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24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1 백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23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실 때에, 그는 서른 살쯤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요셉의 아들이었다. 요셉은 엘리의 아들이요, 24 그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맛닷, 레위, 멜기, 얀나, 요셉, 25 맛다디아, 아모스, 나훔, 에슬리, 낙개, 26 마앗, 맛다디아, 세메인, 요섹, 요다, 27 요아난, 레사, 스룹바벨, 스알디엘, 네리, 28 멜기, 앗디, 고삼, 엘마담, 에르, 29 예수, 엘리에제르, 요림, 맛닷, 레위, 30 시므온, 유다, 요셉, 요남, 엘리야김, 31 멜레아, 멘나, 맛다다, 나단, 다윗, 32 이새, 오벳, 보아스, 살라, 나손, 33 아미나답, 아드민, 아르니, 헤스론, 베레스, 유다, 34 야곱, 이삭, 아브라함, 데라, 나홀, 35 스룩, 르우, 벨렉, 에벨, 살라, 36 가이난, 아박삿, 셈, 노아, 레멕, 37 므두셀라, 에녹, 야렛, 마할랄렐, 가이난, 38 에노스, 셋, 아담에게 이르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주석

하늘에서 들린 소리(22절) 하늘에서 들린 소리에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메아리친다(사 42:1). 그 말씀은 메시아에게 백성과 세상을 위해 고난당하고 죽으실 종의 임무를 맡긴다. 이사야서 말씀의 배후에는 또다시 창세기 22:2이 메아리친다. 거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다. 그와 동시에, 이 소리는 예수님의 소명에 대한 놀라운 확증이며, 그 소명의 목적지를 보여 주는 확실한 단서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하나님의 아들(38절) 누가는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님의 호칭으로 사용하면서, 분명히 그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는다. 천지창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이해하는 최선의 길은, 예수님이 진정 이스라엘의 메시아(하나님의 아들의 또 다른 의미)이지만, 그분이 바로 온 세상을 위해서도 그렇다고 말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창조 세계와 온 인류가 앞으로 예수님이 하실 그 일의 혜택을 누릴 것이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예수님께 내려오십니다(21-22절). 하늘에서 울린 소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증함과 동시에, 그 사랑하는 아들이 온 세상을 위해 할 일이 있음을 암시합니다(22절, 사 42:1 참고). 누가는 이어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의 메시아임을 확언합니다(23-38절). 

 

세례 이야기와 족보는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길을 갈지 알고 있으셨지만, 온 세상을 위해서 보내야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백성과 세상을 위해 고난당하는 종으로 오셨으며,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다. 그 길의 시작에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들려주는 말은 ‘내가 너를 좋아한다’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예수님을 뒤따라 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하늘에서 들려왔던 그 소리가 오늘 우리의 심령에도 울리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요한의 사역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예수님도 포함되었다. 

사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는 없었다. 

그분은 이미 깨끗하신 분이시며, 하나님께 인정받으시는 분이시다. 

그분 자체가 하나님이시다. 

세례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징표요 선포다. 

굳이 받으실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다. 

요한도 겸손하지만, 예수님은 더욱 겸손하신 분이셨다. 

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은 인간이 가야하는 길을 멀리하지 않으셨다. 

30년간 가족을 섬겼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이미 그 운동의 명맥을 잇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다. 

 

좀더 세례에 대해 설명하자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이집에서 광야로 넘어오는 홍해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제사에 집중하면 된다. 

율법에서 가르치는 바,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절기 규정들, 사회 규정들, 윤리 규정들을 잘 지키면 된다. 

그들에게 세례는 낯설다. 

그럼에도 요한은 세례가 필요하다고 봤다. 

회개가 필요하고, 그 회개는 결국 예식으로 드러나야 하며 공중 앞에 선포되어야 한다. 

그러니 요단강물에 빠졌다가 다시 나오는 예식을 통해 이전 것은 물 속에 두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서울신대 조기연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한은 쿰란의 정결의식이나 요단강 주변의 세례관습들을 가져다가, 그것을 다가오는 세상의 종말을 준비하라는 예언자적 사상과 결합시켜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씻음의식으로 발전시켜 내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세례의 기원과 의미_신약성서를 중심으로

 

요한은 기존의 정결의식들을 참조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례 의식을 만들어냈으며, 예수님은 이에 동의하셨다. 

