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04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7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이런 일들이 언제 있겠습니까? 또 이런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다’ 하거나, ‘때가 가까이 왔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가지 말아라.

9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종말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10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이 일어나 민족을 치고, 나라가 일어나 나라를 칠 것이다.

11 큰 지진이 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이 생기고, 하늘로부터 무서운 일과 큰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고,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겨줄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13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므로 너희는 변호할 말을 미리부터 생각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15 나는 너희의 모든 적대자들이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16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줄 것이요, 너희 가운데서 더러는 죽일 것이다.

17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주석]

16-17절. 박해는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도 올 것이다. 그리고 박해는 순교를 가져오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만들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제자들의 질문은 나의 질문이다. 

마지막 때, 종말의 때를 묻는 제자들의 심정은 나에게도 동일하다. 

8-11절은 정말 이 세대의 끝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12-19절은 당시의 제자들이 맞닥뜨리게 될 일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재림의 때가 다가 올 수도록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단과 사이비가 판을 친다. 

한국에도 벌써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재림 예수라든지, 보혜사 성령님이라든지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사이비 때문에 다른 교회들이 욕을 먹고, 예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다. 

교리의 어떤 측면이 조금 다른 것은 이단이라고 한다. 

이것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이비다. 

사이비는 가정과 개인을 파괴한다. 

보편적 윤리를 업신 여긴다. 

 

전쟁과 난리의 소문이 곳곳에서 들린다. 

나라와 나라가 싸운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과 가뭄,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이런 일들이 지금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다. 

동아시아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가뭄과 기근 뿐만 아니라 홍수와 더위로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코로나19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바이러스가 상존한다. 

언제 발현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예수님이 지금 당장 오셔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다. 

아니 이제 오셔도 참 좋겠다. 

그분이 오셔서 그분의 통치를 보여주시길 바랄 뿐이다. 

전쟁이 그치고, 평화의 세상이 오길… 

빈부의 격차, 사람 사이의 차별이 사라지고, 사랑과 환대가 늘상 있으며, 공의와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세상이 오길 고대한다. 

더 이상 눈물도 없고,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 

세상의 모든 신비가 밝혀지는 세상. 

그분과의 인격적 교제가 일상이 되는 세상. 

영이신 하나님을 영육이 함께 만나 교제하는 세상. 

그날을 고대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다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복하다가 유대인과 로마인들에게 미움을 산다. 

결국 대부분의 제자들이 순교했다. 

예수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소중히 여기는 경험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것, 소중한 경험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 조차도 쉽게 버리는 세상이다. 

자살률이 OECD에서 1등이란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젊은이가 점점 늘고 있단다. 

특히 20-30대 여성들에게 더욱 크게 늘고 있단다. 

문명이 발달하고, 풍요로운 삶이 바로 옆에 있지만(과거에 비해)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신비를 이성으로 덮으려 한다. 

성도, 결혼도, 우주도, 관계도, 사랑도… 신비에 가깝다. 

신비를 돈, 논리, 심리, 생리, 경제로 환원하고 설명한다. 

설명이 있으면 신비가 사라진다고 믿는다. 

설명이라는 문장이 만들어지면 과연 신비가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은 설명하면 할수록 신비가 깊어진다. 

그 신비를 잃어버리니 소중한 것이 점점 줄어든다. 

하나님이라는 최고의 신비를 잃어버리니 신비의 근원에서 뻗어 나오는 보물들을 인정하지 못한다. 

 

예수의 이름은 그 자체로 신비하다. 

그 이름에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다. 

 

오늘도 그 이름을 의지하여 수많은 관계를 맺는다. 

 

[오늘의 기도]

주님, 

새로운 관계를 맺습니다. 

9명의 신입간사님들을 만납니다. 

