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 14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0유다와 이스라엘에는 인구가 늘어나서, 마치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사람이 많아졌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잘 지냈다.

21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블레셋 영토에 이르기까지, 또 이집트의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왕국을 다스리고, 그 왕국들은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조공을 바치면서 솔로몬을 섬겼다.

22솔로몬이 쓰는 하루 먹거리는 잘 빻은 밀가루 서른 섬과 거친 밀가루 예순 섬

23살진 소 마리와 목장 소 스무 마리와 양 마리이고, 그 밖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 들이었다.

24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 이쪽에 있는 모든 지역 곧 딥사에서부터 가사에 이르기까지,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모든 왕을 다스리며, 주위의 모든 민족과 평화를 유지하였다.

25그래서 솔로몬의 일생 동안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았다.

26솔로몬은 전차를 끄는 말을 두는 마구간 사만 칸과 군마 만 이천 필을 가지고 있었다.

27그리고 솔로몬의 관리들은 각자 자기가 책임진 달에, 솔로몬 왕과 솔로몬 왕의 식탁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부족하지 않게 먹거리를 조달하였다.

28또한 군마와 역마에게 먹일 보리와 보리짚도 각각 자기의 분담량에 따라서, 말이 있는 곳으로 가져 왔다.

29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과 넓은 마음을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한없이 많이 주시니,

30솔로몬의 지혜는 동양의 어느 누구보다도, 또 이집트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뛰어났다.

31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지혜로웠다.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도 더 지혜로웠으므로, 그의 명성은 주위의 모든 민족 가운데 자자하였다.

32그는 삼천 가지의 잠언을 말하였고, 천다섯 편의 노래를 지었고,

33레바논에 있는 백향목으로부터 벽에 붙어서 사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목을 놓고 논할 수 있었고,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두고서도 가릴 것 없이 논할 수 있었다.

34그래서 그의 지혜에 관한 소문을 들은 모든 백성과 지상의 모든 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어서 배우려고 몰려 왔다.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그의 영향력은 주변 국가들에게도 미쳤습니다. 뛰어난 외교력, 군사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20-28절). 솔로몬의 지혜는 누구보다도 뛰어났으며 문학, 노래, 식물에 대한 분야까지도 탁월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지혜를 배우려고 몰려 왔습니다(29~34절). 하지만 화려한 이면에 엄청난 먹거리들을 관료들에게서 받았고, 필요이상으로 군마를 많이 두었습니다.(21, 26~28절)

 

솔로몬 통치 시기가 이스라엘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솔로몬 시대의 영화 속에서 몇 가지 불안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이 왕에게 금지하신 군마를 많이 둔 것 입니다(신명기 20:1 참조). 군마의 수는 왕에게 있어 강한 힘과 권력을 상징하지만, 솔로몬은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나는 혹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신뢰함으로 나를 자랑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

오늘 본문의 첫 반응은 “우와~~”다.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성경 저자의 입으로 그 구체적인 수치를 들으니 입이 벌어진다. 

매일 먹는 솔로몬 왕궁의 먹거리 양이 장난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양이 많은 것은 당연하겠으나, 고대에서 저 많은 물량을 조달하는 것, 저장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세금과 조공이 필요했던 일이다. 

저 많은 가축과 곡물을 운반하기 위한 도로망이 잘 구축되어야 하고, 오고 가는 길에 강도와 도적을 물리쳐야 한다. 

안정된 사회 속에서 군사, 경찰력이 받쳐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통치를 잘 했다는 증거다. 

백성들이 굻지 않으면 쉽게 도적질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먹을 것이 있으면 사람을 죽여가면서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25그래서 솔로몬의 일생 동안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았다

 

그야말로 태평성대다. 

평화가 퍼져나가고 있다. 

지혜로운 왕의 등장으로 인해 주변 왕국들과도 평화롭게 지내고, 그렇다보니 내부적으로도 평화롭다. 

전쟁이 소문이 없고, 주변 왕국의 침입이 없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제한된 기간이지만 잘 보여주고 있다. 

