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22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에게 믿음과 더불어 사랑을 베푸소서.

 

1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부탁하며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서 배운 대로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게 하십시오.

2 우리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무슨 지시를 여러분에게 내렸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성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음행을 멀리하여야 합니다.

4 각 사람은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5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과 같이, 색욕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6 또 이런 일에 탈선을 하거나 자기 교우를 해하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에도 말하고 경고한 대로, 주님께서는 이런 모든 일을 징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더러움에 빠져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이 경고를 저버리는 사람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주석

4-5절 성생활은 존귀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거룩은 성행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성격을 제어한다. 그 반대의 생활은 ‘색욕’으로, 곧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제멋대로 자제하지 않는 육체적 욕망의 특징을 보인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상의 문제를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1절), 음행을 멀리하고 몸을 성결하게 하도록 도전합니다(3, 5절).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함에 이르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7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운 것을 행하며, 내 일상의 자리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내가 구별되어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1. 징벌하시는 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의 본체요, 그 사랑의 힘으로 역사를 끌고 오신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이 나와 우리를 하나로 만드신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곳이다. 

그 사랑의 힘은 온 우주의 창조주의 자기 희생적 사랑에서 나온다.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분이 심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안된다. 

그분은 징벌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신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을 결국에는 벌하신다. 

현실에서의 징벌과는 차원이 다른 미래의 심판이 기다린다. 

하나님이 당신을 징벌하는 분으로 계시하는 것은 참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모든 민족과 사람들이 당신의 사랑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다른 영을 쫓았다. 

오랜 기다림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다림을 끝까지 거부하고,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영적 죽음에 이른다. 

하나님은 이런 결과를 기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자연 만물을 아름답게 통치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었다. 

아름답고 조화롭게 다스리는 것. 

 

징벌하지 않으신다고 하면, 사람들은 더욱 더 방자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허용하면, 사람들은 그 한계를 모르게 된다. 

한계를 모르는 인간은 결국 자신이 신이 되려고 한다. 

하나님이 신이 아니라, 자신이 신이 된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한계를 지어주신다. 

그리고 그 한계를 넘는 사람들을 징벌하시고 심판하신다. 

 

본문에서는 탈선하는 것, 성도들을 해하는 것은 그 한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실수와는 다르다. 

자신이 잘못임을 알고도 탈선된 상태를 유지하고, 주변 성도들을 해하는 것을 유지하는 것. 

고집을 피우고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 죄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징벌을 하신다는 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그것에 대한 완벽한 설명은 없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길은 없겠으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벌을 주시고 심판하셨던 것은 사실이니,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성경 역사를 묻고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힘들어도 “징벌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계속 묵상해야 한다. 

한쪽으로만 기울어가는 생각의 편향 선호성을 극복해야 한다. 

 

사랑은 자유를 촉진하고, 징벌은 한계를 지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사랑도 한계를 지우고, 징벌도 자유를 촉진시킬 수 있지 않은가? 

징벌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자유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징벌하지 않으면 도리어 두려움이 공동체를 짖누른다. 

사랑해서 울타리를 두고, 보호장비를 입힌다. 

사랑해서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사랑도 징벌도 그 맥을 이어주는 것은 “나를 위함이냐 아니면 상대를 위함이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함도 분명 있으나,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하셨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다. 

사람들은 단순한 명령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짧고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길고 복잡하는 것은 이해도 안되고, 오래 붙들고 있기도 싫다. 

상대를 향해 희생하기에 하나님은 사랑도 징벌도 함께 공존한다. 

이것을 끝까지 붙들고 가야 거룩함에 이를 수 있다. 

 

2. 성결과 거룩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성결해지길, 거룩해지길 그렇게 온전해 지길 바라고 있다. 

이것은 바울만의 소망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관계의 울타리 안에 거하면서, 성도들을 깊이 사랑할 때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일상 속에서 성결과 거룩을 유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음욕을 절제하고, 부부 생활에 충실한 것이 현대 사회로 올 수록 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었다. 

