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17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3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유대 사람에게서, 고난을 받은 것과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족에게서 똑같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15 유대 사람은 주 예수와 예언자를 죽이고, 우리를 내쫓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대자가 되었습니다.

16 그들은 우리가 이방 사람에게 말씀을 전해서 구원을 얻게 하려는 일까지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죄의 분량을 채웁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이르렀습니다.

 

NIV

in their effort to keep us from speaking to the Gentiles so that they may be saved. In this way they always heap up their sins to the limit. The wrath of God has come upon them at last(16절).

 

주석

유대 사람(14-15절) 바울은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 특정 그룹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로마서 9-11장에 표현된 대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돌아갈 것이라는 소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에 응답하는 백성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된다(IVP 성경주석).

 

바울이 고난을 겪었던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고난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게 되었다고 위로합니다(14절). 또한 그들이 겪은 고난의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13절). 한편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15-16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겪은 고난은 유대 교회가 겪었던 고난과 동일했습니다(14절). 바울 역시 이 고난을 경험했고, 예수님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을 때, 오히려 우리는 고난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고난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어떤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진정한 복이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1. 실제 그대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자랑스러운 일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울 선교단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때, 구약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풀 때, 그걸 사람의 말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멘 하며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놀라운 장면이다. 

비판적으로 들을 수 있었지만, 그래서 취사선택할 수 있었지만, 성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니 그 말씀은 여전히 살아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노력하고, 그 말씀이 권면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이 성도 가운데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칭찬은 참으로 소중하다. 

이방인 출신 성도들이 자신들이 따르고 섬겼던 신과 그 민족 특유의 문화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삶의 증거들이 바울에게도 전달되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감사하게 된다. 

 

2. 똑같은 고난

성도들 속에서 말씀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그들이 고난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견뎌내고 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듯이, 이방인들도 그들 가운데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듯이, 이방인들도 그들 출신의 예수 추종자들을 잡아 가두고 협박하고 위협한다. 

그럼에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잘 인내하고 있다. 

바울이 감사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 교회의 성도들도 신앙생활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과학 기술은 고도화되고, 종교인에 대한 오해와 혐오가 커진다.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하고, 이단/사이비들이 기름을 붓는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매주 교회당에 모이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느낀 교인들이 대다수다. 

유럽 교회들처럼, 한국 교회들도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멀리하고 있다. 

교회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살아남기도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겨우겨우 교회만 나와도 감지덕지다.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성도, 나와 우리가 그런 성도가 되길 기도한다.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실제 삶에 적용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나와 우리가 되길 바란다. 

 

새로운 한 주, 전국의 캠퍼스 사역자들이 모이는 시간, 

긴장되고, 부담될 수도 있지만, 그들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말씀의 능력을 보길 원한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평화를 빌며 사랑을 전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부분이 떠오른다. 

 

고후 13:11-13_11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12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첫 부분도 귀하다. 

 

살전 1:2-3_2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3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서로에게 고백되는 순간이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을 주심으로 대화를 이어가시고, 소통하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격려하는 순간들이 더 늘어나게 하소서. 

성도들 사이의 사랑의 마음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 

부담보다 사랑이 이기는 하루, 한 주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3월 28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6 요점은 이러합니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7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8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가 넘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9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뿌려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 심는 사람에게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씨를 마련하여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여러분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입니다.

11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후하게 헌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12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

13 여러분의 이 봉사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또 그들과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14 그들은 또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때문에 여러분을 그리워하면서, 여러분을 두고 기도할 것입니다.

15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NIV

Thanks be to God for his indescribable gift!(15절)

 

주석

12절 예루살렘 성도들 중 가난한 사람들은 주후 46년경에 시작된 팔레스타인 기근의 여파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 여파가 얼마나 멀리 미쳤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헌금을 모으는 일은 매우 궁핍하던 시대에 일어난 일이다(BST 고린도후서).

 

바울은 요점을 한 번 더 강조하며 정리합니다.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6-7절). 이로 인해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 온갖 넘치는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 교인들을 통해 구제받는 이들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8-15절).

 

하나님은 가장 선한 방식으로 가난한 자를 도우시며, 이로 말미암아 넘치는 은혜를 모두 함께 누리게 하십니다. 구제의 대상은 극심한 기근을 겪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봉사는 이방인에게도 화해의 직분과 생명의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 됐습니다. 우리 주변에 가난하고 메마른 곳은 어디인가요? 그곳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화해와 생명을 증언합시다.

 

[오늘의 묵상]

바울이 요점을 명확히 밝혀 주니 참 고맙다. 

바울의 요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구제 헌금을 많이 하라.

다른 하나는 각자 정한대로 기쁜 마음으로 하라.

기근 속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위해 돈을 모금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부유한 사람들이 연약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부유한 사람들의 부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사회 시스템이 부를 한 곳으로 모은다. 

