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7. 김혁수

 

[본문_왕상 18:41-46_새번역]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빗소리가 크게 들리니, 이제는 올라가셔서, 음식을 드십시오."

42 아합이 올라가서, 음식을 먹었다. 엘리야는 갈멜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을 바라보며 몸을 굽히고,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다.

43 그리고는 그의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쪽을 살펴 보라고 하였다. 시종은 올라가서 보고 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엘리야가 다시 그의 시종에게, 일곱 번을 그렇게 다녀오라고 하였다.

44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에, 시종은 마침내,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부터 떠올라 오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엘리야는 아합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비가 와서 길이 막히기 전에 어서 병거를 갖추고 내려가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였다.

45 그러는 동안에 이미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캄캄해지고, 바람이 일더니, 비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아합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내려갔다.

46 주님의 능력이 엘리야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엘리야는 허리를 동여 매고, 아합을 앞질러서, 이스르엘 어귀에까지 달려갔다.

 

주석

46: 구절은 빨리 달렸다는 말이 아니라 이스르엘에 도착할 때까지 아합의 병거 앞에서 달려갔다는 말이다. 왕이나 왕자의 병거 앞에서 달려가는 사람들은 그의 측근자들이다. 엘리야는 야웨의 권세하에, 선지자적 포고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IVP 배경주석).

 

0. 들어가며 

- 26km 

26km라고 구글에 봤습니다. 그랬더니 우연찮게 이런 회사 하나가 검색되더라구요. 

 

26km is...

26km 영상 콘텐츠 제작 회사입니다.
뮤직비디오, CF, 유튜브  모든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으며,
영상 기획부터 후반 작업까지 영상 제작의 모든 과정을 디렉팅하고 있습니다.

창밖의 풍경이 가장 보이는 속도 26km처럼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영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시속 26km 차가 달리면 밖에 풍경이 가장 보인다고 해서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제법 괜찮은 작명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시속 26km 아니라 실제 거리 26km 등장합니다. 실제 거리 26km 달리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어 볼까요?

 

1. 인상적인 장면 

최근 큐티 본문은 엘리야 선지자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을 읽다가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엘리야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마차 앞에서 달리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아합왕의 궁이 있던 사마리아의 이스르엘 지역까지 26km 왕의 마차, 혹은 병거 앞에서 달리기를 것입니다. 46절입니다. 같이 다시 읽어 볼까요? 

 

46 주님의 능력이 엘리야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엘리야는 허리를 동여 매고, 아합을 앞질러서, 이스르엘 어귀에까지 달려갔다.

 

여기서 아합을 앞질러서 달려갔다는 표현은 단순히 아합의 마차보다 빨랐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아합의 마차와 보조를 맞춰 달려가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했다는 말입니다. 26km 말의 속도와 비슷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비를 맞으면서 달리고 있습니다. 3년간의 가뭄 끝에 내리는 비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밖에 나와 비를 맞으면 기뻐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살았다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물에 물이 넘치고 시냇가에 물이 가득합니다. 말라 갈라졌던 땅이 농사짓기 좋은 옥토가 되어갑니다. 3년간 지속되던 가뭄이 이제 끝난 겁니다. 오랫동안 비의 , 날씨의 , 바알에게 제사를 지내며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그들은 바알이 비를 내려 주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왕의 마차 앞에 뛰어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였던 겁니다. 동시에 어떤 소문도 함께 도착했습니다. 바알와 아세라의 제사장과 선지자 850 집단 살해, 갈멜산의 대결투, 1:850 싸움에서 이긴 엘리야, 여호와의 최종 승리, 이런 타이틀의 뉴스가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조금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2. 엘리야와 아합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은 둘로 나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죠. 북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반역과 쿠테타로 왕조가 바뀌다가 오므리 왕조의 번째 왕인 아합에 이르러서 상당히 안정되고 번성한 나라가 됩니다. 그런데 아합이라는 왕이 하나님 편에서 보면 무능하고 엉망인데요, 시돈에서 이세벨이라는 왕비를 맞이합니다.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 신을 전국 방방 곡곡에 소개하고 섬기게 만들죠. 때가 기원전 870-60년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북이스라엘에 저주를 내립니다. 가뭄을 선포한 것이죠. 그리고 3년간 엘리야는 숨어 지냅니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난 어느날, 엘리야는 갑자기 나타나 제안을 합니다. 

