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10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67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시고,69 우리를 위하여 능력 있는 구원자를 자기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 70 예로부터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71 우리를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셨다.72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자기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73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이니,74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셔서 두려움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75 우리가 평생 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셨다.

 

76 아가야,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77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78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79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80 아기는 자라서, 심령이 굳세어졌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석

거룩한 언약(72절) 누가의 주장에 따르면, 아브라함 및 다윗과 맺은 언약은 조건 없는 약속으로,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에서 성취되었다(IVP 성경비평주석).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78-79절) 하나님은 요한의 정의 요구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어둠 속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추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평강으로 인도하실 것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요한의 탄생 이후 사가랴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언합니다(67절).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돌보시며 원수들로부터 건져내십니다(68-71절). 이는 아브라함과 맺은 ‘자기의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며, 그 백성들이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의롭게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72-75절).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이 언약을 성취해 가실 것입니다(76-79절).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셨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고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된 존재로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여러 염려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라는 우리 정체성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함과 자비는 지금도 우리를 향합니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의롭게 살아갈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오늘의 묵상]

사가랴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대로 아들의 이름을 요한으로 짓자 사가랴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언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구원자에 대한 예언이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다. 

당시에 이 예언을 듣던 사람들은 뜨아 했을 것이다. 

방금 태어난 아기 요한에 대한 예언인지, 아님 다른 아기에 대한 예언인지 처음에는 헷갈렸을 것 같다. 

물론 예언을 끝까지 들으면, 아기 요한에 대한 예언이 등장하기 때문에 정리가 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사가랴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과연 저주라고 할 수 있을까?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저주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저주가 아니라 징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다. 

그 말씀을 계속 간직할 것을 강제하는 강력한 표시등이다.

말을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사가랴는 임신한 아내의 배를 보면서 복합적인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져갔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멤돈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되씹고, 동시에 성경에 비슷한 사례를 다시 찾아 읽어본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묵상하고 기도한다. 

그러니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훈련이다. 

그 침묵의 기간이 끝나자, 그는 성령님의 충만을 받는다. 

말을 많이해서 받는 성령님이 아니라, 말이 없는 중에 받는 성령님의 충만이다. 

몇 개월을 말없이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에 대해, 그분의 뜻에 대해 기도한 뒤에 받는 성령 충만이다. 

오순절 성령 충만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같고 다른지는 논의하지 않겠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에게 침묵은 그래서 축복이다. 

 

말이 많은 시대를 산다.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낸다. 

지금 이렇게 묵상의 글을 쓰는 것도 내 목소리를 찾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메시지를 나의 말과 글로 정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과 글이 너무 많다. 

신문도 많고, 블로그, 유툽도 많다. 

공식, 비공식 문건도 너무 많다. 

모든 것을 다 읽고 들을 수 없다. 

인공 지능, 수퍼 컴퓨터도 아니고, 사람이 어찌 그 모든 것을 다 처리하겠는가? 

말과 글과 메세지가 넘치는 세상, 

그래서 우리는 침묵이 필요하다. 

흘러 넘쳐 속옷까지 다 적셨다.  

내가 나인지, 주변의 말들이 나인지 헷갈리는 시대다. 

그렇기에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서 성령님의 충만을 경험하고 싶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집중해본다. 

 

성령님의 충만은 인류 역사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감지하게 한다. 

메시아의 탄생, 인류 구원의 시작, 원수에게서의 해방,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기, 거룩하고 의로운 삶. 

메시야의 탄생은 이 같은 새로운 삶과 역사를 낳는다. 

그리고 충만한 성령님의 임재는 이 역사를 감지하게 한다. 

 

예언 중에 눈의 띄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시면 더이상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지 않게 될 것이다. 

사단의 기소가 끝난다. 

하나님과의 화해의 문을 여신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된다. 

두려움 때문에 기도하고, 두려움 때문에 예배드리는 삶이 청산된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 

 

둘째, 평생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간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너무 대단하고 멋지지만, 결국 우리의 삶도 바뀌게 된다는 점이 감사하다. 

말로만의 신분 변화는 참 받아들이기 싫다. 

신분이 바뀌었다면, 그에 걸맞는 인품과 삶이 따라와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일조차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경의 인물들이 증명하고, 내 삶이 증명한다. 

내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메시야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령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간다. 

 

역시 여기서도 순서가 중요하다. 

우리가 거룩해지고 의로워져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니, 점점 거룩해지고 의로워지는 것이다.

원수로부터 해방되어 더이상 참소를 받지 않으니, 하나님께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게 되고, 그러니 점점 더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영적, 심리적 역동이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것을 꿈꾼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이상한 지점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는 표현이다. 

언제부터 광야에 갔다는 말인가? 

광야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영적 의미가 있는가? 

누가는 왜 이런 내용을 이 책에 담았는가? 