그들과 두 달간 지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소중하듯이, 그들의 이름이 소중하게 자리잡게 하소서.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깨닫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첫 출발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8월 11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새 힘을 주십시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36 마치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라.37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38 주인이 밤중에나 새벽에 오더라도,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39 너희는 이것을 알아라. 집주인이 언제 도둑이 들지 알았더라면, 그는 도둑이 그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41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이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또는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42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청지기겠느냐? 주인이 그에게 자기 종들을 맡기고, 제 때에 양식을 내주라고 시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43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 그 종은 복이 있다.44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45 그러나 그 종이 마음 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여 있으면,46 그가 예상하지 않은 날, 그가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주인이 와서, 그 종을 몹시 때리고, 신실하지 않은 자들이 받을 벌을 내릴 것이다.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도 않고, 그 뜻대로 행하지도 않은 종은 많이 맞을 것이다.48 그러나 알지 못하고 매맞을 일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이 맡긴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

 

The Message

Great gifts mean great responsibilities; greater gifts, greater responsibilities!(48절)

 

주석

42절. 많은 유복한 집에는 ‘청지기’라고 부르는 종이 있었다. 그는 부동산을 관리하는 일종의 사업 관리자였다. 그 같은 고위 종은 다른 종에게 줄 배급량을 책임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IVP 성경배경주석).

주석

31절. 하나님 나라를 추구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 모든 삶을 그분의 통치 아래 놓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두는 것을 말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설교는 계속된다. 

돈을 추구하는 자들은 결국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잃게 된다. 

어리석은 부자는 진짜 염려하고 걱정해야 할 것은 팽개치고, 오직 돈에 관심이 쏠려 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집중한다. 

소유를 팔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라는 말씀이 무겁고 무섭게 다가온다. 

자신의 소유로 평생 호위호식하길 바라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눅 12:19)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청지기라는 의식을 망각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다. 

세상을 잘 관리하고 돌보고 보존하고 유지하는 일을 맡았다. 

가족, 교회, 직장, 그리고 공동체를 잘 관리하고 돌보고 보존하고 유지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주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직임을 부여받은 청지기 때문이다. 

청지기의 관심은 슬기롭고 신실함에 있다. 

주인이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해야 한다. 

주인이 다시 오실 때까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35절)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누구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오신다. 

그 날을 준비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실제 잠을 자지 말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겠는가? 

맡겨진 일을 슬기롭고 신실하게 감당하기 위해서는 잘 자야 한다. 

잠은 잘 자야 하지만, 마음은 항상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에 신실해야 한다. 

 

베드로의 질문은 참 뜬금없다. 

41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이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또는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지, 청자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종”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예수님의 대답은 간결하지가 않다. 

뭔가 꼬아서 대답하시는 느낌이다.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정리하자면,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많은 것을 맡긴 종이 될 것인데, 그 종이 폭력적이고 쾌락을 즐기고 자기 멋대로 군다면, 그는 주인에게 크게 혼이 나고 질책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맡을 것인데, 그도 잘못을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적은 책망을 받게 된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도 않고, 그 뜻대로 행하지도 않은 종은 많이 맞을 것이다.48 그러나 알지 못하고 매맞을 일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이 맡긴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사실 베드로에게는 정말 부담스러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베드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야이로의 딸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대화하는 장면을 직접 봤다.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들었다. 

주님의 기도에 대해 배웠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배웠다. 

성령님이 오실 것에 대해 배웠다. 

이렇게 많은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더욱 최선을 다해 종의 직무를 감당해야 한다. 

슬기롭고 신실하게 자연과 사람들을 돌보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께 소명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 

목사, 선교사, 사역자, 직분자… 

이런 사람들이 더욱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 충성하지 않는다면, 그 죄는 더욱 무겁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죄는 참으로 무겁다. 

하나님 나라를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반박하는 직분자가 있다면, 다시 오실 주님께서 그저 가만히 두시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지만, 특별히 직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그저 “구원받았으면 끝이야”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받은 은혜, 맡겨진 직분에 충성해야 한다. 

많이 알고, 많이 듣고, 많이 받았으면 슬기롭게 신실하게 자연과 공동체를 돌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폭력과 쾌락과 불충을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하시는 하나님을 상상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함을 요청하신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슬기롭게 신실하게 온전함을 추구한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고 성령님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 완전함을 추구한다. 

그 추구는 단순한 노력이 아니다. 

그 추구는 대단한 희생과 헌신이 아니다. 

