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 06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지휘자를 따라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마스길]
1하나님,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의 간구를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2나를 굽어보시고, 응답하여 주십시오. 한 맺힌 탄식을 가눌 길이 없어서, 나는 분노에 떨고 있습니다.
3저 원수들이 나에게 악담을 퍼붓고, 저 악인들이 나를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그들은 나에게 재앙을 쏟으며, 나에게 원한 맺힌 마음으로 분노를 터뜨립니다.
4내 마음은 진통하듯 뒤틀려 찢기고, 죽음의 공포가 나를 엄습합니다.
5두려움과 떨림이 나에게 밀려오고, 몸서리치는 전율이 나를 덮습니다.
6나는 말하기를 "나에게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서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으련만.
7내가 멀리멀리 날아가서, 광야에서 머무를 수도 있으련만. (셀라)
8광풍과 폭풍을 피할 은신처로 서둘러서 날아갈 수도 있으련만" 하였다.
9아, 주님, 그들이 사는 성에는, 보이느니 폭력과 분쟁뿐입니다. 그들을 말끔히 없애 버리시고, 그들의 언어가 혼잡하게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10그들이 밤낮으로 성벽 위를 돌아다니니 그 성 안에는 죄악과 고통이 가득 차 있구나.
11파괴가 그 성 안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억압과 속임수가 그 광장에서 떠나지 않는구나.
12나를 비난하는 자가 차라리, 내 원수였다면, 내가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차라리, 자기가 나보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내 원수였다면, 나는 그들을 피하여서 숨기라도 하였을 것이다.
13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벗이라니!
14우리는 함께 두터운 우정을 나누며, 사람들과 어울려 하나님의 집을 드나들곤 하였다.
15그들이 머무르는 곳, 그 곳에는 언제나 악이 넘쳐흐르는구나. 죽음아, 그들을 덮쳐라. 산 채로 그들을 음부로 데리고 가거라!
16나는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니, 주님께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
17저녁에도 아침에도 한낮에도, 내가 탄식하면서 신음할 것이니, 내가 울부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실 것이다.
18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아도, 주님께서는, 나에게 덤벼드는 자들에게서, 내 생명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이다.
19아주 먼 옛날부터,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부르짖음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셀라) 마음을 고치지도 아니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는 그들을 치실 것이다.
20나의 옛 친구가 손을 뻗쳐서, 가장 가까운 친구를 치는구나. 그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욕되게 하는구나.
21그의 입은 엉긴 젖보다 더 부드러우나, 그의 마음은 다툼으로 가득 차 있구나. 그의 말은 기름보다 더 매끄러우나, 사실은 뽑아 든 비수로구나.
22너희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 주님이 너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니, 주님은, 의로운 사람이 망하도록, 영영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23하나님,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멸망의 구덩이로 내려가게 하실 것입니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자기 목숨의 절반도 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주님만 의지하렵니다.

시인은 악인들의 괴롭힘으로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악인이 있는 곳으로부터 피하려 합니다(1-8절). 이 악인이 바로 친구였기 때문에 배신감으로 더 통탄해 합니다(9-15절). 그럼에도 시인은 더욱 주님만을 믿으며 그분의 응답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악인은 여전히 건재한 것 같습니다(16~21절). 시인은 더 이상 악인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만 붙들며 의지할 것을 다짐합니다(22-23절).

시인은 친구였던 악인의 모습에 통탄해 합니다. 주님을 붙들고 이겨내려 했지만 이 악인의 건재로 인해 패배감에 빠집니다. 하지만 시인은 다시 힘을 내 온전히 주님만 붙들며 의지하려 합니다. 악인의 건재가 주님만 붙들려는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심판하실 공의의 주님을 신뢰하며 힘 얻길 바랍니다.


——
기도자는 주님을 부른다.
이 시는 노래이기도 하고 기도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부른다.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간구를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기도자가 처음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믿고, 비록 그 사실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그분을 부른다.
간절함이 사무칠 때,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은 터져나온다.
주님을 부르고,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부르고, 성령님을 부른다.
그렇게 기도가 시작된다.

부름은 모든 소통의 첫단계이다. 기본 중 기본이다.
어린아이들은 쉴새없이 엄마를, 아빠를 부른다.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엄마를 아빠를 부른다.
도와달라고, 무섭다고, 물 갖다달라고, 밥달라고…

주님을 부르는 사람은 기도의 처음을 아는 사람이다.
우리 주님은 부르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신다.
그가 처한 상황을 금방 알아차리신다.
고통의 현장, 눈물의 현장, 절망의 현장에 그분의 눈이 고정된다.
그분의 귀가 향한다.
기도자의 처음은 부름이다.

