를 받게 것이라고 축복의 말을 남기셨다. 

마태는 시가 특히 맘에 들었나 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시를 사용해서 시작했다. 

평화를 사랑하면 예수님의 시에서도 그렇게 적으셨지만,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다. 

슬픔도 있고, 목마름도 있다. 때로 박해도 있다. 

그럼에도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시편의 시인도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구약의 하나님도 평화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말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보호하시고 미래의 전망을 열어주신다. 

 

혐오, 쿠데타, 전쟁

이런 뉴스들이 그치질 않는다. 

세계의 경찰이라고 불렸던 미국에서는 혐오 범죄가 늘고 있다. 

총기 사건이 그치지 않는다. 

미얀마의 군인들이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민간인들을 총으로 죽이고 있다. 

내전으로 번지고 있다. 

과연 사람들은 영구적 평화를 구축할 도덕적 힘을 가지고 있는가? 

화성에 사람을 보낼 계획은 만들어도, 세계의 전쟁을 없앨 계획은 만들지 못하는가? 

평화를 추구할 의도가 과연 있는가? 

세계 지도자들은 무엇을 향해 회의를 하고 모임을 가지는가? 

 

평화를 주십사 다시 기도한다. 

 

 

——

평화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평화가 유지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소서. 

수많은 인권 운동가, 긴급구호 현장의 활동가들, 유니세프, 적십자, 유엔 평화 유지군 등의 사람들을 보호해주세요. 

평화가 증진되고 영구적으로 정착되도록 도와주세요.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부디 평화로운 관계로 서로 상생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4 19 월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3-4월호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2악인이 의인을 모해하며, 그를 보고 이를 갈지라도,

13주님은 오히려 악인을 비웃으실 것이니, 악인의 끝날이 다가옴을 이미 아시기 때문이다.

14악인들은 칼을 뽑아 치켜들고, 활을 당겨서,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자기 길을 똑바로 걷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만,

15 칼에 오히려 자기 가슴만 뚫릴 것이니, 활도 꺾이고야 것이다.

16의인의 하찮은 소유가 악인의 많은 재산보다 나으니,

17악인의 팔은 부러지지만, 의인은 주님께서 붙들어 주신다.

18 없는 사람의 나날은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니, 유산은 대대로 이어지고,

19재난을 당할 때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기근이 때에도 굶주리지 않는다.

20그러나 악인들은 패망할 것이니, 주님의 원수들은 기름진 풀밭이 시들어 불타듯이, 불타 없어질 것이니,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21악인은 빌리기만 하고 갚지 않으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거저 준다.

22주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받은 사람은 땅을 차지하게 되지만, 주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땅에서 끊어질 것이다.

23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24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25나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의인이 버림받는 것과 그의 자손이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26그런 사람은 언제나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면서 살아가니, 그의 자손은 복을 받는다.

27악한 피하고, 선한 힘쓰면, 땅에서 길이길이 것이니,

28주님께서는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원토록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질 것이다.

29의인은 땅을 차지하고, 언제나 거기에서 것이다.

30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의 혀는 공의를 말한다.

31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발걸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시인은 악인들이 의인들을 해치려고 공격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피해를 입게 것이며,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미래를 아시기에 그들의 현재 모습을 비웃으신다고 말합니다(12-15). 왜냐하면 주님께서 의인들의 재산과 안전은 지키시지만, 악인들은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16-22). 의인들이 고난 속에 흔들릴지라도 길이 주님이 기뻐하는 길이면 주께서 그들의 걸음을 지켜주십니다(23-24).

 

악한 자들은 그들이 가진 힘과 재산을 뽐내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의로운 자들을 공격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의 편에 서십니다. 주님의 길을 걷는 자들이 흔들릴 발걸음을 지키시며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혹시 나에게 주님의 뜻을 따라가며 부딪치는 어려움이 있습니까? 걸음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때론 흔들려도 뚜벅뚜벅 걸어갑시다.

 

——

 

주님, 

악인들로부터 저를 구해주소서. 

악인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사용해서 비천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곧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을 멸시하며 능욕을 주며 심지어는 죽이려고 합니다. 

삶에 아직 극단적인 악을 실제로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나 뉴스를 통해 알게 됩니다.

정말 만나기 싫고, 경험하기 싫습니다. 

 

주님, 

악인들로부터 우리 공동체를 지켜 주세요. 

고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악이 들어오는 길을 제공하는 악한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세요. 

뿐만 아니라 주변의 선량한 사람들을 지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1 04 12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악한 자들이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2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3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4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5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6너의 의를 빛과 같이, 너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다.

7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주님만을 애타게 찾아라.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다고 자랑하는 자들과, 악한 계획도 언제나 이룰 있다는 자들 때문에 마음 상해 하지 말아라.

