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9. 김혁수

 

[본문_창세기 2:14-19_새번역]

14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15 하늘 창공에 있는 빛나는 것들은 땅을 환히 비추어라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6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가운데서 빛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별들도 만드셨다. 17하나님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두시고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0. 들어가며 

- 나는 누구인가? 

최근에 알지 못하는 분들과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모임이건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습니다. 여러분에게 1시간 동안 자기 소개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소개할래요? 이름, 나이, 사는 아주 기본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는 1시간을 채울 수는 없을 겁니다. 개인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훑습니다.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합니다. 때로는 그걸로도 1시간을 채우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 싫어하는 것을 나눕니다. 때로는 자신의 성격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MBTI, 애니어그램 등의 성격, 성향에 대한 지표들을 활용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나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나는 누구인가?” 문장으로 대답하려고 하면, 이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어떤 것이 나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내는 정체성인지 집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세포들의 복합적 유기체다. 

나는 엄마아빠의 아들이다 

나는 지구인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INFJ이다. 

나는 박유진의 남편, 혜율, 혜강의 아빠다. 

나는 목사다. 

나는 이성적인 존재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맞는 말인데, 어떤 정의가 가장 본질적인 답이 될까요? 여러분도 한번 여러 개의 문장을 보시고, 중에 가장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장을 골라보세요. 

 

오늘은 그동안 여러분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 하나가 있는 사실입니다. 바로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제사장입니다. 어떻게 이런 대답을 있게 되는지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 함께 본문을 읽어볼까요? 

 

1. 성전으로서의 창조 

1) 성경의 통일성 

성경은 구약과 신약 합해서 66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구전되던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최종 성경이 편집되까지는 2-3천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적중에 기적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아 우리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신학 공부할 출석하던 한인교회의 서정곤 목사님은 종종 기적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로 갖가지 기적을 바라지만, 진정한 기적은 성경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지금까지 전세계 사람들이 읽을 있게 성경이 기적 중에 기적이라는 것이죠. 

 

구약과 신약 66권의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핵심 주제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주의 하나님,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책을 구성하셨다면, 책은 일관되고 통일된 관점이 있을 라고 믿는 거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동일하다는 확신 때문에 더욱 강화되는 믿음입니다. 

 

누구는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누구는 언약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학자들마다 조금씩 강조점을 달리해서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갑니다. 여러분은 성경 66권의 핵심 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2) 새로운 신학적 통찰의 충격 

21 전에 이야기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단체의 간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신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도 몰랐습니다. 대학에서 라틴어 수업을 들었는데, 겨우 낙제를 면했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를 독학으로 공부하려고 했지만, 책값만 버렸습니다. 무수한 설교를 들었지만, 사실 성경 전체를 꿰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단편적인 지식들이 머릿속을 휘집고 다녔었죠. 다만,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복음의 소식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봤기 때문에, 저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선교단체의 간사가 것이죠. 성경 스토리는 대충 알았습니다. 그러나 통일성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확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 전국의 간사님들이 모이는 수련회에서, 강사 분이 성전신학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는데요, 사실 저를 위한 강의는 아니었고, 저보다 기수 위의 간사님들을 위한 과목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궁금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선배 간사님들에게 그게 무슨 내용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핵심 정보를 얻었죠. 바로 구약과 신약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개념으로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구약의 창조이야기도 단순히 세계 만물의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의 창조라는 사실이었죠. 깜짝 놀랐습니다. 전에는 번도 그렇게 생각해 적이 없었거든요. 

 

뒤에 [성전신학]이라는 책이 2004년에 나왔습니다. G. K. 비일이라는 학자가 책인데, 그분의 책이 저의 관점을 열어 주었습니다. 책소개를 드리고 싶네요.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과학적, 물리적 의미의 세상 창조가 아니었습니다. 창조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3) 성전으로서의 창조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는 하나님이 머무실 성전의 공사입니다. 빛을 만들고, 하늘과 땅을 만들고, 육지와 바다를 만들고, 광활한 공간에 해달별을 만들어 배치하고, 물고기와 새를 만들고, 육지 동물들을 만들어 채우십니다. 이것은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종교적 신학적 배치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만드신 것입니다.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없는 시공간을 하나님께서 질서를 부여하시고 디자인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편안하게 지내실 공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편하게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맞습니다. 바로 성전입니다. 

 

2. 성전으로서의 에덴 

1) 혼란을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1:1-2)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창세기 1 1-2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하나님의 영은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사실 1-2절의 해석은 그야말로 혼란 자체입니다. 1절이 1-2장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표제어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세상을 만드셨는데, 아직 질서가 잡힌 세상이 아니라 혼돈스럽고 공허한 세상, 어둠이 깊음 위에 있는 세상을 일단 만들었다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시작되는 것이죠. 혼란함과 공허함, 그리고 어둠이 가득한 곳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무엇부터 시작하시죠? 그렇습니다. 빛을 창조하십니다. 사실 하나님 스스로가 빛이시죠. 빛의 상징은 성경 전체에 하나님을 향해 사용됩니다. 강렬한 불과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하죠. 모세에게 보이신 하나님은 강렬한 불꽃으로 등장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이끄실 때도, 거대한 불기둥으로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시죠. 다마스쿠스 언덕에서 사울은 너무나 환한 빛을 보고 눈이 멀고 말았죠.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에는 빛이신 그분으로 인해 밤이 없다고 합니다. 

