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1월 24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20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시종인 게하시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의 주인께서는 이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가져와 손수 바친 것을 받지 않으셨구나.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내가 그를 뒤쫓아가서 무엇이든 좀 얻어 와야 하겠다.’21 그래서 게하시는 곧 나아만을 뒤쫓아 달려갔다. 나아만은 자기를 뒤쫓아 달려오는 사람을 보고, 그를 맞이하려고 수레에서 내려 “별일 없지요?” 하고 물었다.22 게하시가 대답하였다. “별일은 없습니다만, 지금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면서, 방금 에브라임 산지에서 예언자 수련생 가운데서 두 젊은이가 왔는데,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3 그러자 나아만은 “드리다뿐이겠습니까? 두 달란트를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게하시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자루에 넣고, 옷 두 벌을 꺼내어서 두 부하에게 주어, 게하시 앞에서 메고 가게 하였다.24 언덕에 이르자, 게하시는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집 안에 들여 놓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25 그리고 그가 들어가서 주인 앞에 서자, 엘리사가 그에게 물었다. “게하시야, 어디를 갔다 오는 길이냐?” 그러자 그는 “예언자님의 종인 저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26 그러나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너를 만나려고 수레에서 내릴 때에, 내 마음이 너와 함께 거기에 가 있지 않은 줄 알았느냐? 지금이 은을 받고 옷을 받고, 올리브 기름과 포도나무와 양과 소와 남녀 종을 취할 때냐?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로 옮아갈 것이고, 네 자손도 영원히 그 병을 앓을 것이다.” 게하시가 엘리사에게서 물러나오니, 나병에 걸려, 피부가 눈처럼 하얗게 되었다.

 

메시지 

나아만이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 거룩한 사람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혼자 중얼거렸다. “내 주인께서는 감사의 표시 하나 받지 않고 아람 사람 나아만을 그냥 돌려보냈구나.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 얻어 와야겠다!”(20절)

 

주석

은 한 달란트(22절). 게하시의 요청은 얼마 안 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한 액수다. 은 한 달란트는 300년간의 임금에 해당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엘리사의 종 게하시 

게하시는 엘리사가 얼마나 권위있는 선지자인지 알고 있다.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지켜보았다. 

선지자 학교의 교장 선생님인 엘리사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했으며, 여러 기적들을 행했다. 

엘리사의 말에는 권위가 있어서 축복과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졌다(왕하 2:19-25).

당연히 그의 종인 게하시는 엘리사의 뜻을 거스르지 말아야 하며, 조심했어야 했다. 

시리아 장군 나아만에게 어떤 선물도 받지 않았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게하시는 그 뜻을 살폈어야 했다. 

하지만 게하시는 자신의 욕심을 따랐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추측해 본다. 

 

추측 하나,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질적으로 충분한 사례를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가뭄이었고, 선지자 학교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게하시는 일종의 노력 봉사를 하고 있었다. 

 

추측 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가로 하더라도 가까이서 모시면 그의 약점이 보였을 것이다. 

게하시는 엘리사 바로 곁에서 섬기던 종이었다. 

엘리사가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 가까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주인의 약점을 보게 되었을 것이며, 자연스레 남들이 보는 엘리사보다는 좀더 낮은 권위자로 바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추측 셋, 본전 생각이 났을 것이다. 

자신의 섬김과 희생에 비해 현저히 낮은 대우에 대해 보상 심리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도 이제 후일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 엘리사의 종으로 있을 수는 없다. 

이 참에 큰 돈을 모아서 평생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을 것이다. 

 

추측 넷, 시리아 고위 장군으로부터 받는 것은 괜찮을 거라는 판단. 

시리아 고위 장군은 돈도 많고, 가진 것도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에게 이 정도의 돈과 선물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온갖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추측은 사실 매우 현대적이며, 어찌보면 나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을 지 모른다. 

나도 이런 욕심이 순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오랫동안 순종의 삶을 살아왔다고 믿고 있는데, 그에 합당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하시의 마음을 추측하면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 게하시 같은 종이 아닐까 돌아본다. 

 

2. 엘리사의 저주 

그렇다고 엘리사가 내린 저주는 참으로 참혹하고 과도하다. 

게하시 개인에게만 벌을 주면 그만이지, 그의 자손들까지도 저주를 받게 하는 것을 보면, 엘리사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고민하게 된다. 

지난 번 대머리라고 놀렸다고 아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어 죽이질 않나, 이번에는 자신을 섬겼던 종의 잘못을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저주함으로 그의 분노를 퍼붓고 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과연 잘 보여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살려달라 중보하지 않았던가!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로마 병사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엘리사는 뭔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저주를 남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성경의 인물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다 반영한다고 확신할 수가 없다. 

심지어 다윗 조차도 실수 할 때가 있었다. 

당연히 엘리사도 실수 할 수 있다. 

그럼 그의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의문이다. 

그의 저주는 권위와 권능이 있어서 실제 구현되는 놀라운 기적이었다. 

기적을 행한다고 모두 하나님의 뜻 100%의 온도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 100%를 실현한다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은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능력을 구했을 때,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긴 하셨지만, 그렇다고 그의 성품과 성격이 하나님을 온전히 반영한다고 퉁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게 딜레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조심해야 할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와 능력과 은사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항상 조심하고, 항상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반영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 속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실현된다고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유독 추운 날입니다. 

날씨만 추운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도 얼어 붙는 느낌입니다.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나약한지요!! 

자신도 모르게 불안과 무기력과 불만이 차 오릅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갑자기 올라옵니다. 

사탄이 주는 생각일 수도, 제 마음의 처절한 호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그래서 오늘 주께서 주시는 새로운 꿈과 소망과 힘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저를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저의 욕망의 지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꿈과 뜻으로 가득 채우소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일어나게 하시고, 주께서 행하실 것에 대한 기대로 불타오르게 하소서. 

주님! 

저의 인생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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