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14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 달을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아서,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알리어라. 이 달 열흘날 각 가문에 어린 양 한 마리씩 곧 한 가족에 한 마리씩 어린 양을 마련하도록 하여라.

4 한 가족의 식구 수가 너무 적어서,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으면,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계산하여, 가까운 이웃에서 그만큼 사람을 더 불러다가 함께 먹도록 하여라.

5 너희가 마련할 짐승은 흠이 없는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골라라.

6 너희는 그것을 이 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해 질 무렵에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모여서 잡도록 하여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다가, 잡은 양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야 한다.

8 그 날 밤에 그 고기를 먹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함께 먹어야 한다.

9 너희는 고기를 결코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서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 할 것 없이, 모두 불에 구워서 먹어야 한다.

10 그리고 너희는 그 어느 것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이 있으면,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11 너희가 그것을 먹을 때에는 이렇게 하여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서 먹어라. 유월절은 주 앞에서 이렇게 지켜야 한다.

 

12 그 날 밤에 내가 이집트 땅을 지나가면서,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모두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의 모든 신을 벌하겠다. 나는 주다.

13 문틀에 피를 발랐으면, 그것은 너희가 살고 있는 집의 표적이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그 피를 보고 내가 너희를 치지 않고 넘어갈 터이니, 너희는 재앙을 피하여 살아 남을 것이다.

14 이 날은 너희가 기념해야 할 날이니, 너희는 이 날을 주 앞에서 지키는 절기로 삼아서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켜야 한다."

 

주석

달력(1-11절) 이 사건 때문에 아빕월(후에 니산월이라고 불림)이 이스라엘 종교력의 첫 달이 되었다. 일반 달력에 의하면 여섯 달 후인 티쉬리월이 첫 번째 달이었으며, 따라서 그 달에 ‘설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달력은 음력으로서 주기적으로 양력에 맞추어 조정했다. 아빕월은 춘분 이후의 첫 번째 초승달이 뜰 때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보통 3월 중순이었으며 4월 중순까지 이어졌다(IVP 배경주석). 

 

어린 양(3절) 바울은 주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신약의 강조점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결정적 새 출발로 부른다(BST 출애굽기).

주님은 유월절 식사에 대해 가르치십니다(1-10절). 유월절이 있는 달이 한 해가 시작하는 달이 되고, 유월절은 영원히 기념해야 할 절기가 됩니다(2, 14절). 유월절 그날 밤에 주님은 이집트 땅의 처음 난 것을 모두 치시고, 이집트의 모든 신을 벌하십니다(12절).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을 피해 살아남습니다(13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은 위대한 새 시작의 날(2절)입니다. 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노예의 비참함에서 해방과 자유로 도약한 놀라운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은 신앙적 행위입니다. 내 인생의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기억하고 기념하는 신앙적 행위를 계획하고 실천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이날을 기다려왔다. 

하나님의 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날,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가 동시에 드러나는 날,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드러나는 날, 

이날을 기다렸다. 

 

편하게 먹는 날은 아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서 먹어야 하는 날이다. 

웃으며 먹기가 어려운 날이다. 

5분 대기조 같은 느낌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엄청난 전쟁을 치르기 전 몸에 단백질을 채우는 과정 같다. 

편하게 즐기면서 먹는 날이 아니다. 

 

이 날은 이집트의 신들이 압사 당하는 날이다. 

이집트의 신들로는 이 재앙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이 기대하고 신뢰하던 우상들은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 

그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야말로 욕망의 투영체다. 

아이돌은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영향력이 커진다. 

군중 심리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더욱 커진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상인지 이제 깨닫는다. 

인생의 실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자신의 세계과 고집에 갇히게만 한다. 

그런 신들의 세계에 핵폭탄을 던지신다. 

이 날은 이집트의 신들이 산산히 부서지는 날이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벌 주신다. 

그들을 심판하신다. 

이집트 신들 배후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그 신들 앞에서 권력놀음을 하던 기득권들을 심판하신다. 

그 신들은 각 가정에서 벌어질 맏이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무력한 신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동안 9가지 재앙으로도 충분히 드러났지만, 이제 카운터 펀치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심판하신다. 

 

이 날은 영원히 기념하고 지켜야 할 날이다. 

우주 역사상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다고 해서 그 재앙이 넘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이나 했을까?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산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그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을 따르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는다. 