오늘 시인/기도자의 고통은 배신이다.

13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벗이라니!

기도자는 배신으로 인한 분노에 몸을 떨고 있다.
부들부들 손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분노의 눈물과 울부짖음이 대기에 사무친다.

2나를 굽어보시고, 응답하여 주십시오. 한 맺힌 탄식을 가눌 길이 없어서, 나는 분노에 떨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친구라 여겼던 사람들의 배신 때문이다.
다윗이 배신을 많이 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설혹 그 자신의 실수와 연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여도, 그는 아주 친한 동료들의 배신을 많이 당했다.
고대 시대의 왕들은 어쩔 수 없다.
항상 배신에 대비해야 한다.
암살, 모략, 반역이 판을 친다.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나라를 통치하는 일은 그래서 힘들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폭군이 되기도 한다.
작은 실수에도 용납이 없다. 작은 실수들이 알고 보면 모반의 징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군주는 더욱 치밀한 배신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폭압정치로 모든 사람들을 다스릴 수는 없다.
게다가 왕은 더욱 외로워지고, 군주는 외로움에 미쳐간다.
그러니 왕은 진퇴양난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인간성을 유지한 왕이 되려면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배신에 노출된다.
기도자는 그 배신에 몸을 떨고 있다.

기도자는 아침, 점심, 저녁 수시로 기도한다.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주님께 달려간다.
배신에 분노하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도의 자리로 달려간다.

17저녁에도 아침에도 한낮에도, 내가 탄식하면서 신음할 것이니, 내가 울부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실 것이다.

그에게는 굳건한 믿음이 있다.
우리 주님께서 들으실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기도 소리에 반응할 것이다.

기도자의 탄식과 분노에 찬 호소에 대한 응답은 주님에 대한 더욱 강한 확신이다.
그는 이렇게 되뇌인다.

22너희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 주님이 너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니, 주님은, 의로운 사람이 망하도록, 영영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23하나님,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멸망의 구덩이로 내려가게 하실 것입니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자기 목숨의 절반도 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주님만 의지하렵니다.

마음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
주님께서 정의로운 판단을 하실 것이다.
내가 다 판단하려고 하지 마라.
나의 지식도 정보도 다 한계가 있으며, 사람의 마음과 의도를 다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배신도 인생의 일부며, 삶은 모순 덩어리다.
결코 내 뜻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배신인듯 보이나 충성으로 판명될 때가 있다.
충성인줄 알았는데 반역으로 귀결될 때가 있다.
이렇듯 인생은 역전의 연속이다.
그러니 마음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기에 기도자는 주님만 의지할 수 있게 된다.
기도 초반의 부들부들 떨던 몸과 마음은 오랜시간의 부름과 토로와 호소가 이어진 뒤에 비로소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주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주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이것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다.

오늘도 마음의 짐을 주님께 맡긴다.
신입간사훈련을 시작하는 날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첫 느낌은 일상적이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어색하고 아쉽고 막막하다.
어떻게 처음의 시간을 만들어가야 하나.
어떻게 서로를 깊이 알아가도록 도와야 하나.
여러 모로 고민이 깊어진다.
그래도 마음의 짐을 맡긴다.
삼위 하나님을 신뢰한다.
우리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부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
하나님, 삼위 하나님~
주님을 부릅니다.
나의 중심을 아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함께 하고픈 저의 열정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저는 지금 크게 고통받는 상황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주고 있고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배신이라고 여겨질 만한 일이 있지도 않습니다.
권한이 많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축복이라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시인의 기도는 저에게 간접경험을 전해줍니다.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할 때 어떤 느낌이 들지 상상해 봅니다.
정말 몸서리치며 고통받겠죠.
가능하면 그런 배신의 고통을 받지 않게 도와주세요.
그러나 그런 순간이 왔을 때도 주님을 부르는 일을 쉬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시인처럼 저도 기도합니다.
주님께 저의 마음의 짐을 맡겨드립니다.
너무나 귀한 분들을 훈련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들의 인생 하나하나 소중하며 그들의 결단과 결정은 보석처럼 빛납니다.
사역자로의 삶의 결단과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귀한 열매로 맺어지도록 돕길 원합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황금기를 가장 보람되고 의미있는 시간으로 채워갈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어가기 원합니다.
주님,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의지하며 신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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