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0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42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그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다.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왔다.

43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44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가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45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시신을 요셉에게 내어주었다.

46 요셉은 삼베를 사 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려다가 그 삼베로 싸서,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에 그를 모시고, 무덤 어귀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디에 예수의 시신이 안장되는지를 지켜 보고 있었다.

 

ESV

Pilate was surprised to hear that he should have already died(44절). 

 

주석

43절. 예수님에게 적용된 혐의들을 고려하면 로마 총독은 그 요구를 거절할 만도 하다. 그러나 유대 관습은 시신을 기둥이나 십자가에 밤새 매달아 놓는 것을 금지했고, 장사를 치러 주는 것을 경건한 행위로 간주했다. 게다가 빌라도는 공개된 장소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제거하는 편을 선호했을 것이다(IVP 비평주석). 

44절. 예수님이 그렇게 금방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빌라도가 놀라는 이유는,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틀이나 사흘, 혹은 그보다도 오랜 기간 고통당한 후에 죽기 때문이다(IVP 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예수의 시체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그의 영혼은 떠났고, 육체는 다시 밝아진 하늘 끝에 달렸다. 

오후 세시, 그 운명적 사건이 지났다. 

오후 6시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몇 시간 동안 시체에서 떨어지는 피와 물을 지켜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어떤 사람들은 남아 시체를 보고 있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 

명망 있는 의회 의원? 아마도 산헤드린 의회를 의미할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하고 결의한 곳.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예수는 죽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메시야일 수도 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가져온 진짜 메시야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던 그는 용기를 냈다. 

빌라도에게 찾아갔다.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 요청했다. 

감히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예루살렘의 군중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라면 겁이나서 절대로 하기 어려운 요청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어두워지고, 휘장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요셉은 확신했다. 

예수는 비범한 분이다. 

그의 시신을 십자가에 계속 달아 두는 것은 그를 두 번 죽이는 행위다. 

이런 생각으로 담대하게 빌라도를 찾았을 것이다. 

빌라도는 의아해한다. 

벌써 죽다니… 

자신이 사형을 허락하고서는 사형장에는 가보지 않았다. 

끔찍한 사형 현장을 매번 보는 것도 곤욕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원치 않았던 사형이었다. 

예수는 죽을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그에게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었다는 소식은 꽤나 놀라웠다. 

혹여 예수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기적과 능력으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작은 상상이 있었다. 

그런데 평균적인 생존 시간보다 너무 짧았다. 

몇 시간 만에 죽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부하 백부장을 시켜 사실인지 알아보았다. 

사실이었다. 

예수는 숨이 끊어졌고, 옆구리에는 깊은 창 자국이 나 있었으며, 십자가 아래에는 피와 물이 흥건했다. 

옆에 있던 다른 사형수들은 여전히 숨이 붙어 있었으나, 예수는 죽었다. 

 

요셉은 자신을 위한 무덤에 예수를 모신다. 

너무나 갑작스런 예수의 죽음에 자신과 가족을 위한 무덤을 내주었다. 

깨끗한 천으로 예수의 몸의 피를 닦고, 삼베로 몸을 감쌓다. 

시신을 동굴 무덤에 안치하고 굴 입구를 돌로 막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예수를 모셨다. 

 

그동안 많이 등장하지 않았던 여인들이 계속 거론된다.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런 순간에 이 여인들이 있었다. 

예수를 사랑했던 그들은 어두운 밤에도 예수의 시신이 안치되는 것을 보았다. 

어디에 그를 두는지 알고 싶었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의 장례를 제대로 치러 드리지 못했다. 

몰약이라도 발라드려야 했다.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모여 며칠 동안 장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여인들은 그저 눈물로 시신 안치를 보았다. 

 

십자가 사건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등장한다. 

제자들, 빌라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도망간 사람, 우는 사람, 보는 사람, 행동하는 사람… 

저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경험 속에서 십자가 사건에 반응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십자가를 떠올리면서 다양한 반응이 터져나온다. 

슬퍼하는 사람, 거부하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 수치스러운 사람… 

예수님은 그 모든 사람들을 다 이해하신다. 

도망갔던 제자들도 이해하셨다. 

울고 있는 여인들도 이해하셨다. 

로마 군인들, 요셉도 이해하셨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도 이해하신다. 

