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06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1 이 말은 옳습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면, 그는 훌륭한 일을 바란다고 하겠습니다.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난폭하지 아니하고 너그러우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4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며, 언제나 위엄을 가지고 자녀들을 순종하게 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5 (자기 가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6 또 새로 입교한 사람도 안 됩니다. 그리하면 그가 교만해져서, 마귀가 받을 심판에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7 감독은 또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비방을 받지 않으며, 악마의 올무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NIV

Now the overseer is to be above reproach, faithful to his wife, temperate, self-controlled, respectable, hospitable, ableto teach, not given to drunkenness, not violent but gentle, not quarrelsome, not a lover of money(2-3절).

 

주석 

1절. ‘감독’으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고대 사회에서 지도자를 뜻하는 말로 다양한 배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overseer(NIV/NASB)’, 또는 ‘bishop(KJV)’로 번역됩니다. 바울은 이 말을 회당의 ‘장로’와 같은 뜻으로 사용했습니다(IVP성경배경주석-신약, 709쪽).

 

1. 감독의 자격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바울이 말하고 있다. 

디모데 입장에서는 에베소 교회를 목양하면서 아주 실제적인 조언이 필요했다. 

다음 리더십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교회의 리더를 어떤 기준으로 세워야 하는지 등을 알아야 했다. 

교회의 장로의 역할, 당회원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역할을 맡는다면 그에 합당한 자질이 있어야 한다. 

책망할 것이 없는 분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교회 내외부에 두루 인정받고 책잡힐 일이 없는 분이어야 한다. 

절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의 욕구와 욕망대로 화내고 분풀이 하는 사람이면 안된다. 

하나같이 중요한 자질이다. 

바울 당시의 사회, 윤리적 기준으로도 탁월한 사람이어야 한다. 

 

문화와 윤리적 기준이 달라진 지금 현재에도 위에 언급된 모든 자질이 정말 다 필요한가? 

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특히 한 아내의 남편, 자녀들을 순종하게 하는 사람의 표현은 현대 교회 리더십의 필충조건이 맞는가? 

남녀가 평등한 사회에서 남편에게만 감독의 자리를 주는 것이 옳은가? 

자녀가 없는 경우도 많은 가운데 자녀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 타당한가?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핵심은 교회의 덕이 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첫번째 덕목인 “책망할 것이 없다”와 마지막 덕목인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이 핵심 아닌가 한다. 

교회 내외부의 평가를 통해 책망할 것이 없고, 좋은 평판을 받은 사람이면 교회의 좋은 리더십을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감독으로 평생 그 직을 수행하는 것은 한 개인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임기를 두고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리더십 거취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것이 노출된 현대 사회에 살면서, 좋은 평판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교회 내외로 비판 세력은 언제나 존재한다. 

게다가 교회 리더십 또한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시대의 흐름과 문화적 변화가 극심한 때이다.

그 변화를 감지하고 따라가거나 선도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의 교체가 필수적이다.  

 

2. 절제

바울이 제시한 감독의 자질 중에 절제가 눈에 들어온다. 

최근 달리기의 흐름은 존2 훈련이다. 

낮은 심박에서 저강도 달리기로 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러면 속도에 대한 절제가 필수적이다. 

빨리 달리고 싶은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 

다리를 앞으로 쭉 내 뻗거나 무릎을 과도하게 올리고 싶은 충동을 절제해야 한다. 

옆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건 그냥 나의 속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게 참 어렵다. 

나도 모르게 속도가 올라간다. 

자기 속도를 제어하고 몸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리더십은 어찌보면 이와 같다. 

젊은 날엔 열정을 가지고 달려나가는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많은 것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절제가 필요하다. 

안그러면 건강 혹은 더 중요한 것을 해치게 된다. 

관여하는 관계가 많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고, 책임져야 할 것이 많다면, 더욱 절제해야 한다. 

열정도 절제해야 한다. 

그 절제된 열정으로 계속 달려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리더다. 

과하면 장단이 두드러진다. 

존2 러닝으로 지속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바울이 말한 리더십의 자질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좋은 리더는 커녕 나쁜 리더가 되지 않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속도로 가게 하소서. 