요한의 하나님 나라 도래의 예언자적 전망을 높게 평가하시고, 그 사역이 바로 자신의 사역과 연결되어 있음을 세례받음을 통해 인정하시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례를 받으시는 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내려오는 비둘기 같은 성령님을 본다. 

그리고 음성을 듣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비둘기 같은 형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사는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누가는 나중에 불의 혀처럼 갈라져서 번개치듯 떨어지는 성령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내리는 성령님은 비둘기와 같은 형체를 갖고 있었다. 

성령님은 어떤 하나의 형체로 규정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어떤 모습으로도 등장하실 수 있으시며, 어떤 소리로도 나타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그분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비둘기 형체도 오셨다고 했으니, 그것은 성령님이 보여주시는 최고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존재하는 삼위 하나님을 떠올릴 때, 성령님이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에게 비둘기 모습으로 다가갔다는 점에서 그의 최고의 모습이라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성령님은 사랑의 표현을 할 때 이와 같이 비둘기와 같은 모습을 하실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아들, 나는 너를 좋아한다. 

이건 사랑 고백이며, 백성들로 하여금 아들의 권위를 치켜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고백을 들을 때마다, 아담의 노래가 떠오른다.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에 뼈로구나. 

사랑은 언제나 시와 노래로 승화된다. 

하나님은 지금 시적 고백을 하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사랑 고백을 들었다. 

“그 인물이 누구인가?

어째서 요한이 아니라 예수라는 듣도보도 못한 인간인가? 

어째서 내가 세례 받을 때는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 저 나사렛 청년에게는 저런 말씀이 내려오는가?”

이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예수를 눈여겨 본다. 

그의 말과 행동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요한의 사역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오늘의 기도]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을 귀하게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하는 일도 귀하게 사용해주세요. 

간사들을 훈련하고, 학생 사역을 일으키고,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세요. 

저를 통해 좋은 사역자들이 더 많이 나오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23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5 백성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던 터에, 모두들 마음 속으로 요한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오. 17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18 요한은 그 밖에도, 많은 일을 권면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19 그러나 분봉왕 헤롯은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관련된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 때문에, 요한에게 책망을 받았고, 20 거기에다가 또 다른 악행을 보태었으니, 요한을 옥에 가둔 것이다.

 

주석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16절) 요한 자신은 메시아의 신발 끈을 푸는 종이 될 자격조차 없다고 말한다(IVP 성경비평주석).

 

성령과 불 세례(16절) 성령과 불 세례는 구원과 심판에 대한 요한의 종말론적 기대를 나타낸다(IVP 성경비평주석). 

 

헤로디아와 관련된 일(19) 헤롯 안티파스는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불륜 관계였다. 그 뒤에 헤로디아는 빌립과 이혼하고 안티파스와 재혼했다. 유대교 율법은 아내가 남편과 이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요한은 헤롯에 맞서 거침없이 말했고, 그 결과를 감수해야 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15절). 그러나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예비하는 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16절). 예수님은 요한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분으로서 불과 성령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실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을 첨예하게 가르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16-17절). 요한은 자신의 권면이 ‘기쁜 소식’이라고 말했습니다(18절). 그리고 그는 그 기쁜 소식을 따라 왕의 행실을 책망했고, 결국 옥에 갇히게 됩니다(19-20절).

 

요한은 자신에게 집중된 기대를 예수님께 돌리며 자신의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갑니다. 동시에 그에 따른 대가 역시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에게는 요한과 같은 겸손함과 충직함이 필요합니다. 나보다 예수님이 더 주목받으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립시다. 또한 옳은 길이라면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타협 없이 충직하게 걸어갑시다. 기쁜 소식을 따라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기도로 시작하고 싶다. 

 

몸과 마음을 주님께 솔직히 보여드립니다. 

꾸미거나 위장하지 않겠습니다. 

좋게 보이려고, 그렇다고 부러 나쁘게 보이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주님, 말씀으로 저를 비춰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요한의 겸손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므온도, 안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분들이었고, 게다가 성령님으로 충만한 분들이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고 싶었다. 