 

빛을 통해 세상의 기본 구조를 만드십니다. 빛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만드시죠. 빛이 없이는, 시공간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가시광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빛이 시공간이라는 질서를 부여합니다. 빛이 있으니 세상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속성과 너무나도 닮은 하나의 물리적 존재를 제시하라고 하면 그건 틀림없이 빛일 겁니다. 더이상 땅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질서가 잡힙니다. 뒤에 그분은 공간을 구분하십니다. 물을 둘로 구분하셔서 하늘과 바다라는 고대 사람들이 보기에 도저히 규모와 크기를 상상할 없는 공간을 만드십니다. 하늘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고 그들에겐 미지의 공간입니다. 바다를 육지와 바다로 다시 구분하십니다. 공간이 계속 구획되는 것이 보이시죠? 혼란스럽던 공간이 이제 빛으로 드러나면서 하늘과 바다로 구분되고, 뒤에 바다라는 두려움과 혼란의 공간이 다시 육지와 조금 작은 바다로 구분됩니다. 

 

구분된 공간에 하나님은 각종 장식물로 채우시고 데코레이션을 하십니다. 빛과 어둠을 담당하는 해달별을 집어 넣으시죠. 하늘에는 , 바다에는 물고기를 넣으십니다. 그리고 육지에는 동물들을 넣으시죠. 이렇게 공간을 채우십니다. 어느덧 혼란스럽고 비어 있던 초기 세상이 질서가 잡히고 채워지게 되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자연 성전의 의미입니다. 

 

2) 에덴 성전에서 휴식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지성소를 만드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에덴입니다. 여러분, 성전 구조에서 하나님이 직접 제사장을 만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곳이 어디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지성소라는 곳이에요. 우리가 성전과 회막의 구조를 공부해야 한다면 이런 구조물들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일 겁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고, 그룹이라고 불리는 날개달린 동물이 지키고 있는 , 대제사장이 일년에 번만 들어갈 있는 , 만약 대제사장이 죄가 있으면 들어가자 마자 죽는 , 그래서 방울 달린 밧줄을 매고 들어가는 ,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지성소 밖에서 끌어낼 밖에 없는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바로 그곳 지성소가 원래는 어디였다고요? 그렇습니다. 에덴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바로 에덴에서 쉬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3) 에덴 성전의 돌봄 통치

우리는 에덴을 통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강들을 통해 에덴에서의 통치가 세상으로 흘러들어갑니다. 그런데 통치는 어떤 통치라고 했나요? 맞습니다. 돌봄 통치라고 말씀드렸죠. 

 

돌봄 통치의 본질이 오늘 성전신학에서 밝혀집니다. 여러분, 그저 사람과 동물의 복지를 높이는 것이 돌봄 통치의 본질이 아닙니다. 에덴의 본질이 하나님의 지성소라면, 지성소에서 뻗어져 나오는 강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과의 관계 상징합니다. 돌봄 통치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요, 그분의 임재 속의 연합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인권이나 동물권의 문제는 아니죠.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요, 회복된 관계에서 오는 임재 속의 연합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막이나 성전의 기능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죄인된 사람들이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화평 평화를 누리게 되죠. 그리고 그분의 임재 속에 거하게 되는 겁니다.

 

3. 성전 제사장으로서의 아담

1) 아담, 새롭게 보기 

그렇다면 에덴 성전의 대리 통치자였던 아담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대제사장 겁니다. 자연 성전의 에덴 지성소의 아담 대제사장 있었던 겁니다. 아담은 단순히 인류의 조상으로서만 기능하지 않습니다. 유전학적으로 모든 인류의 공통 조상으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 받아 세상 만물을 돌보는 역할의 대리 통치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만물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어주며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 샬롬의 관계를 유지해 주는 대제사장입니다. 

 

2)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제사장

고대 팔레스타인 주변 지역의 신화들을 살펴보면 이런 개념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신의 형상은 신을 대리하며 신과 세상을 중재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제사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말입니다. 

 

26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하시고, 27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 26-27)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이미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피조물과도 다릅니다. 하나님도 닮았고, 다른 피조물과도 닮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니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 대제사장의 역할을 있는 겁니다. 

 

3) 제사장의 돌봄 통치

여러분, 제사장이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분명히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되고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자연 성전에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게 되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서로 깊은 사랑의 관계로 남게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역할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피조물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기 어렵고 하나님이 껄끄럽고 같이 있기 부담스럽게 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부터 그분에게 합당하게 돌려져야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없게 됩니다. 화목한 관계, 평화로운 관계가 깨어집니다. 제사장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제사장의 돌봄 통치는 그렇게 하나님과 다른 인간과 피조물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4. 나가며_성전&제사장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아담의 제사장 역할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수됩니다. 

 

5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것이다.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6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것이다.’ 너는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출애굽기 19:5-6)

 

그리고 신약에서는 바로 그리스도인들, 저와 여러분에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은 밖에 없습니다. 