그러니 이 날은 영원히 기념하고 지켜야 할 날이 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야 산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이 흘린 피로 가족과 개인의 머리와 몸에 발라야 한다. 

그분의 살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그분께 순종하고 신뢰를 표현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직접 자신의 피와 살을 먹으라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야 산다.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서 다시 성만찬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예수님이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피와 몸을 먹고 마시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십자가의 구원과 심판을 바라본다. 

그리고 계속 상기시켜 나가고 그 곳에 머물 수 있다. 

그분을 묵상하고 상상할 수 있다. 

다시 성만찬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3일간 피정에 들어간다.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시간

성령님을 더 깊이 의지하는 시간

주님의 생각으로 채우는 시간

내 욕심을 버리고, 내 방식을 버리는 시간. 

그렇게 3일간의 피정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놀라운 유월절을 재정하신 하나님, 

당신의 구원을 봅니다. 

구약과 신약이 이렇게 이어지니 감사합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렇게 연결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월절 사건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 기억합니다. 

유월절 사건을 재현하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유월절 사건의 예를 들어 인류 구원의 길을 이해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존중하며 찬양합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합니다. 

저와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주의 일하심을 보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7 17 토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종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시오.

 

1 나는 어린 일곱 봉인 가운데 하나를 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생물 가운데 하나가 우레 같은 소리로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2 그리고 내가 보니, 마리가 있는데, 위에 사람은 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그는 이기면서 나아가고, 이기려고 나아갔습니다.

3 어린 둘째 봉인을 때에, 나는 둘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4 때에 불빛과 같은 다른 마리가 뛰어나오는데, 위에 사람은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일이 벌어지도록 땅에서 평화를 없애는 권세를 받아서 가졌습니다. 칼을 받아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5 어린 셋째 봉인을 때에, 나는 셋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니, 검은 마리가 있는데, 위에 사람은 손에 저울을 들고 있었습니다.

6 그리고 생물 가운데서 나오는 듯한 음성이 들려 왔는데 " 되도 하루 품삯이요, 보리 되도 하루 품삯이다.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에는 해를 끼치지 말아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7 어린 넷째 봉인을 때에, 나는 넷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8 그리고 내가 보니, 청황색 마리가 있는데, 위에 사람의 이름은 '사망'이고, 지옥이 그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칼과 기근과 죽음과 들짐승으로써 사분의 일에 이르는 땅의 주민들을 멸하는 권세를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석
마리의 (2-8): 기사(말에 자들) 명백한 유사성에 비추어 , 기사 모두 심판을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번째 기사( ) 침략하는 군대를 표상하고 번째 기사(붉은 ) 나라들 사이의 적대와 내전까지도 포함해서 분쟁이라는 일반적인 혼란을 표상하고 있다고 말할 있다. ‘검은 기사는 기근을 가리킨다. 번째 기사(청황색 ) 이름은사망이다. 그러나 특별한 종류의 죽음, 말하자면 역병을 표현한 같다(IVP 성경주석).

 

어린양이 두루마리의 일곱 봉인을 떼기 시작합니다(1절). 그리고 첫 네 봉인을 뗄 때, 네 마리의 말(흰색, 붉은색, 검은색, 청황색)이 등장합니다. 이 네 마리 말의 환상은 스가랴서1:8-11; 6:1-8에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스가랴서에 등장하는 네 마리의 말과 거기에 탄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회복 사역의 시작점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크게 3종류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일곱 봉인(6:1-17; 8:1), 일곱 나팔(8:7-9:21; 11:14-19), 일곱 대접(16:1-21)입니다. 우리에게 ‘심판’이라는 단어는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한 회복 이전에, 반드시 악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신 주님은, 이 땅 가운데 일어날 심판에 대해 요한에게 보이십니다.

 

——

 

일곱 교회의 인내를 주님께서 아신다. 

숱한 핍박과 박해와 심지어는 살해 앞에서 그들은 신앙을 지켰다. 

매번 고통받을 때마다 그들은 살려달라고 외치며 기도했다.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기울였다. 

참고 견디며 인내하는 삶을 걸어갔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오랜 시간 사단의 무리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일부 유대인들과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았다. 

 

이제 고난받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소식이 들린다. 

애굽 땅에 재앙이 내렸듯이 박해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내린다. 

전쟁과 내전,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이 전지구적으로 진행된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멸시하며 성령님을 훼방한 사람들은 재앙에서 벗어날 없다. 

