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8 18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 일이 있은 뒤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있는 무리가 내는 우렁찬 음성과 같은 소리가 이렇게 울려왔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력은 우리 하나님의 것이다.

2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음행으로 세상을 망친 창녀를 심판하셨다. 자기 종들이 흘린 피의 원한을 여자에게 갚으셨다."

3 그들이 다시금 "할렐루야, 여자에게서 나는 연기가 영원히 올라가는구나" 하고 외치니,

4 스물네 장로와 생물이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아멘, 할렐루야" 하고 말하였습니다.

5 그 때에 보좌로부터 음성이 울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종들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아, 작은 자들과 자들아,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6 나는 무리의 음성과 같기도 하고, 물소리와 같기도 하고, 우렁찬 천둥소리와 같기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분께서 왕권을 잡으셨다.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린 양의 혼인날이 이르렀다. 그의 신부는 단장을 끝냈다.

8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모시 옷을 입게 하셨다. 모시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다."

9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여라." 그리고 말하였습니다. " 말씀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다."

10 그 때에 내가 그에게 경배드리려고, 그의 앞에 엎드렸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말아라, 나도 예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동료들 가운데 하나요, 너와 같은 종이다. 경배는 하나님께 드려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다.”

 

주석
7절: 하나님의 통치의 시작은, 어린 양과 나중에 “새 예루살렘”으로 표현되는(21:2,9) 그분의 “신부”의 미래의 결혼으로 상징된다(IVP 성경비평주석).

 

바빌론에 대한 심판 이후, 하나님의 통치가 선포됩니다(1, 6절). 하나님의 심판은 순교자들의 외침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이 다시 확인됩니다(2절).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5절). 이제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시작될 것입니다(7절). 신부의 준비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바빌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준비됩니다. 이제 어린양 예수와 그의 신부와의 혼인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짐승의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인내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혼인잔치에 신부로 준비되었습니다. 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9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어린양을 따르며, 고난을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

어린 양의 눈물

그동안 심판의 메세지가 여러모로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빨리 다른 본문으로 바뀌길 은근히 때로 대놓고 바랬다. 

하나님의 진노를 보는 것도 꺼려지고, 진노를 부르는 인간들의 반역과 반역을 부추기는 창녀 바벨론/로마/세상권세가 싫었다. 

복음서의 예수님이 그리웠다. 

요한계시록의 어린양은 여리고 부드러운 속성의 이름과는 달리 세상을 심판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어린 아이를 안고 축복하시는 예수님, 제자들에게 찬찬히 설명해주시는 예수님, 병든자를 치유하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묵상하고 싶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정의롭고 엄격한 심판의 그림만을 보여주는 같았다. 

그속의 어린 양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어린 양의 눈물이 느껴진다. 

심판과 진노의 순간에는 어린 양은 눈물을 흘리신다. 

분명음행으로 세상을 망친 창녀”(2) 대해서는 엄중하고 엄격하게 심판하신다. 

그러나 와중에도 어린 양은 슬퍼하신다.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의 종들이 피를 흘렸다(2).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처형당했다. 수많은 로마 시민들의 경멸의 함성과 피에 흥분한 환호 속에 목숨을 잃었다. 

로마의 모래에는 그리스도인들의 피의 울분이 묻어 있다.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세상에서는 노예였으나,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는 어엿한 성도요 때론 지도자였다. 

그들이 받은 수모는 이루 말할 없다. 

벗으라면 벗고, 기라면 기고,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주인의 노리개감이었다

모든 노예가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주인의 뜻에 따라야하는 것이 노예의 숙명이었다. 

로마는 그런 곳이었다. 

로마의 많은 신들은 피를 부르는 글래디에이터들의 칼과 창에 흥분하는 신들이었다. 

피로 신들을 위로한다. 

피로 신들의 가호를 받는다. 

피로 신들의 축복을 받는다. 

무슨 피인가사람들의 피이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너무 거리가 멀다. 

 

그러니 어린 양은 눈물이 흐른다.

반역과 음행의 결과는 공의로운 심판이다. 

 

 

아프가니스탄에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길 

탈레반의 이슬람식 공포정치가 눈앞에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인권이 바닥으로 치달을 것이다. 

20년의 친미 정권은 자유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데에 실패했다. 

다시 여성들의 피가 땅을 적신다. 

미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은 숙청당한다. 

부패한 정권, 자유를 위해 싸울 의지가 부족한 정부군, 자립의 의지가 부족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시민들그리고 미국의 군사제일주의 정책. 

이런 것들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억지는 억지를 낳는다. 

진정한 변화는 폭력과 강제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여러 제국들의 폭력이 그들을 더욱 폭악한 공포정치를 하게 만들었다. 

땅에 사는 약자들을 살려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땅의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돌아오길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땅에 임하길 기도한다. 