풍요로운 모습, 평화로운 모습… 

각 시대의 사회문화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준이 있을 텐데, 그것은 싸움, 분쟁, 전쟁이 없는 상태이다. 

복지 기준, 인권 보장의 기준 등은 시대마다 달랐겠지만, 최소한 전쟁은 없어야 한다. 

서로를 힐난하며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 하나님 나라의 이상은 사라진다. 

서로 죽이고 강간하고 고통을 방치한다. 

포악함이 땅에 진동한다. 사람들은 더이상 사람이 아니라 하이에나 같은 짐승이 되고 만다. 

그러기에 솔로몬의 외교력을 높게 산다. 

그 주변의 나라들과 평화를 유지하며, 그들을 지헤로 압도한다. 

지혜 뿐 아니라 군사력도 압도적이다. 

 

26솔로몬은 전차를 끄는 말을 두는 마구간 사만 칸과 군마 만 이천 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의 군사력을 운용하고 유지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인력이 필요하다. 

마구간이 사만 칸이라는 것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말이 만 이천 필이라는 것도 실제로 보면 장관일 것이다. 

다른 왕국의 첩자가 이런 솔로몬의 군사력을 보게 되면 게임이 끝나버린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세상을 호령한다.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잠수함 개발 완료를 선포하고, 이지스함 진수식을 공개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주변국에게 자국의 군사력을 보여줌으로써 쉽게 넘보지 않게 하려함이다. 

북한이 핵에 매달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핵을 개발해야 주변 강대국들의 무력도발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제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군마의 숫자로 드러난다. 

저런 수의 군마를 운용할 수 있다면, 다른 능력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솔로몬 시대는 태평성대다. 

 

솔로몬의 지식, 지혜는 그 또한 어떠한가!! 

정말 대단한 학자다. 

모든 대화의 주제에 거침이 없다. 

지식의 방대함에 혀를 내 두른다. 

평화 사절단의 이름으로 수많은 왕국의 고위 지도자들이 솔로몬과 대화를 해 보려고 이스라엘을 찾는다. 

솔로몬의 지혜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소문이 참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지금의 연예인들 만큼이나 유명세를 탔다. 

말 한번 건네려고 줄을 서고 있는 형국이다. 

국운이 승하니 최고 권력자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충분히 먹을 음식, 막강한 군사력, 사람들로부터의 칭송… 

아… 타락하기 좋은 조건이다. 

진정한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타락하지 않는 지혜다. 

초심을 잃지 않는 지혜다. 

끝까지 그 지혜를 주신 분에게 의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지혜다. 

 

아담에게는 충분한 음식이 있었다. 

외부세력의 위협이 없었다. 

하나님과 수많은 동물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초심을 잃기 시작한다. 

 

솔로몬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간은 타락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특히 먹을 것이 풍부하고, 권력이 있고, 인기가 따르면 결국 사람의 마음은 부패하고 타락한다. 

예수님에게 다가온 사탄의 전략이 바로 그것이었다. 

음식이 되게 하는 능력,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는 능력, 모든 세상 권력을 누리는 능력을 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 유혹에 넘어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정당한 이유든 일단 그 능력의 맛을 알면 그대로 중독이 되어 결국 더 많은 능력을 탐하게 되고, 사람의 마음은 처음의 그 정당한 이유는 어디로 내팽개치고 능력 자체를 추구하다가 부패하고 만다. 

이것이 사람이다. 

 

어느새 40대 후반이다. 

나도 잘 모르는 체, 권한과 책임을 많이 갖게 된 자리에 있다. 

가정에서는 아빠, 교회에서는 목사, 직장에서는 총무의 자리에 있다. 

힘을 추구하면, 힘을 부릴 수 있는 위치다. 

그러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힘에 중독되지 않도록, 권한의 맛에 중독되지 않도록, 권한은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더 깊이 자각하도록… 

끝까지 초심을 지키며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할 수 있도록… 

 

솔로몬의 그 화려한 지혜는 없지만, 

부패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법이라는 지혜는 꼭 소유하기를 

다시 바라고 기도한다. 