 

어린 양이 역사를 진척시키고 있다. 

어린 양이 재앙을 허락하고 있다. 

죽임 당한신 어린 양이 봉인을 하나씩 하나씩 떼어나간다. 

가장 약하고 여리고 살해당한 것처럼 비참해 보이는 어린 양이 우주의 역사를 하나하나 앞으로 진척시키고 있다. 

우주의 주인은 바로 어린양이다. 

 

요한계시록 해석은 여전히 어렵다. 

환상과 계시를 억지로 현실 역사에 꿰어맞추려고 하면 오류가 생긴다. 

환상은 상징과 비유 덩어리다. 

그러나 개연성이 없는 상징이 아니다. 

역사적 개연성을 갖고 있는 상징이며 비유다. 

그러기에 숱한 역사 현실 가운데 재현될 수도 있으며, 아님 아직 위의 상징이 예견하는 절체절명의 종말론적 현실이 도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재앙의 때를 역사 속에 특정해서 연표를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며 자칫 위험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역사의 주인되신 예수님은 악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셨으며, 이제 악의 잔당들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사랑으로 죽음을 이기셨다. 그리고 악에 대한 미움으로 심판을 단행하신다. 

심판의 때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고통받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확고한 닻이 되어 주신다. 

심판은 있으며, 재앙도 있다. 

악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사람들은 거짓을 말할 없다. 만천하에 그들의 행실이 드러날 것이다. 

 

재앙은 우주의 질서를 새롭게 하는 과정이다. 

현실 정치의 주도권이 넘어간다. 

오랫동안 악을 교묘하게 자행해오던 기득권들은 전지구적 재앙앞에서 자신들의 주도권을 잃고 새로운 세대의 신흥 권력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때가 것이다. 

바로 어린 양에 의해서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에 의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재앙이라고 하면, 지금 코로나만큼 연결짓기 쉬운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기후 위기 등은 진지구적 재앙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위기가 요한계시록의 인의 재앙인지, 나팔의 재앙인지, 대접의 재앙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도리어 하지 말아야 일이다.

 

다만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을 끝까지 따르겠다. 

그분을 신뢰하겠다. 

죽음으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겠다. 

여전히 인내할 일이 많다. 

여전히 참고 견뎌야 일이 많다.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 

 

다시 다짐하는 토요일 아침이다. 

날이 정말 덥다. 

전국의 사역자들이 주님을 더욱 신뢰하기를 위해 기도한다. 

 

——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주님, 

환상과 계시를 통해 당신이 왕이심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는 정치가들이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의 발견이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 아닙니다. 

근원적 힘은 역사의 처음으로 끝이 되시는 당신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세상이 존재합니다. 

당신이 우주의 비밀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만이 선악을 분별하고 행위대로 갚아 주실 있으십니다. 

주님, 당신의 존재를 더욱 믿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수록 우주는 미스터리로 가득합니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없는 원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의 존재를 더욱 믿습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 바치신 우리 주님을 더욱 신뢰합니다. 

신비로운 일들이 오늘 저에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더욱 실감나게 일어나도록 도와주세요. 

코로나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기후 위기로 자연 만물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님, 더욱 적극적으로 세상에 개입해 주십시오. 

우주를 구원해 주세요. 

 

사역자들이 절망에 늪에 오래 머물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사역의 열매로 스스로의 부르심을 재단하지 않게 주세요. 

하나님의 사랑의 횃불이 내면에서 활활 타오르는지 점검하게 해주세요. 

횃불이 여전하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을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7 16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힘을 주십시오.

 

1 나는 ,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글이 적혀 있고 일곱 인을 찍어 봉하여 놓은 것이었습니다.

2 내가 보니, 힘센 천사가 소리로 "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외쳤습니다.

3 그러나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있는 이는, 하늘에도 없고 위에도 없고 아래에도 없었습니다.

4 두루마리를 펴거나 자격이 있는 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으므로,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5 그런데 장로들 가운데서 하나가 나에게 "울지 마십시오. 유다 지파에서 사자,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였으니, 그가 일곱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6 나는 보좌와 생물과 장로들 가운데 어린 양이 하나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린 양은 죽임을 당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에게는 일곱과 일곱이 있었는데, 눈들은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7 어린 양이 나와서,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았습니다.