 

16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 16-17)

 

그렇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자연 성전, 에덴 지성소가 아닙니다. 광야 시절 회막이나 솔로몬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 몸과 마음 속에 계십니다. 이것이 둘째 아담으로 불리시는 예수님, 대제사장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도 하면서, 예수님을 닮아 제사장의 역할도 같이 감당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야 구약과 신약의 일관된 주제의식이 드러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예수님을 따라 세상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제사장입니다. 

 

이게 기적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나의 정체성은 나의 좋고 나쁨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만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인가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게 부여하신 목적과 계획 나의 정체성이 됩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의 돌봄 통치를 실행하는 제사장이다.” 

조금 문장이긴 하지만 우리 마음과 기억 속에 각인되길 축복합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맞아 가족 친지와 행복한 시간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남는 시간, 넷플릭스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한번쯤은 나는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추석 연휴되길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창조의 하나님을 불러 봅시다. 창조의 하나님을 되뇌여 봅시다. 하나님은 자연 만물을 창조할 , 물질만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자연 성전과 에덴 지성소를 창조하신 겁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부르면서 자연 성전과 에덴 지성소를 상상해 봅시다. 

 

2. 예수님의 사역으로 이제 그리스도인들 명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제사장입니다. 정체성이 우리 몸과 마음에 각인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의 돌봄 통치를 실행하는 제사장이다.” 라는 자기 정체성이 확고해지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에덴 동산이 단순히 정원이 아니고 세계 돌봄 통치의 중심지이며 동시에 자연 성전의 지성소라는 말씀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2.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의 돌봄 통치를 실행하는 제사장이다.” 라는 문장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는다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2021. 9. 12. 김혁수

 

[본문_창세기 2:15-25_새번역]

15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16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18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19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20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남자를 돕는 사람 그의 짝이 없었다. 21그래서 하나님이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하나님이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22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23 때에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사람!

뼈도 나의 , 살도 나의 ,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24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몸을 이루는 것이다. 25남자와 아내가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0. 들어가며 

- 낙동강 영풍 제련소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낙동강 영풍 제련소 이야기였습니다. 세계 4위의 아연 제련소라고 하는데요. 원래는 제련에 사용한 물을 중금속을 기준치로 줄여서 낙동강에 방류했었는데, 최근에 기술투자를 해서 지난 100일간 방울의 물도 방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용한 물을 증류해서 다시 공업용수로 쓰고, 증류해서 나온 중금속 고체를 폐기물로 처리합니다. “폐수 무방류기술을 개발하고 설비 투자를 하고 실행했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습니다. 과거에 어땠는지는 그것 나름대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겠지만, 일단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는 점은 높게 사고 싶습니다. ESG 경영 주목받고 있습니다.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투명한 관리구조 가치로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환경 보호라는 측면에서 미래를 위한 경영 철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지요. 

 

오늘은 하나님의 창조가 세상 돌보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함께 본문을 볼까요? 

 

 

1. 최고 통치자와 대리 통치자(15-17) 

1) 맡아서 돌보다(15) 

세계 통치의 중심지 에덴에 하나님은 사람을 데리고 오십니다. 그리고는 사람에게 역할을 맡기시죠. 매우 중요한 단어인데요. 바로맡아서 돌보다입니다. 15절을 다시 보실까요? 

 

15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여기서맡아서 돌보다라는 동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개역한글에는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다라고 번역을 했구요.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관리하며 지키게 하시다라고 번역을 했어요. 문제는 이게 늬앙스가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전달되는데요. 번째 히브리 동사 아바드 일하다. 경작하다. 봉사하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느낌이 다르죠. 번째 동사사마르 지키다, 보호하다, 돌보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바드와 사마르를 영어와 한국어 바꾸면서 때로는 다스리며 지키게 하다. 관리하며 지키게 하다. 혹은 맡아서 돌보게 하다 등으로 늬앙스가 바뀌는 거지요. 

 

여러분들은 어떤 번역을 선호하시나요? 

어떤 번역을 사용하신다고 해도 아바드, 사마르의 온전한 뜻을 완벽하게 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저는 새번역의 번역을 선호합니다. ‘맡아서 돌보다그러니까 관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에덴의 기능 세계 통치의 기능이 작동하도록 아담을 세우신 입니다. 지구를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파괴적 폭력적 독재적 통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생명과 환경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생명의 위협 없이 공존하도록 돌봄 통치를 행하는 겁니다. 이것이 사람의 번째 역할이었습니다. 

 

2) 자유와 권한(16)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좋은 선물들을 주십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나오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먹을 있는 자유입니다. 마음대로 사용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과일을 좋아하나요? 사과, , , , 바나나, 두리안저는 사과를 좋아합니다. 

아담은 먹고 싶은 과일을 맘껏 먹을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관리하고 돌본다면 말이죠. 또한 어떤 과일은 따서 동물에게 있었습니다. 동물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아담의 권한이었습니다. 에덴을 통한 세계 통치가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담에게 엄청난 자유와 권한을 주신 겁니다. 과실들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생명을 유지할 있는 힘을 줍니다. 

