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30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15 그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17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22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주석

주님의 은혜의 해(19절) 이사야서의 마지막 어구는 “주의 은혜의 해” 혹은 주의 ‘받아주심’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다. 이 형용사는 구성원들이 교회로 “받아들여졌다/수용되었다”고 말하기 위해 누가가 사용하는 동사와 관련이 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내용, 즉 하나님이 모든 사람(민족)을 받아들이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예언한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 이루어졌다(21절) 예수님의 선언은 예언의 성취다. 종말은 지금이다. 사역을 시작하는 이 취임 설교에서 성취가 강조된다(IVP 성경비평주석). 

 

사람들이 놀란 이유(22절) 그들이 깜짝 놀란 이유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에게는 은혜를 내리고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는 모진 심판을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 대신에, 열방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은혜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오늘의 묵상]

복음의 내용이나 강조점이 한 가지 뿐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나사렛 선언은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누가가 생각한 복음의 강조점은 해방에 놓여 있었다. 

언약의 성취도 중요하고, 죄사함도 중요하다. 

사단의 권세로부터의 구출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또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정치적 압제와 물리적 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었듯이, 거대 제국으로부터 몸이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나사렛 선언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러 강조점 중에 실질적, 정치적 자유와 해방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예수님은 억눌리고 고통받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오셨다. 

가난한 사람,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람, 맞아서 병든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고 돕기 위해 오셨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러 오셨다. 

그분은 영적인 문제만 해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제적이고 육체적인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오셨다. 

그분의 이름은 사람들을 자유케 한다. 

그분의 능력은 사람들은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마음의 방향을 바꾸시고, 하나님과의 교제와 대화를 가능케 하신다.

영적인 일이다. 

동시에 먹을 것을 공급하시고, 정치적 탄압으로부터 구출시켜주신다. 

육적인 일이다. 

영육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다. 

그분은 사람들을 온전히, 전인적으로 해방시키시며 회복시키신다.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사람들에게 제공하신다. 

자유롭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억지로 함이 아니다. 

강제, 반강제가 아니다. 

해방된 주체가 자유롭게 그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다. 

그분이 도왔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그분을 섬기라고 하시지 않는다. 

그분의 사랑에 반응할 것으로 요청하시지만, 강제하지 않으신다. 

한 개인의 선택을 막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로봇을 생산하시지 않는다.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통해 당신을 선택하기를 원하신다. 

모든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선포되기 시작한다. 

이방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셨다고 단정짓지 말아야 한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왕들에게 일하셨던 기록이 성경에도 등장한다. 

하나님은 세계 곳곳에서 당신의 일을 감당하셨으나, 한 두 번의 등장으로, 한 두 번의 경고로는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셨다. 

원래로 알고 계셨지만, 역사가 이를 증명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고가 아니라 사랑의 희생이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결박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이다. 

선택의 기회는 결박으로부터 자유케 되어야 참 의미가 있다. 

결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하라고 해도 그것이 불가능하다. 

결박으로부터의 자유와 사랑의 권면이 하나님이 하신 최고의 일이다. 

풀어주고, 기회를 주신다. 

이제 사람의 몫이다.  

 

난 이 복음을 끝까지 전할 것이다. 

중고생들에게 전할 것이다. 

청년 대학생들에게 전할 것이다. 

이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일을 위해 오늘도 산다. 

 

 

[오늘의 기도]

주님, 

아름다움 피아노 선율에 맞춰 기도합니다. 

주님은 다정하고 친절하며 부드러우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의 개성과 특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고, 부드럽게 권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그 사랑에 노출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름다우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사랑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 우리에게 소명을 주시고, 포근한 분위기에서 우리의 선택을 소중히 여겨주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1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에게 믿음과 더불어 사랑을 베푸소서.

1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나를 용납해 주십시오.

2 나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열렬한 관심으로, 여러분을 두고 몹시 마음을 씁니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여러분을 한 분 남편 되실 그리스도와 약혼시켰습니다.

3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뱀이 그 간사한 꾀로 하와를 속인 것과 같이, 여러분의 생각이 부패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함[과 순결함]을 저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4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해도,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을 잘도 용납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잘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서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잘도 받아들입니다.

5 나는 저 거물급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6 내가 말에는 능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든 일에서 여러 가지로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였습니다.

 

NIV

I am jealous for you with a godly jealousy(2절).

 

주석

3절 뱀이 하와를 유혹한 것은 성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실을 부인함으로써 마음을 현혹시킨 것이었다. 하와 이야기는 고린도 교인들이 직면한 위험, 즉 그들의 마음이 부패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적절하게 묘사한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자신을 용납해 달라고 합니다(1절).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간사한 꾀에 넘어가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함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2-3절). 그들은 스스로 ‘거물급 사도’라 내세우는 이들이 전하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잘도 받아들입니다(4절).


바울은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며 고린도 교인들을 붙잡습니다. 거짓 사도들은 겉모양으로 자신을 내세우고 과장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꾀에 넘어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에 빠질 위험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는 참된 지식이 있습니다. 참된 지식은 거짓된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돌이키게 하는 능력과 권위를 가집니다(10:5). 나는 그리스도를 아는 참된 지식을 가지고 있나요? 거짓되고 부패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자신이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달라고 한다. 

특별히 자신이 얼마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해 마음을 쓰는지 표현하고 있다. 

