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 08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36그 뒤에 왕은 사람을 보내어서, 시므이를 불러다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예루살렘에다가 당신이 살 집을 짓고, 거기에서만 살도록 하시오. 다른 어느 곳으로든지, 한 발짝도 나가서는 안 되오.

37바깥으로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당신은 반드시 죽을 것이오. 당신이 죽는 것은 바로 당신 죄 때문임을 명심하시오."

38그러자 시므이는 "임금님께서 하신 말씀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임금님의 종은 그대로 이행할 따름입니다" 하고 대답하고,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거기에서 지냈다.

39그로부터 거의 세 해가 지났을 무렵에, 시므이의 종들 가운데서 두 사람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였다. 어떤 사람들이 시므이에게, 그 종들이 가드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

40그래서 시므이는 나귀에 안장을 얹고, 자기의 종들을 찾아 오려고 가드에 있는 아기스에게로 갔다. 시므이가 직접 내려가, 가드에서 자기 종들을 데리고 왔다.

41시므이가 이와 같이, 예루살렘에서 가드로 내려갔다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솔로몬에게 전해지니,

42왕은 사람을 보내어서, 시므이를 불러다 놓고 문책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주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당신에게 경고하기를, 당신이 바깥으로 나가서 어느 곳이든지 가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소? 당신도 나에게 좋다고 하였고, 내 말에 순종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43그런데 어찌하여, 주님께 맹세한 것과, 내가 당신에게 명령한 것을, 당신은 지키지 않았소?"

44왕은 계속하여 시므이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당신이 나의 아버지 다윗 왕에게 저지른 그 모든 일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이 저지른 일을 당신에게 갚으실 것이오.

45그러나 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보좌는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오."

46왕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니, 그가 바깥으로 나가서, 시므이를 쳐죽였다. 솔로몬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에서만 거한다면 생명을 살려주는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내립니다(36-38절). 그러나 3년 후 시므이는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예루살렘 밖을 나갑니다(3940절). 그가 약속을 어기자 솔로몬은 다윗 왕에게 했던 시므이의 행동을 언급하면서 처벌합니다(41-46절).

 

솔로몬은 아비아달과 요압에 이어서 시므이를 처벌함으로써 왕권을 견고하게 세워나갑니다. 솔로몬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서 견고하게 세우려 합니다. 솔로몬이 왕권을 확립하며, 나라를 세워가는 과정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다윗 왕의 유언을 뒤를 이은 솔로몬이 자신의 지혜대로 이행하고 있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귀향을 보내고, 요압은 제단 뿔 앞에서 살해한다. 

시므이는 압살롬의 반란 때, 다윗을 저주하며 욕했던 인물이다. 

비록 그가 다윗의 귀환 때, 용서를 구했을지는 몰라도 그의 저주에 대한 기억은 다윗 말년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유언에까지 남겼던 것이다.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님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으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왕상 2:8-9) 

 

다윗의 마지막 유언을 받들었던 솔로몬은 시므이와 약속을 한다. 

‘예루살렘에서 떠나지 말라. 만약에 떠나게 된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엄중한 왕의 명령이 내려진다. 

 

삼 년 동안 시므이는 왕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게 된다. 

그러나 그의 종들이 아기스로 도망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 사달이 난다. 

도망친 종들을 데려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시므이는 그 일을 해 내고 만다. 

사실 시므이는 상당히 유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도망친 노예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무력과 재력을 겸비해야 했다. 

시므이의 집안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력한 집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솔로몬은 시므이의 약점을 잡고 그를 죽이게 된다. 

원래 가야할 길이었다. 정해진 일이었다. 솔로몬은 시므이를 그냥 편안하게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솔로몬은 이 모든 일이 다윗 왕조의 영원한 통치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45그러나 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보좌는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오."

 

솔로몬 자신의 왕권 강화는 다윗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라고 생각했다. 

그 일을 위해 반대파들은 완전히 숙청하게 된 것이다. 

숙청의 정당성은 하나님 언약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도출했다. 

그렇게 솔로몬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성경의 저자는 미묘한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솔로몬의 왕권 강화를 인정하는 눈치다. 

왕권 강화의 노력을 칭찬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살펴보면, 과연 솔로몬의 지혜가 진정한 지혜인지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다윗은 솔로몬을 지혜의 사람으로 보고 있다. 

자기 지혜로 사건을 해결할 사람으로 보고 있다. 

어느새 선지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나단 선지자는 권력 장악과 점진적인 숙청 과정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아도니야를 죽이고, 아비아달을 귀향 보내고, 요압을 죽이고, 시므이를 죽이는 일련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개입은 어디에 있는가? 

솔로몬이 왕의 유언을 실행하는 것은 알겠는데, 과연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다윗의 보좌는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다’라는 솔로몬의 확신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다. 