 

3) 넘지 말아야 (17)

하지만 가지 제한 조건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고 활용할 있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었습니다. 먹는 날에는 기필코 반드시 죽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무의 열매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먹지말라고 것일 있습니다. 우주의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하게 되면 세상은 질서가 사라지고 혼란만 남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단단히 일러 두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설명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처음부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만들지 말고, 그런 제약 조건도 만들지 않았으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제약 조건을 만들었을까요? 질문에도 다양한 답이 존재하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이고, 너희는 사람이다. 나는 최고 통치자가 너희는 대리 통치자이다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넘지 말아야 선이 있는 것이죠.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리해서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고 관리하고 돌보는 것이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 없이 세상을 통치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자유과 권한을 위임받는 아담은 가지를 없습니다. 가지를 하게 되면 최고 통치자에 대한 반역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죽음을 가져오게 되는 겁니다. 

 

=>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을 모시는 영의정을 일컫는 말인데요. 아담의 상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가 아담의 지위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모든 자연만물을 돌보는 역할이죠. 여기서 안전선 넘으면 죽게 되는 겁니다. 자기의 위치를 모르고 하나님이 되려는 인간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인류 역사의 수많은 제국의 황제들이 스스로를 신이라고 부르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폭력적 통치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수많은 황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만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들도 언제든지 그런 태도로 살아갈 있다는 사실을 직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돌봄 통치의 실례(19-20) 

1) 동물들이 지나가다(19)

이제 본격적으로 돌봄 통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성경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이끌고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정성스럽게 흙으로 빚으신 동물들입니다. 하나님은 각각의 동물의 특징을 알고 계셨고, 자연세계에서 어떻게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면 좋을지 알고 계셨습니다. 사실 그런면에서 직접 만드신 그분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시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게 베스트죠. 그러나 하나님은 대리통치자인 아담으로 하여금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는 권한을 주십니다. 

 

과거에만해도 아이들의 이름은 가정의 가장 연장자의 몫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작명하시곤 했죠. 가장이 이름을 짓고 아이를 축복합니다. 가장 좋은 이름을 붙여서 아이의 인생을 축복하죠. 여러분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아마도 좋은 의미가 있을 겁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권한과 책임을 넘겼다는 의미합니다. 만드신 것은 하나님이지만, 이제 관리하고 돌보는 것은 사람입니다. 

 

2) 이름을 짓다(19-20)

이름을 짓는 행위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보죠. 수많은 동물에 이름을 짓는 행위는 왠만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첫째, 엄청 똑똑해야 합니다. 동물의 특징에 따라 이름을 짓습니다. , , 돼지, 염소, 사마귀, 귀뚜라미독수리, 참새, 기러기붕어, 장어, 상어, 돌고래지적인 능력이 탁월하지 않고서는 이름을 짓기가 어렵습니다. 둘째, 사랑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동물의 특징을 잡아내고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관찰해야 합니다. 관찰하면서 동물의 특성을 발견하고 무엇을 도와야 하나 어떤 필요가 있나를 확인하게 됩니다. 사랑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봅니다. 

 

돌봄은 이름 짓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름이 있어야 부를 있고, 부를 있어야 관계를 맺을 있으며, 관계를 맺어야 돌볼 있습니다. 돌봄의 시작은 이름 짓기부터였습니다. 

 

=> 별명 짓기

우리 공동체의 여러 활동을 생각해보면, 안에는 이름 짓는 순간이 들어가더라구요. 여름 수련회 주제 정하기, 보이는 라디오의 이름과 주제 정하기, 매월하는 생일 파티대신 다른 이름은 없을까 하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정이 즐겁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서로 단어가 조합되고 행사나 활동의 특징에 걸맞는 이름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토의하다가 모두 박수치며 좋아한 이름으로 정하게 되죠. 이름을 짓고, 주제를 정하고, 프로그램의 이름을 만들고이런 활동이 바로 관리하고 돌보는 활동이죠. 

 

서로의 별명을 짓는 것도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특징을 보고, 축복과 재미를 담아 별명을 지어주는 거지요. 저는 어렸을 , 살은 없고 키만 컸다고 꺽다리, 전봇대 등의 별명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별명은 무엇인가요? 

 

3. 돌봄 통치의 주체들(21-24) 

1) 남자와 여자(이쉬와 이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돌봄 통치를 지속가능하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해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세계의 돌봄통치를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했습니다. 아담 혼자서는 외로움이 깊어져서 자칫하면 번아웃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담 혼자 독처하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돌봄 통치를 함께 사람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돕다는 표현은 단순히 보조한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돕다 쓰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힘의 우열, 능력의 우열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님을 우리는 있습니다. 서로 도와 가며 세상을 돌보고 관리하는 겁니다. 

 

2) 둘이 함께 하는 돌봄 통치 

둘이 함께 , 돌봄 통치는 지속가능했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태어나면 그들도 부모의 돌봄 통치의 역할을 물려받게 것입니다. 그렇게 세계를 조화롭게 통치하게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3) 하나됨의 비밀 

하나님께서 이쉬에게서 이샤를 만드시고, 다시 이쉬에게 데리고 오자, 이쉬는 시를 지어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사람!

뼈도 나의 , 살도 나의 ,

이쉬에게서 나왔으니

이샤라고 부를 것이다.”