사람들의 기호가 부의 이동을 부른다. 

사람들의 기호는 사회적 현상이며, 때로는 조작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인정과 기호를 통해 상품이 판매되고 돈이 움직인다. 

연예인이든, 대기업이든 자신들의 부는 어찌보면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에서 나온다. 

그러니 사회적 인정과 사랑이 그들의 부가 되는 것이다. 

출발점도 다 다르다. 

금수저가 있고, 흙수저가 있다. 

물론 환경이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어쨌든 부는 사회적 산물이다. 

부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이 유지, 관리, 혁신되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부를 나누는 행위는 사회 시스템의 유지, 관리, 혁신에 도움이 된다. 

가난한 사람을 방치하는 사회 시스템으로는 현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매정하고 냉혹한 사회에 대해 염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물며 일반 사회도 이렇게 복지를 위해 애를 쓰는데, 하나님 나라는 더욱 그리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그래서 더욱 힘을 다해 나눔을 권면하고 있다. 

많이 내는 사람들을 통해, 그 헌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누린다. 

사회적 부가 공유된다.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재정적 서포트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억지로 무리해서 내서는 안된다. 

기쁘게 낼 수 있을 정도로 내는 것이 합당하다. 

억지로 기쁨을 조작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구제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이 봉사의 일은 사람들의 궁핍함과 핍절함을 돕는데 크게 사용된다. 

동시에 이 봉사가 하나님께 감사가 되게 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교회가 최선을 다할 때, 사람들은 교인들에게 감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일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조성에 관심이 많으시다.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신다. 

 

억압받아 고통 속에 있으면 자연스레 가난해 진다. 

재물을 축적하기가 어려워진다. 

정부의 압박은 시장에서 퇴출될 정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억압받는 사람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 그래서 가난하게 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친일파들이 축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일본제국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민족적 자존심보다 일본의 대동아공영론에 끌렸던 사람들이다. 

일본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권력가의 편을 드니 재물이 모인다.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탄압을 받고 재산을 잃는다. 

 

하나님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출하기를 원하신다. 

억울한 사람들이 억울함을 풀기를 원하신다. 

갇힌 사람들이 다시 풀려나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자유로이 사람 살 만한 공간을 창출하기 원하신다. 

이 일을 위해 돈을 쓰고, 에너지를 쓰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시선이 머문다. 

좀 과장하면,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 

억울한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이 가장 오래 가장 밀도있게 머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냥 들어갈 수 없으니, 자신이 가진 돈을 가지고 들어가면 된다.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로 들어가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만나는 최상의 방법이다. 

성경공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성경공부는 자연스레 삶으로 이어져야 하며, 성경공부가 지향하는 삶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과의 공동식사다.  

 

** 목회데이터연구소, Numbers 183.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단어가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보육원을 졸업하고 자립준비하는 청년들 중에 50%가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얼까 다시 고민해 본다. 

우리 교회 바로 옆이 “송죽원”인데,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의 기도]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 주시는 주님, 

억압받는 백성들 곁에 계셔 주시는 주님, 

주님을 더 깊이 느끼고 경험하길 원합니다. 

내면 속에서, 기도 속에서 만나는 주님도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상한 사람들 속에서 주님을 만난다면 더욱 기쁘고 감사할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상처입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깊이 파였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믿기지 않습니다. 

주님, 고통받는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셔서 위로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5 21 금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1 하루는 다윗이 물었다. "사울의 집안에 살아 남은 사람이 있느냐? 요나단을 보아서라도, 남아 있는 자손이 있으면, 보살펴 주고 싶구나."

2 마침 사울의 집안에서 종노릇 하는 시바라는 사람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불러 다윗에게로 데리고 왔다. 왕이 그에게 "네가 시바냐?" 하고 물으니 "그러합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3 왕이 물었다. "사울의 집안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있으면 내가 하나님의 은총 그에게 베풀어 주고 싶다." 그러자 시바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요나단의 아들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다리를 접니다."

4 왕이 그에게 물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는 지금 로드발에 있는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삽니다."

5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서, 로드발에 있는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왔다.

6 사울의 손자이며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와서 엎드려 절하였다. 다윗이 "네가 므비보셋이냐?" 하고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 임금님의 , 므비보셋입니다."

7 다윗이 그에게 말하였다. "겁낼 없다. 내가 너의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해서 네게 은총을 베풀어 주고 싶다. 너의 할아버지 사울 임금께서 가지고 계시던 토지를 너에게 모두 돌려주겠다. 그리고 너는 언제나 나의 식탁에서 함께 먹도록 하여라."

8 므비보셋이 엎드려 아뢰었다. " 종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나 다름없는 저를 임금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9 다윗 왕은 사울의 시바를 불러서 일렀다. "사울과 그의 집안이 가졌던 모든 것을, 내가 이제 너의 상전의 손자인 므비보셋에게 주었다.

