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07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43 그런데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곧 왔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그와 함께 왔다.
44 그런데, 예수를 넘겨줄 자가 그들에게 신호를 짜주기를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 가시오” 하고 말해 놓았다.
45 유다가 와서, 예수께로 곧 다가가서 “랍비님!” 하고 말하고서, 입을 맞추었다.
46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손을 대어 잡았다.
47 그런데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서 어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 귀를 잘라 버렸다.
4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강도에게 하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성전에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가르치고 있었건만 너희는 잡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50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주석
45절. 그가 예수님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제사장들의 대리자들이 예수님을 붙잡는다. 밤에 체포한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지도자를 빼앗아 조직된 반격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IVP 비평주석).
48절.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의 비겁함과 악함을 조롱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매일 집권 제사장들의 뒷마당이라 할 수 있는 성전 경내에서 가르치셨음을 상기시키신다. 그들이 그를 잡고자 했다면 왜 그 때 잡지 않았는가? 그들은 성난 군중이 그들에게 반발할까 봐 예수님을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잡아갈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기 위해, 은밀하게 뇌물을 통해 속임수를 써야만 했다. 그들이 쓴 수단이 그들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드러낸다(IVP 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랍비님!”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은 랍비에 불과했다.
베드로의 그 유명한 고백은 유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유다는 어떻게 예수님을 팔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분을 배반할 수 있었을까?
복음서 이야기 전체를 다시 꼼꼼하게 읽어봐야 할 일이지만, 일단 오늘 본문에서만 보면 하나는 짐작이 간다.
“랍비님!”
그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이다.
하나님의 아들, 주님은 이제 없다.
그저 다른 율법 선생님들처럼 랍비일 뿐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 않으니 그를 배신하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 어떻게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어떤 사건,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처음 예수님을 따랐을 때만 해도 큰 기대를 걸었을 것이었다.
예수님이 12제자를 발표할 때만 해도 기쁨과 감격이 있었을 것이다.
전체 재정과 회계를 맡아 처리할 때도 감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했다.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과 함께 쟁반에 손을 넣어 음식을 먹을 정도로 가까웠다.
물론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이 예수님과의 핵심 미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에 못지 않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예수님이 향유를 붓는 여인을 칭찬하시는 것을 보면서 유다가 배신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가복음 14:4-6
4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5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6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높냐는 논쟁이 있었을 때, 야고보와 요한이 인사 청탁을 했을 때,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분노하고 있을 때, 바로 그 때 유다의 마음이 차갑게 식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시작하셨다.
제자 공동체를 만들어 마치 그곳이 하나님 나라인양 말씀하셨다.
병이 고쳐지고 귀신이 쫓겨나고 먹을 것이 공급되고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 마련되었다.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시작되었고,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나라를 끌고 들어와서 완성해 나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제자들은 서로 싸우고, 예수님은 죽는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이 바로 유다다.
예수님은 정말 죽는다.
그러니 더는 같이 하기 힘들다.
제자들은 갈갈이 분열될 것이다.
예수님이 있으니 그나마 연결되어 있지만 예수님이 없으면 서로 싸우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유다는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사람이었다.
돈 계산이 빨랐고,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인식도 빨랐을 것이다.
정말로 예수님이 잡히자마자 제자들 모두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다.
한 사람도 남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여전히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 만난 풍랑,’ 그 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란 불가능했다.
불쌍한 제자들, 그리고 가련한 나 자신…
나라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유다 처럼 배신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허나 다른 제자들처럼 누가 더 크고 높은지에 대해 논쟁을 했을 것이고,
향유 옥합의 값어치에 대해 한 마디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이 힘없이 잡히실 때, 예수님을 떠났을 것이다.
갑자기 할 말이 사라진다.
슬픔이 몰려온다.
가련한 내 모습이 여기에 있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죽음의 길로 걸어가시는 과정이지만, 실제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신의 제자들 아무도 당신 곁에 없었습니다.
모두들 당신을 떠났습니다.
당신의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의 연약함도 오버랩됩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과연 제가 제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풍랑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따를 수 있을까요?
주님의 도우심과 돌보심을 구합니다.
마음과 몸을 지켜주소서.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합니다.
제 아무리 잘 관리하려고 해도,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공든 탑도 무너집니다.
수백년의 건축물로 불에 탑니다.
막강한 자연의 힘에 견딜 구조물이 뭐가 있겠습니까?
주님,
끝까지 당신을 주님으로 부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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