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 이스라엘아, 너희는 기뻐하지 말아라. 이방 백성들처럼 좋아 날뛰지 말아라.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음행을 하였다. 너희는 모든 타작 마당에서 창녀의 몸값을 받으며 좋아하고 있다.2 그러나 타작 마당에서는 먹거리가 나오지 않고, 포도주 틀에서는 새 포도주가 나지 않을 것이다.3 에브라임이 주님의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앗시리아로 되돌아가서 부정한 음식을 먹을 것이다.4 이방 땅에서는, 주님께 포도주를 제물로 부어 드릴 수 없고, 그들이 바치는 제물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사람들마다 부정을 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허기진 배나 채울 수 있을 뿐, 주님께서 계신 집으로 가져다가 바칠 것은 못 된다.5 절기가 오고, 주님께 영광을 돌릴 잔칫날이 돌아와도, 무엇을 제물로 드릴 수 있겠느냐?6 재난이 닥쳐와서 백성들이 흩어지는 날, 이집트가 그 피난민을 받아들여도, 끝내, 멤피스 땅에 묻히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가지고 간 귀중한 금은 보화는 잡초 속에 묻히고, 살던 곳은 가시덤불로 덮일 것이다.

 

7 이스라엘은 알아라. 너희가 보복을 받을 날이 이르렀고, 죄지은 만큼 벌받을 날이 가까이 왔다. 너희는 말하기를 “이 예언자는 어리석은 자요, 영감을 받은 이 자는 미친 자다” 하였다. 너희의 죄가 많은 만큼, 나를 미워하는 너희의 원한 또한 많다.8 하나님은 나를 예언자로 임명하셔서 에브라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예언자가 가는 길목마다 덫을 놓았다. 하나님이 계신 집에서마저, 너희는 예언자에게 원한을 품었다.9 기브아 사건이 터진 그 때 못지않게, 이 백성이 더러운 일을 계속한다. 주님께서 이 백성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그릇된 행실을 다 벌하실 것이다.

 

NIV

The prophet, along with my God, is the watchman over Ephraim, yet snares await him on all his paths, and hostility in the house of his God(8절).

 

주석

9절. ‘기브아 사건이 터진 그 때’는 이스라엘 역사의 암흑 시기, 그리고 레위인의 첩과 그 사건의 여파를 회고하는 말이다(삿 19-21장). 사사기 저자의 평가는 이렇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이런 판결은 호세아의 시대에도 적절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거룩이 훼손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거룩의 개념을 넣어주시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오셨다. 

존재, 시간, 공간에 구분을 통해 거룩을 알고 느끼게 하셨다. 

성소, 지성소를 두어 안팎 공간적 거룩을 보여주셨다. 

안식일과 절기를 두어 시간적 거룩을 제시하셨다. 

먹을 수 있는 동물과 없는 동물, 제물로 바칠 동물과 그렇지 못한 동물을 구분하여 존재적 거룩을 예시하셨다. 

주님은 거룩하시니 당연히 그의 백성들도 거룩해야 했다. 

 

그러나 거룩이 훼손되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음란하게 다른 신을 섬겼다. 

그 순간 거룩은 훼손되어 버렸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율법에서 말했던 거룩의 기준들이 다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기준대로 대할 것이다. 

자신들이 아는 대로, 경험한 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더 이상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기뻐 받으실 수 없다. 

마음이 떠난 자들의 제사는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배와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뿐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쏟지 못하고 젯밥인 고기에만 눈길을 보낸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계획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자신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 굶주린 성욕을 채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에게는 손가락질을 한다. 

미친 놈이라 욕한다. 

원한과 미움을 품는다. 

언제든 예언자들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다. 

사실 호세아처럼 인생을 걸어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는 모습을 보면 미쳤다고 할 만 하다. 

음녀를 아내로 두지 않나, 아이들의 이름을 저주의 이름으로 짓지 않나. 

호세아의 말들이 그들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은 달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분의 말씀은 때로 날카로운 칼이요, 묵직한 도끼다. 

우리 존재 한복판에 쑥 들어와 헤집고 나간다. 

그동안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고, 변화를 만든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있다. 

그러기에 반발하고 저항한다. 

저항감이 없는 기도 생활은 정직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 앞에 서면 평안과 함께 저항감도 느끼곤 한다. 

그분은 평화의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죄를 싫어하는 거룩한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사랑과 거룩이 그분께 동시에 공존하니, 인간은 양가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 저항감을 갖고 계속 그분 앞에 서야 한다. 

 

존재의 고통을 안고 다시 주님 앞에 선다. 

나의 죄와 부족함을 알려주시면 알려주시는대로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오늘도 정직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저도 거룩하길 원합니다. 

거룩을 유지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유혹도 많고, 거짓도 많고, 이론도 많습니다. 

숱한 이론이 주님의 말씀과 메시지를 난도질합니다. 

물론 어떤 사상과 이론은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하고 더 돋보이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음란한 우상 숭배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주님, 분별의 지혜를 더하소서. 

예수님을 닮아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기도의 삶에서 저항감이 몰려 오더라도 참고 인내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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