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6일 목요일
켄트 아일러스, <슬기로운 신학독서>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놀라운 반전을 발견한다. 여느 연구 분야와 달리 신학의 객체가 신학을 연구하는 주체와 자리를 바꾸고 역할을 바꾸어 연구자 자신이 연구되고 드러나고 미완으로 있고 새로워진다. 하나님이 신학의 객체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거리에서 신학을 연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p. 55
켄트 아일러스는 신학공부에 새로운 도전을 준다.
정박되어 있었던 ‘진리에 대한 추구’라는 배를 다시 항해하게 한다.
철학 공부하면서 ‘진리추구호’는 곳곳을 여행했다.
어디선가 표류하기도 했다.
정박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삶이 고단해서 항구에 닻을 내리고 그 지역을 탐사했다.
탐사 자체는 제법 성공적이어서 삶의 근간을 세우고 신앙의 뼈대를 찾았다.
허나 하나님이 어찌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한계에 갇히신단 말인가!
그분은 가깝지만 여전히 멀리 계신 분이며, 알 듯 하지만 또 모르는 분이시다.
그분을 알아가는 것에는 끝이 없고, 그분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은 평생에 걸친 미완의 대작과 같다.
그러니 진리추구호를 다시 띄운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역동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신학은 진리추구호의 연료요 엔진이요 방향타다.
내가 연구하지만, 결국 내가 연구 당한다.
하나님은 신학의 대상이지만 또한 신학의 주체다.
내가 그분을 연구하면서 그분이 나를 드러내심을 발견하고 내가 변화됨을 경험한다.
신학은 지식이 아니라 그래서 기도다.
켄트 아일러스는 기도로서의 신학을 책 곳곳에 심어 놨다.
신학책을 읽으면서 각 장의 기도문을 꼼꼼하게 읽은 적이 별로 없는데, 이 책은 그냥 넘어가지 않게 그 페이지에 머물도록 독자를 붙잡는다.
신학 독서는 하나님과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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