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16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8 바로 기간에,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습격하곤 하였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수르 광야와 이집트 국경선에 이르는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9 다윗은, 그들이 사는 지역을 때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람도 살려 두지 않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옷을 약탈하였다. 약탈물을 가지고 아기스에게로 돌아가면,10 아기스는 으레그대들이 오늘은 어디를 습격하였소?” 하고 묻고, 그럴 때마다 다윗은, 유다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여라무엘 족속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또는 족속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하는 식으로 대답을 하곤 하였다.11 다윗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죽이고 가드로 데려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다윗의 정체를 알아, 다윗이 그런 일을 하였다고 폭로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 거주하는 동안, 언제나 이런 식으로 처신하였다.12 아기스는 다윗의 말만 믿고서,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서 그토록 미움받을 짓을 하였으니, 그가 영영 자기의 종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 그럴 즈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 쳐들어가려고 모든 부대를 집결시켰다. 그러자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귀관이 나와 함께 출정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아오. 귀관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출정하시오.”2 다윗이 아기스에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종이 무엇을 있는지, 임금님이 아시게 것입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좋소! 귀관을 나의 종신 경호대장으로 삼겠소.”

 

주석

8. 블레셋 가드의 성읍이었던 시글락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했지만, 다른 나라의 국경과도 가까웠습니다. 다윗은 이런 지리적 입지를 이용해 유대의 대적이자 블레셋의 대적이기도 그술, 기르스, 아말렉 등을 습격했습니다(IVP 성경주석, 432).

 

1. 그술 사람

다윗의 군대가 쳐들어 온다. 

그런데 방향이 영 다르다. 

이스라엘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땅에서 올라오고 있다. 

척후병과 세작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다윗은 현재 블레셋 가드 지역 시글락에 머물고 있단다. 

다윗이 블레셋에 투항을 했단다. 

믿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철천지 원수였다. 

어떻게 갑자기 블레셋의 아기스에게 투항했단 말인가? 

문제는 그가 이스라엘서 오든, 블레셋에서 오든 전투 후에 한 사람도 남기지 않는다는 첩보다. 

욕이 나온다. 

전투를 하자는 건지, 말살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끝까지 항전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죽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소문이 무섭긴 하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성읍을 떠났다. 

전의를 상실한 사람들이 산속으로 피신했다. 

아예 다른 성읍으로 도망하기도 했다. 

남은 사람으로 과연 전투를 수행 할 수 있을까? 

도대체 다윗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무자비한 행동을 한단 말인가? 

다윗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신이신가? 

왜 우리를 이렇게 괴롭시는가? 

 

2. 어려운 질문

오늘 본문의 핵심 메시지는 다윗의 처신일 것이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그러나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윗과 하나님이 너무 미울 것 같다. 

도대체 왜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느냐는 질문이 터져 나올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오래 전에 마무리 되었고, 지금은 사사시대를 지나 왕정으로 이어졌으니, 이방 민족들을 이렇게까지 몰살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로 받아들이기가 솔직히 어렵다. 

 

다윗은 아기스에게로 가지 말아야 했다. 

모세처럼 광야로 들어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딸린 식구들과 부하들의 식솔들도 있으니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자신들이 살려고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예수님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다. 

예수님은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고 하지 않으셨나! 

다윗이 예수님의 작은 모델이라는 말도 지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다윗을 통해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정직함, 하나님에 대한 열심, 잘못을 회개함 등이다. 

그러나 절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 

분노, 살상, 간음, 생존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음 등이다. 

차라리 과거 아브라함처럼 과거 야곱처럼 멀리 이주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팔레스타인을 넘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다. 

전쟁과 살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험으로 그의 열정을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으니, 나중에 사울이 죽은 후에 다시 돌아오면 된다. 

한동안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땠을까? 

 

[오늘의 기도]

비가 옵니다. 

질문도 많고 의문도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이해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당신이 주신 말씀들 속에 계속 거합니다. 

그러니 질문도 생기는 겁니다. 

주님, 당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구약의 단편적인 에피소드에서 하나님 당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구약의 편집자들이 다윗 편에서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 분별력을 허락하소서. 