그 추구는 열망이요 의지하는 것이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완전함으로 나아갈 수 없다. 

완전함은 행동의 완고함, 완벽주의가 아니다. 

도리어 삼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가득하고, 사람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충만하는 것을 의미한다. 

충만한 사랑이 완전한 행동을 낳는다. 

 

오늘도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의미있게 살고 싶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슬기롭고 지혜롭게… 

 

 

[오늘의 기도]

주님, 

당신이 오실 날을 고대합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 더욱 슬기롭게 더욱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많이 알고 있기에, 하나님 나라를 알고 있기에 더욱 신실하게 살아가길 원합니다. 

항상 준비하는 마음이 있게 하소서. 

언제든지 주께서 오시면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소서. 

폭력과 쾌락과 무절제와 방종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추동하시는 성령님을 추구하고, 

나아가 완전함을 추구하게 하소서. 

저를 통해 주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26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2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과 같이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5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

7 잠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자들도 밤에 취합니다.

8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씁시다.

 

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하심에 이르도록 정하여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여 놓으셨습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주석

3-4절 이 위협적인 사건에 대한 경고는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주의 날은 심판과 관련될 뿐 아니라 동이 트면서 비취는 ‘빛’과 같다.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계시와 의를 상징한다. 신자들은 이미 이 빛을 받으며 살고 있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주님의 날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그날은 밤에 도둑처럼 올 것이며(2절), 해산의 진통처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3절). 한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이들은 낮에 속하여 있으므로 그 어둠이 덮치지 않을 것입니다(4-5, 9절).

 

낮에 속한 사람은 마땅히 그 정체성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무장하고(8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6절). 그리스도가 행하신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살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11절). 나는 지금 깨어 있습니까? 갑옷과 투구로 무장되어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

1. 때와 시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사람들은 항상 때와 장소를 떠올린다. 

시기를 잘 정하는 것, 장소를 잘 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된다. 

분위기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과 기여에 대해 재고한다.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약속 장소와 시간에 예민하다. 

장소와 시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믿기도 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도 때와 시기에 더욱 더 예민한 분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언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지 계속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원칙이 있다.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님조차도 이 내용을 모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24:36_”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니 자꾸 그 시간에 대해 묻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날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평안과 주의를 함께 준다.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 주의를 준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빛에 거하고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평안을 준다. 

이 두 가지 태도 모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야 한다.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정신을 놓아버림으로, 혹은 어떤 한 두 가지 일에 집중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실제 삶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와이파이를 계속 연결해 놔야 한다. 

그분이 언제 올지 모른다. 

덕후라는 시대풍조는 때로 정신없이 한 두 가지 일에 몰입하게 한다. 

그것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으나, 정기적으로 자신을 객관화하고,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튜닝할 필요가 있다. 

 

둘째, 평안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경계하는 마음은 때로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긴장감이 지속되면 때로 판단이 흐려지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산다면, 재림에 대해 너무 걱정하거나 그 때를 놓치는 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다. 

평안한 마음은 주님에 대한 신뢰에서 온다. 

신뢰하지 못하면 평안을 유지할 수 없다. 

믿지 못할 사람들과 대화하면 할수록 불안이 가중된다. 

 

때와 시기에 연연하지 말되, 깨어서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한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지금이나 앞으로나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다양한 기질의 사람들이 주님의 뜻에 동의한다. 

주님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위해 주님께서 죽으신 것이다. 

 

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서 주님과 함께 살든지, 앞으로 죽어서 주님과 함께 살든지, 핵심은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분의 숨을 받으며,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것을 가능케 하신다. 

사탄도 두려운 존재고, 귀신도 무서운 존재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한가! 

모든 신들의 신인 하나님,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무서운 존재다.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은 솔직히 인간으로서 불편하고 무섭고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부모처럼 깊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도록 결정적인 증거를 대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다. 

자기 자신과도 같은 아들을 사랑의 징표로 내놓으셨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확증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과 더불어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그분과 함께 지내고 있는가? 

그분의 숨을 느끼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동행하는가? 

오늘의 질문이다. 

