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09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22 엘리는 매우 늙었다. 그는 자기 아들들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저지른 온갖 잘못을 상세하게 들었고, 회막 어귀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23 그래서 그는 그들을 타일렀다. “너희가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하느냐? 너희가 저지른 악행을, 내가 이 백성 모두에게서 듣고 있다. 

24 이놈들아, 당장 그쳐라! 주님의 백성이 이런 추문을 옮기는 것을 내가 듣게 되다니, 두려운 일이다. 

25 사람끼리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중재하여 주시겠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변호하여 주겠느냐?” 아버지가 이렇게 꾸짖어도,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께서 이미 그들을 죽이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26 한편,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주석

22절. 성전에서 일한다고 언급된 여자들이 어떤 일을 수행하고 있었는지는 밝혀내기가 어렵다. 엘리의 아들들이 저지른 성적인 비행에 대한 비난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여자들은 모종의 경건한 의무에 관여하고 있어야 했던 것 같다(IVP 배경주석)

 

Message

But they were far gone in disobedience and refused to listen to a thing their father said. So GOD, who was fed up with them, decreed their death(25절 후반부).

 

[오늘의 묵상]

엘리는 매우 늙었다. 

사람들이 노년에 기대하는 것은 안정적인 노후 생활과 함께 좋은 평판이다. 

좋은 평판은 그가 뿌려놓은 씨앗들의 열매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잘 자라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그 부모는 좋은 평판을 듣는다. 

노인들의 소일 거리가 자녀 자랑인 이유다. 

 

엘리, 자기 개인은 제사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했으나 부모로서의 역할은 잘 감당하지 못했다. 

아들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바뻐서였을까? 아님 훈계를 정확하고 엄격하게 전달하지 못해서였을까? 

결국 그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으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심지어는 회막 어귀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섹스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일파만파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망나니같은 행동에 제동을 거는 사람들이 없었다. 

오직 엘리가 그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늙은 엘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제물에 손을 댔던 자녀들이 커서는 율법에 저촉되는 일들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죄가 크기 전에 막았어야 했다. 

엄격한 훈육이 필요했다. 

그 일을 하지 못한 엘리의 잘못이 크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제사장직에서 파면했다. 

유진 피터슨은 그의 번역은, ‘하나님은 그들이 지긋지긋해서 그들의 사망을 선언했다’고 적었다. 

한 두 번의 잘못이 아니었다. 

오랜 불순종, 오랜 죄악의 습관의 결과는 사망이다. 

엘리의 말을 들어보자. 

 

24 이놈들아, 당장 그쳐라! 주님의 백성이 이런 추문을 옮기는 것을 내가 듣게 되다니, 두려운 일이다. 
25 사람끼리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중재하여 주시겠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변호하여 주겠느냐?”

 

엘리의 말은 일면 맞지만 일면 틀리다. 

사람끼리 죄를 짓는 것,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에게 짓는 죄가 아니다. 

사람에게 지은 죄는 하나님께 지은 죄다.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고 도적질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된다. 

 

그렇지만 엘리의 말 속엔 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민사상의 분쟁의 경우 율법에서 규정한 바대로 해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제사법을 어기는 경우는 하나님께 대한 규정을 직접 어기는 일이다. 

지속적으로 제사법을 어기고 정결규정을 어기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죄가 된다.

그것이 제사장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잘못은 결국 하나님의 이미지를 훼손한다. 

 

구약의 제사장과 지금의 개신교 목사를 같은 위치에 놓아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성직자를 통해 하나님의 이미지를 보곤 한다. 

성경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작업을 어려워하고 도리어 성직자를 통해 하나님의 이미지를 찾으려 한다. 

그러기에 개신교 목사들도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과거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목사 중에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개혁파 칭의 교리에 의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목사가 그렇게 많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목사에게 주어진 소명, 즉 말씀을 가르치며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소명에 비추어 볼 때, 과연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목사의 수가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보면, 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나의 삶을 되돌아 본다. 

하나님의 공동통치자로서 과연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누군가의 회복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도리어 방해를 하는 것은 아닌가?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오늘의 기도]

저에게 목사의 소명을 주신 주님,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게으르지 않되,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여 주어진 역할을 끝까지 잘 수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이름과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자기를 부인하고, 나의 욕구보다 하나님의 열망을 크게 경험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작은 죄를 무시하지 않고, 저 스스로를 갈고 닦아서 더욱 경건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감당하길 원합니다. 

저의 의지만으로, 고집스러움으로,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하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하고 욕구와 필요를 잘 확인하여, 그 때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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