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31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3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내게다 끌어대면서, ‘우리가 들은 대로 당신이 가버나움에서 했다는 모든 일을, 여기 당신의 고향에서도 해보시오’ 하고 말하려고 한다.” 24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26 하나님이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에 있는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27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고침을 받았다.” 

28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모두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내쫓았다. 그들의 동네가 산 위에 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주석

고향(23절) 예수님은 그 동네 사람을 전부 알았고, 그들도 그분을 알았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지하신다. 그들은 속담으로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뭐든 구경거리가 될 만한 기적을 일으켜 보라고 요구한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사렙다 마을의 과부와 나아만(26-27절)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한 과부를 도와주라고 명령하셨다. 하지만 그 과부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엘리사는 군인인 어느 나병 환자를 치료했다. 그런데 그는 적군의 사령관이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사단의 속임수에 속고 있었다. 

예수님을 밀쳐서 죽이려고 했다. 

아무리 예수님이 저런 말을 했다고 해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것은 예상할 수 없었던 반응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가족도 잘 안다. 

20-30년을 예수 가족의 이웃이 되어 그들의 삶을 봤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돌변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다. 

누가는 그들이 화가 잔뜩 났다고 했다. 

화가 났다고 한들, 예수님이 그들의 가족 중 누구라도 다치게 했는가? 아니며 죽이기라도 했는가? 

왜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까? 

그들은 예수님의 설교에 기본적으로는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22절이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고 말하였다.”

그렇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족을 알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설교에 기본적으로는 감탄과 놀라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돌변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들고 있다. 

예수님이 그들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1) 그들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말만 하지 말고 이적을 베풀 것’을 마음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2) 엘리야 시대 기근 가운데, 시돈의 사렙다 마을 과부에게만 은혜를 베푼 사실을 언급 

3) 엘리사 시대 시리아 사람 나아만 장군을 고쳤다는 사실 언급 

4) 이런 사실들은 예언자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였다. 

이런 말들을 고려할 때, 예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에 버금가는 분이시고, 자신들은 예언자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된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화가 났다면 아마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자신들의 신앙과 삶에 대해 통렬하게 지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십자가 사건에서는 죽음을 피하지 않은 것 뿐이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벼랑 끝까지 예수님을 몰고 갔다. 

거기까지 몰려 가신 것도 신기한데,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들을 뚫고 나가신다. 

한가운데를 지나가시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막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어쩌면 이 장면에서 이적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순종을 의미한다. 

그에게는 십자가를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다. 

사람들의 손에서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음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해결해야 했던 문제다. 

인간들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야 했다. 

사단의 결계를 망가뜨려야 했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그걸 가능케 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나사렛 마을 사람들은 사단에 의한 집단 체면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한 두 명의 분노가 마을 사람 전체를 휘감싼다. 

군중 심리가 그래서 무섭다. 

사람 죽이는 것도 겁내지 않는다. 

광야에서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신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다. 

사단의 두려움이 보인다. 

예수님을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는 사단의 결기가 느껴진다. 

예수님의 처음 행실만 봐도 사단에게는 위협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말은 곧바로 사단의 실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단을 이기신 예수님, 사단의 결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구원의 소식을 알리고, 참 자유의 삶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돕고 싶다. 

 

 

[오늘의 기도]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할 때의 주님의 기분이 어떠셨을지 상상해봅니다. 

특히 그들이 예수님을 밀쳐 죽이려고 할 때,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단의 격분케하는 공작에 넘어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마을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그 배후의 공작 세력을 멸하리라 다짐하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 당신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님, 당신 덕분에 사단의 권세에서 헤매고, 허덕이던 사람들이 구출되었습니다. 

저주로 인해 죽기까지 수고만 하고 제대로된 열매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살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복음을, 당신의 은혜를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게 힘이 남아 있는 한, 오직 주님의 구출 작전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전국수와 복음밥 캠프를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30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15 그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17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22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주석

주님의 은혜의 해(19절) 이사야서의 마지막 어구는 “주의 은혜의 해” 혹은 주의 ‘받아주심’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다. 이 형용사는 구성원들이 교회로 “받아들여졌다/수용되었다”고 말하기 위해 누가가 사용하는 동사와 관련이 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내용, 즉 하나님이 모든 사람(민족)을 받아들이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예언한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 이루어졌다(21절) 예수님의 선언은 예언의 성취다. 종말은 지금이다. 사역을 시작하는 이 취임 설교에서 성취가 강조된다(IVP 성경비평주석). 

