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22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태를 제일 먼저 열고 나온 것 곧 처음 난 것은, 모두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에게 바쳐라.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처음 난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3 모세가 백성에게 선포하였다. "당신들은 이집트에서 곧 당신들이 종살이하던 집에서 나온 이 날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거기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날이니, 누룩을 넣은 빵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4 첫째 달인 아빕월의 오늘 당신들이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5 주님께서, 당신들의 조상에게 주신다고 맹세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당신들은 이 달에 다음과 같은 예식을 지키십시오.

6 당신들은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하며, 이렛날에는 주님의 절기를 지키십시오.

7 이레 동안 당신들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하며, 당신들 영토 안에서 누룩을 넣은 빵이나 누룩이 보여서는 안 됩니다.

8 그 날에 당신들은 당신들 아들딸들에게, '이 예식은, 내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다' 하고 설명하여 주십시오.

9 이 예식으로, 당신들의 손에 감은 표나 이마 위에 붙인 표와 같이, 당신들이 주님의 법을 늘 되새길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당신들을 이집트에서 구하여 내셨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므로 당신들은 이 규례를 해마다 정해진 때에 지켜야 합니다."

 

주석

초태생 봉헌(2절) 어떤 어미에게서 난 것이든 초태생은 신에게 속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대 근동에서는 이러한 개념으로 인해서 때로 다산을 보장받기 위해 아이를 제물로 바쳤다(IVP 배경주석). 

 

처음 난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2절). 7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하는 무교절 예식이 다시 설명됩니다(3-7절). 무교절 예식을 통해 부모는 자녀들에게, 주님이 강한 손으로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무교절 예식은 하나님의 구원을 되새기는 주님의 법입니다(8-9절).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대대로 가르쳐 기억하게 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이 행하신 크고 핵심적인 일들에 의존하는데, 그 일들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그 일에 집중적으로 쏟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전해 듣기만 했을 뿐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을 오늘 나의 현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가정과 공동체에 이러한 신앙의 전수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헌신합시다.

 

[오늘의 묵상]

처음 태어난 것_초태생, 맏이_은 모두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어떤 이교에서 행하듯,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절대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교 행위를 우상숭배로 규정하시고 절대 싫어하신다. 

그럼에도 초태생은 모두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1. 10번째 재앙을 상기 

10가지 재앙 중에 가장 강력하고 무섭고 고통스런 재앙이 10번째 장자의 죽음 재앙이다. 

그 재앙으로 인해 이집트의 파라오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에, 혹은 자칫하면 자신의 생명도 날아갈 판이기에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들었다. 

모든 초태생의 생명을 주님이 앗아가셨다. 

이집트의 죄악과 고집을 심판하셨다. 

이 10 번째 재앙은 영원히 기억될 만한 것이었다. 

그 재앙으로 이스라엘은 풀려났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번째 재앙은 영원토록 기억해야 할 재앙이다. 

 

2. 모든 것은 주님의 것

초태생을 바친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다. 

고대 사회의 첫자녀는 종족보존의 첫발이다. 

자녀가 생기지 않으면 그 가족은 얼마 안있어 소멸된다. 

종족의 생존이 위기에 처한다. 

소규모 전쟁과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녀의 출산이 핵심이다. 

가족주의, 부족주의가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일텐데, 그 이데올로기를 뒷바침하는 것이 출산이다. 

초태생은 그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강력한 자산이다. 

따라서 초태생을 바친다는 것은 자산의 근원을 바친다는 의미요, 미래의 자신을 바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하다. 

 

3. 생존의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

2번과 연결된다. 

초태생이 앞으로의 삶의 근거를 놓아주는 첫출발이 된다면, 그 생존과 번영의 근거를 주님께 두라는 명령이 된다. 

자신의 힘으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라는 것이다. 

생존과 번영의 참 근거는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 자라나는 아이들, 점점 리더십을 전수 받는 아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 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의지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이 신앙의 고백이 바로 초태생을 바치는 것이다. 

