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10 “내가 이스라엘을 처음 만났을 때에, 광야에서 만난 포도송이 같았다. 내가 너희 조상을 처음 보았을 때에, 제 철에 막 익은 무화과의 첫 열매를 보는 듯하였다. 그러나 바알브올에 이르자, 그들은 거기에서 그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바치고, 우상을 좋아하다가 우상처럼 추악해지고 말았다.11 이제 에브라임은 새와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에브라임의 영광은 새처럼 날아갈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일도 없고, 여인들이 임신하는 일도 없고, 아기를 낳는 일도 없을 것이다.12 이미 낳아서 기르는 자식들은, 내가 빼앗을 것이다. 한 아이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백성을 버리는 날에, 재앙이 이 백성에게 닥칠 것이다.”13 “내가 보기에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습니다만, 에브라임이 제 자식들을 살인자에게 끌어다 주게 되었습니다.14 주님, 그들에게 벌을 내리십시오! 주님께서는 무슨 벌을 내리시고자 하십니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를 주시고, 젖이 나지 않는 가슴을 주십시오.”

 

15 “이 백성의 온갖 죄악은 길갈에서 시작된다. 내가 그들을 미워하기 시작한 것도 길갈에서다. 하는 짓이 악하니, 그들을 나의 집에서 쫓아내겠다. 다시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이라는 것들도 모조리 나를 거슬렀다.16 에브라임은 그 밑동이 찍혀서 뿌리가 말라 버렸으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자식을 낳는다 하여도, 그들이 낳은 귀여운 자식들을 내가 죽게 할 것이다.”

17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나의 하나님이 백성을 버리실 것이다. 그 백성은 만민 사이에서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

 

 

NIV

Ephraim’s glory will fly away like a bird- no birth, no pregnancy, no conception(11절).

 

 

주석

11절. 여기서 ‘에브라임의 영광’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많은 자녀를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13절.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정치적 혼란에 휩쓸리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납게 돌진해 온 앗수르 군대에 그 가족들을 노출시키도록 만든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절망적이다. 

이스라엘을 처음 만났을 때는 희망이 넘쳤다. 

광야를 걷다 먹기 좋은 포도송이를 만난다. 

오랜 갈증을 풀어주는 꿀맛이요 꿈맛이다. 

제 철 과일이 얼마나 맛있는가! 

무화과의 첫 열매를 기다리는 마음, 드디어 첫 열매를 맛보는 순간, 이 모든 절정들이 흘러간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더 좋아했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의존이 사라지고,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우상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결국 우상처럼 되어 추악하고 더럽혀졌다. 

성전에는 창녀들이 제사장 노릇을 한다. 

몰렉 신은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이교적 행위는 보편적 윤리 의식을 저버린다. 

하나님의 율법은 내팽겨지고 추악한 우상을 따라 욕망의 화신이 된다. 

종교 행사가 변질되니, 일상에도 영향을 준다. 

가장 거룩해야 할 신 앞에서의 행위도 타락하니, 나머지 일상은 그저 추악의 반복이다. 

더 이상 회복을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스라엘의 영광은 날아가고, 그들의 비전도 사라진다. 

욕망과 비전은 다르다. 

욕망은 지극히 이기적인 열망의 발로요, 비전은 공공의 유익을 위한 소망의 발로다. 

사명과 비전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아 사람들을 추악의 함정으로 내몬다. 

절망적이다. 

 

하나님의 최종 판단은 심판이다. 

그들을 자신의 땅에서 떠나 만국의 떠돌이가 되게 하시겠단다. 

본문 한 구절만 보면, 서글프고 아쉽고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하고 싶다.

그러나 호세아 시대를 조망하면 하나님이 이해된다. 

사람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싶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한 행동을 보면, 하나님도 이해가 된다. 

오죽하면 자신의 선지자에게 고멜을 아내로 삼게하고, 아이들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실까!! 