이집트에서 히브리 백성들을 탈출 시켰던 모세처럼, 가나안의 여러 폭력적인 민족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사사들처럼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탈출 시켜주는 새로운 지도자를 원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단순히 제국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요단강에서 회개를 선포하고 물로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실 메시야는 물이 아니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새로운 백성으로 다시 만들어 주는 일, 그 일이 메시야의 역할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기에, 요한은 더욱 겸손해 질 수 있었다.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었다.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러 온 대사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 중 일부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3년간의 공생애를 무사히 시작하고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감당했다. 

분위기를 만들었고, 사람들을 길러냈다. 

예수님의 메시지에 반응할 수 있는 환경과 사람들을 길러냈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탁월하게 잘 감당했다. 

그의 겸손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다. 

 

나는 탁월해지기를 갈망한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특별한 존재로 살고 싶다.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특별한 기여, 역사에 남는 공로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욕구가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보다 더 많은 것을 꿈꾸는 교만함이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겸손하게 내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고, 항상 더 위대한 것을 갈망한다. 

그러니 참 피곤하다. 

나만 피곤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피곤하다. 

탁월함은 유지하면서 겸손할 수 있는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2. 요한의 용기 

요한은 겸손할 뿐 아니라 용기와 결기의 사람이다. 

당시 권력자의 추한 행동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광야에서 설교를 했을 것이다.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부정을 폭로했다.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일반 백성들의 죄만 아니라 권력자의 죄를 언급한다. 

위험한 일이다. 

권력자들은 언제나 백성들의 인기를 가진 사람들의 발언에 주목한다. 

허약한 권력 정당성을 가지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부족하고 그래서 열등감을 가진 권력자들은 언제든지 권좌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위협을 받는다. 

지금 이스라엘 전역에 가장 핫한 인물이 요한이다. 

그를 내편으로 삼든지, 죽이든지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요한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회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죄를 지은 안티파스와 헤로디아다. 

자신들의 권력으로 율법을 어기고도 버젓이 왕 노릇을 하고 있다. 

구약의 숱한 선지자들이 그러했듯이 세례 요한도 용기있게 비판하는 설교를 한다. 

주저함이 없다. 

두려움이 없다. 

요사이 윤석렬 정부가 하는 일은 이해하기가 참 힘들다. 

일반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일을 감행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영구적으로 정착시키는 일에 매진해야 하는데, 도리어 전쟁 위기를 부추긴다. 

경제 정책이 실패할 수도 있고, 지난 과거 정부의 정책 여파로 현재 상황이 어려울 수도 있다. 

100번 양보해서 그렇다하더라고, 최소한 무기 밀집도가 최상위인 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최대한으로 낮추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최근에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비상용 배낭을 하나 구입해야 할까봐”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찾아온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생각이 든다. 

나라를 더욱 힘든 상황으로 이끌고 있는 윤석렬 정부를 비판한다. 

그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을 이해하는 것도 힘들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에 적을 두고, 세상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다스리기 위해 권력, 권한을 활용해야 한다. 

어떤 정부건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어떤 대통령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아서는 안된다. 

대통령과 관료들은 과거 시대의 왕과 신하들이 아니다. 

지금은 국민을 위해 섬기는 공무원일 뿐이다. 

따라서 국민을 위해 국익을 위해 일하도록 역할과 돈을 맡긴 것뿐이다. 

그렇다면, 기독인들은 하나님 나라 가치를 심사숙고해서 자신의 양심에 맞게 지지와 반대를 보내면 되는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렇기에 기독인들은 회색지대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면서도 혼전성관계를 반대할 수 있다. 

독신주의를 옹호하면서도 비혼주의를 반대할 수 있다. 

민주당의 정책을 옹호하면서도 민주당의 당론을 반대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우리는 정치 단체 자체를 옹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에 반한다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는 동일시 될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비교적 잘 드러내는 정치 집단이 있을 수 있다. 

그 집단과 단체를 일시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어느 집단이나 단체나 할 것 없이 첫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우리는 자신이 옹호하는 집단의 변화를 예민하게 관찰해야 할 것이다. 

 

나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숨고 지냈나 싶다.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내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도 그렇다. 