그럼에도 한 가지를 요청하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

결국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에 대한 사랑이다. 

 

지난 일은 주님께 맡겨드리고 지금 이 순간 그분을 사랑하는지만 확인하자. 

지난 일에 대한 치료와 회복과 격려와 칭찬 모두 그분께 맡겨드리자. 

그저 오늘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을 사랑한다 말씀드리자.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요셉처럼 담대하게 제가 확신한 바를 실행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행동을 더욱 확실하게 하도록 인도하소서. 

돈, 명예, 인기, 평판보다 예수님을 더 우위로 두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기에 가능하면 끝까지 당신의 시신을 돌보게 하소서. 

저에게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소서. 

조직이 아니라 주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1월 19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규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33 낮 열두 시가 되었을 때에,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34 세 시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으셨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그것은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

35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보시오,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소.”

36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푹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며 말하였다.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두고 봅시다.”

37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서 숨지셨다.

38 (그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39 예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말하였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40 여자들도 멀찍이서 지켜 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도 있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고 살로메도 있었다.

41 이들은 예수가 갈릴리에 계실 때에, 예수를 따라다니며 섬기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주석

34절. 예수님은 큰 소리로 시편 22:1을 인용하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다. 땅에 임한 어둠은 하나님의 심판이 부분적으로는 자신에게 임했음을 암시한다(IVP 비평주석). 

39절. 조롱은 이제 끝났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으로써, 그의 충성의 대상을 공식적인 ‘신의 아들’인 황제에서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바꾸었다(IVP 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낮 열두 시인데, 어둠이 온 땅을 덮었다. 

3시간 동안 어둠이 온 세계를 장악했다. 

인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반역했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이다. 

고통스런 심판이 예수의 몸을 뒤덮는다. 

예수는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 묻는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이 3시간 동안 흩어진다. 

하나님은 예수를 버린다. 

예수는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몇 시간의 고통 끝에 큰소리를 내지른다. 

과연 그런 체력이 남았을지가 의문이다. 

몸이 뜯기고 피떡인 채로 겨우 숨만 쉬고 있다. 

그래도 있는 마지막 힘을 쏟아 큰 소리를 지르신다. 

예수의 마지막 외침에 하늘도 운다. 

 

휘장이 찢어진다.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그곳, 오직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번 들어가는 곳, 지성소. 

지성소를 가로막았던 긴 커튼(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진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셨고, 사랑하기로 결정하셨다.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이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얻는다. 

 

그 자리에 많은 여인들이 함께 했다. 

남성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요한만 아주 가까이 남아 예수를 지켰다. 

이상의 몰락. 

그들의 꿈과 이상은 그 순간 땅 속으로 꺼졌다. 

아무 것도 남지 않아 절망의 순간으로 느껴진다. 

남았다면 뚝뚝떨어지는 예수의 피다. 

죽음.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 그들의 비전은 다 날아갔다. 

슬퍼할 새로 없이 자신들에게도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 

그 속에서 남은 자는 여인들이었다. 

오랫동안 예수를 사랑했던 자들. 

제자들은 예수와 꿈을 같이 꾸었다면, 여인들은 예수를 사랑했다. 

비전을 공유하는 것보다 한 인격을 사랑하는 것이 더 위대하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그의 나라를 외치는 것보다 우위에 있다. 

 

오랫동안 꿈을 향해 달려왔다. 

꿈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주의 근원되신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피떡이 되신 그분 앞에 머무는 것이다. 

나머지는 그분께 맡길 일이다.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지 말라. 

모든 것보다 그분을 사랑하라. 

 

[오늘의 기도]

주님 앞에 선 여인들처럼 당신을 끝까지 사랑하게 하소서. 

주께서 저를 사랑하셨음을 깊이 인식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하게 하소서. 

십자가 사건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전 우주적입니다. 

그 십자가 앞에 계속 서게 하여 주옵소서.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6 그런데 빌라도는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곤 하였다.

7 그런데 폭동 때에 살인을 한 폭도들과 함께 바라바라고 하는 사람이 갇혀 있었다.

8 그래서 무리가 올라가서, 자기들에게 해주던 관례대로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9 빌라도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그 유대인의 왕을 여러분에게 놓아주기를 바라는 거요?”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13 그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4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그들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5 그리하여 빌라도는 무리를 만족시켜 주려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다음에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주었다.

