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7 22 목요일

여는 기도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9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없을 만큼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앞에 있었습니다.

10 그들은 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11 모든 천사들은 보좌와 장로들과 생물을 둘러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12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 하도록 있습니다. 아멘!” 하고 말하였습니다.

13 때에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내가 "장로님, 장로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사람들은 환난을 겪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분이 그들을 덮는 장막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16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해나 밖에 어떤 열도 그들 위에 괴롭게 내려 쬐지 않을 것입니다.

17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MSG

I saw a huge crowd, too huge to count. Everyone was there—all nations and tribes, all races and languages(9).

 

 

주석
13-14 장로의 물음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나도 알고 싶습니다라는 뜻을 함축한다. 무리가 가운데서 나오는 환난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이면 정상적으로 받아야 하는 시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세상 무렵에 일어나는 환난을 가리킨다(IVP 성경주석).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의 큰 무리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을 찬양합니다(9-12절). 그리고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요한에게 설명하려 합니다(14절). 그들은 큰 환난을 지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환난 속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장막 아래에서 더 이상 고통과 눈물,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을 것입니다(16-17절).

 

6번째 봉인(6장)과 7번째 봉인(8장) 사이에 위치한 이 본문은 세상에 큰 환난이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보호받고 건짐 받을 것임을 보여줍니다. 민족, 인종, 백성, 언어를 넘어서서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환난으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장면을 한 번 떠올려봅시다.

 

——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위대한 영웅을 사랑하지 않을 없다. 

역사는 일의 중요성을 극대화하는 배경이다. 

인류의 역사 내내 실패와 좌절과 고통은 끊이지 않았고, 인류는 참된 구원자를 갈망해왔다. 

역사가 없었다면, 필요성, 중요성, 시급성,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우리 힘으로 충분히 이룰 있다는 자만심이 가득했을 것이다.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 충분히 유토피아를 만들 있으며, 인류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구가할 있을 거라 믿었을 것이다. 

메시야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내내 전쟁과 폭력과 살인과 강간으로 가득하다. 

지배층이건 피지배층이건 이는 마찬가지다. 작은 공동체이건 국가 단위건 간에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평화로운 시기는 잠시 동안이며 이내 폭력과 전쟁이 발발한다. 

인류는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힘이나 능력이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래서 역사의 중심이 된다.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한다. 

사랑과 섬김과 자기희생이 중심가치가 된다. 

인류에 새로운 희망을 준다. 그것도 그분 스스로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말이다. 

그러니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인류 역사이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역사이건 아님 자신의 개인사이건 간에 조금이라도 진지하고 정직하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없다. 

 

백성이 경배하며 찬양한다. 

군중 심리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 묻혀서 하는 찬양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구원의 감격, 기쁨, 감사가 있다. 

감격이 한데 뭉쳐 나오는 것이다. 

구원받은 백성들의 기쁨이 천상의 합창이 된다. 

각자 구원받은 이야기가 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없이 사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 권력,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감격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감격이 끊이지 않는다. 

개개인의 감격이 모여 우주적 찬양이 일어난다. 

영원히 보좌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장면은 상징이다. 

물론 어느 역사적 순간에 저런 장면이 연출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역사를 통틀어 구원받은 무리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앞에 서서 영광의 찬양을 하게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똑같은 장면만 계속 된다면 그건 예술 작품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일상과 삶은 작품을 뛰어 넘는다. 

우리는 그분의 통치에 참여하며, 찬양과 일상이 통합된다. 

새로운 통치 질서 속에서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고 새로운 관계 방식과 역동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같이 모여 서로를 축복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자원의 부족함, 물질의 부족함, 먹을 것의 부족함을 겪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그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찬양과 일상이 통합되어 삶의 영역에 기쁨이 들어설 것이다. 

 

오늘 본문의 찬양이 준거가 것이다. 

사람들은 찬양의 순간을 기억하며 일상에서 떠올리고 회상하고 다시 확인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춤이 일상이 되고, 노래가 주변에 넘친다. 

이런 날이 온다. 

아름다움의 극치 

 

이런 날을 기대한다. 

 

——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님, 

우주가 주님을 찬양하고 박수를 치며 주님 앞에서 춤을 춥니다. 

절제된 찬양과 기쁨이 가득합니다. 

오늘 하루도 모습을 상상하며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완벽하게 모방할 수는 없겠으나, 영광스런 찬양의 모습이 인생에 구현되게 하소서. 

열방이 함께 모였던 월드어셈블리와 같은 일들이 끊이지 않도록,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때를 다시 기다리며 지금의 시기를 지혜롭게 보내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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