8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9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10조금만 참아라. 악인은 멸망하고야 만다. 아무리 있던 자취를 찾아보아도 그는 이미 없을 것이다.

11겸손한 사람들이 오히려 땅을 차지할 것이며, 그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평화를 누릴 것이다.

 

시인은 악인의 형통함은 풀처럼 금방 사그라질 것이기 때문에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1-2).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며 선을 베푸는 자들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그들의 의로움을 한낮의 햇빛처럼 나타내실 것입니다(3-6). 그러므로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되, 악한 자들의 잘됨으로 인한 분노와 격분을 가라앉히고 불평의 말을 그치십시오(7-8).

 

잠시 성공한 것처럼 보이던 악한 자들은 종국에는 멸망할 것입니다. 반면 주님을 찾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받고 주님이 주실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9-11). 악한 자들의 됨을 보면 우리도 부러움이나 원망, 불평이 생길 있습니다. 그럴 우리의 시선이 현재에만 머물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이루실 일들을 붙들 있길 기도합시다.

 

——

 

1. 속상함

시인은 속상해하지 말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현실은 여전하다. 

투기로 타인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 

더러운 욕망은 한계가 없다. 

정당한 부의 추구를 넘어선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투기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속상하다. 

 

솔직히 나가는 악인이 부럽지는 않다. 그들 내면도 고통이다. 관계도 엉망이다. 

돈이라는 욕망의 화신에 매여 사는 삶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욕망에 굴종해 타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고, 자신의 배를 채우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 있지, 시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속상하다. 

많은 , 많은 행복의 기회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빼앗았다.

결국 기회의 박탈이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극단적인 생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조금 풍족했다면, 조금 친구들이 많았다면, 조금 사회적 돌봄이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속상하다. 

 

2. 애타다

시인은 애타게 주님을 찾으라고 권하고 있다. 

이건 내가 오랫동안 추구했던 바이다. 나는 우주의 주인을 애타게 찾아왔다. 

내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고,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었다. 

어렸을 , 그것만이 나를 지킬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나의 약점과 부족함을 극복할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어찌보면 아주 실용적인 이유로 하나님을 찾았다. 

 

실용성이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이유로 그분을 애타게 찾는다. 

그저 그분이 정말 존재하는지 더욱 확인받고 싶다. 

믿음이 아니라 확실성에 거하고 싶다. 

그래서 그분을 찾는다.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의 존재를 믿는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깊이 경험하고 싶다. 열망을 어찌 막을 있단 말인가!!

그분의 임재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그분의 일하심을 간절히 기다린다. 

 

악인이 어찌되는 것은 현재 나에게 중요하다. 

의인의 어떻게 빛나게 되는 것도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시인의 감정의 이유까지 내가 닮아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시인의 감정이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애타게 간절히 매일 매주 그분의 임재와 일하심을 추구한다. 

그게 나를 살린다.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3. 뿌리 뽑혀야

미얀마의 참상을 뉴스를 통해 듣는다. 

나를 죽여라젊은이들을 향해 발포하는 군경들 앞에 무릎을 꿇은 수녀의 외침. 

수녀는 살았으나, 그의 눈앞에서 청년이 포악한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985952.html

 

수녀 또 무릎 꿇었지만…무자비한 미얀마 군경에 2명 사망

일부 군경도 수녀 앞에서 무릎 눈길군부, 대학 점령·주택가 무차별 총격여성단체, 전통치마 타메인 시위남부 카렌반군 무장하고 시위대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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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휴대폰, SNS… 일상의 실시간 중계가 가능한 세상이 되었건만, 역시 악은 성실했다.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국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국회의 일정 좌석을 항상 차지하게 하는 헌법에 보호를 받는다. 

군대, 정치, 경제막강한 권한이다. 마치 예수님 시대의 로마 제국을 보는 같다. 

대마불패, 그들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득권과 권한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순간, 이렇게 쿠테타가 일어난다. 피를 부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들을, 악을 참아야 하는가! 

 

오늘 시인이 현대에 살고 있다면, 분명히 거대악에 대항해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9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저주를 퍼붓는다. 

비무장한 시민들에게 발포한 군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를 

자연과 만물이 나서서 그들의 사지를 묶고, 입술을 꿰매기를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전국이 유혈이 낭자한 킬링필드가 되고 있다. 

막아 주실 분이 가만히 계시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희생자가 된다. 

이것도 속상하다. 

 

어쩔 없이 간절히 부르짖는다. 

주님, 악한 자의 뿌리를 뽑아 주세요!”

 

——

악의 뿌리를 뽑으시고, 새로운 세계를 여신 주님을 높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현실에서는 악이 판을 칩니다. 

인간의 악독함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자기보호가 살인을 낳고 살인이 전쟁을 낳습니다. 

미얀마의 악을 보고 계십니다. 

미얀마의 시민들을 주님께서 돌봐주세요.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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