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29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에게 믿음과 더불어 사랑을 베푸소서.

 

23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25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26 거룩한 입맞춤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문안해 주십시오.

27 나는 주님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명합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십시오.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주석

26절 입맞춤은 친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흔히 사용하던 다정한 인사법이었다(IVP 성경배경주석).

27절 이 편지를 교회 사람 모두가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전갈이 본인의 의도하는 모든 사람에게 확실히 전달되도록 하고 싶었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평화의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셨고, 그 부르심을 신실하게 이루실 것이라고 강조합니다(23-24절). 더불어,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문안할 것을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축복의 이야기를 모든 교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27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으로 더욱 단단해지길 간구합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교제하길 원했으며, 공개적인 편지 낭독을 통해 자신의 가르침이 모두에게 흘러가길 기대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직접 마주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깊이 영적 공동체를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영적 교제를 풍성하게 누리고 있습니까? 공동체 지체들에게 문안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오늘의 묵상]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다. 

컴퓨터가 생기고, 핸드폰이 생기고, 인터넷이 연결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쓰는 도구가 달라졌다. 

도구가 달라지니, 몸과 정신과 지성이 그에 적응한다. 

새롭게 재편되는 지식 축적 기반에서 생존해야 한다. 

변화가 강력한데, 육체와 정신은 쇠퇴한다. 

과연 새로운 시대 속에서도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가!! 

 

김민식 PD는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으로 “태도”를 꼽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ek_yX-mKT7k&t=642s

05:49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

 

지식이나 기술이 그동안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었다면, AI시대에서는 도리어 잘 듣고 질문을 잘하는 “태도”가 그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 동의가 된다. 

방대한 지식은 인공지능을 따라 갈 수 없다. 

기계가 인간의 기술을 더 많이 대체해 갈 것이다. 

질문을 잘 던져서 원하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능력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그 좋은 질문은 상황 파악에서 나오고, 상황 파악은 주의 깊은 관찰에서 나온다. 

성경 연구에 귀납적 성경 연구 방법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관찰, 질문, 해석, 적용이라는 틀이 있다. 

이 과정이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학습, 연구 방법론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좋은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것. 사람에게건 인공지능에게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마음의 힘과 관련이 있다. 

모름을 인정하고, 앎에 대한 추구가 있고, 관계 형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의 힘이 갖춰져야 한다. 

 

그야말로 급변하는 세상이다. 

그런 급변하는 세상에서 어디에 닻을 내릴 수 있는가? 

어디에 윤리적 기준, 삶의 기준과 목표를 찾을 수 있는가?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한 가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이끄실 것이다. 

어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그 길을 가도록 이끄실 것이다. 

무엇보다 재림의 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세우실 것이다. 

이것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다. 

 

변화는 두려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을 지나는 이 시점에도 크게 두렵다는 감정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다만, 인공지능이 가져다 줄 변화를 지혜롭게 다뤄야 한다는 책임감이 찾아온다. 

기술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인류와 자연을 위한 탁월한 윤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 기준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감히 말하건대, 그 기준의 잣대는 문화명령을 내리시고, 만물의 회복을 꿈꾸시는 삼위 하나님에게 있다. 

그분의 신실하심에 있다. 

 

오늘도 그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한다. 

나와 인류를 이끄시는 그분을 의지한다.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저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인류를 위해 역사를 이끌어 오셨던 당신의 노력을 기억합니다. 

인류 역사의 특이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 것 같습니다. 

과학 기술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허나, 그 모든 특이점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사랑이며 당신의 약속입니다.

그 사랑을 신뢰하고 약속을 믿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더욱 빛과 소금의 삶을 살게 하소서. 

당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당신의 이름으로 선을 행하게 하소서.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주님,

육체를 강건하게 만들어 주소서.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시고, 통증을 잘 다스리게 하소서. 

건강한 육체로 다른 사람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젊은 사역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가는 존재가 되길 원합니다. 

좋은 문과 통로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사역을 사용해 주세요. 

밝은 빛으로 이끌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6 30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 이것은 다윗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한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용사, 야곱의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 이스라엘에서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 말한다.

2 주님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니, 그의 말씀이 나의 혀에 담겼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다스리는 ,

4 구름이 끼지 않은 아침에 떠오르는 맑은 아침 햇살과 같다고 하시고, 비가 뒤에 땅에서 새싹을 돋게 하는 햇빛과도 같다고 하셨다.