충분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실 오늘 다루는 주제는 그 어떤 주제보다도 무겁고 엄중하다.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뒤 흔드는 일이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너무 쉽게 용납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는 상황이다. 

진리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이유로 환대만을 강조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참된 예수, 참된 영,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기본적인 진리가 무엇인지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이 복음인지 무엇이 복음이 아닌지를 잘 알아야 한다.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어떤 열매를 맺게 하시는지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삶과 사역을 하셨는지도 잘 알아야 한다. 

최소한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동일한 지식을 갖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도자들은 참된 예수, 참된 영, 참된 복음에 대한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판단된다면 단호하게 막아서야 한다. 

 

상업이 발달된 부유한 도시 고린도, 그 곳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많은 만큼, 사상도 다양했을 것이다. 

사상이 다양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새롭게 해석해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며, 그들의 가르침을 무방비로 둔다면, 교회는 점점 다른 복음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런 상황이 걱정이 되었다. 

고린도교회가 잘 하는 것도 많았지만, 최소한 이런 류의 문제로 교회가 분열되지 말아야 했다. 

잘못하면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저질렀던 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문제였다. 

바울은 생각이 부패해진다는 표현을 쓴다. 

생각이 명료해지지 않고 계속 떠다닌다. 

말도 안되는 논리가 중심으로 파고들어서 사람들을 혼미하게 한다. 

부패한 생각은 진리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부패한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바울이 자신의 지식에 대해 이렇게 자랑하고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것이 모양새가 빠지지만,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신의 권위를 다시 언급하면서, 성도들을 다독이고 있다. 

진리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다른 복음으로 다른 영으로 다른 예수님으로 우회하지 말 것을. 

 

이번 주부터 복음에 대해 다시 설명하고자 한다. 

공동체 지도자들은 복음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공동체 리더들은 복음의 얼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일을 시작하고자 한다. 

 

[오늘의 기도]

진리되신 예수님, 

당신에 대한 지식이 더욱 분명해지게 하소서. 

당신을 더욱 깊이 알게 하소서. 

당신의 삶과 사역 뿐 아니라 그 많은 가르침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진리되신 성령님,

당신이 일하시는 방식을 더 잘 알게 하소서. 

성령님의 열매를 맺도록 도우소서. 

당신이 주목하시는 것에 같이 주목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1월 18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9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20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21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22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4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26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9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31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한 대로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3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5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 본문도 그렇지만, 교회 분열에 대한 바울의 해법은 분명하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수많은 지혜가 있고, 아름다운 말들이 있으며, 매혹적인 디자인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일을 찾는다. 

그런 추구의 결과는 피할 수 없는 분열이다. 

서로 공통점이 없는 가운데 자신들의 열망을 분출하면 서로 분열될 수 밖에 없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다. 

십자가 중심성을 잃어버리고, 닻을 그곳에 내리지 않고,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지에 집중했다. 

누가 더 설교를 잘 하는지, 누가 더 성경을 잘 풀어내는지, 누가 더 탁월한지, 누가 더 리더십이 있는지를 서로 비교하며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자신에게 세례를 준 사람의 장점과 강점을 강조한다.  

십자가라는 자기 부인의 용광로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깊이 느낄 때 흐르는 뜨거운 용암과도 같은 눈물의 세례를 거부하거나 잊어버렸다. 

그러니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세상의 지혜로는 이 십자가의 지혜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멋진 수사로 꾸며진 연설이 아니라 투박하고 괴팍한 듯 보이지만 하나님의 십자가에서의 처형이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지혜가 진정한 지혜이며 강력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지금 분열, 분쟁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 대부분이 세상의 지혜하고도 원래 멀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사람을 자랑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능력을 자랑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성취한 성과를 자랑할 일이 아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한다. 

십자가의 복음이 여전히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십자가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주목해야 한다. 

 

31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한 대로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이 말하는 바, 바울은 끝까지 주님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싶어한다. 

물론 다른 서신에서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한 것(빌립보서 3:17)을 떠올려보면 그의 말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빌립보서에서도 바울은 바울 자신의 능력이나 탁월함을 본받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빌립보서의 핵심 주제인 "자기 부인"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가려는 자신을 본 받으라는 것이다. 

즉 겸손하게 주님을 따라 살려는 자신을 본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도 비판/비난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끝까지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내세우면 될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일면 동의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한 완벽주의자의 비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님이며 그분의 십자가이다. 

이걸 잊고 다른 몇가지 특징과 장점을 내세우려고 한다면 본질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순간적인 유행을 따를 수는 있다. 

사람들을 끌수 있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공동체가 가진 장점과 능력이 아니라, 

예수, 십자가, 성령. 이런 요소가 본질로 다가가야 한다. 

그게 복음이다. 

 

복음이 더 잘 전달되기 위한 노력이야 끊어지지 말아야 하겠다. 

동시에 그 복음의 본질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잘 지켜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감당하는 것이 현장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사역자들의 몫이다. 

 

묵상하다보니 오늘도 조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너무 어려운 일들을 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 십자가의 본질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복음의 표현의 양식과 스타일과 플랫폼은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선도해야겠지만, 

복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음을 중고생과 대학생에게 전하기 위해 그 외형에 변형을 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여전히 팔팔하게 살아서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왜냐하면 그 두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질과 형식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성령님 지혜를 주세요. 

성령님께서 역사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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