겸손과 용기, 세례 요한만 가진 자질이 아니라, 예수님도 가졌던 자질이다. 

그러기에 나도 그 자질들을 갖고 싶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주님, 

주님을 닮아 때로는 한없이 겸손하게, 때로는 한없이 날까롭게 해주세요. 

겸손과 용기를 허락하소서.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린이처럼 마음이 여립니다. 

용기가 없습니다. 

새로운 용기를 허락하소서.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19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1 디베료 황제가 왕위에 오른 지 열다섯째 해에, 곧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유대를 통치하고, 헤롯이 분봉왕으로 갈릴리를 다스리고, 그의 동생 빌립이  분봉왕으로 이두래와 드라고닛지방을 다스리고, 루사니아가 분봉왕으로 아빌레네를 다스리고,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5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6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주석

디베료 황제, 헤롯, 빌립(1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죽자 무자비한 디베료가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그는 제국 동부에서 이미 신으로 숭배되고 있었다. 헤롯 대왕의 두 아들 헤롯 안티파스와 빌립은 로마의 묵인 하에 나라의 북쪽 지역을 상당히 위태롭게 통치했다. 하지만 로마는 예루살렘을 포함한 남쪽 지역은 직접 관할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헤롯의 아들들을 진정한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았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회개의 세례(3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낡은 언약을 새롭게 하여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새로운 자유로 이끌 운동이 시작되기를 기대했다. 요단 강물에 잠기는 세례는 이러한 새 시대의 강력한 표시였다. 종살이에서 벗어나는 길은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라고 예언자들은 말했다. 즉 ‘회개’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주님의 길을 예비함(4절) 요한은 의도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이교도를 위해 만든 의식을 따르라고 요청한다. 그는 죄악 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준비시키는 임무를 맡은 예언자적 비판자였다(IVP 성경비평주석).

 

묵상

이스라엘이 로마의 통치 아래 고통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내립니다(1-2절). 요한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3절). 그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말처럼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돌아가실 길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이 이교도처럼 세례를 받아야 할 만큼 국가적, 도덕적 곤경에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4-6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신음을 듣고 그들을 출애굽 시키셨던 하나님은 로마의 통치 아래서 새로운 출애굽을 갈망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세례 요한을 세우십니다. 새로운 출애굽을 위해서는 먼저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종살이를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오늘날 곤경에 빠져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 나는 무엇에서 돌아서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묵상]

회개에 대한 선포는 요한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과 베드로와 사도들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였다. 

마음을 돌이키고 몸을 돌이켜야 한다. 

회심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회개는 마음에서 시작해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진정성 있는 회개는 순간적인 방향전환이 아니라, 지속적인 한 길 가기다. 

한 번의 결단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려는 우리의 성향과 싸워야 한다. 

광야의 히브리 노예들처럼, 롯의 아내처럼 우리는 계속 뒤돌아본다. 

회개의 결정적 순간은 일시적일지 모르지만, 회개의 최종 결론은 인고의 열매로 드러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듯, 온 몸을 씻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나 수족은 매일 씻어야 한다. 

삶의 리듬이 무너졌는가? 다시 돌이키라.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겼는가? 다시 마음을 씻으라. 

오직 마음을 예수님께 두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일에 두라. 

 

[오늘의 기도]

주님, 

제 마음을 다시 주님께로 돌립니다. 

흐뜨러진 마음을 주님의 마음과 눈과 손으로 향합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를 듣습니다. 

예수님의 회개 선포를 듣습니다. 

베드로의 회개 선포를 듣습니다. 

한 번 들은 것으로 끝내지 않겠습니다. 

한 번 회심했다고 거룩을 향한 노력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주님 오늘도 다시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시고 허투루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17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36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안나라는 여예언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그는 처녀 시절을 끝내고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고, 37 과부가 되어서,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38 바로 이 때에 그가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39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친 뒤에, 갈릴리의 자기네 고향 동네 나사렛에 돌아왔다. 40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

 

ESV

And coming up at the very hour she began to give thanks to God and to speak of him to all who were waiting for the redemption of Jerusalem(38절).