충동에 휩싸여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혹은 빠르게 그 방향으로 가게 하소서. 

그 방향을 계속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6월 05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9 이와 같이 여자들도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몸을 꾸미기 바랍니다. 머리를 어지럽게 꾸미거나 금붙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지 말고,10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에게 어울리게, 착한 행실로 치장하기를 바랍니다.11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12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13 사실, 아담이 먼저 지으심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가 지으심을 받았습니다.14 아담이 속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임을 당하고 죄에 빠진 것입니다.15 그러나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NIV

I also want the women to dress modestly, with decency and propriety, adorning themselves, not with elaborate hairstyles or gold or pearls or expensive clothes, but with good deeds, appropriate for women who profess to worship God(9-10절).

 

주석

9절. 초대교회 당시 많은 남성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주장을 내세우는 언쟁을 일삼았고, 여성들은 자신들의 외모를 지나치게 꾸미거나 장신구 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도는 이런 행동들을 경계하고 겸손과 단정함으로 주님과 공동체 앞에 나아가는 교회가 되도록 가르칩니다(IVP 성경배경주석-신약, 707쪽).

 

1. 남자와 여자 

바울은 에베소의 여성 제자들에게 몇 가지 권면을 던진다. 

소박하고 정숙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몸을 꾸미기를 요청한다. 

사치스럽게 단장하지 말고 착한 행실로 치장할 것을 권한다. 

더불어 순종하는 법을 배우라고 요구한다. 

여러모로 남녀를 구별하는 것을 넘어 차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쉽게 동의되지 않는 구절도 등장한다. 

“여자는 조용해야 한다.”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등과 같은 말씀들은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도 그렇고 사도들도 여성 제자들을 배우 소중히 여기셨는데, 바울이 남성우월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다. 

 

성경 전체의 맥락을 놓고 볼 때, 하나님과 예수님이 성차별주의자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 

예수님은 여성 제자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셨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죽음과 부활의 순간에 첫 증인으로 대두된다. 

고대 근동의 가부장제는 인류 타락의 증거지 하나님의 창조질서라고 보기 어렵다. 

하와는 아담의 부속물이 아니라 “돕는 자” 즉 동일한 정체성과 자격을 가진 존재다. 

해당 문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하고 각자에게 적합한 권면을 던지는 것은 정당성을 지닌다. 

지금은 남녀 평등의 시대며 문화다. 

따라서 성평등의 문화 속에서 적합한 권면을 도출해야 한다. 

 

8절에서 바울은 남성 제자들에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화를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이 없이, 모든 곳에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딤전 2:8) 

이어서 여성 제자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성평등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남자건 여자건 화를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함이 맞다. 

그리고 남녀 구분 없이 사치하지 말고 순종의 자세를 가지고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녀야 할 것이다.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지극히 바울 개인의 의견이다. 

구원은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를 때 일어나는 일이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따를 때 사탄과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출되어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된다. 

이 땅에서부터 구원에 동참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 

이게 구원이다.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아주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적용이라고 봐야 한다. 

보편성, 일반성을 포함하지 않는 주장이다.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환경과 개별적 상황에 특화된 제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2. 갈라치기 

남자와 여자를 갈라쳐서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 

서로를 혐오하도록 서로를 자극한다. 

페미 근본주의나 남성 우월주의나 배격되어 마땅하다.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 안전망은 더욱 보강되어야 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10-20대 남성들에게는 다양한 성평등교육과 실제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서로에게 적대감을 갖도록 조장하는 세력과 단호하게 절연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남성으로서 나는 여성들이 매월 경험하는 육체적 고통에 대해 잘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그걸 이해시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자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생리와 생리통에 대한 이해가 곧바로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보호가 아니라 이해와 공감 자체에 무게가 있다. 

생리와 생리통이 가지는 심리적 장점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공부하면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이 가져다 주는 불편함이 무엇인지 남성들이 깊이 공감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길 소망한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커리어가 중단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을 여성과 남성이 현재보다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가 주어져야 한다. 

회사나 공무원 조직 뿐 아니라, 자영업이나 NGO 등과 같은 기업이나 단체에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회 제도가 생겨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바꿔야 할 것이 많다. 