자신을 구원한 참 신을 버리고, 반역하고, 그 땅을 살육의 현장으로 만든 자들을 벌하시는 것이 당연한 일로 보인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에서 지울 수 없다. 

내 입맛에 맞게 하나님을 재단할 수 없다. 

그분은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며, 그리고 용서도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의 자유다. 

나도 내 자유가 있듯이 그분도 그분의 자유가 있다. 

사실 그분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크다. 

그분이 당신의 자유를 극대화하면 나의 자유는 없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자유를 줄여가면서까지 나의 자유를 확보해주셨다. 

이런 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들은 그분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할 말이 없어진다. 

그분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분의 판단 앞에 겸허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교회는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본분이다. 

자신들의 의식이 확장되고, 지식이 축적되고, 관점이 넓어진다고 해서, 하나님과 우주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성육신의 신비, 교회의 신비를 다 안다고 말하지 말자. 

그분의 자유와 뜻을 다 헤아린다고 주장하지 말자.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일이다. 

이해하기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해를 넘어서는 요소를 인정하라는 말이다.

아무리 아이들이 똑똑해도 부모의 사랑과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때로 부모는 아이를 위해 소리쳐야 하는 순간이 있다. 

때로 부모는 아이를 위해 침묵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혹시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신뢰하겠다고 말하는 똑부러진 7살 어린이 같이 행동하는 것은 아닌가. 

 

교회들이 더 이상 우상숭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돈의 우상, 권력의 우상, 욕망의 우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그 어떤 것도 우상이다. 

팀 켈러정의에 따르면, 가짜 신, 즉 우상이란 “우리의 삶에 아주 중심적이고 본질적이어서 만약 그것을 잃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란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삶의 의미 100%를 두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팀 켈러는 “인간의 마음이 우상 공장”이라고 썼다.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마음을 살피지 않는 교회 지도자가 그 자리에 있으면 교회는 결국 우상 숭배를 하게 된다. 

 

돈과 권력을 주의하라. 

지도자들이여, 주의하라. 

나여! 주의하라. 

 

[오늘의 기도]

우상 숭배로 점철되어 있는 한국 사회와 교회를 용서하여 주세요. 

한국 교회의 예배가 과연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게 돕고 있는지는 아닌지 돌아봅니다. 

절실한 필요를 주님께 아뢰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절실한 필요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뜻을 구하면서 생기는 절실한 필요가 아니라, 자신의 유익과 편안을 추구하면서 생기는 절실한 필요가 아닌가요. 

주님, 저와 우리 교회를 다시 회복시켜 주소서. 

진정한 부흥을 허락하소서. 

진정한 부흥은 마음의 우상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상 밖으로 넘쳐나는 겁니다. 

이런 부흥이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27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29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스물두 해 동안 다스렸다.

30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31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

32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33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

34아합 시대에 베델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다. 주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그 성의 기초를 놓으면서는 그의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달면서는 그의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

1길르앗의 디셉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2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3"이 곳을 떠나서, 동쪽으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 요단 강 동쪽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지내며,

4그 시냇물을 마셔라. 내가 까마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날라다 주게 하겠다."

5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가서, 그대로 하였다. 그는 곧 가서, 요단 강 앞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머물렀다.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물은 그 곳 시냇물을 마셨다.

7그런데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얼마 있지 않아서, 시냇물까지 말라 버렸다.

 

주석

1절: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은 단순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여호와의 권능과 바알의 무능함을 드러낼 경쟁 가운데 첫 번째 시도였다(IVP 성경주석).


유다 왕 아사는 정말 많은 일을 겪은 왕이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급변 사태가 너무 자주 바뀌었고, 그 때마다 철저하게 대비해야 했다. 

그렇게 많이 바뀌는데도, 그들의 죄악은 그치질 않는다. 

아마 아사가 끝까지 다윗의 길을 걸었던 것, 죄악의 길로 빠지지 않았던 것은 북이스라엘의 왕들의 역사를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았던 것은 아닌지 추측을 해본다. 