 

무교절의 절기에 꼭 들어가는 행위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무교절 빵, 즉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먹는 행위다. 

다른 하나는 손이나 이마에 붙이는 기념 장식이다. 

이 둘 행위도 모두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위다. 

동시에 오늘 본문에서도 강조되어 있는 것처럼, 아들딸에게 전달, 전수하라는 명령에 대한 순종적 행위다.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다. 

당연히 현재와 미래의 종교이기도 하겠지만, 그 뿌리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다. 

미래의 소망 때문에 과거의 사실을 지어내는 종교가 아니다. 

현실의 안위와 생존 때문에 허상과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종교가 아니다. 

역사 속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가 그려진다. 

이집트 탈출이 그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사단에게로부터의 탈출이 그것이다. 

그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성경을 읽는 것은 따라서 과거의 사건을 다시 상기하며 현재와 미래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다. 

역사적 사건을 통해 미래로 투사한다. 

하나님의 개입 역사는 현재와 미래로 다시 투사되어 예언과 환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과 환상의 이미지가 점점 현실이 되어 간다. 

기억의 종교가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니 모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야기로 기억하고 노래로 기억하고 연극공연으로 기억한다. 

예식으로, 예배로, 설교로 기억한다. 

그 기억이 현재와 미래로 던져지도록 서로에게 격려한다. 

아들딸에게도 그 기억이 미치도록 도와야 한다. 

다음 세대를 잘 도와야 하는 이유다. 

 

포스트모던시대, 그속에 놓인 모던한 사람들, 포스트휴먼 시대. 

유툽, SNS, AI 등등

새로운 세대가 올라온다. 

그들에게 복음은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

그들에게 기독교의 기억은 어떻게 각인해야 하는가

 

오늘도 그 고민을 한다. 

주님의 도움을 구한다. 

고대의 손과 이마에 붙였던 그 장식은 어떻게 현재에 부활시킬 수 있을까? 

 

 

[오늘의 기도]

역사의 하나님, 

역사의 주인공인 예수님, 

역사를 끌고 계신 성령님, 

오늘 이시간 찾아 오셔서 다음 세대를 구비시켜주세요. 

삼위 하나님께서 더욱 적극적으로 일하여 주셔서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일들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활동이 나만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과 다음 세대를 위한 활동이 되게 하소서.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형제 자매들을 도와주세요. 

회복되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세요.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재난 속에 있는 이재민들을 도와주세요.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아가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힘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21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43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다. 이방 사람은 아무도 유월절 제물을 먹지 못한다.

44 그러나 돈으로 사들인 종으로서 할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먹을 수 있다.

45 임시로 거주하는 타국인이나 고용된 타국인 품꾼은 그것을 먹을 수 없다.

46 어느 집이든지 고기는 한 집에서 먹어야 하며, 그 고기를 조금이라도 집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서는 안 된다. 뼈는 하나라도 꺾어서는 안 된다.

47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다 함께 이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48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외국인이 주님의 유월절을 지키려고 하면, 너희는 그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받게 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는 본국인과 같이 되어서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

49 본국인에게나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타국인에게나, 이 법은 동일하다."

50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51 바로 이 날에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각 군대 단위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유월절 규례는 이러합니다. 이방 사람, 타국인이나 타국인 품꾼, 그리고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유월절 제물을 먹지 못합니다(43, 45, 48절). 그러나 할례를 받은 종이나 외국인은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44, 48절). 할례라는 기준은 본국인이나 타국인이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49절). 고기는 집 바깥으로 가지고 가면 안 되고, 뼈도 꺾어서는 안 됩니다(46절).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 함께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47절).

 

할례를 통해 이방인들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열방이 아브라함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는 아브라함 언약과 할례의 적용입니다(창 12:3; 17:10; 22:18).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공동체의 예배와 모임이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고 복음으로 초대하는 모임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유월절은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다 지켜야 한다. 