 

——-

영광의 하나님,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움을 솔로몬 왕국을 통해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이런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더 많이 나타나게 해 주세요. 

백성들이 평안하고,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음식이 있고, 풍류와 문화가 풍요로운 나라들이 생겨나게 해 주세요. 

우리 나라가 그런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절망 속에 죽어나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아프간, 미얀마, 소말리아, 팔레스타인의 약자들을 지켜주세요.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지구와 이 땅의 약자들을 보호해주세요. 

 

여전히 저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립니다. 

완벽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뤄집니다. 

그날을 고대합니다. 

전쟁과 기아가 없는 나라… 

평화가 가득한 나라… 

눈물과 아픔이 없는 나라… 

 

예수님, 어서 오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9월 08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36그 뒤에 왕은 사람을 보내어서, 시므이를 불러다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예루살렘에다가 당신이 살 집을 짓고, 거기에서만 살도록 하시오. 다른 어느 곳으로든지, 한 발짝도 나가서는 안 되오.

37바깥으로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당신은 반드시 죽을 것이오. 당신이 죽는 것은 바로 당신 죄 때문임을 명심하시오."

38그러자 시므이는 "임금님께서 하신 말씀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임금님의 종은 그대로 이행할 따름입니다" 하고 대답하고,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거기에서 지냈다.

39그로부터 거의 세 해가 지났을 무렵에, 시므이의 종들 가운데서 두 사람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였다. 어떤 사람들이 시므이에게, 그 종들이 가드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

40그래서 시므이는 나귀에 안장을 얹고, 자기의 종들을 찾아 오려고 가드에 있는 아기스에게로 갔다. 시므이가 직접 내려가, 가드에서 자기 종들을 데리고 왔다.

41시므이가 이와 같이, 예루살렘에서 가드로 내려갔다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솔로몬에게 전해지니,

42왕은 사람을 보내어서, 시므이를 불러다 놓고 문책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주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당신에게 경고하기를, 당신이 바깥으로 나가서 어느 곳이든지 가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소? 당신도 나에게 좋다고 하였고, 내 말에 순종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43그런데 어찌하여, 주님께 맹세한 것과, 내가 당신에게 명령한 것을, 당신은 지키지 않았소?"

44왕은 계속하여 시므이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당신이 나의 아버지 다윗 왕에게 저지른 그 모든 일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이 저지른 일을 당신에게 갚으실 것이오.

45그러나 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보좌는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오."

46왕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니, 그가 바깥으로 나가서, 시므이를 쳐죽였다. 솔로몬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에서만 거한다면 생명을 살려주는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내립니다(36-38절). 그러나 3년 후 시므이는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예루살렘 밖을 나갑니다(3940절). 그가 약속을 어기자 솔로몬은 다윗 왕에게 했던 시므이의 행동을 언급하면서 처벌합니다(41-46절).

 

솔로몬은 아비아달과 요압에 이어서 시므이를 처벌함으로써 왕권을 견고하게 세워나갑니다. 솔로몬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서 견고하게 세우려 합니다. 솔로몬이 왕권을 확립하며, 나라를 세워가는 과정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다윗 왕의 유언을 뒤를 이은 솔로몬이 자신의 지혜대로 이행하고 있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귀향을 보내고, 요압은 제단 뿔 앞에서 살해한다. 

시므이는 압살롬의 반란 때, 다윗을 저주하며 욕했던 인물이다. 

비록 그가 다윗의 귀환 때, 용서를 구했을지는 몰라도 그의 저주에 대한 기억은 다윗 말년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유언에까지 남겼던 것이다.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님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으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왕상 2:8-9) 

 

다윗의 마지막 유언을 받들었던 솔로몬은 시므이와 약속을 한다. 

‘예루살렘에서 떠나지 말라. 만약에 떠나게 된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엄중한 왕의 명령이 내려진다. 

 

삼 년 동안 시므이는 왕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게 된다. 

그러나 그의 종들이 아기스로 도망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 사달이 난다. 

