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 01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8 또 전쟁이 일어나니, 다윗은 출전하여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다. 다윗이 그들을 쳐서 크게 무찌르니,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 앞에서 도망쳤다.9 그런데 사울이 창을 들고 궁중에 앉아 있을 때에, 주님께서 보내신 악한 영이 또 사울을 강하게 사로잡았다. 다윗이 수금을 타고 있는데,10 사울이 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하였다. 다윗이 사울 앞에서 피하였으므로, 창만 벽에 박혔다. 다윗은 도망하여 목숨을 건졌다. 바로 그 날 밤에,11 사울이 다윗의 집으로 부하들을 보내어, 그를 지키고 있다가, 아침에 죽이라고 시켰다. 그러나 다윗의 아내 미갈이 그에게 “당신은 오늘 밤에 피하지 않으면, 내일 틀림없이 죽습니다” 하고 경고하였다.12 미갈이 다윗을 창문으로 내려보내니, 다윗이 거기에서 달아나서, 목숨을 건졌다.

13 한편, 미갈은, 집 안에 있는 우상을 가져다가 침대에 누이고, 그 머리에는 염소털로 짠 망을 씌우고, 그 몸에는 옷을 입혔다.14 사울의 부하들이 다윗을 잡으러 오자, 미갈은 남편이 병이 들어서 누워 있다고 말하였다.15 그러자 사울은 다윗이 정말 아픈지 확인하여 보라고 그 부하들을 다시 보내면서, 자기가 직접 죽일 터이니, 그를 침대째로 자기에게 들고 오라고 하였다.16 부하들이 와서 보니, 침대에는 집 안에 있던 우상이 누워 있었다. 머리에 염소털로 짠 망을 씌운 채 뉘어 놓은 것이었다.17 사울이 미갈에게 호통을 쳤다. “네가 왜 나를 속이고, 원수가 빠져 나가서 살아날 수 있게 하였느냐?” 그러자 미갈은, 다윗을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가는 다윗이 자기를 죽였을 것이라고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주석

13절. ‘우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일종의 가족 우상을 의미한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라헬이 그것들을 안장 밑에 감출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어떤 것들은 상당히 작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과 미갈의 우상은 사람 크기와 모양이었던 것 같다(IVP 성경주석, 428쪽, IVP 성경배경주석 구약, 441쪽).

 

[오늘의 묵상]

 

1. 위험에 처한 다윗 

전장터의 위협만으로도 버거운 다윗에게 자신의 왕인 사울의 살해 위협은 극도의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타기도 했고, 그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블레셋 군사들과의 전쟁을 쉬지도 않았다. 

아무리 사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울의 다윗에 대한 의심과 미움은 커져만 갔다. 

사울은 살해 의도는 직접적이다. 

자신이 직접 창을 다윗에게 던졌다. 

부하들을 다윗의 집에 보냈다. 

사전에 이를 알아채고 미리 도망갔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다윗은 꽤나 오랜 세월 사울 곁에 있었다. 

 

위험 속에 있어도 불가피하게 그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가 있다.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냥 견딜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고통 속에 버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는 것이다. 

 

2. 미갈의 우상

사울의 집안은 혼합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좀더 충격적인 것은 다윗도 미갈의 우상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집 안에 우상이 있었다는 점이 충격이다. 

다윗의 열심을 놓고 볼 때, 다윗이 그 우상을 허용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우상의 문제만큼은 타협해서는 안되었다.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주인으로 삼는 것, 

귀신과 교제하는 것, 

돈을 삶의 주인으로 삼는 것, 

우상이다. 

 

우상을 철처히 배격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많은 종교와 이념과 돈이 자신이 주인이고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회를 살고 있다. 

우상을 배격한다고 해서, 공적 영역에서 다른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죽이고 배제하는 것은 현대사회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최소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는 더욱 철저히 배격할 필요가 있다. 

공적영역에서의 유연함과 사적영역에서의 단호함이 동시에 필요하다. 

 

[오늘의 기도]

구원하시는 하나님,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구원을 강구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낙망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하소서. 

 

모든 상황에서 제가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 않더라도, 

주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주님의 해결 방식을 믿고 신뢰합니다. 