한 명도 빠져서는 안된다.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명령과 규정에 반응하고 따라야 한다. 

절기를 통해 역사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의도를 상기하며, 공동체를 누린다. 

모든 사람이 모여 함께 큰 의식을 치른다.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은 일종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이 만들어 조성하신 새로운 세상을 누린다. 

그렇게 유월절은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다 지키는 날이다. 

 

역사를 기억한다.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한다. 

이집트에서 경험했던 고통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자신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숱한 기도들을 다시 생각한다. 

하나님의 10가지 재앙을 바라본다. 

이집트 사람에게 내려진 재앙과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은혜를 떠올린다. 

결국 이집트로부터 탈출하는 장면까지 이르면 감사와 기쁨이 절로 오른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를 상기한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셨는지 되짚어본다. 

하나님 나라 백성을 만들어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려는 그 의도를 기억해낸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의 인권/하나님 형상 회복시키시려는 선한 의도를 상기한다. 

대대로 영원히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온 우주의 주인임을 드러내시려는 그분의 의도를 파악한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기억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도를 상기한다. 

 

공동체를 누린다.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서 역사를 기억하고 주님을 찬양한다. 

음식도 특별하고, 행동하는 것도 평소와 다르다.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그렇게 한다. 

그러니 그들의 기도는 모두의 마음에 울리고, 그들의 제사는 모두를 흥분시킨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모였다. 

그들은 하나가 된다. 

한 마음이 된다. 

공동체를 누린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절기다. 

민족적, 혈통적 경계로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의도를 기념하여, 그 모든 기념식과 절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민족에 상관없이 들어올 수 있다. 

함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들도 하나됨을 누릴 수 있다.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은 개방적인 하나님이시다.
폐쇄적인 분이 아니시다. 

모두에게 하나님 나라는 열려있다. 

그 안으로 들어오면 된다. 

그 절기 안으로, 하나님의 공동체로 들어오면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절기다.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로 시작되는 시점의 정신은 개방성을 포함한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분리했던 지점이 있고, 시오니즘에 경도된 적도 있었다. 

유대민족 우선주의에 빠져 있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시작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개방성을 특징으로 한다. 

다만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규정을 잘 지키겠다는 언약을 몸과 마음으로 해야한다. 

그런면에서 하나님 나라는 혈통이 아니라 언약에 있다. 

하나님과 약속을 맺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나가겠다는 결심이 중요하다. 

실수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약속에 기반한 삶을 추구해 나간다. 

어떤 사람들이라도 참여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라도 하나님과의 약속과 언약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니 초창기 이스라엘의 국가 정신은 개방성을 포함한다. 

 

하나님 나라 교회는 개방성이 중요하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주님과 관계를 맺고, 약속을 맺고, 그 약속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상관없다. 

개방적인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된다. 

개방적이지 않은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 중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교회는 개방성이 중요하다. 

 

기독 공동체 운동을 펼치면서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개방성과 경계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가져가냐 하는 것이다. 

개방적이라고 해서 언약을 맺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다 포함시키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경계성은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기도 하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경계가 없다면 새로운 나라도 없다. 

이집트와 다른 새로운 이스라엘이 된다는 말은 정신적, 종교적 경계를 짓는다는 말이다. 

당연히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법과 규정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동등하게 소속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경계를 잘 짓고 그 경계를 넘어 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개방적이되, 하나님 나라 경계를 넘어 오도록 격려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경계를 어떻게 지을 것인지, 개방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등등. 

이것이 오랫동안 기독 공동체 운동을 해 오면서 고민하던 내용이다. 

개방성과 경계성의 조화!!

 

바라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공동체가 좀더 개방적이되, 더욱 주님께로 가까이 가도록 돕는 일에 함께 헌신하기를 바란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 안에, 내 안에 계셔서 우리를 그리고 나를 찾고 계신다. 

이런 공동체가 더욱 많아지길,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이런 공동체가 되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한국의 기독 공동체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이 자기들만의 리그에 갇혀 있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기를 소망합니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전달하게 하소서. 

