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1 유월절과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속임수를 써서 예수를 붙잡아 죽일까’ 하고 궁리하고 있었다.
2 그런데 그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주석
1 절. 유대 문헌을 보면 대제사장이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들볶았다고 한다(IVP 성경배경주석).
2 절. 명절 동안에는 예루살렘이 몹시 붐볐다. 아마도 평소보다 다섯 배 정도 인구가 많아졌다. 그래서 폭동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속임수
잘못한 것이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고소하고 기소하면 그만이다.
속임수를 써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부럽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영향력, 권력이 약해지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떡해서든 예수님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없는 죄도 뒤집어씌워 대중의 인기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싶었다.
예수를 고립시켜 저 변방으로 쫓아내고 싶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를 죽이고 싶었다.
정당한 방법이 없으니 속임수를 쓴다.
현재 검찰도 대중을 속이려 든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모호한 표현으로 사기를 친다.
언론 플레이가 자신들의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해를 입을 때가 있다.
속이고 사기치는 사람들 사이에 엮여 있는 이해관계의 결속력을 이길 수 있는 송곳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힘은 막강해 보이고, 점점 더 그 세를 얻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도 속이는 사람들을 저주했던 모양이다.
잠언의 기자도 속이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한다.
말이 많은 사람들이 속이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말을 쏟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다.
속이는 말을 이기는 말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진리의 말, 진실의 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진리, 진실의 말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
사보타지라는 보드게임을 했다.
광부가 금을 캐는 것을 막는 방해꾼이 암약한다.
방해꾼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광부들이 잘 못된 방향으로 가도록 속이는 역할이다.
광부들이 유념해야 할 진리가 있다.
말이 아니라 내는 카드를 보고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말을 속이기 위한 밑밥이다.
진실은 카드에 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임수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길을 걸어가셨다.
속임수를 깨뜨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저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방법도 있다.
어쩌겠는가? 각자의 길이 있고 소명이 있으니…
소명을 따라 살 수 밖에.
2. 토론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잘 한 것도 있다.
바로 토론이다.
예수님을 잘 못 건드리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이 지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해 모의를 꾸미던 사람들이 토론했다.
어떤 속임수를 쓸지 생각하던 그들이 이제는 대중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악한 자들도 상황과 문맥을 잘 파악한다.
남을 속이려는 자들이 더 명민하고 똑똑할 수 있다.
남은 속이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중독적이며 몰입적이다.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깊이 있게 토론해야 한다.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결정해야 한다.
물론 그 토론이 언제나 정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그분이 일하시지 않고서는 우리의 토론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수고다.
토론하는 법을 잘 배우고 싶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포인트를 잘 정리하는 것과 함께 비유적 표현도 적절하게 사용하면 참 좋다.
선을 도모하기 위해 같은 방향을 가고 있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사람이고 싶다.
속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이 더욱 넘쳐 나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말을 만드신 하나님,
사람들에게 언어를 주셔서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도록 만드신 하나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사람을 살리는 말이 아니라, 죽이는 말을 던지기도 합니다.
살리는 말, 진실한 말을 많이 하도록 도우소서.
토론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 갈 때, 더욱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인싸이트 가득한 말도 중요하지만, 대부분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직한 말, 있는 그대로의 말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이끄소서.
오늘도 많은 말이 오고 갈 것입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말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어느 순간에 삼위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말을 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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