 

주석

14절. 빌라도 재임기의 유대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떠올려 보면,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따르는 이가 많았던 갈릴리 출신의 유명한 예언자를 그렇게 공개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처형하기를 주저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면 폭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 빌라도는 바로 그것을 피하고 싶어 했다(IVP 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빌라도는 영리한 총독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었다. 

명절 때마다 백성들이 원하는 죄수를 풀어 주곤 했다. 

이건 정치적으로 장단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정치적 인물이 풀려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을 풀어주면 정치적 반대파가 늘어나고 또 다른 폭동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었다. 

물론 한 번 붙잡혀서 여러 고문과 심문을 받은 사람이 다시 정치적으로 재기하여 군중들의 규합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에 대한 정보가 치안 담당자에게 다 노출되었을 것이고, 그와 연관된 사람들도 충분히 조사했을 것이다. 

출옥된다 한들 감시가 심하고 만약 그와 접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안전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저런 유익들을 재가며 그를 풀어 주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득이 있다고 본 빌라도는 유대인의 명절 때마다 죄수 중 한 명을 풀어주었다. 

 

빌라도는 눈치가 빠른 총독이었다. 

예수를 대제사장들이 고소한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시기했기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의 고소는 예수가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사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기보다는 유대인의 진정한 목자로 활동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백성들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고 회복과 평화를 선언했다. 

원래는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는데, 그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틈에 예수님의 활동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원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그 열망의 절정을 연출했다. 

빌라도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예수가 입성할 때 백성들이 어떻게 환영했는지, 성 안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 빌라도는 자신들의 정보원들을 통해 다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고발하면서 그의 말과 행적인 유대인의 왕 같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그 어떤 왕보다도 더 나았다. 

빌라도는 예수가 사형을 받을 만한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 모든 것은 대제사장들의 시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직접 물어본다면 예수가 풀려날 수 있을 거라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백성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보다 예수를 더 잘 따를 것이라는 내심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의 영악함과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언론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영악함을 가졌다. 

생각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빌라도는 당연히 예수를 풀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이상하게 흘러갔다. 

백성들, 군중들이 갑자기 바라바를 풀어달아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폭동을 일으킨 적이 없으며, 사람들을 해한 적이 없었다. 

예수는 사형을 받을만한 죄가 없었다. 

빌라도는 예수를 사형시키라는 군중들의 함성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재차 묻는다. 

“그러면, 당신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람, 예수 그 자신이 그렇게 주장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별명을 붙여서 불리웠던 사람, 그 예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무죄방면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중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던, 정치적 감각을 가진 빌라도는 이 시점에서 결단을 내린다. 

 

예수님은 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저주를 내릴 수도 있었고, 이상한 기적을 행하실 수도 있었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게 할 수도 있었고, 엄청난 돌풍을 불게하여 거대한 메뚜기 떼가 들이닥치게 할 수도 있었다. 

그 어떤 기적과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다. 

그동안도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적이 없다.

사람들을 위해 병고치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사람들을 돌보고 보호하기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셨다.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사람들, 제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평온하게 사람들을 응시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리어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야 할 자신의 소명을 더 깊이 묵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못 박으라”는 외침을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듣고 계셨다. 

그들의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님의 슬픔은 더욱 깊어지고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도 더욱 커져갔다. 

그들에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킬 단 하나의 방법만이 남았다.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다. 

 

빌라도는 최선을 다했다. 

그는 백성을 이길 힘이 없었다. 

정치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중들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여론을 무시해서는 통치를 이어갈 수 없다. 

빌라도가 이해가 된다. 

 

백성도 사실 이해가 된다. 

그들은 쉽게 현혹되는 사람들이다. 

제대로된 정보를 획득하기 어렵다. 

냉철하게 현실의 문제를 분석하기 어렵다. 

군중심리에 현혹되기 일쑤다. 

 

문제는 권력을 가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기한 셈이다.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고 싶었다. 

하나님을 빌미로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었다. 

백성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수님이 그토록 비판했던 그룹이다.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쇠락해가고 부패해 가는 한국교회에 어떤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부르시고 있나? 

계속 묻고 또 물어야 할 질문이다. 

 

[오늘의 기도]

본받고 싶은 주님, 

주님의 길은 침묵의 길입니다. 