어떤 위대한 인물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다윗에게 당신의 성전 공사를 허락하지 않았는지 점점 이해가 됩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주님을 더 깊이 생각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가 그런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어제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역 교회 청소년부 부장집사인 그는 이번 여름 청소년부 수련회에서 저녁 집회 설교를 해달라고 몇 달 전에 부탁을 했었다. 이번 통화는 그 후속 통화였다. 친구는 요즘 그 교회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신앙적 고민을 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회심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준비해주길 부탁했다. 그는 요사이 보기드문 부장집사님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와의 통화로 인해 수련회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고, 참가할 학생들에게 최선의 것으로 대접하고 싶은 열망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책을 들었다. 안식월 복귀후 사무실 책상에 놓여 있었던 책은 조장호님의 “오늘을 위한 아우구스티누스 인생 수업”(IVP)이었다.  잠깐만 읽어도 명료하고 유려한 문체에 쉽게 몰입이 되었다. 번역서가 아닌 한국인 저자의 힘이다. 


회심이라는 주제가 머리 속에 박혀 있으니, 그의 책을 읽을 때도 그 주제와 관련된 내용들이 쏙쏙 들어왔다. 

“회심은 궁극적으로 사랑하고 열망하는 대상이 바뀌는 것이며, 사람의 전 존재를 움직이는 중심은 바로 사랑이다. 이 점에서 선생은, 지식과 앎을 앞세웠던 그리스・로마 철학의 지성주의(intellectualism) 경향과 달리, 의지와 사랑을 통해 인간 존재의 역동을 정확하게 집어낸다.”(p.32) 

저자는 신앙의 거대한 봉우리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많은 이야기 속에서 회심이라는 주제를 강조한다. 회심은 사랑과 열망의 대상이 바뀌는 거란다. 그리고 사람의 존재 중심은 다름 아닌 사랑이란다. 오래전부터 들어왔고, 관련된 설교도 수십차례 해 왔지만, 오늘따라 다시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남는다. 

그렇다. 회심은 일차적으로 인간 존재 중심에 있는 사랑과 열망이 바뀌는 것이다. 거기에 머물지는 않는다. 사랑과 열망이 인간의 왜곡된 의지를 변화시킨다. 아는 것, 지식만으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사랑의 대상, 열망의 방향이 바뀌어 의지가 발동하여 그 대상과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열의가 느껴진다.  

“사랑이 건강한 질서를 되찾아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려는 의지의 변화가 온 것이다.”(p. 101)

사랑의 변화, 의지의 변화만으로도 회심이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결국 구제적인 행동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 회심이다. 후회하고도 다르다. 뉘우침, 용서를 빔, 잘못 인정 등과도 다르다. 회심은 사랑과 열망의 방향을 틀어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일까지 포함한다. 행동의 변화까지 회심이다. 

우연히 발견한 책에서 좋은 힌트, 필요한 통찰을 얻는다. 나에겐 이런 것이 은혜다. 생각지 못한 일, 사건, 자료, 만남을 통해 고민의 단초가 연결되고 풀어진다. 오늘도 우연히 발견하고 읽게 된 이 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다. 

2025 05 15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 “이제 이러다가,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 살아나는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망명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사울이 다시 나를 찾으려고 이스라엘의 땅을 뒤지다가 포기할 것이며,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것이다.”

 

2 그래서 다윗은 일어나서, 자기를 따르는 부하 육백 명을 거느리고, 가드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넘어갔다.3 그리하여 다윗은 가드에 있는 아기스에게로 가서 거처를 정하였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살았는데, 다윗이 거느린 아내는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인 아비가일이었다.4 다윗이 가드로 도망갔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하여지니, 그가 다시는 다윗을 찾지 않았다.5 다윗이 아기스에게 간청하였다. “임금님이 나를 좋게 보신다면, 지방 성읍들 가운데서 하나를 나에게 주셔서, 내가 곳에 정착할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종이 어떻게 감히 임금님과 함께, 임금님이 계시는 도성에 수가 있겠습니까?”6 그러자 아기스는 당장 시글락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래서 시글락이 날까지 유다 왕들의 소유가 되었다.7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서 거주한 기간은 달이었다.

 

주석 

1. 600명의 군사와 함께했던 다윗은 이상 오래 숨어있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스라엘 근처의 다른 나라들 가운데 사울과 동맹관계를 맺은 나라로 피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현재 다윗의 유일한 선택은, 사울과 적대관계에 있었던 블레셋 편에 서는 것이었습니다(IVP 성경주석, 433).

 

1. 가드 아기스 

나 아기스는 최근 기이한 일을 경험했다. 

우리의 적국인 이스라엘의 다윗 장군이 군사 600명을 이끌고 투항한 것이다. 

살려달라고 찾아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거다.

지금 이스라엘은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사울 왕은 자신의 최고의 장수 다윗을 죽이려들고 있다. 

 

사실 나로서는 다윗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껄끄러웠다. 

다윗 하면 우리의 위대한 장수였던 골리앗이 떠오른다. 

