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의 기도가 아니라 소망의 기도로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엇을 하겠다. 하지 않겠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고 싶다. 그래서 도와달라는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다.  
우리의 의지를 단련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 아니다. 
기도는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고백하는 통로이다. 
기도는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반응하여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간절한 열망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하겠다는 표현보다는 잠잠한 가운데 거하다가 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기도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혹 우리의 마음속에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는데 (물론 그 열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그 열망이 나의 육신의 소욕보다 작을 때,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이다. 
잠잠히 앉아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 은혜를 주시는 그분을 경험하고 그 경험의 결과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느끼고 그 소원이 점점 커지도록 말로 표현하고 도움을 간구하는 과정이 기도의 과정이다. 

무턱대로 다짜고짜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기도의 첫걸음은 그렇게 띄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좀 더 깊이 있는 기도가 있는데,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고 그분의 뜻에 순종토록 도우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분과의 연합을 꿈꾸며..... 
변화를 만드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좋은 변화를 계속 유지시켜내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초대교회는 1세기가 다가기 전에 요한으로부터 질책을 들어야 했다. (요한계시록 1-2장)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립이후에도 피의 살육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이방원의 정도전 살해 그리고 계속되는 왕과 사대부, 또한 붕당간의 정쟁을 통해 일어나는 살해). 
87년 민주화 투쟁의 결과 직접민주주의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내용이 그에 미치지 못했으며 그나마도 문민 정부 (김영삼), 국민의 정부 (김대중), 참여 정부 (노무현) 를 통해 실직절인 민주적 변화의 과정이 이명박 정권에 이르러서는 퇴행, 역주행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좋은 변화의 유지에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2012년 한국 땅의 정권 교체는 시대적 사명이다. 국민의 뜻이기도 하다. 기득권층은 어떡해서든 술수를 쓰려고 할 것이나 꼼수를 읽어내는 힘이 국민들 사이에 늘어나고 있다. 내년 총선은 민주통합당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로서는 말이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일어나고 변화가 가시화 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시작되면 그동안 변화를 만들어왔던 국민적 열정과 관심이 수그러들고 모두가 다시 제할일에 바빠지는 시기가 오게 될 것이고, 동시에 기득권층의 꼼수가 은밀히 준비될 것이며 그들의 권모술수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 때를 대비해야만 우리의 민주적 가치를 오랫동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유지. 이것은 끝까지 책임지려는 자세를 포함한다. 일터로 돌아가라는,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기득권 정치인의 말을 곧이 듣지 말자. 더이상 노무현의 전철을 밟는 지도자가 생기지 않도록 바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일상의 삶이 너무도 소중한 바로 우리가, 여의도와 청와대 그리고 조중동을 서슬퍼런 눈빛으로 쳐다보아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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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그의 책 전체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과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지속적으로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책 서문과도 같은 1장에서 우주적인 선포 즉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1:1-3) 는 강력한 주장을 한 후에 실제 예수님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증명코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 요한의 의도에 비추어 볼때, 초기 세례요한의 고백(1:34)과 나다나엘의 고백(1:49)은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고백은 과연 지금 내가 처한 한국땅과 교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구조적 악이 창궐하고, 사회적 약한 고리에 구조적 악이 집중되어 고통이 그 약한 고리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 돈이 우상이 되어 그것 이상을 바라보기 어려운 이때,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진실된 목소리를 상실한 사회, 역병처럼 뻗어나가는 패배의식과 죽음의 음산한 유혹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고백이 선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바로 인간 예수가 되셨음을 인정하고 이것이 가장 큰 사건임을 인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즉 돈, 권력, 쾌락이 거대담론이 되어 모든 논의의 기본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명제가 궁극적인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 다시 말해, 돈이 하나님이다, 권력이 하나님이다, 쾌락이 하나님이다, 라고 가정하는 사회에서 예수가 하나님이다 라고 가정하는 대화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이것이 오늘 내가 드러내야 할 진리인 것이다. 간사함 없이 궁극적인 동기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진정한 진리를 추구하는 자로서, 예수가 하나님임을 주장코자 한다. 

지금의 밀본은 본원이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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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재의 삶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소망 사이를 오고 가면서 진행된다. 
내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해서
미래에 펼쳐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현실의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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