미래 세대가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최소한 갈라치기 식은 안된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주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은 남성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본래 영이신 당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우주는 창조하신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남성이라고 우월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여성이라고 우월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동등하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이 생각과 마음을 굳게 붙들게 하소서. 

 

남녀로 갈라치기 하는 세력들로부터 청년들을 보호하소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게 하소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몰상식, 비상식이 상식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서민들이 마음 편하게 자신들의 생업과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향해 집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소서.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더욱 확산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6월 04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와 중보 기도와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 그대에게 권합니다.2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3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입니다.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6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대속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꼭 적절한 때에 그 증거를 주셨습니다.7 나는 이것을 증언하도록 선포자와 사도로 임명을 받아 믿음과 진리로 이방 사람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참말을 하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8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화를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이 없이, 모든 곳에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NIV 

I urge, then, first of all, that petitions, prayers, intercession and thanksgiving be made for all people(1절).

 

주석 

8절. 거룩한 손을 드는 행위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또한 진정한 기도는 분노나 논쟁하는 태도와 구별됩니다(IVP 성경주석, 1780쪽). 

 

1.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도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란다. 

“모든 사람”이 여러번 등장한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에 소속된 형제 자매들을 위한 기도만은 아니다. 

교회 밖에 있는 정치 지도자들까지 해당된다. 

정치 지도자들의 성향에 상관 없이, 그들의 선악에 상관 없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란다. 

그 이유를 분명히 제시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사회적 분란을 일으키지 않아야 사회가 안정되고 그 정치 지도자 아래의 수많은 사람들이 평온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건하고 품위있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사회가 안정되어야 한다. 

사회의 안정은 지도자들의 결정에 따른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라도 나면 모두가 피난을 떠나거나 전시 체제로 돌아서야 한다. 

죽음이 눈 앞에 있으니 평온하게 생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윤석열을 위해 기도했었다. 

나라를 바르게 통치하고 민주적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기를 위해 기도했었다. 

그 기도는 그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계엄이라는 말도 안되는 내란을 일으켰다. 

6월 3일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을 극복하고 민주주의 사회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민생을 안정시키고 평화를 촉진시켜야 한다. 

그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앞으로 닥칠 숱한 위기 속에서도 이 나라를 위해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기도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분열된 양진영을 통합할 수 있는 계기가 있기를 바란다. 

말도 안되는 내란 세력은 확실히 척결하되 상식을 갖춘 보수와는 긴밀히 협력하여 나라의 토대와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힘든 일이겠지만, 그 일을 해주길 기도한다. 

 

2. 사람이신 그리스도

오늘 바울이 유독 “사람”이신 그리스도(5절)를 강조하는 것을 본다.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모르지 않았을 바울이 유독 예수님을 사람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한 분이라는 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중보자는 양편을 다 아우러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사람이셨다. 

그래서 그 둘 사이를 중보할 수 있는 것이다. 

2) 뒤에 나오는 대속물과도 관련이 깊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니 대속물이 될 수는 없다. 

육체로 존재하는 것이 대속물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오랜 전통이며 율법의 규정이다. 

 

중보자과 대속물이 되기 위해 예수님은 육체를 입으셔야 했으며, 사람이 되셔야 했다. 

예수님을 하나님 혹은 영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셔서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중보자와 대속물이 되셨다. 

오늘 본문은 기도를 강조하는 분문이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중보자와 대속물이 되셨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평안한 생활을 위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좀더 고상해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고상한 기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필요에 대해서도 기도하길 바란다. 

우리가 평안하기 위해서도, 편안한 생활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입니다.”(3절) 

 

바울의 논리 구조 속에서 예수님의 본질에 대한 강조가 확연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사람이다. 

지금은 중보 기도를 강조하면서 예수님의 사람됨을 상기시킨다. 

유일한 중보자이자 대속물이신 예수님을 떠올리며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무속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대통령이었으니 이 나라가 얼마나 혼탁했겠습니까? 

주님, 이제는 최소한 상식선에서 정책이 결정나게 하소서. 

기득권을 대변하는 정권이 아니라 일반 서민을 대변하는 정권이 되게 하소서. 