도망친 종들을 데려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시므이는 그 일을 해 내고 만다. 

사실 시므이는 상당히 유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도망친 노예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무력과 재력을 겸비해야 했다. 

시므이의 집안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력한 집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솔로몬은 시므이의 약점을 잡고 그를 죽이게 된다. 

원래 가야할 길이었다. 정해진 일이었다. 솔로몬은 시므이를 그냥 편안하게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솔로몬은 이 모든 일이 다윗 왕조의 영원한 통치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45그러나 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보좌는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오."

 

솔로몬 자신의 왕권 강화는 다윗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라고 생각했다. 

그 일을 위해 반대파들은 완전히 숙청하게 된 것이다. 

숙청의 정당성은 하나님 언약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도출했다. 

그렇게 솔로몬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성경의 저자는 미묘한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솔로몬의 왕권 강화를 인정하는 눈치다. 

왕권 강화의 노력을 칭찬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살펴보면, 과연 솔로몬의 지혜가 진정한 지혜인지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다윗은 솔로몬을 지혜의 사람으로 보고 있다. 

자기 지혜로 사건을 해결할 사람으로 보고 있다. 

어느새 선지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나단 선지자는 권력 장악과 점진적인 숙청 과정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아도니야를 죽이고, 아비아달을 귀향 보내고, 요압을 죽이고, 시므이를 죽이는 일련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개입은 어디에 있는가? 

솔로몬이 왕의 유언을 실행하는 것은 알겠는데, 과연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다윗의 보좌는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다’라는 솔로몬의 확신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다. 

그 언약은 미래에 달성될 것이다. 영원토록 견고해질 다윗의 왕권은 예수님에게서 성취된다. 

인간 왕으로서는 저 약속을 달성할 수 없다. 

솔로몬이 아무리 왕권을 강화해도, 그의 인간적인 노력은 그 스스로를 교만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가 다윗 왕궁의 미래를 걱정해서 최대한 강력한 왕권과 부국 양병을 실천한다고 해도, 결국 후대의 왕들에 의해 나라가 두 조각이 나고,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만다. 

스스로 지혜있다 생각한 사람의 결말이다. 

결코 교만한 자의 지혜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이므로, 겸손하게 그분의 뜻과 명령에 순종할 뿐이다.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현실적으로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그의 의견에 십분 동의한다. 

다윗 왕이 겪었던 수많은 수모를 직간접적으로 함께 겪었던 장본인(아들)으로서 다윗 왕보다 더욱 결단력 있고 지혜롭게 통치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시는 왕이 수모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랬을 것이다. 

제대로된 왕국을 건설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부 성공했다. 

그러나 한 때 뿐이었다. 

곧 지나간다. 

이것이 인간의 조직이요. 인간의 성과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권력은 십 년을 못가고 활짝 핀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한다. 

 

지금의 모든 노력이 영원에 이르리라는 것은 헛된 망상이다. 

그저 부르신 그 분의 뜻에 따라 발 맞춰 가면 되는 일이다. 

지혜있다하는 자들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 노력을 ‘의미없다, 불필요하다’ 등으로 무시하려는 말이 아니다. 

발버둥의 끝을 보장받는다 생각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아니 성과가 있어 업적이 쌓인다고 한들, 그것이 백년 천년 가는 일이 아니다. 

영원에 기대어 이상을 꿈꾸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다. 

한 가지만 뺴고 말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이상은 열외다. 

그것만이 영원한 의미를 갖는다. 

과도한 욕망으로 영혼과 정서를 망가뜨리지 말자. 

그저 부르심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나님께서 시키신 그 만큼, 충성스럽게 일하다 가면 된다. 

혹시 아나, 나의 노력의 일부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흡수되어 그 나라에서도 명예롭게 빛날지… 

그건 오직 하나님만이 결정하실 일이다. 

 


인간의 모든 노력을 아시는 하나님, 

사람의 욕망과 그 욕망의 결과도 오랫동안 보아오신 하나님,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게 해 주세요. 