 

주석

여예언자 안나(36절) 누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독자들을 자기 그림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당신이 누구든, 나이가 몇이든 상관없다. 베들레헴의 구유에서부터 빈 무덤과 그 이후까지, 예수님의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예언자 안나는 일찍이 남편을 여읜 후 평생을 성전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36-37절). 그녀는 아기 예수를 만나자 기뻐하며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린 사람들에게 아기로 오신 구원자에 대해 말합니다(38절).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으셨지만, 성전에서 신실하게 기다린 이들의 입을 통해 구주로 선포되셨습니다.

 

굴곡진 삶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겨왔던 안나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다합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는 민족도, 성별도, 나이도, 사회적 지위도 상관이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여든네 살이 되도록. 

 

여든네 살. 

오랜 세월이다.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많다. 

아셀 지파의 여러 어르신들을 만났을 것이다. 

아버지 바누엘과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마무리하고 결혼을 했다. 

7년간의 결혼 생활도 끝이 났다. 

아마 남편이 죽거나 이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부가 되어서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 

예언자의 삶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겼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어떤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리고 구약 예언자들의 전통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에 대해서도 언급했을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시므온에게만 메시아의 탄생을 알렸을 것 같지가 않다. 

안나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직감했다. 

그리고 때때로 그 메시아의 출현이 멀지 않았음으로 사람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결혼을 14-5살에 했다고 하면, 과부가 된 것은 21-2살, 늦어도 30살 안이었을 것이다. 

그러하면 5-60년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백성들을 기도와 위로로 섬겼다.  

참 오랜 세월이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억울함, 슬픔, 고난, 질환, 죽음…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한 것보다 고통과 고난의 이야기를 안나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죄를 밝히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말했다. 

그러기를 5-60년. 

이제는 말할 기운도 많지 않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메시아의 도래가 임박했음도 알고 있다. 

기도할 때마다 금식할 때마다 성령님의 음성과 이미지를 본다. 

점점 확신에 거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오랜 세월의 기다림이, 인생 전체의 기다림이 드디어 완성되는 날이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나이 많은 늙은 여종을 살펴주셔서 죽기전에 당신의 탄생을 눈으로 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기도 중에 보았던 주님의 영광스런 탄생을 이렇게 현실에서 보게 되니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아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찬양합니다.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더 나아가 만 백성을 구원하실 것임을 찬양합니다. 

사탄의 결박으로부터 구출하시고,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실 것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당신의 은혜와 자비에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탄성과 감사가 쏟아졌다. 

아기를 보지만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고 있다. 

그에게 현실은 과거와 미래가 쏟아지는 다차원의 세계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의 세계관과 새예루살렘의 환상이 만나는 사건이다. 

과거의 전통이 미래를 향해 빛처럼 뻗어나가는 사건이다. 

인류는 새로운 미래를 맞이한다. 

 

그러니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삶을 걸고, 이건 진실이다. 

그간 예언을 하면서 자신의 말씀 사역, 대언 사역이 100% 맞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의 욕심이나 욕구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 때마다 금식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러나 이건 찐이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임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다. 

시므온과도 오랫동안 알아왔다. 

서로 이 새로운 세상의 도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왔다. 

 

인생 전체를 건 기다림은 무엇인가? 

나는 매번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여름 수련회, 겨울 수련회…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들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수련회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거 말고 내 인생 전체를 건 기다림이 있는가? 

80살이 되고 90살이 되어도 기다리는 그 기다림은 무엇인가? 

나의 자녀들이 다 자라고,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후에도 죽음을 앞두고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재림. 

그분이 오셔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주시길. 

더 이상의 전쟁과 재앙이 없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 

 

그날을 기다린다. 

죽음을 앞두고도 기다린다. 

끝까지. 

 

 

[오늘의 기도]

다시 오실 예수님, 

당신을 끝까지 기다립니다. 

죽음 바로 앞에서도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 마음으로 오늘도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을 보기 원합니다. 

당신이 오실 그 날을 환상으로 보게 하소서. 

당신이 오셔서 새로워질 그 날을 머리속으로 더욱 분명하게 보게 하소서. 

기도 중에 더욱 분명한 그림으로 보길 원합니다. 

오늘도 기다림으로 벅차오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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