5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6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아무도 손으로 움켜 없는 가시덤불과 같아서,

7 쇠꼬챙이나 창자루가 없이는 만질 수도 없는 , 불에 살라 태울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시인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노래합니다(1-2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장차 한 의로운 왕이 나타나 생명력 넘치는 햇살과도 같이 임할 것입니다. 그 햇빛은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낼 것입니다(3-4절). 자신과 언약을 맺으셨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반면 악한 사람들은 가시덤불 같이 불태워질 것입니다(5-7절).

 

다윗의 마지막 예언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의로 다스리는 왕, 장차 오실 메시아를 떠올립니다.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세상을 공의로 다스릴 진정한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십니다. 이 땅의 모든 고통과 어둠을 물리치고 마침내 다시 오실 온전한 왕을 기다리며 본문을 묵상합시다.

 

——

 

다윗의 자기 정체성 

 

다윗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로 규정한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용사, 

기름 부어 세우신 ,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 

용사, , 시인 

하나만 해도 인정받는 사람이 것이다. 

용사이기만 해도, 왕이기만 해도, 시인이기만 해도 

그러나 그는 싸움을 잘하는 용사면서 왕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에 못지 않게 시를 지어 노래를 지어 부르는 사람이었다. 전사, 통치자, 그리고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런 정체성을 형성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은 지대했다. 다윗도 사실을 온전히 인정했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것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용사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워주신 것이다. 

기름부어 주신 것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스스로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이 것이 아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알기에 그는 감사의 , 찬양의 , 탄원의 , 도움의 시를 지을 수가 있었다. 

자시 스스로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와 영광을 돌리기 위한 시를 것이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시인의 자리에 있게 했다. 

이것이 그의 정체성이 것이다. 

 

공의의 통치차,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 

 

하나님은 공의로 통치하는 왕을 원하셨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을 원하셨다. 

자기 맘대로 자기 유익을 위해, 자기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식 속에서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왕을 기대하셨다. 

다윗 왕이 그러하길 바라셨다. 

비록 시에서는 다윗 자신이 그런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충족되는 사람인양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윗은 어느 순간부터는 철저히 망가진 군주였다. 

하나님이 마치 안계신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계획적으로 죽일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그의 잘못은 역사에 길이 남아 후대에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시점에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자신의 잘못을 전혀 모르지 않고 있는 다윗이 기어코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임을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5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잘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비록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명예는 실추되었고, 사실 자신의 왕실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현재의 모습이라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고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켜주실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다른 몰라도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신실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들, 유다의 자손들은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영원한 왕을 그들에게 내려보내 주실 것이다. 완전한 ,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 모든 인간의 딜레마를 해결 있는 . 메시야를 그들은 기다린다. 다윗은 실패했지만, 다윗과의 약속을 통해 진정한 왕이 도래할 것이다. 다윗은 약속을 신실하게 믿었고 신뢰했다. 다윗이 점이 있다면 바로 지점이다. 

 

——

주님,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강한 확신 속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의 약속에 깊게 뿌리내리며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립니다. 

저에게 확신과 용기를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6 19 토요일

여는 기도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피난처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31 때에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도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왕이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요단 가에 이르렀다.

32 바르실래는 아주 늙은 사람으로, 나이가 여든 살이나 되었다. 그는 부자였으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왕에게 음식을 공급하였다.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말하였다. "노인께서는 나와 함께 건너가시지요. 나와 같이 가시면 내가 대접하겠습니다."

34 그러나 바르실래는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얼마나 오래 산다고, 임금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습니까?

35 나이가 지금 여든입니다. 제가 나이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어떻게 가릴 알겠습니까? 종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신들, 맛을 알기나 하겠습니까? 노래하는 남녀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들, 제가 나이에 알아듣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종이 높으신 임금님께 다시 짐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36 종은 임금님을 모시고 요단 강을 건너려는 뿐인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이러한 상을 저에게 베푸시려고 하십니까?

37 부디 종을 돌아가게 하셔서, 고향 마을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 곁에서 죽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신에 종의 아들 김함이 여기에 있으니, 그가 높으신 임금님을 따라가게 하시고, 임금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그에게 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38 그러자 왕이 약속하였다. "물론, 내가 김함을 데리고 가겠소. 그리고 노인께서 보시기에 만족하도록, 내가 그에게 대하여 주겠고,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이루어 드리겠소."

39 드디어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넜고, 왕도 건너갔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복을 빌어 주니, 바르실래가 자기의 고장으로 돌아갔다.