몇 가지 아이디어로 마치 영원한 업적을 이룰 것처럼 과몰입하는 저를 봅니다. 

겸손하게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감당하게 해 주세요. 

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되, 

과도한 기대와 열정으로 폭주하지 않게 해 주세요. 

겸손히 주님과 보조를 맞추고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영원한 지혜에 튜닝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오늘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저의 후원자, 교회 청년들, 아벱 동역자들, 특히 신입간사들에게 주님의 돌보심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아픈 자들을 위로하시고, 오늘 그들의 마음에 찾아가셔서 위로와 평안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9월 07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6솔로몬 왕은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제사장께서는 상속받은 땅 아나돗으로 가시오. 제사장께서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이지만, 나의 아버지 다윗 앞에서 제사장으로서 주 하나님의 법궤를 메었고, 또 나의 아버지께서 고통을 받으실 때에 그 모든 고통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에, 오늘은 내가 제사장을 죽이지는 않겠소."

27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주님의 제사장 직에서 파면하여 내쫓았다. 이렇게 하여서, 주님께서는 실로에 있는 엘리의 가문을 두고 하신 말씀을 이루셨다.

28이런 소문이 요압에게 들렸다. 비록 그는 압살롬의 편을 들지는 않았으나, 아도니야의 편을 들었으므로, 주님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았다.

29요압이 이렇게 주님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피하여 있다는 사실이, 솔로몬 왕에게 전해지니, 솔로몬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면서 "가서, 그를 쳐죽여라!" 하였다.

30브나야가 주님의 장막에 들어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어명이오. 바깥으로 나오시오."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못 나가겠소. 차라리 나는 여기에서 죽겠소." 브나야가 왕에게 돌아가서, 요압이 한 말을 전하니,

31왕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가 말한 대로, 그를 쳐서 죽인 뒤에 묻어라. 그리하면 요압이 흘린 죄 없는 사람의 피를, 나와 나의 가문에서 지울 수 있을 것이다.

32주님께서, 요압이 흘린 그 피를 그에게 돌리실 것이다. 그는 나의 아버지 다윗께서 모르시는 사이에, 자기보다 더 의롭고 나은 두 사람, 곧 넬의 아들인 이스라엘 군사령관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인 유다의 군사령관 아마사를, 칼로 죽인 사람이다.

33그들의 피는 영원히 요압과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왕실과 그의 왕좌에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영원토록 있을 것이다."

34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올라가서, 그를 쳐죽였다. 요압은 광야에 있는 그의 땅에 매장되었다.

35왕은 요압 대신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군사령관으로 삼고, 아비아달의 자리에는 사독 제사장을 임명하였다.

 

아비아달은 반역하였지만 제사장이며 다윗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기에, 솔로몬은 그를 죽이지 않고 파면하여 고향으로 보냅니다. 이로써 엘리 가문을 두고 하신 무명의 선지자의 말씀(삼상 2:27~36 참조)이 드디어 이루어집니다(26-27절). 또 다른 반역자 요압은 제단의 뿔을 잡음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의로운 사람들을 죽인 것의 죄를 물어 죽임당합니다(28-34절). 솔로몬은 군사령관과 제사장을 새롭게 임명합니다(35절).

 

솔로몬은 재빨리 반역자들에 대한 처분을 내립니다.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따라 요압을 처분하며, 다윗 왕실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있을 것이라 선언합니다(33절). 아비아달과 요압은 그 행실에 대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

솔로몬의 형 아도니야의 편에 섰던 자들이 축출되고 있다. 

왕권은 솔로몬에게 있으며, 아도니야는 어리석게도 욕심을 부리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다윗의 마지막 몸종이었던 수넴 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맞게 해 달라고 요청하다가 솔로몬의 분노를 샀다. 

아도니야가 죽자 그의 라인이었던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도 징계를 받고 귀향을 가거나 죽임을 당한다. 

인간 세계의 권력은 대체로 무자비하다. 

혈연이라도 왕의 권력에 위배되는 자들은 숙청되기 마련이다. 