 

오므리도 문제였지만, 그의 아들 아합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더 앞질렀다.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바알을 섬기고 예배했다. 

시돈 왕의 이름이 엣바알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기본적으로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피해야 할 대상이건만, 아합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세라는 거칠 것이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거리낌 없이 진행한다. 

아합 왕을 조종하여 바알을 섬기는 제단과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다. 

이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다. 

비의 신,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기로 결정한 듯 싶다. 

 

하나님의 진노가 점점 끓어 오른다. 

이상한 점은 하나님의 진노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심판의 시기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어떤 왕은 금방 실권하여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악한 왕은 장기집권에 성공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1차원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의인을 통해 악인을 치시는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더 큰 악인을 통해 기존의 악인을 치시는 경우도 있다. 

더 큰 악인이 더 빨리 심판은 받는 것도 아니다. 

심판의 시기는 계산되지 못한다. 

하나님께 달린 일이다. 

그분이 결정하신다. 

언제 심판할 지, 어떻게 심판할 지는 하나님의 판단에 달려 있다. 

 

선지자 엘리야가 갑자기 불쌍하다. 

기껏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나서, 도망해야 했다. 

그릿 시냇가에 몸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아침 저녁으로 까마귀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가뭄이 심해지자 그릿 시냇가도 말라 버렸다. 

하나 같이 열받는 상황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면 하나님께서 좋은 집과 옷과 음식과 편안한 삶을 보장해주셔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렇게 비루한 삶을 살아야 하다니… 

불쌍하다는 생각에 고통스럽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삶이 이러하다니… 

선뜻 이 길을 가자고 말하기가 두렵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그들이 현실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지는 못했다. 

차라기 구약의 족장들을 보면 그래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누렸던 것 같은데 말이다. 

선지자들의 삶,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들의 삶은 누추하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 길을 회피하지 말자. 

둘 다를 얻으려는 억지 욕심을 포기하자. 

이 시대의 엘리야들을 응원한다. 


어제는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렸다면, 오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슬픔과 분노를 느끼신다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당신의 진노를 여전히 촉발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을 도모하고, 살인을 계획하는 사람들. 

거짓과 술수로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는 사람들. 

주님, 이런 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깨닫고 돌아서게 해 주세요.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을 보살펴 주소서. 

 

주님,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 증언하기 위해 헌신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축복하여 주소서. 

때로는 그릿 시냇가가 마르는 좌절스런 경험이 그들에게 찾아 올 수도 있겠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여전히 신뢰하며 인내하는 그들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07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1솔로몬 왕은 외국 여자들을 좋아하였다. 이집트의 바로의 딸 말고도,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과 에돔 사람과 시돈 사람과 헷 사람에게서, 많은 외국 여자를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2주님께서 일찍이 이 여러 민족을 두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경고하신 일이 있다. "너희는 그들과 결혼을 하고자 해서도 안 되고, 그들이 청혼하여 오더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분명히 그들은 너희의 마음을, 그들이 믿는 신에게로 기울어지게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외국 여자들을 좋아하였으므로,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다.

3그는 자그마치 칠백 명의 후궁과 삼백 명의 첩을 두었는데,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4솔로몬이 늙으니, 그 아내들이 솔로몬을 꾀어서,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5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 사람의 우상 밀곰을 따라가서,

6주님 앞에서 악행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 다윗은 주님께 충성을 다하였으나, 솔로몬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7솔로몬은 예루살렘 동쪽 산에 모압의 혐오스러운 우상 그모스를 섬기는 산당을 짓고, 암몬 자손의 혐오스러운 우상 몰렉을 섬기는 산당도 지었는데,

8그는 그의 외국인 아내들이 하자는 대로,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며, 제사를 지냈다.

9이와 같이, 솔로몬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10다른 신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솔로몬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11그러므로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러한 일을 하였고, 내 언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내 법규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네게서 왕국을 떼어서, 네 신하에게 주겠다.

12다만 네가 사는 날 동안에는,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네 아들 대에 이르러서는, 내가 이 나라를 갈라 놓겠다.