그래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꿈꾸되, 현실의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게 하소서. 

현실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꿈을 꾸게 하소서. 

 

주님, 

다가오는 수련회를 통해 청년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청년들로 자라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18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37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으로 갔는데, 딸린 아이들 외에, 장정만 해도 육십만 가량이 되었다.

38 그 밖에도 다른 여러 민족들이 많이 그들을 따라 나섰고, 양과 소 등 수많은 집짐승 떼가 그들을 따랐다.

39 그들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부풀지 않은 빵 반죽으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구워야 하였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급히 쫓겨 나왔으므로, 먹거리를 장만할 겨를이 없었다.

40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삼십 년이었다.

41 마침내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 날, 주님의 모든 군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

42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님의 밤'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주석

장정만 해도 육십만 가량(37절) 남자가 60만 명이었다면 전체는 200만 명 이상이었을 것이다. 당시 이집트의 전체인구는 겨우 400만에서 500만으로 추정된다. 이동할 때 사람들의 행렬은 320킬로미터 이상 길게 늘어졌을 것이다. 가족과 짐승들이 진을 옮길 때 이동할 수 있는 평균 거리는 하루에 10킬로미터 정도뿐이었을 것이다(IVP 배경주석).

 

사백삼십 년(40절) 430년은 아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처음 도착한 후 그들이 그 곳에서 누렸던 평화의 기간을 포함할 것이다(IVP 성경주석). 

마침내 430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이 행하신 기적으로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아이들 외에 장정만 60만 명, 그밖에 여러 민족들과 수많은 집짐승 떼가 따라 나왔습니다(37-38, 40-41절). 그들은 이제 노예가 아니라 주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41절).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해 주님이 밤새워 지켜주신 그 특별한 밤은, ‘주님의 밤’이 되었고, 앞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습니다(42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하고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5:13-14). 400년이 흘러 아브라함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남아 성취되었습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도 믿음의 선배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이 주님의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오늘의 묵상]

다른 민족 사람들이 따라 나온다. 

히브리 사람들만 탈출한 것이 아니다. 

이집트의 압제에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 함께 나온다. 

그들의 정확한 인원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성경 그대로 본다면 “많이” 따라 나왔다. 

저주받은 이집트 땅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고센 땅의 히브리 민족만이 많은 재앙으로부터 보호받았다. 

죽음의 사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안 그래도 이집트 파라오의 통치 속에서는 기를 펼 수 없었다. 

이참에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도,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해 볼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다른 민족 사람들이 히브리 민족을 따라 나온다. 

 

이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광야로 예배하기 위해 떠난 사람들은 히브리 민족만이 아니었다. 

가나안을 향해 길을 나섰던 사람들은 히브리 민족만이 아니었다. 

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함께 그 길을 나선 것이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놀랍지만, 어찌보면 당연하다. 

오랫동안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라면, 대안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저주의 땅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믿었던 이집트의 신들은 차례차례 무너지고, 남은 것은 자신들의 생존 본능 뿐이었다. 

죽지 않으려면 이집트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한 두 번의 재앙으로는 따라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10번의 재앙은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10번의 재앙으로 그들은 마음을 굳혔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이름도 없었던 신을 의지하여, 히브리 노예들을 따라 나선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일종의 믿음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에 편입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 

장정 60만명 중에 이들도 함께 한다. 

그러니까 광야로 들어간 사람들은 히브리 사람들만이 아닌 것이다. 

10가지 재앙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 그래서 유월절을 앞으로 지키겠다고 결심한 사람들, 이들 모두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이다. 

피로 연결된 백성이 아니다. 

믿음으로 연결된 백성이다. 

믿음의 결단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 

물론 이런 믿음을 발휘한 사람들 대부분이 히브리 노예들이었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도 많았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믿음의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다. 

예수님을 초청을 받아들여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벗어난 사람들이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등의 어부들이 그랬다. 