 

[오늘의 기도]

당신과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예수님, 

저는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과 더욱 가까이 지내고 함께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당신의 정서에 공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이 머무는 곳에 함께 머물고, 당신이 손발이 향하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몸은 곤하고, 감기 기운도 있습니다. 

할 일은 많은데, 눈이 감깁니다. 

주님, 육체의 피로를 이기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누리게 하소서. 

 

감당해야 할 일 앞에서 주눅들지 않게 하시고, 용감하게 처리하도록 도와주세요.

담대함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25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3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잠든 사람의 문제를 모르고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14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이미 잠든 사람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16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다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NIV

Therefore encourage one another with these words(18절).

 

주석

13절 독자들은 재림 전에 ‘자는’ 사람들(즉, 자기 교우들 가운데 이미 죽었거나 앞으로 죽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여전히 무덤에 남아 있어서 그 행사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거나 배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IVP 성경주석).

 

동료 그리스도인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교인들에게 바울은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13절). 하나님이 그들을 보살피시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그들을 데리고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4절).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는 죽은 이들이 일어나고(16절), 우리도 주님을 만나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17절).

 

바울은 슬퍼하는 이들에게 미래의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분이 다시 오신다는 믿음, 그리고 그분과 함께 새 몸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는 기쁨을 나눕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만드신 새로운 나라에서 주님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믿음과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1. 잠든 사람 

바울은 죽은 사람을 잠든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16절에는 죽은 사람이라고도 쓰는 걸 보니, 의도적으로 두 가지 표현을 함께 쓴다고 읽힌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기 싫어서라기보다 죽음의 의미를 드러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예수님 안에서 잠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생명의 끊어짐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순간이다. 

오랜시간 예수님께 순종으로 살다가, 때로는 모진 고난과 슬픔을 당하다가,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날, 예수님의 품에서 평화와 평안을 경험한다. 

바울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그 자신이 다른 편지에서도 밝힌 바, 세 번째 하늘에 올라갔다가 온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와 안녕을 경험한 바 있다. 

일상에서도 누릴 수 있지만, 특별한 경험과 계시를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바울은 그동안 죽었던 사람들이 예수님 품안에서 쉬고 안식하고 잠들어 있음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단순히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소망이 있다. 

다시 부활할 소망이 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그들은 육체로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 나실 때, 육체로 부활하셔서 부활체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인 것처럼 말이다. 

이 소망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와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무기력이 지배하고, 공허함이 넘치는 공간에서 소망과 기쁨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2. 재림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이 언제 성취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의 끝이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있어왔는가!

세계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 히로시마의 핵폭탄을 맞은 사람들은 그것이 세상의 종말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세상의 종말과 같은 것이라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다. 

그분이 오시면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하늘이 바뀌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지구 위에 펼쳐질 것이다.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서로를 그리고 온 세계를 아름답고 조화롭게 돌보고 다스릴 것이다. 

그 날이 온다. 

 

바울은 그 날에 대해 좀더 자세히 기록했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것 같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 천사들의 호위를 받고, 모두가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실 것이다. 

지금처럼 개인 방송이 실시간으로 퍼지는 세상이 더욱 고도화되면, 예수님의 오심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장면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품에서 잠들었던 사람들의 육체가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 부활체로 바뀌면서 하늘로 올라가고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대 환영식을 갖게 될 것이다. 

바울의 이런 가르침이 현대적으로 어떻게 적용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17절 마지막이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순간이 온다. 

지금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이젠 실제 눈으로 몸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이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게 한다. 

 

난 바울의 이 말들과 설명을 믿는다. 

그러기에 소망을 품고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의 기도]

다시 오실 예수님, 

당신을 기다립니다. 

가능하면 빨리 오세요. 

이 세상의 모든 비밀을 벗겨주세요. 

이 세상의 모든 신비를 알게 해 주세요. 

진실을 알게 해 주세요.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출해 주세요.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 주세요. 

미중러의 패권 경쟁으로 죄없는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자기가 예수님이라고 속이는 자들을 벌하여 주세요. 

속아 넘어간 자들을 구출해 주세요. 

 

주님, 이 세상을 고쳐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