주님, 우리의 상황을 굽어 살피소서. 

 

역대급 산불로 고통받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내란 세력은 속히 처벌받게 하소서. 

지진으로 고통받는 미얀마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3월 2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7 사울은 (자기의 손으로 다윗을 직접 죽이지 않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마음먹고,) 다윗에게 말하였다. “내가 데리고 있는 나의 맏딸 메랍을 너의 아내로 줄 터이니, 너는 먼저, 주님께서 앞장 서서 싸우시는 ‘주님의 싸움’을 싸워서, 네가 정말 용사인 것을 나에게 보여라.”18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제가 누구이며, 제 혈통이나 제 아버지 집안이 이스라엘에서 무엇이기에, 제가 감히 임금님의 사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하였다.19 그런데 사울은 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기로 하고서도, 정작 때가 되자 사울은 그의 딸을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과 결혼시키고 말았다.

 

20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였다. 누군가가 이것을 사울에게 알리니, 사울은 잘 된 일이라고 여기고,21 그 딸을 다윗에게 주어서, 그 딸이 다윗에게 올무가 되게 하여, 그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해야 하겠다고 혼자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에게, 다시 그를 사위로 삼겠다고 말하였다.22 사울이 신하들에게 지시하였다. “당신들은 다윗에게 내가 다윗을 좋아한다고 말하시오. 그리고 당신들도 모두 다윗을 좋아한다고 말하시오. 이처럼 우리 모두가 다윗을 좋아하니, 임금의 사위가 되라고 슬쩍 말하시오.”23 사울의 신하들이 부탁받은 대로 그런 말을 다윗의 귀에 들어가게 하니,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임금님의 사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로 보입니까?” 하고 말하였다.24 사울의 신하들은 다윗이 한 말을 사울에게 전하였다.25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당신들은 다윗에게 내가 결혼 선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다만 나의 원수 블레셋 남자의 포피 백 개를 가져와서 나의 원수를 갚아 주는 것만을 바라더라고 하시오” 하고 시켰다. (사울은 이렇게 하여,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할 셈이었다.)

 

26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그대로 다윗에게 전하였다.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결혼 날짜를 잡기도 전에,27 왕의 사위가 되려고, 자기 부하들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블레셋 남자 이백 명을 쳐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요구한 수대로 왕에게 바쳤다. 사울은 자기의 딸 미갈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28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 딸 미갈마저도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29 다윗을 더욱더 두려워하게 되어, 마침내 다윗과 평생 원수가 되었다.30 그 무렵에 블레셋 지휘관들이 군대를 이끌고 침입해 와서 싸움을 걸곤 하였는데, 그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장군들보다 더 큰 전과를 올렸기 때문에, 다윗은 아주 큰 명성을 얻었다.

 

[오늘의 묵상]

 

1. 사울의 잔꾀 

한 마디로 치졸하다. 

그냥 싫으면 싫다고 할 일이지, 사울은 장치를 마련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먼저는 정신적 공격이었다. 

맏딸 메랍을 주겠다고 하고서는 결혼 날짜가 다가오자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냈다. 

원래도 사울 집의 사위가 될 마음이 별로 없었던 다윗에게는 이래저래 정신적 충격이었다. 

왕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거짓말을 일삼아도 되는가? 

왜 가만히 있는 나를 들었다놨다 하는가? 

이런 생각이 가득했을 것이다. 

 

둘째, 미갈을 이용해 죽음으로 끌여들이는 전략이었다. 

미갈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블레셋 군인들을 백명을 죽여야 한단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사울은 신하들도 이용한다. 

거짓으로 사울이 다윗을 좋아한다는 말을 넣으라고 신하들에게 시켰다. 

일종의 언론 플레이였다. 

다윗은 미갈도 자신을 좋아하고, 사울도 자신을 좋아한다면 해볼만한 도전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과연 다윗은 정말 사울의 말을 믿었을까? 

확실치는 않지만, 최소한 왕의 사위가 되어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것은 필요하다고 봤던 모양이다. 

 

치졸한 사울의 잔꾀를 보며 현재의 정치판이 떠오른다. 

사실 보수, 진보 할 것없이 최선을 다해 합법적인 수준에서 계략과 전략을 펼치는 것이야 뭐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 보수 세력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법을 벗어나, 초법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잔꾀를 부린다. 