 

이쉬의 이름 짓는 본성이 여기서도 등장합니다. 시를 짓고 노래를 부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요?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쉬에서 발음 하나만 바꾸어 이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자, 여자 이렇게 부르는데, 만약 히브리어식으로 끝만 살짝 바꾸어 남자, 여자를 표현한다면, 이렇게 부를 수도 있을 같아요. 

 

이제야 나타났구나. 사람! 뼈도 나의 , 살도 나의 , 

사람에게서 나왔으니, 사랑이라고 부를 것이다.”

 

어떠세요. 이쉬, 이샤를 이렇게 달리 표현해 봤습니다. 사람과 사랑으로 말이죠. 그러니 에덴 동산에는 사람과 사랑이 살았습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몸으로 팀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돌봄 통치의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4. 나가며 

- 돌봄 통치의 공동체

하나님의 창조는 단순히 세계의 만물을 만드신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의 질서와 조화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질서와 조화를 계속 돌보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사람과 사랑을 만드신 것이죠. 돌봄 통치의 공동체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을 만들어 그들이 서로 도와가며 돌봄 통치를 이어가길 바라셨던 것이죠. 

 

저는 지금도 하나님은 일을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 사람과 사랑이 되어 우리 주변을 돌보는 것이죠. 우리 공동체도 이런 돌봄 통치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서로를 사랑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혹은 별명도 지어주면서 축복과 함께 돌보는 것이지요. 우리 서로에게도 행해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연 만물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고양이, , , , 사람이 돌봐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후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엄청난 돈과 노력이 것입니다. 그렇지만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노력이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의 통치는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통치에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도 우리 주님의 뜻에 순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창조의 하나님을 불러 봅시다. 창조의 하나님을 되뇌여 봅시다. 일종의 촛점 기도가 되겠습니다. 단어를 되뇌이며 창조의 하나님의 그려봅시다. 창조 속에 녹아 있는 돌봄 통치와 돌봄 통치의 주체인 이쉬와 이샤, 사람과 사랑에 대해 머릿속에 떠올려 봅시다. 

 

2. 급격한 환경 파괴로 자연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본래의 조화는 깨지고 숲은 불타고 동물들은 곳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생태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더욱 가속화 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에 많이 참여하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나요? 오늘 새롭게 깨닫게 것은 무엇인가요?  

 

2. 돌봄 통치를 위한 공동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 우리 공동체가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2021. 9. 5. 김혁수

 

[본문_창세기 2:4-14_새번역]

4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5 하나님이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6땅에서 물이 솟아서, 땅을 적셨다.

7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0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에덴을 지나서는 줄기로 갈라져서 강을 이루었다. 11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땅을 돌아서 흘렀다. 12 땅에서 나는 금은 질이 좋았다브돌라라는 향료와 홍옥수와 같은 보석도 거기에서 나왔다.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구스  땅을 돌아서 흘렀다. 14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앗시리아의 동쪽으로 흘렀다.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0. 들어가며 

- 극한직업

어제 우연히 TV 보다가 EBS1에서 방영하는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직업 세계의 방대함과 각각이 가지는 극한의 어려움 등을 보고 있으면, ‘세상엔 정말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어제는 동물원의 사육사 분들의 작업을 다루었는데요, 200KG 넘는 사자를 건강검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맹수들을 건강검진한다는 사실을 몰랐거니와 그저아프면 수의사가 와서 마취하고 치료하면 되는 아닌가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매년 여름이면 더위에 맥을 못추는 사자의 건강상태를 살피기 위해 건강검진을 실시합니다. 문제는 엑스레이며 각장 의료 장비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사자를 동물병원으로 이동시키는데요,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일단 마취를 시키고, 들것에 옮겨서, 철로 만든 이동장에 넣어, 용달 차에 싣고, 병원까지 이송합니다. 모든 것을 마취가 깨기 , 그러니까 1시간 만에 진행해야 하는데요, 사육사 20여명이 달라붙어서 일을 합니다. 긴장감, 긴박감이 장난 아닙니다. 검진 마지막 어간에 사자가 눈을 뜹니다. 너무 많은 마취 주사는 사자의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까지 일을 마쳐야 합니다. 맹수 옆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가슴이 떨리더라구요. 

 

사육사들은 사자를 보호하고 돌보기 위해 이렇게 매년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돌봄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책임감 있게 생명을 돌보는 것에는 이렇게 많은 인력과 세심한 배려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돌봄은 습관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창의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오늘부터 9 동안 창조의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묵상의 방향은 창조세계를 돌보시는 하나님과 돌봄으로 초대받은 인간입니다. 오늘의 첫번째 입니다. 함께 말씀을 읽어볼까요? 

 

1. 질서의 창조자(4-6)

1) 무에서 유로, 혼돈에서 질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창세기 1장과는 다른 그림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만물을 만드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창세기 2장에서는 그분이 직접 흙이라는 재료로 사람을 빚으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1장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의 엄청난 상상 불가의 능력으로 빛부터 우주와 지구와 모든 동식물을 만드시는 장면이 나오죠. 그러나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척박한 땅위에서 생명이 살아갈 있는 생명력 있는 지구로 만들어 가시는 것을 있습니다. 1장에서는 무에서 유의 창조가 눈에 띄지만, 2장에서는 혼란함과 혼돈에서 질서를 잡아가시면서 생명이 거할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시는 장면 눈에 띕니다. 대목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가 연구할 것이 정말 많은데요, 9 동안 숙고해 함께 숙고해 보면 좋겠어요. 