 

1 이 일이 있은 뒤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있는 큰 무리가 내는 우렁찬 음성과 같은 소리가 이렇게 울려왔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력은 우리 하나님의 것이다.
6 또 나는 큰 무리의 음성과 같기도 하고, 큰 물소리와 같기도 하고, 우렁찬 천둥소리와 같기도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분께서 왕권을 잡으셨다.

 

왕권, 권력은 우리 주님의 것이다. 

개인과 단체가 누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시다. 

요한의 환상이 아프가니스탄에 실현되길 원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 땅에도 드러나길 원한다. 

 

한국의 세속주의

과거에는 도덕주의에 대한 경계가 필요했다. 

딱딱한 군대 문화 속에 살아왔던 한국 사람들, 엄격한 권위주의 문화 속에 지냈던 사람들에게 도덕주의가 뇌리에 박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도덕주의라기보다는 보여주기식, 윗사람에게 맞춰주기식 원리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좀더 정확할 같다. 

따라서 너무 쉽게 원리, 원칙, 규칙, 규정에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교회에서 이런 성향이 발현되면 소위 율법주의가 되는 것인데, 세상의 언어로 말하면 위선적 도덕주의라고 말할 있겠다. 

따라서 거짓된 도덕주의에 대해 경계하고 정직한 자아 발견을 중심 메시지로 삼는 설교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 문화와 상황을 살펴보면, 거짓된 도덕주의에 대한 경계보다는 자유분방한 세속주의 쾌락주의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솔직한 문화가 대세다. 문제는 솔직함에 있지 않다. 쾌락을 추구하는 , 자신의 욕망을 최우선하는 , 공동체적 규정과 규칙에 앞서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것에 너무 솔직하다는 이런 종류의 솔직함이 선을 넘을 때가 점점 많아지는 같다. 

절제와 자기 부인의 메시지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하나님보다 자기가 훨씬 우선인 보인다. 

거짓된 도덕주의 만큼이나 방임된 쾌락주의가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메시지 방향의 균형이 필요해 보인다.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는 외부에서 주어진 수많은 도덕과 규정을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욕구, 욕망, 열망을 알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또한 과정에는 울타리를 넘어 욕망을 방임했을 벌어지는 자아 파괴 현상에 대해서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주와 영혼의 진정한 왕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분 안에 있을 , 우리는 참된 자아를 발견한다. 

위선적인 도적주의로는 나를 발견할 없다. 외부에서 주입된 사회화된 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방임된 욕구충족우선주의로 나를 발견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이웃을 파괴한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의 안전한 울타리에서 나를 누구보다는 아시는 분의 가이드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왕이시요, 사랑으로 존재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연합이다. 

그것이 우리의 울타리요, 우리의 가이드다. 

 

그분이 왕이시다

요한은 왕으로 오시는 어린양을 본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 파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본다. 

로마의 음란한 연회와는 비교가 안되는 아름다운 즐거움을 만끽한다. 

시기, 질투, 암투, 계략, 험담, 판단, 폭력, 음행, 쾌락으로 점철된 바벨론/로마/뉴욕/강남의 연회/클럽/룸살롱이 아니다. 

사랑, 절제, 존중, 격려, 세워줌, 축복, 섬김이 가득한 하나님의 잔치이다. 

잔치를 요한은 보고 있다. 

그는 감격해서 천사에게 엎드린다. 

 

10 그 때에 내가 그에게 경배드리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말아라, 나도 예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네 동료들 가운데 하나요, 너와 같은 종이다. 경배는 하나님께 드려라. 예수의 증언은 곧 예언의 영이다.”

 

그러나 천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 이야기를 읽지 못했는가! 

천사에게 경배하는가!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에게 경배하는가! 

요한도 아직 완전하게 알지 못한다. 

우주의 신비를, 우주의 영적 존재들을

그러니 이런 실수를 했던 것이다. 

오직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분은, 인간도 천사도 어떤 피조물도 아니다. 

오직 어린 양과 하나님 뿐이시다

나도, 가족도, 지역사회도, 단체도, 국가도 심지어는 인류라는 추상적 포괄적 개념도 아니다. 

오직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통해 통치하시고 예수님과 성령님을 보내주신 여호와 하나님, 

그분만이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그분이 왕이시다. 

아멘.

 

——

 

왕되신 하나님, 

주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에 요한을 통해 보여주시는 놀라운 광경을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왕적 통치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사실 저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저의 인생 전체, 심지어는 저의 생명까지도 당신의 왕적 통치에 걸었습니다. 

기대하고 고대하고 기다립니다. 

 

주님, 

여전히 포악한 무력으로 통치하는 세상 권력을 심판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여 주소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경험하게 하소서. 

어린이와 여성들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우리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 주소서. 

아프가니스탄의 주의 백성들을 지켜주세요. 

 

당신이 나의 왕이십니다. 

쾌락주의, 세속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오직 주의 나라 위해 오늘도 저의 달리기를 하게 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을 고대합니다. 

 

오늘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의 아름다움을 있는 눈을 주소서. 

당신이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느끼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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