정말 치졸하다. 

 

2. 잔꾀에 맞서는 방법

다윗의 태도에서 잔꾀에 맞서는 방법 한 두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의 현실과 정체성을 깊이 인식하라. 

다윗은 자신이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사실 다윗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교만해 질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바 있다. 

골리앗을 이겼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 정도면 교만해 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현실과 정체성을 깊이 인식했다. 

나서지 않았다. 

사윗감으로 당연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으쓱대지 않았다. 

당연한 귀결로, 맏딸이 다른 남자에게 갔을 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둘째, 피할 수 없는 때는 과감히 도전한다. 

사울이 미갈을 이용해 블레셋 군인들을 죽여서 포피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이라고 판단한 듯 보인다. 

불가피한 순간에는 정면 돌파가 답이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적진에 침투하여 싸움을 펼친다. 

아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도 승리해버린다. 

이런 모습에 미갈은 다윗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사울은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극우 카르텔이 극성이다. 

그들의 잔꾀가 점점 노골적이다. 

이제는 정면 돌파해야 한다. 

법조 엘리트들의 장난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민주사회를 위해 그동안 애써왔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님들의 희생을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더는 권력의 최상층과 공직 사회의 중심에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현실과 정체성을 깊이 인식하자. 

핏값으로 세운 민주사회이며,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세운 민주국가다.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현실을 깊이 인식하자. 

그리고 이제 피할 수 없다면 과감하게 정면 돌파해야 한다. 

좌고우면할 수 없다. 

시스템이 문제라고 판단되면 헌법적 가치, 민주 사회의 근간의 가치를 기준으로 그 시스템을 개혁/쇄신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정의로우신 하나님, 

예면 예요, 아니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명료함을 바라봅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들을 벌하소서. 

죽음의 기운을 생명의 기운이라 둔갑시키는 자들을 벌하소서. 

정말 지켜야 할 것과 정말 버려야 할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의 눈을 열어 주소서.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 나라를 지켜오신 하나님, 

주님의 돌보심이 우리 나라와 사회에 가득하게 하소서. 

생명을 지켜주소서. 

극우 기독인들의 왜곡된 신념과 무지성적 열정에 찬물을 부어주소서. 

생명, 평화, 은혜, 통합, 사랑이 흐르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 이상문학상 대상자의 자선 소설

 

[내용 요약]

치영은 페기 단계에 놓인 돌봄 로봇 안드로이드 요시를 돌보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저장 센터에 맡겼지만,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다시 꺼내오기로 결정한다. 

엄마와는 소통이 단절된지는 오래다. 

요시를 돌보면서 로봇의 이야기를 듣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 많다. 

요시는 자신이 돌봤던 현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한다. 

요시가 폐기되어야 할 이유는 벌써 사용기한이 100년이 다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번 사용시 “과보호”라는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시는 여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외형과 기능을 갖고 있었지만, 폐기의 단계를 밟고 있었다. 

치영은 다시 찾은 기억 때문에 점점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는다. 

엄마가 방에 꼭꼭 틀어박혀 있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운전할 때 벌어진 교통사고로 언니를 잃었고, 그 뒤로 치영과 엄마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치영은 자신의 기억을 센터에 맡겼음에도 우울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치영과 요시는 서로의 맛을 보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여기서 맛이란 서로의 피부 맛, 혹은 피맛인데, 요상한 방식이라기보다는 의료적 행위에 가깝다. 

요시의 “과보호”란 너무 사람다워져서 사람의 자리를 대체했던 것이었다. 

이제 치영에겐 요시가 너무 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며, 그의 엄마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 회복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단상]

예소연은 등단한지 4년만에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있는 작가다. 

대상작은 “그 개와 혁명”이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328336

“마음 깊은 숨”은 인간과 로봇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발전을 통해 자신들과 그 주변 인물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이야기다. 

미래에 구현될 세상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쓰여진다. 

돌봄 로봇, 기억 저장 센터, 기억 회복 시술, 로봇 폐기 돌봄 노동 등… 

미래에 실현될 과학기술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이 자신을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기억을 꺼내어 저장소에 보관한다. 