 

사람들이 놀란 이유(22절) 그들이 깜짝 놀란 이유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에게는 은혜를 내리고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는 모진 심판을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 대신에, 열방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은혜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오늘의 묵상]

복음의 내용이나 강조점이 한 가지 뿐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나사렛 선언은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누가가 생각한 복음의 강조점은 해방에 놓여 있었다. 

언약의 성취도 중요하고, 죄사함도 중요하다. 

사단의 권세로부터의 구출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또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정치적 압제와 물리적 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었듯이, 거대 제국으로부터 몸이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나사렛 선언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러 강조점 중에 실질적, 정치적 자유와 해방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예수님은 억눌리고 고통받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오셨다. 

가난한 사람,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람, 맞아서 병든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고 돕기 위해 오셨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러 오셨다. 

그분은 영적인 문제만 해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제적이고 육체적인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오셨다. 

그분의 이름은 사람들을 자유케 한다. 

그분의 능력은 사람들은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마음의 방향을 바꾸시고, 하나님과의 교제와 대화를 가능케 하신다.

영적인 일이다. 

동시에 먹을 것을 공급하시고, 정치적 탄압으로부터 구출시켜주신다. 

육적인 일이다. 

영육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다. 

그분은 사람들을 온전히, 전인적으로 해방시키시며 회복시키신다.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사람들에게 제공하신다. 

자유롭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억지로 함이 아니다. 

강제, 반강제가 아니다. 

해방된 주체가 자유롭게 그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다. 

그분이 도왔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그분을 섬기라고 하시지 않는다. 

그분의 사랑에 반응할 것으로 요청하시지만, 강제하지 않으신다. 

한 개인의 선택을 막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로봇을 생산하시지 않는다.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통해 당신을 선택하기를 원하신다. 

모든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선포되기 시작한다. 

이방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셨다고 단정짓지 말아야 한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왕들에게 일하셨던 기록이 성경에도 등장한다. 

하나님은 세계 곳곳에서 당신의 일을 감당하셨으나, 한 두 번의 등장으로, 한 두 번의 경고로는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셨다. 

원래로 알고 계셨지만, 역사가 이를 증명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고가 아니라 사랑의 희생이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결박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이다. 

선택의 기회는 결박으로부터 자유케 되어야 참 의미가 있다. 

결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하라고 해도 그것이 불가능하다. 

결박으로부터의 자유와 사랑의 권면이 하나님이 하신 최고의 일이다. 

풀어주고, 기회를 주신다. 

이제 사람의 몫이다.  

 

난 이 복음을 끝까지 전할 것이다. 

중고생들에게 전할 것이다. 

청년 대학생들에게 전할 것이다. 

이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일을 위해 오늘도 산다. 

 

 

[오늘의 기도]

주님, 

아름다움 피아노 선율에 맞춰 기도합니다. 

주님은 다정하고 친절하며 부드러우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의 개성과 특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고, 부드럽게 권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그 사랑에 노출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름다우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사랑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 우리에게 소명을 주시고, 포근한 분위기에서 우리의 선택을 소중히 여겨주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26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5 그랬더니 악마는  예수를 높은 데로 이끌고 가서,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6 그리고 나서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 7 그러므로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8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주석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7절) 육체적 필요와 욕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예수님은 세상의 참 주인이 되실 것이다. 하지만 마귀처럼 지위와 권력에 무섭게 집착하지 않고, 겸손한 섬김으로 그 자리까지 오르실 것이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성경에 기록하기를(8절) 예수님이 인용하시는 신명기 6:13에서는 우상 숭배를 금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악마는 예수님께 세계 모든 나라를 보여주며 세상의 주권자가 되라고 유혹합니다(5-6절).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악마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이었습니다(7절).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에게 절했던 것처럼, 자신을 숭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라는 말씀으로 악마의 시험을 단호히 물리치십니다(8절).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은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려면 꼭 따라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신을 계속해서 섬겼고 결국 그 땅에서 흩어지고 맙니다. 예수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권력에 집착하는 대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십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가 따라야 할 명령이기도 합니다. 오늘 나는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겨야 할까요? 세상이 주는 유혹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으로 맞서는 하루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사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첫째, 사람을 이끌고 가서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예수님을 시험한 악마는 아마도 가장 교묘하고 가장 파워풀한 악마였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광야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물리적으로 이끌고 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예언자들을 이끌고 가는 성령님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볼 때, 사단은 물리적이 아닌 영적인 측면에서 이끌고 갔을 것이다. 