바람, 외도, 오피스 와이프 등은 너무 많은 성적 타락이 현대 사회에 영향을 준다. 

대중 문화에서도 자유로운 성관계를 당연시 한다. 

언약관계로 맺어진 부부 사이의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남편과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해야 색욕을 피할 수 있다. 

상대를 비하하거나 무서워하면 결국 배우자 외의 관계에서 성적 욕망을 풀려고 할 것이다.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사랑으로 대해야 언약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색욕을 피할 수 있다. 

바울이 제시하는 것은 그것이다. 

거룩함과 존중함, 부부끼리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로부터 많은 칭찬을 들은 교회다. 

믿음, 소망, 사랑이 잘 갖춰진 교회다. 

앎과 실천이 조화를 이룬 교회다.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굳건히 지켜온 교회다. 

그 교회가 끝까지 그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자유의 한계를 잘 유지하고, 무엇보다 부부생활에 충실함으로 색욕을 극복하고, 더욱 거룩하고 성결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거룩함과 완전함에 대한 추구. 

강박적이지만 않다면 지극히 성경적이다. 

바리새적이지만 않다면 예수님도 지지하신다. 

성령님은 성도들을 거룩으로 이끄신다. 

이를 기억하고 진지하게 내 삶을 다시 돌이켜야 한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거룩을 유지할 것인가? 

어떻게 완전함을 위해 나아갈 것인가? 

강박적이거나 종교 중독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교만해지는 바리새인의 태도를 버리면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그 방법을 알고 싶다. 

성령님께 간구한다. 

 

오늘 하루 그런 삶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성결함과 거룩함과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되새깁니다. 

사랑과 자유와 평안과 온유함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결, 거룩, 완전이 주는 정서적 긴장도 없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세요. 

더욱 거룩해지고 성결해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욱 자유롭고 사랑많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가르쳐 주세요. 

그 조화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주님, 

저를 가르치소서. 

선생님을 보내주세요. 

멘토가 필요합니다. 

책을 추천해 주세요. 좋은 영상을 발견하게 하소서. 

조화롭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21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의 길을 친히 열어 주셔서, 우리를 여러분에게로 가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2 또,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13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NIV

May he strengthen your hearts so that you will be blameless and holy in the presence of our God and Father when our Lord Jesus comes with all his holy ones(13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다시 볼 수 있길 간구합니다(11절), 또 그들의 사랑이 풍성하여 넘치기를, 그들이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도록 기도합니다(12-13절).

 

바울은 그들의 사랑이 교회 너머로 넘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할 때 교회는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존재로 세워질 것입니다. 나와 공동체에 사랑이 풍성하게 넘치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1. 바울의 열망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꼭 가고 싶었다. 

그 교회 성도들을 꼭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싶었다. 

환란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더욱 견고히 행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사탄이 그 길을 막고 있다. 

주님께서 그 길을 친히 열어 주시길 간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울의 열망이다. 

그리고 그 열망을 기도로 표현한다.

 

나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오랜 친구이자 믿음의 동역자인 김선교사다. 

현재는 미국에 있는데, 한 번 간다 간다 했는데, 아직도 못가고 있다. 

만나서 그간의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고 주를 위해 살아가는 그에게 격려를 하고 또 받고 싶다. 

귀한 믿음의 친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오늘은 보고 싶은 친구들과 동역자들을 생각하고 묵상하면 좋겠다. 

그들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드린다. 

 

2. 흠 잡을 데가 없게

바울의 열망 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 바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과 온 성도들 앞에서 거룩함에 있어서 흠 잡을 데가 없는 것이다.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어렵다”는 생각이 갑자기 찾아온다. 

거룩함에 흠 잡을 데가 없다는 말은 너무 완벽주의자의 말처럼 들린다. 