 

고통의 유예 그리고 회피. 

작가는 회피라는 말보다 유예라는 말을 썼다. 

아마도 고통은 회피한다고 완전히 피해지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고통은 그저 뒤로 밀릴 뿐이다. 

그 고통을 미루는 것은 현재 잠시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얻기 위해서다. 

 

그 숨쉴 수 있는 공간 속에 등장한 대상이 바로 요시다. 

폐기 단계를 밟고 있는 요시를 돌보면서 치영은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간다. 

돌봄 로봇을 돌보는 사람, 이것만으로도 역설적인데, 돌보면서 스스로 돌봄받는 상황, 이것도 역설적이다. 

이 두 가지 역설이 소설 전체를 끌고 간다. 

 

기억이 되살아나니 고통도 부활한다. 

엄마의 상황도 이해가 되고, 자신과 엄마의 관계도 이해가 된다. 

언니의 죽음이 원인이었던 것. 

치영은 언니를 정말 많이 사랑했으리라. 

그 슬픔의 고통을 잊고자 그 기억 전체를 저장 센터에 맡겼을 것이다. 

 

이제 그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다시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요시 때문이었다. 

요시는 서로 맛을 보자고 한다. 

인지 기능이야 로봇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서로의 맛을 보는 것은 좀더 다른 차원이다. 

치영은 요시의 인조피부의 맛을 보고, 요시는 치영의 손가락 끝에 맺힌 피맛을 본다. 

요시의 행위는 체한 아이를 위한 그 옛날 할머니들의 민간 요법을 닮았다. 

팔을 쓰다듬어 피가 손끝에 몰리면 소독된 바늘로 콕 찔러 피를 낸다. 

검은 피가 나오면 어김없이 할머니는 말했다. 

“이것 보렴. 피가 검잖니. 많이 체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속트림이 올라오고 체기가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요시의 행위로 인해 치영과 그의 엄마의 체기가 회복되어 감을 보여준다. 

요시는 용도 폐기되어야 할 퇴물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을 회복시키는 돌봄 로봇이었다. 

그렇게 치영도 엄마도 점점 회복되고 서로의 관계도 나아진다. 

 

치영의 마지막 말은 이 소설이 인간 회복의 주제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제야 나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지금으로선 언니를 지키는 일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치영은 고통을 유예했다. 

사람들은 그 유예를 게으른 자의 변명이며 용기 없는 자의 회피라고 하겠지만, 저자는 유예를 통해 기회가 오고 그 기회가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 즉 자기 마음을 지키는 길로 나아가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한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마음을 지킬 때,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돌볼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돌봄이 중요해지는 시대. 

남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나의 마음을 잘 돌봐야 한다. 

마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운동이고, 글쓰기고, 기도고, 명상이다. 

2025년 03월 27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6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고 군인들과 함께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소구와 꽹과리를 들고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울 왕을 환영하였다.7 이 때에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8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 하고 투덜거렸다.9 그 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10 바로 그 다음날,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덮치자, 사울은 궁궐에서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질렀다. 다윗은 여느날과 같이 수금을 탔다. 그 때에 사울은 창을 가지고 있었는데,11 그가 갑자기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겠다고 하면서, 다윗에게 창을 던졌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두 번이나 몸을 피하였다.12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을 안 사울은, 다윗이 두려워졌다.

 

13 그리하여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임명하여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였다. 다윗은 부대를 이끌고 출전하였다.14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그는 항상 이겼다.15 다윗이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두니, 사울은 그것을 보고, 다윗을 매우 두려워하였다.16 그러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이 늘 앞장 서서 싸움터에 나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를 좋아하였다.

 

주석

7절. 이 노랫말에서 수천, 수만은 매우 큰 수를 나타내는 표현법으로, 둘을 비교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 오히려 이 노래는 다윗과 사울의 협력관계를 칭송하는 내용이다(IVP 성경주석, 427쪽).

 

[오늘의 묵상]

 

1. 사울은 수천, 다윗은 수만 

다윗과 함께 승전보를 안고 입성하는 사울을 찬양하는 소리가 높다.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악기를 들고 나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군사들을 환영하고 축복한다. 

백성들에겐 구원의 소식이다. 