이런 현실이 갑자기 슬퍼진다. 

권력이 집중되면 어쩔 수 없이 인간성이 말살된다. 

최고 권력자에게 무한 권력이 주어지면 주변 사람들은 파리 목숨이다. 

왕의 심기에 의해 생명이 들고나간다. 

다윗의 왕조가 하나님의 언약에 의거해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리는 온전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용서와 회복과 포용과 환대가 있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왕정국가의 모순이 부각된다. 

물론 다른 나라에 비하면 조금 나은 구석이 있긴 하다. 

율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간청은 나름 훌륭한 기도였다. 

지혜롭게 재판하고 판견하는 에피소드는 그것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온전한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솔로몬 시대 당시의 다른 민족들의 왕국과는 대조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우리의 기준에 못 미친다. 

솔로몬도 어쩔 수 없이 정적을 죄다 숙청한다. 

이유야 어떻든 왕권 강화를 위한 현실적 대처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왕국을 안정화시키며 자칫 다시 찾아 올지 모르는 반역과 내전을 미리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나도 현실적으로 불가피하게 지지하지만, 속은 쓰리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과 온전함에 눈을 돌린다. 

 

 

32주님께서, 요압이 흘린 그 피를 그에게 돌리실 것이다. 그는 나의 아버지 다윗께서 모르시는 사이에, 자기보다 더 의롭고 나은 두 사람, 곧 넬의 아들인 이스라엘 군사령관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인 유다의 군사령관 아마사를, 칼로 죽인 사람이다.

 

솔로몬의 이런 평가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과연 요압보다 아브넬과 아마사가 더 의로웠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솔직히 거기서 거기다. 

요압, 아브넬, 아마사… 모두 공과가 있다. 

솔로몬은 다윗의 유언(왕상 2:5-6절)을 받들어 요압에게 더욱 냉혹하다. 

제단 뿔을 잡아 도움을 요청함에도 솔로몬은 요압을 죽였다. 

요압이 과실이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의 공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다윗의 편에서 오랫동안 전쟁을 수행했던 장군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불명예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럴바에야 전장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명예롭다.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욕망과 욕심에 이끌려 결정한다. 

오랜시간 요압은 요압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사람들을 죽여왔다. 

아마도 다윗을 위한 일이라는 명목상의 이유는 있었겠지만, 내적 동기는 거기에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요압이 자각했든 못했든 자신 안에 있는 정치적 욕망이 강하게 작동했다. 

그 결과는 불명예스런 죽음이었다. 

 

예수님이 그리셨던 하나님 나라와 비교, 대조해 본다.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은 그에 한참 못미친다. 

솔로몬의 왕권 강화는 어떻게 보면 최종적 하나님 나라의 도래 때 일어날 사단과의 전투에 비견될 수도 있겠다. 

조금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억지로 의미 부여를 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솔로몬이 만드는 왕국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래서 더욱 그립다. 

그분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다시 꿈꾸게 된다. 

 

기독공동체는 이상을 꿈꾼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모두가 화목하고 용서하는 아름답고 순전한 공동체를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쪼잔한 문제로 싸우고, 감정이 상하고, 토라지고, 뒷담화하고, 욕하고 배신한다. 

그래서 이상을 꿈꾸지 말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현실을 인정한다. 그 현실을 항구로 두고 이상을 향해 노를 젓는다. 

아벱, 송청 모든 공간에 이상을 향한 추구가 끊이지 않길 소망한다. 

 

——

꿈을 주시는 하나님, 

현실은 무시무시합니다. 

권력이 있는 곳에 폭력이 있고, 암투가 있고, 살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꿈은 배려, 포용, 용서, 화해, 평화가 있습니다. 

이 땅의 그 어떤 왕도 하나님 나라의 꿈을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보여준 용기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고 동료를 살해하고 혈연을 몰살시켰습니다. 

주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인간의 죄악과 잔혹함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꿈을 주시는 예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심어 주시고 그것을 위해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오늘도 분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저에게 성령님의 은사로 채워주세요. 

힘과 지혜가 가득하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