40 왕이 길갈로 건너갈 때에 김함도 왕을 따라서 건너갔다.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따라서, 요단 강을 건너갔다.

41 그런데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이 왕에게 몰려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우리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이 우리와 의논도 없이, 임금님을 몰래 빼돌려 임금님과 임금님의 가족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를 모시고 건넜습니까?"

42 그러자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임금님과 가깝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런 일로 그렇게 화를 이유가 무엇이냐? 우리가 임금님께 조금이라도 얻어 먹은 것이 있느냐? 임금님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주신 것이 있어서 그러는 아느냐?"

43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은 유다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께 요구할 권리가 너희보다 갑절이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우리를 무시하였느냐? 높으신 임금님을 우리가 다시 모셔와야 되겠다고 먼저 말한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아니었느냐?" 그래도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강경하였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머무를 때 음식을 공급했던 바르실래가 왕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다윗을 도운 공적으로 그의 가문 전체가 왕의 곁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합니다. 왕에게 짐이 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바르실래는 아들 김함을 왕에게 부탁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31-40절). 북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는 왕을 사이에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41-43절).

 

아첨과 속임수로 권력에 빌붙기 위해 혈안인 사람들 속에서 바르실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순수하게 다윗을 돕고자 했고 욕심 없이 물러설 줄 알았습니다. 모함과 배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사람, 나를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을 진실하게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길 기도합시다.

 

 

——

반역은 진압되었다. 

왕의 귀환이 시작되었다. 

행렬이 뒤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왕을 축하하고 축복한다. 

왕도 나이가 들었지만, 나이가 많았던 바르실래가 왕을 배웅한다.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함께 간다. 

왕은 그동안 바르실래의 재정적 섬김을 통해 유익을 누렸다. 

그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예루살렘으로 같이 가자고 요청한다. 

그러나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나이가 많고 몸이 쇠하여 조용히 고행에서 죽고자 한다. 

대신 자신의 아들 김함을 추천한다. 왕의 통치에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거한 것이다. 

바르실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할 , 사람은 추해진다. 

노욕은 더욱더 그렇다. 

누릴 만큼 누린 사람이 죽을 때까지 보이는 욕망은 그야말로 욕이 나온다. 

그러나 인간은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먹을 것에 대한 의지도 끝이 없고, 잠자는 , 섹스 하는 것의 욕망도 끝이 없다. 

 

절제를 배우는 ,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많이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절제다. 

그런데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욕구하는 것이 심리적 현실이다.

쾌락은 강도 높은 쾌락을 낳는다. 

경험은 높은 농도의 경험을 욕구한다. 

그러니 나이가 많을수록 절제를 장착하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아는 이상, 굳이 욕망을 절제해야 이유가 별로 없어진다. 

돈과 권력이 주는 달콤함을 알고, 게다가 끝의 허망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순간의 쾌락을 굳이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이는 그렇게 절제를 멀리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언약이 더욱 절실하다. 

세대를 넘어 가르쳐야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욕망 추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라면, 오랫동안 절제가 주는 유익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참고 인내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있겠다. 그게 언약의 힘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세대를 넘어서 전달되어야 한다. 언약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간 관계의 언약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언약은 신실함을 전제한다. 그러니 언약을 알고 언약을 오랫동안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추해질 있는 것이다. 

 

약속을 깨는 것이 너무 쉬워지는 세상이다. 

사소한 약속도 소중하지만, 중요한 약속에 대해서는 정말 목숨 걸고 지켜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요사이 군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보고 듣는다. 

강철부대 군인들의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배운다. 

대의를 위해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여군 특전사의 모습에 감동이 된다. 

군인정신의 핵심은 대의를 위한 자기 헌신이요. 국가 공동체와의 약속을 목숨을 바쳐 지켜내는 충성이다. 

어찌보면, 기독 공동체가 잃어버린 정신이 바로 군인 정신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군대 문화의 불의함을 모르지 않으며, 대의에 의해 개인이 말살되는 현실이 옳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로 기독인들이 보이는 절제에 대한 나약함은 안쓰럽다. 

끝까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지켜내는 . 언약에 충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감당해야 일이 많은데 기도의 자리에서 나의 욕망을 확인하고 때로 절제하는 훈련을 하고 싶다. 

나의 욕망을 하나님께 두는 훈련. 

때로 불가능해 보이는 훈련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감당하고 싶다. 

 

——

주님, 

제어하지 못하는 여러 욕망들을 봅니다. 

주님께 마음을 집중하고 다시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으로 성장할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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