13그러나 이 나라를 갈라서, 다 남에게 내주지는 않고, 나의 종 다윗과 내가 선택한 예루살렘을 생각해서, 한 지파만은 네 아들에게 주겠다."


지난 며칠간 솔로몬의 업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솔로몬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후반기 솔로몬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전반기 솔로몬의 모습은 가히 예수님을 닮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참 대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의 본문을 대하는 순간, 

그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는데, 정말 그 순간이 온 것이다. 

입대할 날짜를 받아놓고 친구들이랑 엄청 즐겁게 지내다가보니 갑자기 그 날이 온 것처럼 말이다. 

솔로몬이 너무 실망스럽다. 

 

먼저, 외국인 아내를 너무 많이 들였다. 

후궁과 첩이 합해서 천명이다. 

여자를 너무 좋아했다. 

외교적인 정책이라 합리화할 수는 있겠지만, 도가 지나쳤다. 

외국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와 부를 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 그들 입장에서도 이스라엘과 혼인 언약을 맺으면 국가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정략 결혼 말고 다른 정책은 정말 없었을까?

 

둘째, 이방신을 섬겼다. 

아스다롯, 밀곰, 그모스, 몰렉 등의 신을 섬기기 시작했다. 

외국인 아내들의 신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다. 

정략결혼을 했던 거라면 철저하게 신앙 검증을 했어야 했다. 

조건에 맞지 않으면 즉 외국의 신을 버리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이 없이는 절대 예루살렘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몰래 숨어서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 것을 막기 어렵다면, 최소한 공식화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이방신의 산당을 지어주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런 것을 요구하는 여인은 과감하게 멀리했어야 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 같다. .

결국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방신까지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에 빠졌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지혜는 여기서 크게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부와 권력을 위한 지혜가 참지혜가 아니다. 

하나님과 신실한 언약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혜가 참지혜다. 

그 참지혜를 구해야 했다.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추구하다가 하나님 그 자체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봤다.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이들 중에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시키는 경우가 있다. 

참지식과 참지혜를 추구하자.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을 추구하자. 

그 연합에 끝까지 머물 수 있는 지혜가 참지혜다. 잠언의 지혜며, 전도서의 지혜다. 시편의 지혜다. 

그런면에서 다윗은 참지혜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솔로몬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게다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어마어마한 죄를 지었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끝까지 붙들겠다는 의지와 그를 위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회개다. 눈물의 회개다. 금식의 회개다. 돌이키기… 

솔로몬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9이와 같이, 솔로몬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10다른 신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솔로몬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나타나셨다. 

그전에 복을 주시기 위해 한 번, 언약을 맺으시기 위해 한 번 이렇게 극적으로 두 번 나타나셨는데, 

아마도 이번에도 하나님은 극적으로 두 번이나 나타나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불순종… 이것이 진정 지혜롭지 못한 태도다. 

 

순종을 잃어버리면 신앙은 “자아신”에 종속된다. 

회개와 순종이 신앙 핵심에 속한 태도다. 

때로 고민이 든다. 

자발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느라 회개와 순종이 약화되었을 때, 그 부작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기르고 있는가? 

아님 자신도 모르게 ‘자아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에 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싸움의 전선을 어디다 긋느냐가 관건이다. 

 

솔로몬에 대한 실망감이 오늘 나의 정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실망감이 갑자기 올라오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혹 그런 실망스런 일이 있더라도 마치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의 태도를 배우는 계기로 삼고 싶다. 

다시 하나님께 나아간다. 


하나님, 

실망하는 순간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제 자신에게도 실망이 되고

믿었던 사람들에게도 실망이 되고 

의지했던 공동체도 실망이 됩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머물지 않게 해주세요. 

실망감에 깊이 젖어서 허우적 거리지 않게 해주세요. 

마음을 지켜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의 순종의 태도로 주님께 나아가게 해 주세요. 

자아가 없어져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자아만 살아 있으면 안될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오늘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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