 

17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요?” 18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과 임금님 아버지의 가문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주님의 계명을 내버리고바알을 섬기십니다. 19이제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갈멜 산으로 모아 주십시오. 그리고 이세벨에게 녹을 얻어 먹는 바알 예언자 사백쉰 명과 아세라 예언자 사백 명도 함께 불러 주십시오.” 20아합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고, 예언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았다.(열왕기상 18:17-20)

 

이렇게 흥미진진한 1:850명의 대결이 벌어진 겁니다. 갈멜산에서 제단에 불을 내리는 신이 신이라고 하고 서로 내기를 합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몸을 자해해가면 바알과 아세라를 불러보지만, 제단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제단에 물을 부어 흥건하게 적신후에 여호와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야 제다다 불태워 버린 겁니다. 즉시로 850명의 바알, 아세라 신의 선지자들을 죽여버립니다. 아합은 사건을 보면서 진정한 신은 여호와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시작된 겁니다. 3년간의 가뭄이 끝났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그리고 아합은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를 왕의 마차 앞에 달리게 하면서 진정한 신은 바알과 아세라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게 하죠. 따라서 오늘 장면은 엘리야와 아합이 서로 싸우는 장면이 아니라, 아합이 여호와 하나님께 승복하여 엘리야와 함께 하나님을 증거하는 장면입니다. 

 

3. 엘리야의 달리기 

장면은 다른 각도에서 살펴봅시다. 여러분, 3년간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죠.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의 체력이 26km 달릴 체력이었을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지금 엄청난 대결을 벌이고 850명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엘리야 학살설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도록 합시다. 어쨌든 이스라엘을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게 만들었던 850명의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을 제거한 겁니다. 엄청난 일들이 끝난 , 그가 가진 거의 모든 체력이 소모되었는데, 이제 그는 20km 왕의 마차 앞에서 뛰는 겁니다. 왕의 마차이다 보니 얼마나 좋은 말과 차가 사용되었겠습니까? 최고의 말과 최고의 마차 앞에서 달리는 겁니다. 그냥 달리는 것도 어려운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옷이 젖어 무거워지고 곳곳에 생긴 웅덩이로 인해 장애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26km 왕의 마차 앞에서 달리고 있는 겁니다. 누구의 힘으로요.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달리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힘을 몰아서 써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며칠을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해야 때가 있습니다. 선교여행을 하면 짧은 기간안에 정말 쉬지 않고 일하고 달립니다. 사람들도 돕고 예배도 드리고 좋은 구경도 합니다. 모든 것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럴 , 우리는 누구의 힘을 의지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달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과 에너지로는 불가능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은사나 재능만으로도 계속 달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4. 나가며 

어제 10km 달리기를 하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몰려 왔습니다. 다리는 무겁고 숨은 가빠지고 심장은 요동을 칩니다. 나이대마다 최대 심박수라는 것이 있답니다. [220 - 자기 나이]라는 공식이 있는데요, 공식에 따르면 저는 173-4 정도가 최대 심박수입니다. 그런데 중간 부터 벌써 170 넘은 같았습니다. 그만 뛰고 싶은 순간이 오죠. ,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목표한 10km 있게 도와 주세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달리기를 많이 닮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때도, 우리는 한계를 경험합니다. 그럴 우리가 드려야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목표한 일을 감당할 힘을 주세요. 저의 능력과 에너지와 은사와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하도록 도와주세요. 산소를 공급해주시고, 심박을 안정시켜주시고, 근육에 힘을 주세요. 그렇게 끝까지 달리도록 도와주세요 

 

항상 목표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한계가 있는 존재가 맞습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힘으로 목표 이상까지도 있습니다. 왕의 마차 앞에서 26km 달릴 수도 있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의 속에 가끔, 아니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힘에 부치는 일이 많습니다.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일로 인해 마음이 피곤하고 몸은 피로합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이 그런 것은 아닌가요? 우리는 이럴 , 기도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하게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엘리야는 아합 왕의 마차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 걸까요? 이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2. 지금 힘에 부친다고 느끼는 일은 무엇인가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힘에 부칠 여러분은 주로 어떻게 해소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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