8 그가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을 때에, 생물과 스물네 장로가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히 담긴 대접을 가지고 어린 앞에 엎드렸습니다. 향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9 그들은 이런 말로 새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으시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은 죽임을 당하시고,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10 주님께서 그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 되게 하시고,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을 다스릴 입니다."

11 나는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를 보고, 그들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천 수만이었습니다.

12 그들은 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13 나는 하늘과 위와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그들 가운데 있는 만물이, 이런 말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서는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 하도록 받으십시오."

14 그러자 생물은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서 경배하였습니다.

 

 

 

주석
7: 요한계시록은일곱으로 가득하지만, 로마의 유언장이 보통 일곱 개의 봉인으로 쳐졌다는 사실은 중요할 것이다. 법적 서류의 봉인은 어느 누구도 서류를 개봉하거나 함부로 고치지 않았음을 보증했다. 유언장은 작성한 사람의 죽음이 입증될 때까지는 개봉할 없었다. 여기서 유언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것을 열기에 합당한 분은 죽임당한 어린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IVP 성경배경주석).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손에 봉인된 두루마리가 있습니다(1절). 하지만 그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거나 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3절). 그래서 요한은 큰 소리로 웁니다(4절). 하지만 곧 그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이 나타납니다. 그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입니다(6-8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울고 있는 요한의 마음을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그 요한의 눈물을 그치게 하시는 어린 양 예수님을 묵상합시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께서 자신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들을 위해 값을 치루시고, 그들을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 시키셨습니다(9절). 이 어린 양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라가 되고 제사장이 되었습니다(10절). 어린 양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

하늘 노래의 가사는 두고두고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9 그들은 이런 말로 새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두루마리를 받으시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은 죽임을 당하시고,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10 주님께서 그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 되게 하시고,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을 다스릴 입니다."

 

어린 양이 봉인을 해제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봉인을 해제할 없다. 

우주의 비밀, 역사의 비밀, 미래의 비밀을 해제할 없다. 

오직 어린 , 죽임을 당하신 어린 만이 일을 있다. 

처음 유다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고 말을 들었을 때는, 엄청난 인물이 나오는 알았다. 

다윗은 당시에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린 영웅이었다. 

이스라엘을 고대 세계에서 구원해 민족의 구원자였다. 

용사요 장수요 왕이었다. 

유다의 사자와 다윗의 뿌리인 영웅이 나와서 영광스런 보좌의 봉인을 해제한다고 한다. 

말만 놓고 보면, 위대한 왕의 대관식 같은 느낌이다. 백성이 모여 있다. 그들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런데 어린 양이 나온다. 

그것도 죽임을 당했던 어린 양이다. 

보잘 없어 보이는 어린 . 죽임을 당해 보이는 듯한 비참한 느낌의 어린 양인데, 게다가 일곱 개의 뿔과 일곱 개의 눈이 있었다. 

뭔가 괴기스럽기도 하고, 맞지 않는 같고, 심히 역설적이다.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곱 개의 뿔과 눈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다. 

역설적 존재, 예수님은 모두에게 충격이다. 

일단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우주의 왕이 죽임을 당했었다. 

자발적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주의 운명과 미래를 이끌고 일곱 개의 뿔과 눈을 가지신 권능의 주인이시다. 

역설적 존재인 예수님을 천하 만물이 지켜 보고 있다. 

역설이 우주를 구원한다. 

왕으로만 계신 것이 아니다. 죽음으로만 계신 분이 아니다. 

죽음과 생명이 동시에 존재하며 역설이 그를 통해 통합된다. 

 

그분만이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다. 

그분이 하신 일은 분명하다.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사람을 사서 하나님께로 드리셨다. 

인류를 구원하셨다. 

원래의 주인에게도 되돌려 놓으셨다. 

사단의 노예로 죽음의 노예로 결국 죽음을 향해 가던 인류를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다. 

거기에 멈추지 않는다. 

구원한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원리에 순종하는 나라가 되게 하셨다. 전세계와 하나님을 이어주는 제사장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땅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건 가히 혁명적이다. 

노예로부터 구원해서 자유민이 되게 하는 것을 넘어서는 조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된다. 

평범한 일반 시민으로 살아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의 계획은 조금 다르다. 

노예가 왕이 된다. 

어린 양이 우주의 주인이 된다. 

역설이 곳곳에 일어난다. 

노예였던 존재들이 일어나 전세계를 다스린다. 

하나님의 통치 질서로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 

일곱개의 뿔과 눈이 달린 어린 양을 따라 그들도 세계의 통치자로 등극한다. 