더 이상 가족들을 전장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 

블레셋의 침공으로 마을이 불타고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죽고 다치고 강간당하지 않아도 된다. 

구원을 가져온 사울과 다윗을 칭송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석에 보니, 수천 수만이라는 표현은 매우 큰 수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둘을 비교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단다. 

그러나 사울 왕이 받아들이기에는 비교로 받아들여졌다. 

둘 다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백성들도 지혜롭게 노래를 불러야 되었다. 

다윗은 수천을 죽이고 사울은 수만을 죽였다고 불러야 뒷끝이 없다. 

아니 그냥 사울을 10번 외치고 다윗을 5번 외치면 그만이다. 

뭐하러 분란을 살만한 말을 만드냔 말이다. 

백성도 잘못했다. 

 

허나 정말 아쉬운 것은 사울이다. 

왕으로서 공이 있는 장수가 칭송을 받도록 허용하면 될 일이다. 

굳이 비교당하는 느낌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그만큼 자신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리라. 

오랜 죄책감에 그 노래가 불을 지핀 것이다. 

죄책감의 심지에 붙은 불은 빠르게 타 들어가 분노로 폭발한다. 

아니 왕인 나에게는 수천을 돌리고 저 조그만 목동 출신에게는 수만을 돌린단 말인가!! 

이러다가는 다윗이 왕이 되겠구만!! 

전쟁 승리를 즐기는 자리가 역겨운 시기 질투의 자리가 되었다. 

 

2.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

개선 행진이 있었던 그 다음 날, 하나님은 악한 영을 사울에게 보내셨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지 않았던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악한 영을 보내신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했지만, 사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징벌은 거룩한 영을 거두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니 악령이 찾아왔다. 

물론 성경에서 악령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 종속된다. 

하나님은 악령의 역사를 허용하실 수 있다. 

사람들은 악령의 역사를 허용하시는 하나님이 악의 창시자가 아닌가 질문한다. 

악의 창시자는 하나님을 대적한 악한 영 그자체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 그리고 수많은 죄인들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제대로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셨으며, 그 섭리 가운데 악한 영의 출몰을 허용하신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음에도 하나님이 악한 영을 빨리 제거하지 않으시는 점, 그리고 때로 악한 영이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신다는 점이 참으로 불만이다. 

악한 영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을 속인다. 

서로 전쟁을 일으키도록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게 만든다. 

사람 속에 악한 본성이 있는 것도 문제지만, 그 악한 본성을 극대화시켜서 죽음으로 이끄는 악한 영의 전략도 너무나 큰 문제다. 

사람 속의 악한 본성과 사탄의 자극이 시너지를 일으킨다. 

온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분열과 적대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 둘의 시너지 때문이다.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게 허용한 하나님께 불평할 수 있을까? 

왜 없겠는가! 

하나님께 불평이 있다면 바로 그 지점이다. 

악한 영의 역사를 허용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불만을 제기하고 싶다. 

백보 양보해서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만의 계획과 생각, 섭리와 뜻이 있다고 치더라도, 

빨리 그 악의 고리를 끊어주시면 좋겠다. 

 

지금 악의 고리는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80여년이 지나니 다시 전쟁을 일으키고자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극우세력들의 등장은 전세계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언제 핵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악한 상황의 전개를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 같아 슬프다. 

 

속히 예수님이 오셔서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시길 바란다. 

그동안 숨겨졌던 비밀들 하나하나 풀어주시길 빈다. 

모든 궁금했던 것들, 왜 악령들을 허용하셨는지 등에 대한 모든 비밀들이 다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기도]

비교하며 제 자신을 학대하지 않게 하소서. 

오롯이 저에게 주어진 길을 걷게 하소서. 

 

저에겐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는 겁니까? 

그 악의 허용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지 주님도 아시잖습니까! 

제 2차 세계대전으로 6천만명이상의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아마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했겠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정도의 삶과 발전을 이루었겠죠!! 

세상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믿음을 갖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 

온 세상의 역사를 선하게 이끌어 가시옵소서.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을 새롭게 만들어 주소서.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받으시고 만물이 더 이상은 싸우지 않는 세상 만들어 주소서. 

그 희망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제 영과 마음과 생각을 붙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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