에스겔을 이끌고 가셔서 여러 환상을 보게 하신 하나님, 

요한을 이끌고 가셔서 천국의 환상을 보게 하신 하나님, 

이런 것들을 고려할 때, 사단도 비슷한 환상을 보게 만든 것 같다. 

예수님의 시야를 순식간에 바꿔서 온 세상을 보여준다. 

 

둘째, 거짓말과 허세다. 

사단은 거짓말과 허세가 정말 쩐다. 

모든 권세와 영광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짓이다.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고 확언한다. 

거짓이다. 

모든 권세와 영광은 사단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다. 

오랜 세월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연 만물과 인간 역사의 모든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나님도 자신이 영광과 권세가 왜곡되고 훼손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다. 

그러니 사단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고 했지만,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실제로는 주는 것이 아니고 주는 척 하는 것이다. 

악마는 사람을 자신의 거짓으로 통제하고 다스리려고 하는 것이지 실제로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의 말은 거짓과 허세 작렬이다. 

 

사단은 밤에 꾸는 꿈을 통해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영적 존재다. 

마음 속에 달콤한 속삭임을 계속 넣어 줄 수 있는 영적 존재다. 

죽음의 음침한 분위기와 목소리를 반복적으로 심을 수 있는 존재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계속 속인다. 

거짓으로 속여서 사람들을 얽어맨다. 

한번 그에게 속기 시작하면, 왠만해서는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사람의 세계관을 장악하면 그 메트릭스에서 길을 잃고 만다. 

두려움이 작동하는 종교적 세계관에 빠지면, 두려움을 주는 존재에 대한 감각이 너무 예민해지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사단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다.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 그에게조차 사단은 시험을 걸어온다. 

마치 이 세상이 다 자기 것인양, 거짓말로 예수님께 다가온다. 

예수님이 받아 주시는 것이 이상하다. 

그저 악마의 존재를 사멸시킬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성경의 말씀으로 사단의 거짓과 유혹을 궤멸시키신다. 

경배를 받을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예수님은 마치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려고 사단의 유혹을 허용하신다. 

사전 차단도 가능하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셨다면, 우리 성도들도 시험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영적 현실이다. 

세상의 영광과 권력을 얻기 위해 아무에게나 넙죽 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오늘 하루도 마음 속에 올라오는 숱한 음성들 가운데 사단의 음성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고, 오직 그분께만 영광과 권세를 올려드리자. 

 

[오늘의 기도]

개인이나 공동체나 시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의 욕망을 감지하고 유혹합니다. 

저의 욕구를 살피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더욱 저의 존재와 내면에 가득 차 울리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이 공명하게 하소서. 

사랑의 계명이 공명하게 하소서. 

주님의 기념하는 상징이 공명하게 하소서. 

그렇게 오직 주님만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 해야 하는 일 속에서 주님을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25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시장하셨다.  

3 악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4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주석

시험을 받으시다(2절) 이 이야기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 그분의 명령에 대해 그럴듯한 거짓말을 속삭이는 뱀의 모습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잔상이 남아 있다. 광야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의 잔상도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불평했고, 우상 숭배로 재앙을 자초했으며, 하나님을 끊임없이 시험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성령이 예수님을 이끄신 곳은 ‘광야’였습니다(1절). 그곳에서 예수님은 심한 굶주림과 유혹에 맞닥뜨리십니다(2절). 오래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굶어죽겠다고 불평했고, 애굽으로 돌아가 종살이를 하는 것이 났겠다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출 16:3-8). 온 세상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자리에서 친히 시험을 받으십니다(3절).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드시는 대신, 사람이 먹는 것뿐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 8:3)고 선언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실패를 영원한 승리로 바꾸십니다(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제 그 실패를 승리로 바꾸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필요를 위해 돌을 빵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하셨지만, 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시고(눅 9:16), 마지막에는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주셨습니다(눅 22:19). 나는 어떤 빵을 쫓고 있습니까?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 주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서 딱 드는 질문은, '어떻게 성령에 충만한데,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는가'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가?