 

2) 질서를 위한 조건

그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의 질서를 잡아가실까요? 어떻게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세상을 보기 좋게 평화롭게 조화롭게 질서를 만들고 유지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은 자신의 이미지를 닮은 마치 자녀와도 같은 대리 통치자, 대리 돌보미 세상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존귀하고, 지혜로운 존재를 세상에 두기로 것이죠. 하나님이 계속 아주 세밀한 영역까지 돌보고 통치하실 있지만, 그분 혼자서 하지 않으시고, 그분을 대행할 사람, 함께 다스릴 사람을 만들기로 것입니다.

 

2. 작품의 창조자(7-9) 

1) ,

이렇게 질서의 창조자되신 하나님이 작품의 창조자가 되시는데요. 세상 자체가 하나님의 작품이며, 독창적인 예술품인 것은 사실이지만, 더욱 세밀하고 세심한 작품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7-9절을 보실까요? 

 

7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마른 땅에 물이 오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마른 땅이 이슬 혹은 안개로 축축해집니다. 토기장이들이 흙으로 아름다운 도자기를 빚으려면 좋은 흙과 물이 필요합니다. 양질의 진흙이 필요하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 재료는 흙과 물이었습니다. 축축해진 흙으로 사람을 빚어가십니다. 섬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흙과 물은 흐트러지기 십상입니다. 물레 위에 진흙을 조그만 잘못 다루면 진흙이 뭉개져버립니다. 정성이 담겨야 합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실제 하나님이 물레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정성을 다해 사람을 만들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2) 손길, 숨결

자신의 이미지를 닮은 사람을 흙으로 빚은 뒤에, 하나님은 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십니다. 충분히 그저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생명을 불어 넣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식물과 동물의 생명을 만들었듯이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만큼은 완전히 다르게 창조하십니다. 어떻게요? 그렇습니다. 사람의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코에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어 주신 것이죠. 그분의 예술가적 손길도 대단하지만, 마지막이 그분의 숨결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 생명체, 생령

이렇게 진흙은 생명체가 됩니다. 단순한 생명체, 생물학적인 생명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숨결을 머금은 생령 됩니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지점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과 숨결을 머금은 하나님은 예술 작품 바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바로 이런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의 중심은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 인간의 탁월한 문명이나 문화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손길과 숨결이 담긴 그릇 인간이기에 인간은 존엄합니다. 모든 생명이 고귀하지만, 인간에 고귀함에 비할 것은 아닙니다.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넘을 없는 간극이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이런 인간의 고귀함, 하나님의 예술 작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 없습니다. 폭력은 예술 작품을 망가뜨리고 깨뜨려서 다시 혼돈과 혼란으로 뒤돌아가게 만듭니다. 말의 폭력이든 물리적인 폭력이든 제어되지 않은 힘의 분출은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반역 행위입니다. 

 

3. 통치의 창조자(10-11) 

1) 에덴의 위치와 역할 

질서의 창조자, 작품의 창조자되신 하나님은 통치의 창조자이시기도 합니다. 에덴 동산이 그걸 말해줍니다. 에덴 동산은 온갖 아름다운 예술품이 전시된 정원 아닙니다. 저희집 근처에 퍼스트가든이라는 가꾸어진 정원이 있습니다. 곳에는 꽃과 나무, 식물과 동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작은 놀이 시설까지 구비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오후 때를 보내기 좋습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서 한번 같이 가도 좋을 같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퍼스트가든이잖아요. 에덴 동산이 떠오르더라구요. 에덴 동산이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즐거운 공간일 것이라는 상상은 그것만으로 행복하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흥을 즐기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끝나지 않음을 있습니다. 왜일까요? 에덴동산은 왕의 정원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실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들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생명의 기운이, 질서의 기운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있습니다.

 

9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0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에덴을 지나서는 줄기로 갈라져서 강을 이루었다. 11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땅을 돌아서 흘렀다. 12 땅에서 나는 금은 질이 좋았다브돌라라는 향료와 홍옥수와 같은 보석도 거기에서 나왔다.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구스  땅을 돌아서 흘렀다. 14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앗시리아의 동쪽으로 흘렀다.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생명의 기운이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맛있는 열매의 나무가 동산에 가득합니다. 흙과 물이 양질이며 맛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어떻게 세상으로 퍼져가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하나가 에덴 동산을 휘돌아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흘러나옵니다. 비손 강은 금밭을 휘감아 돌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 값진 것들이 모여듭니다. 최상의 금과 최고의 보석들이 강을 따라 이동합니다. 에덴은 나무와 풀과 흙으로만 이뤄진 작은 공원이 아닙니다. 금과 보석과 당시의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세계 통치의 중심입니다. 