낮아지심의 본을 쫓아, 죽음과 생명의 통합을 따라, 그들을 우주의 죽음의 그림자를 몰아내고 생명의 기운으로 심는다. 

섬김의 리더십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그렇게 성도들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12절은 역설적 찬양을 분명히 보여준다. 

 

12 그들은 큰 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온갖 수식어의 찬양이 합당하다. 

적군을 죽인 무시무시한 영웅, 사자와도 같은 용맹과 전투력을 가진 장수에게 붙는 찬양이 아니다. 

오히려 적에게 목숨을 내놓았다. 순순히 사형의 틀을 받아들였다. 살해를 당하셨다. 그것도 아주 부끄러운 죽음이었다. 

그러나 죽음이 오히려 그에게 가장 영광이 되었다. 

요한이 보았던 찬양이 결국 영원한 찬양이 되고 말았다. 

예수님은 영원히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라는 칭호를 들으셔야 한다. 

왕이신 예수님은 죽임 당한 어린 양으로 영원히 살아가신다. 

그것이 인류를 구원하고 우주를 원래대로 회복하는 결정적 우주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모든 불확정의 질서가 그분의 죽음으로 새롭게 확정되었다. 

바로 인류와 우주를 구원하기로 하신 것이다. 

그분의 십자가는 우주의 빛이 되어, 모든 원소들의 자리를 잡아 주었다. 

 

어린 양으로 불림받으며 영원히 이름으로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과연 어떻게 들릴까 상상해 본다. 

예수님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기뻐하실까? 

나로서는 약간 부끄러울 같다. 

아슬란이라고 불리고 싶을 같다. 

위대한 사자로 불리고 싶을 같다. 

어떤 순간에는 어린 양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영원히 이름으로 불린다면 그건 조금 아니다 싶다. 

 

역설을 때로 하나님이 원하실 때가 있다고 느낀다. 

강함과 약함이 공존하는 인품.

하나님으로 인해 가장 강력한 자아상을 유지함과 동시에 인간의 가장 연약함을 인정하는 태도.. 

대리통치자의 권세와 권능을 유지함과 동시에, 여전히 취약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쉽게 무너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 

지금 현실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가지를 동시에 원하신다는 생각이다. 

겸손함과 자신감. 

자기 부인과 자기 확신.

돌아봄과 나아감. 

연약함과 강력함. 

가지 모순되고 역설적인 태도를 동시에 갖추길 원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특성을 정신분열증에 걸리지 않고 동시에 유지할 있을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우기는 정신승리 아닐까? 

깊은 심리적, 철학적 논의에 빠지고 싶지 않다. 

오늘 본문이 주는 힌트는 이것이다. 

보좌에 계신 어린 양을 영원히 찬양하는 .. 

그분을 칭송하는 . 역설적 상황에 계신 분을 노래하는  

그것이 본문이 주는 해답이다. 

개인으로는 역설과 모순을 통합해 없다. 

그러나 역설의 주님을 계속 높이고 찬양하다보면, 칭송하다보면, 새로운 성품이 장착될 것인데, 바로 역설적 성품이다. 

약함 속에 강함이 드러나고, 자기 부인 속에 자기 긍적과 확신이 표현되고, 겸손함과 온유함 속에 자부심과 자신감이 뿜뿜이다. 자신을 약함을 인정하는 것과 그럼에도 극강의 확신을 표현하는 일이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 충돌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의 통치자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역설의 주님을 찬양하면서 역설적 통치자가 되어 간다. 

섬김이 가장 권위가 됨을 몸으로 드러내는 통치자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어린 예수님을 찬양한다. 

죽임 당하신 유다의 사자, 어린 예수님을 높인다. 

그분만이 나의 구원자시요. 왕이심을 

영원히 찬양 받으실 분이심을 

 

——

역설과 모순의 주님, 

그래서 주님을 충격을 받습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분의 이름이 어린 양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성품을 배우고 싶습니다. 

주님, 약함 속에 강함을, 겸손함 가운데 확신을, 자기 부인 가운데 자기 긍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을 닯기 원합니다. 

찬양 속에서 주님을 더욱 떠올리기 원합니다. 

오늘도 저의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주님으로 인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고, 마음의 크기가 커지고, 사랑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도록 도와주세요. 

저의 생각에 갇히지 않고 주님의 생각으로 통합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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