그 언약은 미래에 달성될 것이다. 영원토록 견고해질 다윗의 왕권은 예수님에게서 성취된다. 

인간 왕으로서는 저 약속을 달성할 수 없다. 

솔로몬이 아무리 왕권을 강화해도, 그의 인간적인 노력은 그 스스로를 교만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가 다윗 왕궁의 미래를 걱정해서 최대한 강력한 왕권과 부국 양병을 실천한다고 해도, 결국 후대의 왕들에 의해 나라가 두 조각이 나고,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만다. 

스스로 지혜있다 생각한 사람의 결말이다. 

결코 교만한 자의 지혜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이므로, 겸손하게 그분의 뜻과 명령에 순종할 뿐이다.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현실적으로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그의 의견에 십분 동의한다. 

다윗 왕이 겪었던 수많은 수모를 직간접적으로 함께 겪었던 장본인(아들)으로서 다윗 왕보다 더욱 결단력 있고 지혜롭게 통치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시는 왕이 수모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랬을 것이다. 

제대로된 왕국을 건설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부 성공했다. 

그러나 한 때 뿐이었다. 

곧 지나간다. 

이것이 인간의 조직이요. 인간의 성과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권력은 십 년을 못가고 활짝 핀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한다. 

 

지금의 모든 노력이 영원에 이르리라는 것은 헛된 망상이다. 

그저 부르신 그 분의 뜻에 따라 발 맞춰 가면 되는 일이다. 

지혜있다하는 자들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 노력을 ‘의미없다, 불필요하다’ 등으로 무시하려는 말이 아니다. 

발버둥의 끝을 보장받는다 생각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아니 성과가 있어 업적이 쌓인다고 한들, 그것이 백년 천년 가는 일이 아니다. 

영원에 기대어 이상을 꿈꾸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다. 

한 가지만 뺴고 말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이상은 열외다. 

그것만이 영원한 의미를 갖는다. 

과도한 욕망으로 영혼과 정서를 망가뜨리지 말자. 

그저 부르심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나님께서 시키신 그 만큼, 충성스럽게 일하다 가면 된다. 

혹시 아나, 나의 노력의 일부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흡수되어 그 나라에서도 명예롭게 빛날지… 

그건 오직 하나님만이 결정하실 일이다. 

 


인간의 모든 노력을 아시는 하나님, 

사람의 욕망과 그 욕망의 결과도 오랫동안 보아오신 하나님,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게 해 주세요. 

몇 가지 아이디어로 마치 영원한 업적을 이룰 것처럼 과몰입하는 저를 봅니다. 

겸손하게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감당하게 해 주세요. 

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되, 

과도한 기대와 열정으로 폭주하지 않게 해 주세요. 

겸손히 주님과 보조를 맞추고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영원한 지혜에 튜닝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오늘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저의 후원자, 교회 청년들, 아벱 동역자들, 특히 신입간사들에게 주님의 돌보심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아픈 자들을 위로하시고, 오늘 그들의 마음에 찾아가셔서 위로와 평안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6 09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 다윗이 산꼭대기에서 떠난 얼마 되어서, 므비보셋의 하인 시바가 와서 그를 맞이하였다. 시바는 나귀 마리에 안장을 얹고, 위에다가는 이백 개와 건포도 뭉치 덩이와 여름 과일 개와 포도주 가죽부대를 싣고 왔다.

2 왕이 시바에게 물었다. "네가 무엇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왔느냐?" 시바가 대답하였다. " 나귀들은 임금님의 가족들이 타고, 빵과 여름 과일은 신하들이 먹고, 포도주는 누구나 광야에서 기진할 때에 마시고, 이렇게 하시라고 가져 왔습니다."

3 왕이 물었다. "그런데, 네가 섬기는 상전의 손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는 지금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제야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할아버지의 나라를 자기에게 되돌려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왕이 시바에게 말하였다. "므비보셋의 재산을 네가 모두 가져라." 시바가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임금님의 은총을 입는 몸이 되기를 바랍니다."

5 다윗 왕이 바후림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마을에서 나왔는데, 그는 사울 집안의 친척인 게라의 아들로서, 이름은 시므이였다. 그는 거기에서 나오면서, 줄곧 저주를 퍼부었다.

6 다윗 왕의 모든 부하와 모든 용사가 좌우에 서서 왕을 호위하고 가는데도, 그는 다윗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계속하여 돌을 던졌다.

7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여 말하였다. "영영 가거라! 피비린내 나는 살인자야! 불한당 같은 자야!

8 네가 사울의 집안사람을 죽이고, 그의 나라를 차지하였으나, 이제는 주님께서 값을 모두 너에게 갚으신다. 이제는 주님께서 나라를 너의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 주셨다. 이런 형벌은 너와 같은 살인자가 마땅히 받아야 재앙이다."