세리 마태가 그랬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정처없는 여행을 떠났다. 

3년간의 광야 생활을 시작한 것이었다. 

바울을 비롯한 바나바, 실라, 디모데, 누가, 마가 등도 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벗어나 믿음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이제 장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초연결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세계 어디든 연결되어 있다. 

지금 시대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꿈꾸고 상상하던 세상의 모습과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것, 그렇게 새로운 세계관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광야의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광야로 나아가길 선택하는 사람들.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배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혈연, 지연, 학연이 아니라 신연이다. 

믿을 신, 바로 믿음의 인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따라서 애당초 개교회 중심주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각각의 공동체와 교회가 가진 개성이야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게 중심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연결된 보편적, 우주적 교회가 참 교회다. 

이런 연결성을 계속 인식하고, 이기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교만한 개교회, 개단체 이기주의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모두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그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더 깊이 인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당신의 백성을 구성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렇게 나도 우리도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 

그 광야의 예배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기도]

믿음의 길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 나라 백성은 오합지졸로 보이지만, 믿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적, 세계적 연결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함께 응원하고 끝까지 갈 수 있도록 돕길 원합니다. 

주님, 새롭게 편입되는 주님의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도록 잘 안내하게 해 주세요. 

 

피정을 통해 느끼고 깨달은 주님의 은혜를 오래 간직하게 하시고 흘려보내게 해 주세요. 

일상에서 종종 이런 피정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도와주세요. 

 

전쟁으로, 지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주세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모델이 있음을 알려주세요. 

예수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편입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알려주세요. 

주님 그들에게 구호의 손길, 구원의 은혜가 넘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17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9 한밤중에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을 모두 치셨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두 치시니,

30 바로와 그의 신하와 백성이 그 날 한밤중에 모두 깨어 일어났다. 이집트에 큰 통곡소리가 났는데, 초상을 당하지 않은 집이 한 집도 없었다.

31 바로는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너희와 너희 이스라엘 자손은 어서 일어나서, 내 백성에게서 떠나가거라. 그리고 너희의 요구대로, 너희는 가서 너희의 주를 섬겨라.

32 너희는 너희가 요구한 대로, 너희의 양과 소도 몰고 가거라. 그리고 내가 복을 받게 빌어라."

33 이집트 사람은 '우리 모두 다 죽게 되었다'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서 이 땅에서 떠나라'고 재촉하였다.

34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빵 반죽이 부풀지도 않았는데, 그 반죽을 그릇째 옷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나섰다.

35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의 말대로 이집트 사람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의복을 요구하였고,

36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사람에게 환심을 사도록 하셨으므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요구대로 다 내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서,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아 가지고 떠나갔다.

 

NIV

The LORD had made the Egyptians favorably disposed toward the people, and they gave them what they asked for; so they plundered the Egyptians(36절).

 

주님이 한밤중에 이집트의 처음 난 모든 것을 치셨기 때문에, 이집트 백성이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29-30절). 그때에야 비로소 바로는 아무 조건 없이 이스라엘 백성이 떠날 것을 허락했습니다(31-32절). 주님이 지시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은금 패물과 의복’을 이집트 사람에게 요구하였습니다. 또한 이집트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의 요구대로 다 내어 주었습니다(35-36절).

 

열 번째 재앙은 고집스러운 바로를 무너뜨립니다. 이제 바로와 이집트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줄 것을 촉구합니다. 그토록 바라던 소망이 너무도 갑자기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심판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경제력을 포기할 만큼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은금 패물과 의복을 들고 이집트를 떠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룻밤 사이에도 엄청난 변화를 일으킵니다. 나의 삶에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를 바라는 부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결정적인 행하심을 의뢰하며 인내합시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민족이 겪은 고통을 드디어 파라오가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태어난 아들을 죽여야만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통을 이집트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죽어갔던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그 부모의 신음소리를 이제야 파라오도 경험한다. 

오랫동안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잠재적 정적을 잔인한 폭력으로 제거하려고 했던 파라오 일당은 그들의 악행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을 친다. 

