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16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8 바로 그 기간에,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습격하곤 하였다. 그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수르 광야와 이집트 국경선에 이르는 전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9 다윗은, 그들이 사는 지역을 칠 때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옷을 약탈하였다. 약탈물을 가지고 아기스에게로 돌아가면,10 아기스는 으레 “그대들이 오늘은 어디를 습격하였소?” 하고 묻고, 그럴 때마다 다윗은, 유다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여라무엘 족속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또는 겐 족속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하는 식으로 대답을 하곤 하였다.11 다윗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죽이고 가드로 데려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다윗의 정체를 알아, 다윗이 그런 일을 하였다고 폭로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 거주하는 동안, 언제나 이런 식으로 처신하였다.12 아기스는 다윗의 말만 믿고서,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서 그토록 미움받을 짓을 하였으니, 그가 영영 자기의 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 그럴 즈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 쳐들어가려고 모든 부대를 집결시켰다. 그러자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귀관이 나와 함께 출정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줄 아오. 귀관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출정하시오.”2 다윗이 아기스에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임금님이 아시게 될 것입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좋소! 귀관을 나의 종신 경호대장으로 삼겠소.”
주석
8절. 블레셋 가드의 성읍이었던 시글락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했지만, 다른 나라의 국경과도 가까웠습니다. 다윗은 이런 지리적 입지를 이용해 유대의 대적이자 블레셋의 대적이기도 한 그술, 기르스, 아말렉 등을 습격했습니다(IVP 성경주석, 432쪽).
1. 그술 사람
다윗의 군대가 쳐들어 온다.
그런데 방향이 영 다르다.
이스라엘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땅에서 올라오고 있다.
척후병과 세작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다윗은 현재 블레셋 가드 지역 시글락에 머물고 있단다.
다윗이 블레셋에 투항을 했단다.
믿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철천지 원수였다.
어떻게 갑자기 블레셋의 아기스에게 투항했단 말인가?
문제는 그가 이스라엘서 오든, 블레셋에서 오든 전투 후에 한 사람도 남기지 않는다는 첩보다.
욕이 나온다.
전투를 하자는 건지, 말살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끝까지 항전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죽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소문이 무섭긴 하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성읍을 떠났다.
전의를 상실한 사람들이 산속으로 피신했다.
아예 다른 성읍으로 도망하기도 했다.
남은 사람으로 과연 전투를 수행 할 수 있을까?
도대체 다윗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무자비한 행동을 한단 말인가?
다윗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신이신가?
왜 우리를 이렇게 괴롭시는가?
2. 어려운 질문
오늘 본문의 핵심 메시지는 다윗의 처신일 것이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그러나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윗과 하나님이 너무 미울 것 같다.
도대체 왜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느냐는 질문이 터져 나올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오래 전에 마무리 되었고, 지금은 사사시대를 지나 왕정으로 이어졌으니, 이방 민족들을 이렇게까지 몰살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로 받아들이기가 솔직히 어렵다.
다윗은 아기스에게로 가지 말아야 했다.
모세처럼 광야로 들어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딸린 식구들과 부하들의 식솔들도 있으니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자신들이 살려고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예수님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다.
예수님은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고 하지 않으셨나!
다윗이 예수님의 작은 모델이라는 말도 지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다윗을 통해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정직함, 하나님에 대한 열심, 잘못을 회개함 등이다.
그러나 절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
분노, 살상, 간음, 생존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음 등이다.
차라리 과거 아브라함처럼 과거 야곱처럼 멀리 이주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팔레스타인을 넘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다.
전쟁과 살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험으로 그의 열정을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으니, 나중에 사울이 죽은 후에 다시 돌아오면 된다.
한동안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땠을까?
[오늘의 기도]
비가 옵니다.
질문도 많고 의문도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이해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당신이 주신 말씀들 속에 계속 거합니다.
그러니 질문도 생기는 겁니다.
주님, 당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구약의 단편적인 에피소드에서 하나님 당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구약의 편집자들이 다윗 편에서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 분별력을 허락하소서.
어떤 위대한 인물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다윗에게 당신의 성전 공사를 허락하지 않았는지 점점 이해가 됩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주님을 더 깊이 생각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가 그런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냇가에 심은 나무 > 사무엘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상 27:1-7_다윗이 블레셋으로 가다 (1) | 2025.05.15 |
---|---|
삼상 26:13-25_나의 아들 다윗아! (1) | 2025.05.14 |
삼상 26:1-12_주님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0) | 2025.05.13 |
삼상 25:32-39상_주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시고 (0) | 2025.05.09 |
삼상 25:20-31_주님께서 좋은 일을 베풀어 주시는 날 (0) | 2025.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