 

기혼 강은 구스 땅을 돌아서 흘렀는데요, 고대 세계의 지명은 때때로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반영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적용하면,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구스는 노아의 손자로서 힘센 장사, 장수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참고, 창세기 10:6-10). 만약 그렇게 가정한다면 기혼 강은 군대 내지 노동력을 일으킬 있는 최선의 루트를 제공합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은 농경문화의 중심이었으며, 문명의 발달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개의 강을 통해 에덴은 동산이라기 보다는 세계 통치의 중심으로 최고의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생명의 기운에 에덴에서 세상으로 흘러간다면,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강들을 통해 세상에 전파됩니다. 에덴은 세상 통치의 중심이 됩니다. 물류의 중심입니다. 사람과 생명과 물건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곳이 바로 에덴입니다. 그러니 에덴은 놀이 동산이 아니라 왕의 정원이 되는 거죠. 세계 통치의 중심지입니다. 

 

2) 에스겔의 환상과 요한의 환상 

왕의 정원이 인간의 반역으로 기능을 상실합니다. 그것이 창세기 3 이후로 등장하는 내용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에덴에서의 통치를 회복시키십니다. 아니 멋진 에덴을 그리고 계셨습니다. 

 

에스겔 47 

1그가 나를 데리고 다시 성전 문으로 갔는데, 보니, 성전 정면이 동쪽을 향하여 있었는데,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의 오른쪽에서 밑으로 흘러 내려가서, 제단의 남쪽으로 지나갔다. 2 그가 나를 데리고 북쪽 문을 지나서, 바깥으로 나와, 담을 돌아서, 동쪽으로 문에 이르렀는데, 보니, 물이 동쪽 문의 오른쪽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다.

7내가 돌아올 때에는, 보니, 이미 강의 양쪽 언덕에 많은 나무가 있었다. 8그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나가서아라바로 내려갔다가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9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것이다.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것이다

 

바벨론에 포로가 에스겔은 낯선 이방땅에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바로 회복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흘러 세상을 회복시키는 비전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덴의 회복이요. 세상 통치의 회복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요, 성전의 회복입니다. 

 

에스겔만 이런 환상을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2 

1천사는 ,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2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쓰입니다.

 

신약 성경의 마지막, 요한이 마지막 환상 중에 이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물이 나와 강이 되어 세상으로 흐릅니다. 그곳에서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며,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사용됩니다. 이렇게 에덴 통치의 비전이 실현됩니다. 

 

3) 세계 통치/ 세계 돌봄

저는 세계 통치와 세계 돌봄이라는 단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세계 통치는 세계 돌봄이라는 관점으로 읽어내야 합니다. 통치라는 단어가 워낙에 오염이 많이 되었습니다. 통치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세상의 권력자들의 통치는 무자비하고, 폭력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방향이었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예 제도를 정당화했습니다. 국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제국주의적 식민지 확장 전쟁을 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통치가 폭력이 되는 역사가 인류의 역사입니다.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21세기 수많은 정보가 축적되어 있지만, 인류의 역사가 어느 때보다 정확하게 엄청나게 많은 양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여전히 전쟁이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인류의 아이러니일 밖에 없습니다. 소말리아, 미얀마,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까지전쟁은 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취약합니다. 무기가 없는 사람들은 노예처럼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통치는 폭력이 아니라 돌봄이어야 합니다. 힘은 약한 존재를 돌볼 의미가 있습니다. 

 

=> 강과 돌봄 

그런면에서, 에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강은 세상을 돌보는 물입니다. 돌보기 위해 물이 흐르고, 교류가 일어나고, 물건이 사고 팔리는 겁니다. 생명을 주기 위해, 치료와 회복이 일어나기 위해 물이 곳에서부터 나오고, 세상은 곳에 모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개의 강물이 흐른다는 것은 단순히 지형지물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단순히 에덴의 위치를 추적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을 돌보는 중심이 바로 에덴이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무너진 에덴의 기능은 결국 하나님께서 온전히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에덴의 기능보다 훨씬 멋지게 작동하는 새로운 예루살렘을 만들어 주실 겁니다. 

 

4. 나가며_창조의 하나님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질서를 만드신 하나님, 작품을 만드신 하나님, 그리고 돌봄통치를 만드신 하나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도 위대하지만, '유'에 질서와 작품과 돌봄의 기능까지 넣어서 만든신 것이 더욱 위대한 일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우리는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의 창조를 묵상하면 그분의 원대한 계획과 뜻을 이해할 있습니다. 우리의 세계관을 튜닝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분의 창조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창조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이번 , 창조의 하나님을 깊이 살피고 묵상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창조의 하나님을 불러 봅시다. 창조의 하나님을 되뇌여 봅시다. 일종의 촛점 기도가 되겠습니다. 단어를 되뇌이며 창조의 하나님의 그려봅시다.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질서, 작품, 통치를 창조해내실 하나님을 떠올려 봅시다. 

 

2.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기도합시다. 탈레반의 위협과 박해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더이상의 테러와 폭력, 살해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랑과 정의 그리고 평화가 땅에 임하도록 같이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혹은 새롭게 떠오른 질문은 무엇인가요? 

 

2. 세계 통치의 중심지로서 에덴 동산을 설계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의도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2021. 8. 29. 김혁수 

 

[본문_누가복음 24:36-49] 

36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예수께서 몸소 그들 가운데 들어서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라.” 37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38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39 손과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40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는 손과 발을 그들에게 보이셨다. 41그들은 너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고 있는데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먹을 것이 있느냐?” 42그래서 그들이 예수께 구운 물고기 토막을 드렸다. 43예수께서 받아서,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를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45 때에 예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46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며, 47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하였다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48너희는 일의 증인이다. 49[보아라,] 나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성에 머물러 있어라.”