고통 속에 울부짖는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그야말로 순식간, 삽시간이었다. 

집집마다 곡하는 소리가 천지를 울린다. 

사람도 죽고, 동물도 죽었다. 

영원할 것 같은 정권도 이렇게 순식간에 끝날 수 있다. 

이제야 비로소 약자들이 겪은 고통을 파라오가 알게 된 것이다. 

 

그 밤에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부른다. 

이 모든 일이 모세와 아론으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재앙과 심판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날 거라 이미 경고를 들은 바 있다. 

이제는 두 손 두 발 다 든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모세와 아론을 부른다. 

궁과 도성 전체에 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파라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속히 모세와 아론을 불러 더 끔찍한 일이 생기기 전에, 그러니까 자신의 생명이 끝나기 전에, 하나님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니 그 밤에,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모세와 아론을 부른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한 나라를 세울 만큼의 많은 재물을 가지고 떠났다. 

단순히 예배드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가축과 재물을 얻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모두 죽음의 고통을 안고 있다. 

슬픔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전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한 사람들은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사람들에게 환심을 샀다고 했는데, 얼핏보면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된다. 

이집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 얄미운 존재가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가축들이 죽어 나갈 때, 이스라엘은 멀쩡했다. 

흑암이 자신들을 엄습했을 때도 이스라엘은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맏아들이 다 죽어 나갔는데도 이스라엘은 끄떡없다. 

너무 미워서 미칠 것만 같았을 텐데도,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단순히 얄밉고 두려워서 그런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호의가 그들에게 생겼다는 것이 성경이 강조하는 바다. 

그 마음의 심리가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엄청난 재물을 가지고 그 밤에 떠난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예수님이 미리 예고하셨음에도 바로 그날, 유월절 전날 밤에 그렇게 잡혀 가시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그리고 잡히신 바로 그 날 십자가에 처형 당하실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의 기대와 계획과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다. 

하나님의 일을 함부로 예단하기 어려운 이유가 이것이다. 

이집트를 떠나는 순간도 예상 밖이고, 사단의 권세를 파괴하는 십자가 사건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사탄도 준비할 수 없다. 

그들도 예단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시간 계획 안에 있다. 

그분의 계획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조차 그것을 비밀로 둔다. 

 

그러니 깨어서 반응할 뿐이다. 

하나님의 개입에 미적대지 말고 급히 일어나 빵과 음식을 가지고 필요한 물품을 챙겨서 반응해야 한다. 

그분이 가라시는 대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가야 한다. 

게으르게 움직였다가는 타이밍을 놓친다. 

한 밤 중이 될 수도 있고, 한 낮이 될 수도 있다. 

언제 그분이 지금의 역사 속에서 등장하실지 아무도 모른다. 

그분의 등장, 그분의 개입에 적극적으로 순발력있게 반응할 마음과 몸의 준비를 해야 한다. 

 

두려움과 억지로 함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반응하고 싶다. 

그 날이 오늘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리라. 

그분의 일하심과 개입하심을 기대하며 하루를 보내고 싶다. 

 

 

 

[오늘의 기도]

인류 역사에 개입하셔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신 하나님, 

우리는 항상 두려움에 휩싸여 삽니다. 

사단의 공격은 언제나 우리의 약점을 향합니다. 

가장 약한 곳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강한 힘으로 붙드십니다. 

주님께 붙들린 바 되었을 때, 우리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죄와 죽음과 두려움의 노예로부터 우리를 구출시켜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자유를 더욱더 선포하게 하시고, 

그 자유를 더욱더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냇가에 심은 나무 > 출애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 12:43-51_유월절 규례  (0) 2023.02.21
출 12:37-42_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1) 2023.02.18
출 12:21-28_첫 번째 유월절  (0) 2023.02.16
출 12:15-20_ 무교절  (1) 2023.02.15
출 12:1-14_유월절  (0) 2023.02.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