도대체 사십일 동안 시험을 받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무슨 시험을 받으셨는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십 일 동안 아주 다양한 시험을 받으셨을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시험이 세 가지 시험이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 성전에서 떨어지라는 시험, 사단에게 절을 하라는 시험. 

이 세 가지 시험음 최종적인 시험이다. 

그 사이에 사십 일이라는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시험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시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했던 숱한 율법이 과연 인간들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은 이기적인 분이신 것 아닌가? 그분은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이런 식의 말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받았던 시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안보이니, 우상을 만들자. 

앞날이 깜깜하니 이집트로 돌아가자. 

광야에서 죽느니 차라리 이집트에서 고기 먹다가 죽자. 

가나안 사람들이 이렇게 덩치가 좋으니, 우린 다 죽은 목숨이다.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런 생각들로 사단이 공격한다.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숱한 시험들, 그 시험을 예수님도 받았을 것이다. 

과연 내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곳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생고생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나를 이곳에 보냈는가? 

강고한 예루살렘과 로마의 기득권과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이건 예수님 자신의 생각일 수도 있고, 사단이 주는 시험일 수도 있었다. 

예수님이 이런 생각을 했을지, 안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단이 이런 의문을 품게 하고, 예수님의 소명을 갉아 먹는다. 

 

세 가지 시험의 범주와 유사한 시험이 40일간 계속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육체의 배고픔으로 대별되는 부에 대한 시험. 

명예욕에 대한 시험.

권력욕에 대한 시험.

모든 영적인 존재들이 갖고 있는 욕망에 대한 시험이다. 

사단은 사실 이런 욕망들의 극단에 서 있다. 

사단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물질욕, 명예욕, 권력욕에 의해 일어난다. 

하나님보다 더 많은 풍요로움과 더 많은 명성과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참담하게 무너졌다. 

 

박혁이라는 전도자가 남미를 다니며 축사사역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세련된 동영상이 유툽에 올라온다. 

극단적 평가가 뒤따른다. 

예수님의 사역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부흥운동의 시발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여느 이단들처럼 큰 귀신의 힘으로 작은 귀신들을 일시적으로 내쫓는 사탄의 사역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내 평가는 “열매로 안다”이다. 

그의 사역으로 사람들이 사단과 귀신의 억압으로 사람들이 구출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의 사역이라면, 

1) 귀신으로부터 구출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섬기게 될 것이다. 

2) 구출된 사람들 삶에 성령님의 열매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3) 전도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될 것이다. 

4) 사역자의 사역으로 인해 자신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건강하게 세워지게 될 것이다. 

 

그동안 숱한 이적으로 사람들을 모았다가 그 사역자 개인이 하나님처럼 되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매진하다가, 사단의 시험에 져 버린 경우도 많다. 

사역의 처음의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끝까지 사단의 시험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단의 시험이 도사린다. 

이것을 분별해 내는 것이 기독교 지도자들의 일이다. 

박혁 전도자가 건강한 신학 교육을 받아, 성경과 교회 전통 속에서 건강하게 사역을 하길 바란다. 

나는 하나님의 자유를 믿는다. 

그분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분이시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신으로 둔갑시키는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다. 

사단의 속임수에 속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이 시대에도 당신의 사역자를 통해 신유와 축사를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인기를 얻는 사역자는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올라 갈 수 있음을 알고 항상 겸손하게 사역해야 한다. 

 

아벱이나 송죽이나 언제자 사단의 시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신의 욕망의 수위를 살피고, 그 욕망에 달라붙는 사단의 속임수에 속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욕망의 방향이 오직 예수님이 되게 하라. 

그게 사역자가 살 길이다. 

 

[오늘의 기도]

오랜 기간 사단의 시험을 견디신 예수님, 

이 시험을 이겨내시는 과정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의 소명을 온전히 정리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숱한 사단의 목소리를 성경의 말씀을 통해,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이겨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를 반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반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승리로 우리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당신을 따르고 닮으면 우리도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때로 실패하더라도 잘 이겨내도록 인도해주세요.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더 욕망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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