과연 그런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본문을 섣불리 판단하기 전에 본문을 좀더 주의 깊게 살펴야겠다. 

12-13절에서 바울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먼저는 사랑이 풍성해지길 기도하고 있다. 

바울 선교단도 그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다. 

주님도 그들을 사랑하신다. 

그들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 

이런 사랑이 더 풍성해지고 그 풍성함이 넘치길 바울은 기도한다. 

사랑이 풍성해지는 것이 거룩함에 이르는 길로 보인다. 

그것도 한 사람, 한 개인의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에 대한 것이다. 

 

둘째는 믿음에 대한 것이다. 

마음을 굳게 하라는 것이라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그전 문맥에서 주로 믿음에 대해 사용한 어구다. 

환란과 핍박 속에서 마음을 굳게 하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공동체 속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 

마음을 굳게 함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소망을 포함한다. 

주님 오실 때, 모든 슬픔과 아픔을 이겨내게 하실 것에 대한 소망이다. 

이 소망이 믿음을 견인한다. 

 

사랑과 소망을 품은 믿음, 이 두 가지가 거룩함에 이르는 길로 보인다. 

거룩함에 있어 흠잡을 데가 없게 하려면,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고, 소망은 더욱 희망차고, 그에 따르는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도는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 

 

나는 주님 오실 날을 소망하고 있는가? 

나는 그 소망에 따라 믿음을 굳건히 세우고 있는가? 

나는 공동체에서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고 나누고 있는가?

 

이것이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 

거룩함에 대해서는 성경 곳곳을 살펴서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 

하지만, 최소한 오늘 본문에서 그리고 오늘 나에게는 이렇게 다가온다. 

소망, 믿음, 사랑, 공동체 안에서, 주님 안에서… 

 

 

[오늘의 기도]

다시 오실 예수님, 

주님을 소망합니다. 

오셔서 우리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시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주소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모든 비판과 판단을 중지하게 하시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그때까지 믿음을 굳게 하고, 마음을 굳세게 만들어 주소서. 

 

주님, 다시 캠퍼스로 돌아가는 간사들을 격려해주시고, 힘을 북돋게 하소서. 

저도 다시 일상으로 잘 돌아가게 하시고, 몸과 마음과 영혼에 은혜를 부어 주소서. 

재정 정리와 결산도 잘 마무리 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11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1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바울은 끝으로 ‘화평’을 이야기합니다(11절). 우리는 기뻐하는 것,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는 것, 서로 격려하는 것, 같은 마음을 품는 것으로 화평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11-12절).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13절).

 

모두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온전케 할 것입니다. 죽음과 어둠에 있는 자들을 위해 생명의 빛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을 잠재우는 성령의 사귐으로 우리는 같은 마음을 품게 될 것입니다. 화평하게 지냅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에게 문안하는 하루를 보냅시다.

 

[오늘의 묵상]

1. 대단원의 막 

고린도후서를 이렇게 오랫동안 묵상한 적도 처음이었다. 

바울의 개인적인 생각, 감정이 가장 많이 묻어나는 책이었다. 

때로는 바울의 감정이 널을 뛰는 것 같아 따라가기 힘든 적도 있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다시 하는 것 같아 불평하기도 했다. 

허나 생각해보면, 이렇게 솔직한 글을 성인에게서 본다는 것은 행운이다. 

예수님의 바리새인에 대한 솔직한 비난을 본다는 것이 행운인 것처럼 말이다. 

거룩과 정직이 함께 갈 수 있다. 

거룩은 조용함이 아니다. 

거룩은 변하지 않는 감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은 진정성과 정직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바울이 보여주셨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여주었던 다양한 감정은 큰 도전이 된다. 

나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큰 도전이다. 

마음 속 생각과 감정에 정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과 바울을 모델로 삼을 만 하다. 

 

바울은 긴 편지의 마지막을 몇 가지 권면으로 할애하고 있다.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라. 

서로 격려하라. 

같은 마음을 품으라. 