골리앗은 이곳 가드 출신이었다. 

블레셋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탁월한 장수였는데, 청소년에 불과한 어린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다.

가드 사람이라면 그 사건을 모르지 않는다. 

게다가 몇년 전에 저 다윗이라는 작자가 미친 척하며 우리 곁에 기거했던 적도 있었다. 

이만하면 우리가 그를 죽일 이유도 충분하다. 

그는 우리를 속였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잘 이용하면 우리가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사울과 다윗은 싸우고 있다. 

다윗과 600명의 군사가 사울의 군대와 전투를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순풍에 돛단배다. 

다윗과 그의 무리들은 지금 죽을 각오를 하고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옵션이 별로 없다. 

우리가 갑이다. 

 

블레셋의 신, 다곤님이 드디어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런데 다윗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지방 성읍을 하나 달라고 한다. 

신하, 참모, 책사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많이 했다. 

다윗을 우리 편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나도 그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다윗을 확실히 우리 편으로 묶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식솔과 군사들도 기본적인 삶의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땅이 필요하다. 

시글락이 적절해 보였다. 

현재 살고 있는 시글락 백성들에겐 야속한 일이겠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다른 성읍으로 이주하는 것이 낫겠다. 

 

선물인 듯 골칫거리다.

시간이 지나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 아기스에게 하나님은?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블레셋의 신인 다곤을 섬겼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참으로 무서운 신이다. 

과거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왔다가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 

아기스는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다곤과 여호와가 제대로 붙으면 다곤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윗이 군사들을 이끌고 왔을 때, 아기스는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많았겠지만, 종교적인 이유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자신은 다곤을 섬기고, 다윗은 여호와를 섬긴다. 

철저하게 다윗을 검증했더라면, 다윗과 그의 군사들에게 여호와를 버리라고 강요했을 것이다. 

아기스는 그것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점이 의아하다. 

적군의 장수가 항복하고 전향할 때는 그의 신념을 바꾸라고 특히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종교적 신념을 바꾸라고 말했을 것 같은데, 아기스는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실수이며, 또한 하나님의 역사일 게다. 

하나님이 다윗을 돌보시는 방법 중에 하나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아기스에게 충고의 메시지다. 

다윗을 바꾸지 못한다면 자신과 자신의 나라가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은 블레셋도 회개하길 바라셨다. 

요나 시대의 앗수르에 대해서도 그러하셨듯이, 다윗 시대의 블레셋에게도 그러셨을 것이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주셨는데,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들의 신이 더 위대할 거란 착각을 하고 있다. 

그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성경의 주변 인물에게 집중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주변 인물, 그래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존재는 중요하며 심각했다. 

그들도 성경 이야기, 그 거대한 흐름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그런 작고 감춰진 이야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변 인물에게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오늘의 기도 

모든 자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는 겸손한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도록 인도하소서. 

 

다윗의 처량한 신세가 어찌보면 아기스에게 영적인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다윗으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배웠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연약한 사람에게 배워야 합니다. 

겸손하게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응시하고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주소서. 

 

약한 자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 05 14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3 다윗이 맞은편으로 건너가 멀리 산꼭대기에 섰다. 다윗과 사울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14 여기서 다윗이 사울의 부하들과 넬의 아들 아브넬에게 소리쳤다. “아브넬은 대답을 하여라!” 아브넬이 대답하였다.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소리를 쳐서 임금님을 깨우느냐?”15 다윗이 아브넬에게 호통을 쳤다. “너는 사내 대장부가 아니냐? 이스라엘 천지에서 너만한대장부가 어디에 있느냐? 그런데 네가 어째서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보호하여 드리지 않았느냐? 백성 가운데 사람이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범하려고 이미 들어갔었다.16 너는 이번에 너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너희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너희의 상전을 보호해 드리지 못했으니, 너희는 이제 죽어 마땅하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왕의 창이 어디로 갔으며, 왕의 머리맡에 있던 물병이 어디로 갔는지, 어서 찾아 보도록 하여라.”

