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8일 화요일

김근주, <생각을 깨우는 히브리어 365>

 

오늘의 문단

 

히슈타하바

그러나 나는 주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어 주님의 집으로 나아갑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성전 바라보며, 주님께 꿇어 엎드립니다._ 시 5:7

히슈타하바는 '엎드리다' 혹은 '엎드려 절하다'를 의미한다. 왕이나 윗 사람, 혹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현할 때 그 사람 앞에서 엎드리면서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높인다(예를 들어 삼상 24:9).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났을 때 그의 형들은 그에게 엎드려 절했다(창 42:6, 43:28).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 에게 몸을 굽히게 될 것이고, 그를 멸시하던 자들이 모두 그 발 앞에 엎드리게 될 것이다(사 60:14). 하나님께서 행하실 때 이와 같은 전세의 역전이 벌어져, 다른 이를 업신여기며 짓밟던 강자들이 도리어 땅에 엎드려 그들이 무시하던 이들에게 절하게 될 것이다. 히슈타하바가 쓰인 많은 용례는 '하나님'과 연관된 것들이다. 엎드리는 대상이 주 하나님 일 때, 이 동사는 '엎드려 절하다'에서 '경배하다' 혹은 '예배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창 24:26, 출 34:8, 대하 7:3, 느 8:6, 시 29:2). 원래는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절했겠지만(예를 들어 시 95:6), 아예 '경배/ 예배하다'라는 의미가 되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그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엎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비하하고 천시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나 자랑,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할 수 있고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래서 '경배'는 하나님 한 분이 우리의 능력이요, 권세이심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P. 140

 

 

이 책에서 이 단어를 고른 이유는 내 이름과 유사해서다. 

히슈타하바, 이 단어 외에는 내 이름과 비슷한 다른 단어가 없었다. 

혁수 타봐!! 이렇게 읽히는 단어. 

그런데 알고 보니, 꿇어 엎드린다는 뜻이란다. 

성경에 용례를 살피니, 때로는 강자가 약자에게 꿇어 엎드리는 장면을 묘사하기도 한다. 

가장 많은 용례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온전해 진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하나님을 높일 때 인간성의 회복이 시작된다. 

욕망과 자아 확장을 선으로 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주의 절대자 앞에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분께 나 자신을 낮추고 그분을 높이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결심을 주기적으로 하는 행위, 이것이 히슈타하바이다. 

이런 참된 인간의 회복과 사회 회복의 기차에 타라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는다. 

혁수야 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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