세례 요한은 참 신비로운 인물이다. 

사가랴의 예언대로 그는 예수님의 도래를 준비했다. 

예수님보다 앞서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그 자신도 인기를 누렸지만, 언제나 자신보다 더 큰 이가 있다는 사실, 자신은 그저 그분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 소명 의식이 그의 삶의 지배했다. 

아마도 이런 그의 의식과 삶의 스타일과 메시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광야가 아닌가 싶다. 

사가랴가 침묵을 통해 배웠던 것을 요한은 광야에서 배웠다. 

침묵을 통해 성령님의 충만함에 이른 것처럼, 광야를 통해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사역한다. 

침묵과 광야를 그렇게 서로 통한다. 

 

나에게 침묵과 광야는 어디인가? 

나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 침묵과 광야는 어디인가?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 인생에 침묵과 광야는 어디인가?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가길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침묵과 광야! 

오늘 내가 가야 할 길인가!! 

 

 

[오늘의 기도]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를 기대합니다. 

당신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길 원합니다. 

지식이 아니라 관계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교제하고 사랑하는 관계로 남고 싶습니다. 

당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관계로 남고 싶습니다. 

지식이 과하여 당신을 분석하고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성령님의 충만함 속에서 꼭 필요한 말을 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7 02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힘을 주십시오.

 

1 주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셨다. "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여라."

2 그래서 왕은 데리고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지시하였다. "어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여서, 백성의 수를 나에게 알려 주시오."

3 그러나 요압이 왕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하나님이 백성을, 지금보다 배나 불어나게 하여 주셔서, 높으신 임금님께서 친히 그것을 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높으신 임금님께서, 어찌하여 감히 이런 일을 하시고자 하십니까?"

4 그러나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이 이상 왕을 설득시킬 없었으므로,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이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려고, 앞에서 떠나갔다.

5 그들은 요단 강을 건너서, 골짜기의 한가운데 있는 성읍인 아로엘 남쪽에서부터 인구를 조사하였다. 다음에는 야스엘 성읍쪽으로 갔고,

6 다음에는 길르앗을 거쳐서, 닷딤홋시 땅에 이르렀고, 다음에 다냐안에 이르렀다가, 거기에서 시돈으로 돌아섰다.

7 그들은 두로 요새에 들렀다가,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을 거쳐서, 유다의 남쪽 브엘세바에까지 이르렀다.

8 그들은 땅을 두루 다니고, 아홉 스무 만에 드디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9 요압이 왕에게 백성의 수를 보고하였다. 칼을 빼서 다룰 있는 용사가, 이스라엘에는 팔십만이 있고, 유다에는 오십만이 있었다.

10 다윗은 이렇게 인구를 조사하고 다음에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래서 다윗이 주님께 자백하였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11 다윗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다윗의 선견자로 있는 예언자 갓이 주님의 말씀을 받았다.

12 "너는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 주가 말한다. 내가 너에게 가지를 내놓겠으니, 너는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그대로 처리하겠다.'"

13 갓이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말하여 알렸다. "임금님의 나라에 일곱 동안 흉년이 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임금님께서 왕의 목숨을 노리고 쫓아다니는 원수들을 피하여 동안 도망을 다니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임금님의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제 임금님께서는, 저를 임금님께 보내신 분에게 제가 무엇이라고 보고하면 좋을지, 생각하여 보시고,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4 그러자 다윗이 갓에게 대답하였다. "괴롭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니, 차라리 우리가 주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석
1: 다윗의 인구 조사 기사는 왕의 교만이 이스라엘에 어떤 재앙을 초래했는지 보여준다. 사건은 왕권의 파괴적인 잠재력을 보여주는 일종의 비유라고 있다(IVP 성경신학 사전).

 

다윗의 인구 조사는 자신의 세력을 확인하려는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요압이 인구조사를 말렸지만 왕을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4절). 다윗은 인구조사 이후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지만(10절),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14절).

 

다윗은 이방의 왕들과 달라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왕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세력을 확인하려 했고, 이는 하나님 앞에서 죄로 여겨집니다. 다윗은 인구조사가 마친 뒤에 즉각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징계를 피할 순 없었지만, 하나님의 징계는 제한적으로 행해집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 자원, 능력들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진정한 왕이 누구인지 기억합시다.

 

——

오늘 본문은 많은 질문을 유발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다윗을 부추기시는 장면이다. 그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전염병을 내리시면 일을 다윗을 부추기셔서 죄를 짓게 뒤에 다윗의 죄의 결과로 이스라엘의 사람들을 죽이시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시는가? 

그전에 이스라엘의 죄가 큰가 아님 다윗의 죄가 큰가? 

이것도 아리송이다. 

 

일단 하나님의 판단이 공정하다는 전제 하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기시에 정말 죄악을 저질렀다. 