군중들의 외침은 당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구원을 갈망하는 부르짖음입니다. 

그렇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면서 주님은 그 길을 걸으십니다. 

한국교회의 실태는 참담합니다. 

지도자들 중에 진실함으로 무장한 자가 많지 않습니다. 

생존이 급급하고 명예가 소중하여 타협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죄와 멀지 않고 사람들을 죄로 안내합니다. 

 

지금도 슬퍼하시는 주님, 

한국교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이제까지 한 단체를 섬기면서 그 길을 찾아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단체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길을 도모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님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예수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 새벽에 곧 대제사장들이 장로들과 율법학자들과 더불어 회의를 열었는데 그것은 전체 의회였다. 그들은 예수를 결박하고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2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그러자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3 대제사장들은 여러 가지로 예수를 고발하였다.

4 빌라도는 다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사람들이 얼마나 여러 가지로 당신을 고발하는지 보시오.”

5 그러나 예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ESV

But Jesus made no further answer, so that Pilate was amazed(5절).

 

[오늘의 묵상]

새벽에 사람들을 모았다. 

사실 그 전부터 대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도 밤새 오늘의 모의를 실행하기 위해 깨어 있었다. 

대제사장들, 장로들, 율법학자들이 다같이 모여 예수를 죽이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전체 회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기자는 것이었다. 

그들에겐 사형 집행권이 없었다. 

로마의 법 체계에 따라 빌라도 총독에게 넘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여러 기소할 내용들은 이미 마련했다. 

거짓 증언을 할 사람들도 확보했다. 

 

아침 일찍 빌라도의 법정에 도착했다. 

그도 아침부터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참 부지런하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기소 내용을 유심히 경청한다. 

어떤 죄가 있는지 살핀다. 

살인이나 절도, 강도 등의 죄가 있는지, 로마 법에 정한 법률 위반이 있는지, 특히 로마에 대항하는 정치범인지 꼼꼼히 보았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해 달라고 요청한다. 

사형은 아무나 시킬 수가 없으니 빌라도는 더욱 자세히 문건들을 살펴본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가 없음을 확인한다. 

단지 예수가 유대 종교법을 어긴 것처럼 보인다. 

로마의 실정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전통을 범한 것으로 보인다. 

난감하다. 

예수께 묻는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예수는 이제까지 별로 말이 없다가, 빌라도의 말에 응한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는 뜻인가 아니라는 뜻인가?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 말이 맞다는 뜻인가, 아님 당신이 말한 거지 내가 말한 것이 아니오라는 뜻인가? 

애매한 표현이긴 해도, 그간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그렇다는 말로 보인다. 

대제사장들이 들고 일어난다. 

“저 말 꼬락서니를 보십시오. 저자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소이다. 이는 분명히 정치적인 도발이고 반역입니다. 저자에게 사형을 선고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대기 시작한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말 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과 행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예수가 진짜 유대인의 왕, 아니 그보다 더 위대한 분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을 죽이기 위해 단순히 종교 율법을 어겼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가 실제 유대인의 왕처럼 행세했다고 주장해야 했고, 자연스레 예수의 행적에 대한 설명과 그에 대한 증인을 세워야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예수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심지어는 바다 잠잠케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행한 사람이었던 거다. 

예수는 부정하지 않는다. 

다 맞는 말이다. 

빌라도는 의아하다. 

이렇게 멋진 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폭동을 일으키거나 사람들을 규합해서 로마 군대와 전투를 벌인 것도 아니다. 

그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먹을 것을 공급하고 병자들을 치료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형을 시키라고… 

 

예수께 묻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사형시키라고 죄목을 말하고 있는데, 당신의 변론은 무엇이오?”

예수는 잠잠하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증언이 어느 정도 맞아서다. 

혹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예수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터다. 

빌라도는 의아했다. 

“저들의 말은 거짓입니다. 나는 로마에 대항한 적인 한 번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전혀 미동이 없다. 

그저 하늘을 응시할 뿐이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당신의 침묵을 봅니다. 

묵묵히 당신의 길을 가시는 모습을 봅니다. 

사람들의 고소를 조용히 참아 내십니다. 

십자가의 길은 조용히 참는 길입니다. 

 

피곤한 몸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의 소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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