화평하게 지내라. 

하나같이 소중한 덕목이다. 

여전히 고린도교회는 분열의 씨앗이 존재하고, 갈등과 긴장이 있다. 

하지만, 교인들은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의 복음이 그들에게 있으며, 예수님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온전함과 완전함에 이르기를 힘써야 한다. 

자유로움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나태함에 빠져서는 안된다. 

자유는 아무것도 안할 자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물론 때로는 안해야 할 것도 많지만), 선을 행할 자유가 더 중요하다. 

온전함을 추구할 자유가 생겼다. 

그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자유다. 

이제는 온전함, 완전함을 추구해야 한다. 

서로 격려하라.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서로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를 응원하고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 대사로 살기 위해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이런 목표를 위해 같은 마음을 품으라. 

파당을 짓고 서로를 비난하고 나와 너가 다르다고 경계하지 말고 공통점을 찾아내고 한 마음으로 나아가라. 

그렇게 화평을 품으라. 

화평, 평화는 우리 주님이 부활하시고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셔서 주신 말씀이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제자들을 위해 하신 말씀이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격정적 환희에 들떠있는 제자들을 위해 하신 말씀이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그렇게 공동체는 하나가 되고 한 마음이 되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는다. 

 

2. 삼위 하나님의 축복 

바울은 삼위 하나님의 축복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행한다. 

거룩한 입맞춤은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다. 

서로를 축복함으로 인사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축복으로 서로를 축복한다. 

손을 서로에게 펼치고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사귐이 넘치길 기도한다. 

고린도후서 전체를 묵상한 지금 이 시점에 이 축복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 가득한 우려와 걱정은 삼위 하나님의 축복으로 대체된다. 

우려와 걱정만으로는 공동체를 세워나갈 수 없다. 

같은 마음, 같은 노력, 같은 격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 절실하다. 

그분의 은혜와 사랑과 사귐이 꼭 필요하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이 공동체에 녹아들어야 한다. 

그분의 선물과 사랑과 긴밀한 연결이 공동체에 녹아들어야 한다. 

그점에도 바울은 요한의 강조를 반복한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 가운데 제자들이 하나가 되길 그토록 바라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의 말씀과 소원을 특유의 문장으로 강조한 사도 요한(요한복음 17장)의 글은 바울에게도 울린다. 

 

어느 기독 공동체나 이런 축복이 필요하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건, 조밀하게 붙어 있건 간에 기독 공동체는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은혜, 사랑, 사귐이 가득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의 정신이 붙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 요한, 바울이 다 강조한다. 

초기 기독 공동체의 강조는 다름 아니라 바로 삼위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됨이다. 

거리와 상관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삼위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성도들이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문안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거룩한 입맞춤” 교회!! 

 

이런 축복의 마음을 품고 오늘도 공동체를 세운다. 

 

 

[오늘의 기도]

은혜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사귐의 성령님, 

삼위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와 공동체를 축복하소서. 

하나님의 교회가 분열과 비난이 아니라 사랑과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고 인사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주 안에서 기뻐하고, 예수님처럼 온전히 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한 마음을 품고, 평화를 누리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 가운데 들어가길 소망합니다. 

무뎌진 마음에 찾아오셔서 더욱 온전함으로 나아가도록 도우소서. 

있는 척, 그런 척 하지 말고 정말 진정으로 정직하게 제 자신을 주님께 올려드리게 하소서. 

 

오늘도 부담스러운 일정입니다. 

감당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당하도록 도우소서. 

사랑의 마음, 은혜의 마음, 사귐의 마음이 채워지게 하소서.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 

우리 나라의 역사도 주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선거제 개혁을 위해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승자독식, 반사이익의 정치, 혐오의 정치가 100%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 망하는 길이 아닌 서로 성장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기득권 정체 세력의 허리를 꺽어 주시고, 나라 발전을 위한 새로운 대안이 만들어지게 하소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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