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1월 23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8 이스라엘 왕이 낙담하여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 주십시오.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그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9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멈추어 섰다.10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장군의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11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12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며 떠나갔다.13 그러나 부하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시킨 대로, 요단 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15 나아만과 그의 모든 수행원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와, 엘리사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야 나는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예언자님의 종인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16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섬기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소” 하고 사양하였다. 나아만이 받아 달라고 다시 권하였지만, 엘리사는 끝내 거절하였다.17 나아만이 말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나귀 두어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예언자님의 종인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는,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습니다.18 그러나 한 가지만은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주님께서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모시는 왕께서 림몬의 성전에 예배드리려고 그 곳으로 들어갈 때에, 그는 언제나 저의 부축을 받아야 하므로, 저도 허리를 굽히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림몬의 성전에서 허리를 굽힐 때에, 주님께서 이 일 때문에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벌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19 그러자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말하였다. “좋소,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렇게 하여 나아만은 엘리사를 떠나 얼마쯤 길을 갔다.

 

ESV 

So he went down and dipped himself seven times in the Jordan,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man of God, and his flesh was restored like the flesh of a little child, and he was clean(14절).

 

주석

안수(11절). 안수(손을 올리는 것)는 종종 신을 불러내거나 주문을 외울 때의 행동으로 나아만은 그러한 방법을 기대했다(IVP 성경배경주석).

나귀 두 마리에 실을 흙(17절). 여호와의 땅이 거룩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흙이 시리아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릴 신성한 장소를 만드는데 필요하다는 믿음을 반영하였을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나아만의 종들 

나아만 장군은 그의 왕 앞에 신실하며 귀히 여김을 받던 사람이었다. 

성경의 기자는 나아만 에피소드를 그렇게 시작했다(왕하 5:1).

그런데 오늘 본문을 살펴 보니, 나아만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의 종들도 참으로 신실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엘리사의 능력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나아만이 엘리사의 황당한 지시에 그냥 돌아가려고 한다.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지시였다. 

기도를 해 준 것도 아니고, 안수를 해 준 것도 아니고, 어떤 의식을 치른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맞이한 것도 아니다. 

어떻게보면 나아만 장군은 무시를 당한 것이다. 

군사를 이끌고 있는 그가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완전히 쓸어 버릴 수도 있었던 일이다. 

그나마 나아만이 잘 했던 것은 자존심이 상했어도 극단적인 행동을 참아 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종들의 충언을 받아 들인 것이다. 

 

결국 요단 강에서 일곱 번을 씻는다.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들어갈 때마다 점점 좋아졌을지, 일곱 번의 목욕이 끝난 뒤 갑자기 좋아졌을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돌고 소리를 치니 무너졌던 것처럼, 나아만의 병도 갑자기 나았을 가능성이 좀더 높다. 

아기 피부처럼 깨끗하게 되었다. 

 

놀라온 광경이었다. 

나아만 뿐만 아니라 함께 왔던 수행원들, 군사들이 모두 놀랐다. 

나아만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 

병이 낫는 과정 전체를 놓고 보면 나아만의 가장 큰 장점은 겸손이다.

여종의 말을 겸손하게 들었고, 수행원의 말을 겸손하게 들었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다. 

 

2. 배려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 눈에 들어오는 이야기가 또 있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한 가지를 요청하는 장면이다. 

온갖 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엘리사가 거절하자 결국 선물을 주지는 못하고 한 가지 다짐과 한 자기 요청을 하게된다. 

 

17 나아만이 말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나귀 두어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예언자님의 종인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는,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습니다.18 그러나 한 가지만은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주님께서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모시는 왕께서 림몬의 성전에 예배드리려고 그 곳으로 들어갈 때에, 그는 언제나 저의 부축을 받아야 하므로, 저도 허리를 굽히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림몬의 성전에서 허리를 굽힐 때에, 주님께서 이 일 때문에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벌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다짐은 이방 세계에서 지키기 어려운 일이었다. 

바로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각 민족마다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던 시대에서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남은 인생동안 몸으로 행동으로 증언하겠다는 다짐이다. 

나아만과 그의 식솔들 그리고 그의 수행원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왕의 신하다. 

아람 왕은 림몬에게 제사를 드렸고, 그를 부축하며 수행해야 했던 그는 한 가지를 요청하게 된다. 

림몬의 성전에 들어갈 때,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굽혀야 했던 것이다. 

그것까지 그만 둘 수는 없었다. 

하나님의 용서를 미리 구한다. 

엘리사는 그에게 안심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적용한다면 그에게 안심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온 우주의 참 신이라면, 민족을 버리고 유대인이 되시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절대 안되오. 당신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신에게 허리를 굽히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다시 나병에 걸리게 될 것이오’라고 저주의 예언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안심하라고 말한다. 

나아만의 상황을 고려해주시고 배려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보인다.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사람들의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제안과 요청을 한 나아만도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군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자신의 일상에서 온전히 인정하기로 하지만, 그래도 신하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생각도 포기하지 않는다. 

 

타협인가 생활 영성인가? 

애매한 지점이 있다. 

누가 보기에는 타협이라고 할 수도 있다. 

누가 보기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영성이라고 말할 것이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상황을 많이 고려하시는 분이시다. 

과학기술의 발달을 고려하신다. 

심리학과 철학의 발달을 고려하신다. 

사람들의 영적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신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의 다양성을 허용하신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스스로 정하기를 원하신다. 

물론 지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른 신이 있지 않다는 것을, 오직 온 우주의 유일한 신은 여호와 하나님임을 주장하신다. 

그걸 받아들이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신실하게 그 신앙을 표현하기를 원하신다. 

 

 

[오늘의 기도]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해주시는 하나님, 

신앙을 타협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으며, 사람들의 지식은 날로 더하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바라보던 자연/우주와 현대 사회에서 바라보는 자연/우주가 다릅니다. 

주님, 축적되어 변화된 지식 속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주님으로 인정하고 싶습니다. 

겸손하게 주님을 왕으로 모십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의 왕으로 우리 앞에 우뚝 서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강권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더 사랑하라고,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사랑의 힘을 잃어갑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도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과 사랑을 공급해 주세요. 

 

이명으로 머리가 아픕니다. 

나이가 드니 몸과 마음도 지칠 때가 많습니다. 

새로운 힘을 공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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