9 그러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에게 아뢰었다. "죽은 개가 높으신 임금님을 저주하는데, 어찌하여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제가 당장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잘라 버리겠습니다."

10 왕은 대답하였다. "스루야의 아들아, 나의 일에 너희가 나서느냐? 주님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분부하셔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그가 나를 저주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있겠느냐?"

11 그런 다음에 다윗이 아비새와 자기의 모든 신하에게 말하였다. "생각하여 보시오. 나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도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데, 이러한 때에, 하물며 베냐민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혹시 주님께서 나의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오늘 시므이가 저주 대신에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부하들은 계속하여 길을 갔다. 그래도 시므이는 여전히 산비탈을 타고 다윗을 따라 오면서 저주하며, 곁에서 돌을 던지고, 흙먼지를 뿌렸다.

14 왕과 그를 따르는 백성이 요단 강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은 매우 지쳤으므로, 거기에서 쉬면서, 기운을 되찾았다.

 

므비보셋의 하인 시바가 나귀와 많은 음식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왕궁을 빼앗기고 궁지에 몰린 상황이기에 다윗은 시바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이내 판단력이 흐려졌습니다. 므비보셋을 모함하는 시바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재산을 모두 그에게 줍니다(1-4). 후에 시바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고 이를 바로잡게 됩니다(삼하 19:29 참조).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합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의 민심을 대변하는 것으로도 있습니다. 다윗은 시므이를 응징할 있었지만 내버려 둡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5-14). 우리에게 주어진 어려움들을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바라보며 해석할 있도록 지혜를 구합시다.

 

——

급박한 상황, 위기의 상황은 언제나 혼란을 초래한다. 

평소 같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기에 평소처럼 반응할 수는 없다. 

므비보셋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다윗을 따라 나서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의 하인 시바가 와서 가장 약해있는 다윗 왕과 그의 추종자들을 섬긴다. 

먹을 것의 힘은 대단하다. 음식으로 왕과 백성들을 섬기니 왕은 이내 자신이 있는 최선으로 시바에게 선물을 준다. 

 

예수님이야 이런 경우에 므비모셋과 시바의 마음과 상황을 아시기에 그냥 속지는 않으셨을 것이지만, 다윗은 경황이 없는 중에 명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너무 쉽게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전재산을 하사하게 된다. 

 

급박한 상황에서 마음의 힘이 약해진 다윗은 시므이가 던지는 저주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자신의 아들도 반역을 꾀하여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시점에 전대왕 사울의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가 던지는 저주의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그냥 듣기로 결정한다. 혹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까 하고 일말의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편으로는 자신의 죄의 결과로 이해하거나 다른 편으로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구의 시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윗의 멘탈에는 하나님은 가련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생각이 있는 싶다. 

약간 피학적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혹여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십자가로 묵묵히 걸어가시는,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욕하는 장면이 겹친다. 

그러나 예수님과 다윗은 질적으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다윗은 자신의 죄와 실수가 집적되어 발생한 사건의 결과로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귀한 소명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사람들의 저주의 소리를 듣고 참았던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심리를 이용하기 위해 수모를 참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조롱을 참았던 것이다. 

그러니 다윗과 예수님을 단순비교해서는 안된다. 

 

인생에는 위기 상황이 닥친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급박한 위기 속에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반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두려움, 초조함, 심리적 압박, 정보의 부족, 그간의 스토리들의 재해석,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신, 정서적 약점의 노출

과연 이런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올바른 판단을 있단 말인가! 

그래서 현인들은 위기 속에서 인생의 결정을 내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팩트 체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서와 감정을 객관화하고, 가급적 극단적인 해석을 배제해야 한다. 

그리해도 우리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관대해질 필요도 있다. 

하나님도 우리의 상황을 아신다. 

처음 겪는 고통과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얼마나 연약해지는지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동체에도 위기는 상존한다.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사건은 종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개인과 공동체는 고통을 겪는다.

우리의 부르심은 목표에 관한 뿐이 아니다. 과정도 중요하다. 

그래서 에너지가 정말 많이 들어간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결정할지 항상 헷갈리기 마련이다. 고민이 깊어진다. 

팩트체크가 안되는 경우도 많다. 

혼자서 결정하려고 하면 그것도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다. 개인이 상하게 된다.

그렇게 딜레마에 빠진다. 

 

인간의 약함을 다시 절감한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

사람의 상황을 아시는 주님, 

매일 겪는 고통과 아픔의 순간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위기의 순간에 침착할 있도록 도와주세요. 

수많은 정보들은 겸손하게 수합하게 하시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을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당신의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결정하도록 지혜를 주소서.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극단적으로 선택하지 않게 하시되, 때로는 과감하게 결단하는 용기도 허락해주세요. 

 

오늘 하루를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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