 

17 사울이 다윗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말하였다. “나의 아들 다윗아, 이것이 정말로 너의 목소리냐?” 다윗이 대답하였다.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 그러합니다.”18 그런 다음에, 다윗이 말하였다.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임금님의 종을 사냥하러 나오셨습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손으로 저지른 죄악이 무엇입니까?19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은 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임금님을 충동하여 나를 치도록 시키신 분이 주님이시면, 나는 기꺼이 희생제물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을 충동하여 나를 치도록 시킨 것이 사람이면, 그들이 주님에게서 저주를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유산으로 주신 땅에서 내가 받을 몫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나더러 멀리 떠나가서 다른 신들이나 섬기라고 하면서, 나를 쫓아낸 자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20 그러니 이제,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방 땅에서, 내가 살해당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사냥꾼이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듯이, 겨우 벼룩 마리 같은 나를 찾으러 이렇게 나서셨습니까?”21 사울이 대답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나의 아들 다윗아, 돌아오너라. 네가 오늘 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겨 주었으니, 내가 다시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 정말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아주 잘못을 저질렀다.”22 다윗이 말하였다. “여기에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 젊은이 하나가 건너와서 가져가게 하십시오.23 주님께서 사람에게 공의와 진실을 따라 갚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늘 임금님을 나의 손에 넘겨 주셨지만, 나는,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24 그러므로 내가 오늘 임금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겼던 것과 같이, 주님께서도 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어떠한 궁지에서도 나를 건져 내어 주실 것입니다.”25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다윗아, 하나님이 너에게 주시기를 바란다. 너는 참으로 일을 해낼 만한 사람이니, 매사에 형통하기를 바란다.” 다윗은 자기의 길로 가고, 사울도 자기의 궁으로 돌아갔다.

 

NASB 

“Now behold, as your life was highly valued in my sight this day, so may my life be highly valued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may He deliver me from all distress.” Then Saul said to David, “Blessed are you, my son David; you will both accomplish much and surely prevail.” So David went on his way, and Saul returned to his place(24-25).

 

1. 아브넬

아브넬은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잠이 번쩍 깼다. 

다윗의 목소리였다. 

그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사울 왕을 제대로 호위하지 못했으니, 죽음으로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어디 감히…

그런데 정말 왕의 창이 사라졌다. 

화들짝 놀라 다윗이 소리치는 방향으로 몸을 틀고 바라봤다. 

저 멀리 산 꼭대기에 다윗과 한 사람이 서서는 이쪽을 향해 말하는 것이 보였다. 

창과 물병을 가져갔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왕의 물병도 사라졌다. 

정말 저들이 우리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최소한 저들이 아니라도 첩자를 시켰건, 날렵한 부하를 시켰건, 우리 진영 깊숙이 들어왔다는 건 사실이다. 

이건 방어 실패다. 

 

사울 왕이 다윗을 ‘나의 아들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윗을 잡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건 정말 최악이다. 

다윗이 복귀하는 것은 큰 위협이다. 

게다가 다윗이 하는 말의 핵심은, 사울 왕을 누군가가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 아니라 신하 중에 왕을 속여 다윗을 죽이게 만들었다는 거다. 

다윗이 복귀하면 사울의 명령을 따라 다윗을 추격했던 우리 모두 죽게 된다. 

그런데 왕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매순간이 위기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위기를 경험케 하시는가? 

다윗의 하나님은 아브넬의 하나님은 아니란 말인가? 

솔직히 내가 사울 왕을 부추긴 것은 아니다. 

왕이 스스로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했던 것이다. 

그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사울의 시기를 신하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경계 근무에 실패한 것, 안일하게 대처한 것은 나의 잘못이 맞다. 

그러나 왕이 다윗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2. 다윗의 하나님, 모두의 하나님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이시기만 한가? 

아님 모두의 하나님이신가? 

답은 정해져 있다.

그분은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울 혹은 아브넬의 하나님의 아니다. 

권력자의 시기를 받아 눈 밖에 나서 몇천명의 군사들로부터 쫓기는 다윗의 하나님이시다. 

연약한 자, 고통받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권력의 부당한 압제로부터 죽음의 골짜기를 걷고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 못해 과잉충성하는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빼앗기고 찢겨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나에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의 욕망을 극대화하길 원하시기보다 당신의 뜻이 분명해지길 바라시는 분. 

한 개인인 나의 소망을 무조건 들어주시는 분이시기보다 거대한 이야기의 일원으로 그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하시는 분. 

그렇다고 그분이 나의 소망과 소원에 무관심하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그분에겐 그분의 뜻이 있다. 

나의 뜻이 그분의 뜻을 넘어서서 강변되어서는 안된다. 

 

 

 

오늘의 기도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며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 

한 개인의 기도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시에 한 개인의 기도를 넘어서서 당신의 소망과 뜻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주님의 뜻을 알고 따르는 것이 참 기쁨입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됩니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어떤 우상의 동굴에서도 벗어나서 초인의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저는 초월적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그게 저라는 사람의 길입니다. 

압도적으로 충만한 이 세상의 신비를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오직 이 세상의 창조주를 따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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