경제와 민생이 회복되게 하소서. 

고생하는 너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의지하며 현실을 이겨내게 하소서. 

아무리 국가 정책이 바르게 잡힌다한들 한 개인이 자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내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한 개인 개인이 주님을 의지하며 위기를 극복하게 하소서. 

 

오직 한 분 중보자시며 대속물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당신이 하신 일로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6월 02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다윗의 마스길]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2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3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4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5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6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모두 주님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7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 (셀라)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 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9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10 악한 자에게는 고통이많으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넘친다.11 의인들아, 너희는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정직한 사람들아, 너희는 다 함께 기뻐 환호하여라.

ESV
For day and night your hand was heavy upon me; my strength was dried up as by the heat of summer. Selah(4절).

주석
8절 ‘너를 눈여겨 보며’는, 위협적으로 감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의 깊게 돌보시겠다는 약속을 의미합니다(IVP 성경주석, 687쪽).

1.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심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는 아주 심각하다. 
그 죄는 아담과 하와로부터 기원한다. 
가인의 죄로 이어진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명령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윗은 사울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절감했다. 
그리고 자신을 살핀다.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 죄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 죄를 있는 그대로 고백한다. 
다윗과 사울의 가장 큰 차이가 여기에 있다. 
다윗은 마음에 속임수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를 죄 없는 자로 여겨주셨다. 
구약에서도 죄사함의 은혜가 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이도 죄용서가 가능했다. 
핵심은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정직한 고백이다. 
다윗은 마음 속 정직한 고백을 말로 표현했다. 
주님께 털어놓았다. 
특별한 과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제사를 드렸다는 말도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윗의 솔직한 죄의 고백에 용서라는 은혜를 선물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등장한 이후, 죄 용서의 토대는 십자가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죄 용서의 본질은 죄 지은 자들의 정직한 고백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있는 그대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용서의 길이다. 

2. 잦은 실수 
인간은 계속되는 실수 속에 산다. 
결심한 바를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몸과 마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몸의 연약함과 정신의 허약함이 도덕적, 윤리적 결함을 유발한다. 
자신의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 몸과 마음을 경험한다. 

어린 아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몸에 익을 때까지 꾸준히 잔소리를 듣게 된다. 
젓가락질 하나도, 변기 사용하는 것도 다 그렇다. 
비단 어린 아이 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도 수건 하나 제대로 놓지 못해 아내에게 잔소리 듣는다. 
계속 훈계와 잔소리를 들어야 그나마 수정의 여지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계속되는 실수 때문에 괴로울 때가 있다. 
완벽한 삶, 온전한 삶을 살고 싶지만, 상황은 계속 바뀌고 이벤트가 계속 있으며, 
무엇보다 아무리 조심해도 몸으로 파고드는 바이러스를 막기 어렵다. 
노화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몸은 변화한다. 
그 변화를 거부하고 젊은 몸에 맞춰진 일상의 루틴을 고집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다. 
계속된 세밀한 조정만이 살길이다. 
그러니 피곤하다. 
실수가 많아진다. 

실수로 그치면 그나마 괜찮다. 
그 실수가 자칫 도덕적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유혹에 넘어가는 초입이 된다. 
사탄이 연약한 그 지점으로 지속적인 유혹을 던진다. 

주님 앞에서 매일 세밀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과 정신을 무리하게 사용하게 되고, 결국 유혹에 취약한 존재가 된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주님이 주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늘의 기도]
정직한 고백에 귀기울이시는 주님, 
저의 연약함과 실수를 고백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용서해주세요. 
하루에 필요한 세밀한 조정을 주님께 맡깁니다. 
제 몸과 영혼, 존재의 아버지! 
아버지를 오늘도 경험하게 하소서. 
제게 주신 소명을 다시 되새기며 영육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게 하소서. 

곧 대선입니다. 
사전투표는 끝나고 내일은 본투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란으로 시작된 이 선거의 끝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보게 하소서. 
기득권의 강고한 저항을 뚫고 평범한 국민/시민이 주인인 나라를 보게하소서.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게 하소서. 
그 정신을 가지고 세계 선교에 뛰어들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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