하나님이 크게 분노하실 때는, 사사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 결국 다른 이방신을 섬기는 행위를 하는 경우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을 섬기는 경우, 하나님은 이웃 나라의 군사를 활용하여 백성들이 억압받도록 허락하셨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바알, 아세라 등의 이방신을 섬기게 되는 상황에 대해 하나님은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다윗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우상숭배의 풍습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것은 아닐까! 

죄에 대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신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는 그럴 있다고 치자, 그런데 다윗을 부추기시는가. 하나님 당신이 사랑하시는 왕을 부추기셔서 그로 하여금 백성을 죽게 만드는 원흉으로 스스로 깊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실 이유가 무엇인가? 

갑자기 다윗이 너무 불쌍해 보인다. 이것도 다윗의 오래된 죄에 대한 결과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다. 

 

다윗은 결국 흉년 내지는 전염병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14 그러자 다윗이 갓에게 대답하였다. "괴롭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니, 차라리 우리가 주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는 것은 아마도 3개월 동안 반역자들에게 쫓겨다니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미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다닌 적이 있다. 아마 너무 고생스러웠고,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을 것이다. 

주님의 손에 벌을 받는 것은 중에 하나다. 흉년으로 고생하든가 전염병으로 고생하든가. 

그런데 흉년은 7년이고, 전염병은 3일이니, 아마도 전염병을 선택한 같다. 

 

하나님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죄악은 결국 다윗 왕의 통치력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있다. 

하나님은 그것이 화가 것이다. 이스라엘의 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다윗을 통한 심판을 내리기로 결정하셨을 것이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통해 하나님의 위치에 도취되고 싶어했다. 막강한 군사력을 확인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추김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지 옵션을 제시한다. 

이스라엘의 죄와 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다윗의 , 다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다윗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간의 도망자 신세가 되는 아니었을까? 

하나님은 과거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하던 때에 다윗이 최고의 믿음과 신실함을 보였음을 알고 있었다. 

지난 압살롬의 반역 때도 다윗은 최고의 겸손함을 가지고 자신의 죄에 대해 반성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다윗이 다시 광야로 도망다니면서 모든 신뢰를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기를 바라셨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윗이 정신을 차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도려내기를 바라셨다. 

 

다윗의 병사들이 전국을 다니면서 인구조사를 했다. 

인구조사의 결과가 나오는 데는 9달하고 20일이나 걸렸다. 거의 10개월이다. 10개월 동안 다윗의 부하들은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현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첩보를 왕에게도 전달했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백성일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이었다. 사사기 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곳곳에 이방 신상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단호한 결심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왕은 모든 상황을 파악/조치할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음에도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이번 처벌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만을 향한 처벌이 아니었던 것이다. 관리부재의 책임을 다윗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다윗이 단호하게 우상숭배의 죄를 다루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은 다시 광야로 나가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단호한 결정이 그에게 필요했다. 아둘람 동굴의 다윗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의지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다윗은 더욱 절실히 깨달아야 했다. 

 

그렇다면 아무리 그간의 고통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더라도 다윗의 선택은 달간의 광야 생활이어야 했다. 궁궐에서의 평안한 삶이 아니라 광야로 나아가 다시 말년에 마음을 붙잡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회복하는 것이어야 했다. 흉년도 아니고, 전염병도 아니고, 광야가 정답이었다. 

 

그런면에서, 다윗은 다시 실패했다. 단순히 인구조사를 것이 실패가 아니라, 인구조사의 결과 하나님의 시험, 삼지 선다형 시험에서 실패한 것이다. 

하나님은 다시 다윗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원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면서 자신의 아들 이삭을 바치러 모리아 산에 올라갔던 아브라함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갔던 예수님처럼 

다윗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분께 맡기기 위해 광야에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노욕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아무리 젊었을 , 영광스런 일을 많이 했더라도, 늙어서 자신의 야망과 욕심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면서 그분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수도 있다. 

제발 대형교회,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 끝까지 초심을 잃지 말고, 마지막 순간에 광야에 들어가길 기도한다. 

광야에 들어가 진정 하나님만이 자신의 삶의 최우선이었으며, 그분과의 교제가 최고의 가치였음을 삶으로 증명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나도 늙어가길 바란다. 

 

——

일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젊었을 때만의 주님이 아니라 늙어서도 오직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삶의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축적되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져도 오직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이도 이제 50 향해 가고 있습니다. 

초조하게 무엇을 이룰지 고민하기보다 늙어서도 여전히 나의 주인은 주님입니다의 고백이 계속 나오게 해주세요. 

때로 다시 광야로 들어가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광야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고통을 회피하지 않게 해주세요.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깊이 만나고, 

당신과의 교제를 더욱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나이듦이 훈장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지게 되는 통로가 되게 해주세요.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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