10 그러니 너는 너의 아들들과 종들과 함께 모두 땅을 갈고 거두어서, 너의 상전의 집안이 먹을 양식을 대도록 하여라. 그러나 너의 상전의 손자인 므비보셋은 언제나 나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것이다." (시바에게는 아들 열다섯과 스무 명이 있었다.)

11 시바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높으신 임금님께서 종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종이 모두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므비보셋은 왕자들과 다름없이, 언제나 다윗 왕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었다.

12 므비보셋에게는 미가라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시바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므비보셋의 종이 되었다.

13 므비보셋은 언제나 왕의 식탁에서 먹었으며, 예루살렘에서만 살았다. 그는 다리를 절었다.

 

다윗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합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사울 집안의 남은 자손을 찾습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을 데려옵니다(1-5절).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으며 그를 아들처럼 대합니다. 그리고 사울의 토지를 모두 돌려주고, 시바로 하여금 그 땅을 경작하여 므비보셋의 양식을 마련하라고 명령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풉니다(6-13절).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사울 집안의 자손을 찾고, 그 재산을 다시 돌려주며, 왕의 식탁에 초대합니다. 다른 이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수고와 대가가 뒤따릅니다. 우리 주변에 내가 사랑해야 할 이들을 떠올려 봅시다.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통로가 됩시다.

 

 

——

시바의 일기

 

내가 섬기는 므비보셋은 절름발이다. 

몰락한 왕가의 마지막 자손이다.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자 다섯 므비보셋은 유모의 도움으로 도망치다가 넘어져서 중증 장애인이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사울 왕을 따르던 사람으로서 가까스로 살아난 마지막 왕손 므비보셋을 지키고 돌봐야 책임감을 느꼈다. 

그건 분명히 옳은 일이었지만, 문제는 다윗 왕이 언제 므비보셋과 나를 죽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사울이 다윗을 얼마나 죽이려고 했는지 알고 있었다. 

물론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조가를 짓고, 노래를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부르도록 조치를 취한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그건 정치적 제스처일테고, 언제 어떻게 소리 소문 없이 죽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걱정하며 살아왔다. 

이스보셋과 아브넬이 다윗과 맞설 때만 해도 생존의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제는 엄연한 다윗 왕국이고, 우리는 파리 목숨이다. 

 

그날 갑자기 다윗 왕이 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음의 사신이 드디어 나에게 찾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가 펼쳐졌다. 

왕이 므비보셋을 살려주고, 땅을 돌려주며, 게다가 왕의 식탁으로 초대한다는 말이었다. 

충격 자체였다. 

자신을 그토록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가의 자손을 이렇게 선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죽지만 않아도 감사한 일인데,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할 있는 권리를 준다니 말이다. 

나에겐 사울의 땅을 경작하고 농산물로 므비보셋을 돌봐 것을 명령하셨다.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한다. 

혹시라도 므비보셋이 다윗 왕과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서 자칫 밉보이면 우리들까지 전부 목숨을 잃을 판이다. 

그렇다고 왕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다. 분명 왕은 진심으로 므비보셋을 대하고 있었다. 

므비보셋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도움이 수도 있을 것이다. 

경계를 풀기 마련이다. 므비보셋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군대를 일으키거나 모반을 꾀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점은 다행이다. 

그럼에도 걱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없다. 

 

나에겐 15명의 아들이 있고, 건강한 20명이 있다. 

식솔들을 이끌고 므비보셋을 건사해야 한다. 므비보셋에게 도움이 될만한 아들을 그의 몸종처럼 두고 보살피는 것이 좋을 같다. 그가 다른 생각 먹지 말고 온순하게 순종적으로 다윗 왕의 은총과 시혜를 누리도록 옆에서 보좌하는 것이 나의 , 우리 가족의 일이다. 

 

다시 생각해도 이건 충격적인 은혜다. 

다윗 왕의 은혜이기도 하지만, 그가 직접 언급했던 것처럼 이건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는 일단 살았다. 

다윗 왕의 조가는 진심이었음이 느껴진다. 

그는 성군이다. 

감사와 감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집 여인들도 감사의 춤을 춘다. 매번 만날 때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눈다. 

아내도 며느리도, 종의 아내들과 며느리들도 모두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나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나에게 내렸다. 

 

다윗 왕도 그런 고백을 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대하시는 것이 어찌 평범한 일이라고 있나!”

나도 그렇다. 

나처럼 보잘 없는 종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생명을 보장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오늘은 우리 가족, 식솔 모두가 잔치를 벌일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다윗 왕에게 감사의 축제를 드리고자 한다. 

 

 

——

하나님, 저에게 베푸신 당신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감사의 찬양이 자연스레 흘러 나오게 하소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나의 힘이 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저를 감싸옵니다. 

다시 주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서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의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찾고 

겸손하게 주님을 높이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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