 

 

[설교]

0. 들어가며 

- 미라클

지금 전세계는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2001 911사태, 그러니까 미국의 경제의 심장, 뉴욕 맨하튼의 세계 무역 센터가 이슬람 테러 단체 알카에다의 비행기 테러로 무너지는 영화보다 무서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일로 미국은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과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게 되죠.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의 산지로 도망했고,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알카에다 조직을 비호했죠. 그래서 미국과 영국 나토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탈레반 정권이 축출되고 친미 과도 정부가 수립되었는데요, 문제는 탈레반이 지난 20년간 국지적으로 저항하다가 최근 미군이 철수 한다고 하니 그새 세력을 확장해서 수도 카불을 불과 3-4개월만에 탈환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나라도 미국의 요청에 따라 파병을 했는데요.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가재건에 필요한 시설, 도로, 병원, 직업훈련원 등을 만들어 주는 일들을 했었죠. 이런 일들을 진행할 , 어쩔 없이 현지인들을 고용해서 도움을 받을 밖에 없었는데요, 문제는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자, 외국 군대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죽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 대사관과 군대를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현지인을 한국으로 탈출시키기로 것이죠. 작전의 이름이 바로미라클이었습니다. 기적 같은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390명의특별기여자분들을 군수송기로 이송할 있었습니다. 

 

과정에서 저는 너무 감동스런 장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김일응 공사참사관이 현지 직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급하게 빠져나왔던 카불에 다시 들어가 390명의 조력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는 장면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다시 데리러 올게요그리고 그의 약속은 기적처럼 지켜졌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 극단주의의 무서움을 이번 사건으로 깨닫습니다. 또한 절실히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지 말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래도 세상에는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마음으로 깨닫는 순간입니다. 

 

마음으로 깨닫는 사람들은 우리들 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음으로 깊이 깨닫게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건 예수님의 가르침의 다른 특성입니다.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는 , 힘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8 달간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특성을 성육신적, 인격적, 통합적이라는 다소 딱딱한 단어들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지 추가할 있겠습니다. 바로 마음을 열어 깨닫게 입니다. 신비로운 교육 현장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죠. 

 

1. 충격과 공포 

1) 제자들의 마음 상태(37-39) 

- 놀라움, 무서움, 유령을 보는 , 당황, 의심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한 육체를 보고 크게 놀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11제자들과 몇몇의 여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 엠마오 마을로 떠났던 글로바 부부가 헐레벌떡 다시 들어옵니다. 늦은 밤이었습니다. 그들은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글로바 부부는 엠마오 마을로 가던 길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이 구약 성경을 가르쳐주셨다고,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그런데 식사 하실 갑자기 사라지셨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맞장구를 칩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급기야는 시몬에게도 나타났다고 모두들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황파악하기 급급했습니다. 아무도 상상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난 겁니다.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갑자기 예수님이 마가의 다락방에 몸소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는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하며 그들의 중앙으로 들어오셔서 서계시는 겁니다. , 제자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성경의 단어들을 찾아 봅시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 품느냐? 손과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누가복음 24:37-39)

 

제자들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단어들을 찾아봅시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 명의 제자들 앞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셨을 , 모두들 놀라고, 무서워했습니다. 마치 유령이나 귀신을 보는 듯이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공포 자체였습니다. 분명히 죽었었는데, 시체를 보았으며, 장사지내는 것까지 지켜보았는데, 몰약을 바르고 세마포로 감싸는 과정을 봤었는데갑자기 일주일전의 예수님으로 돌아온 겁니다. 기쁜 마음보다 밤중에 단체로 귀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어보신 거죠. 당황들 하시나요? 마음에 의심을 품고 있나요? 나는 유령이 아니랍니다. 만져보세요. 살도 있고 뼈도 있어요.’ 그들의 두려움, 당황, 의심을 꿰뚫고 계십니다.  

 

2) 예수님의 요청(41) 

예수님이 특이한 요청을 하십니다. 저녁 때가 한참 지났습니다. 식사 시간이 지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찾으십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 곳곳에서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알리신 능력의 예수님, 그분이 지금 배고프다고 먹을 것을 찾고 있는 겁니다. 제자들이 구운 물고기 토막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물고기를 그들이 보는 데서 맛있게 먹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예수님이 정말 배고프셨나보다. 

아니 아직까지 식사를 못하셨지? 

아니 부활까지 하신 분이 배가 고프다는 것이 말이 되나? 

물고기 마리 드려야겠다. 

다른 음식도 갖다 드리자. 

저러다 체하시겠다. 물이든 포도주도 갖다 드리자. 

등등. 

 

다양한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누구도 쉽사리 말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예수님이 물고기를 드시는 씹는 소리만 다락방에 조용히 울립니다. 그러면서 점점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살아서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 지난 3년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예수님, 그분이 살아서 돌아오신 겁니다. 제자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입니다. 여기저기 그들이 보관하던 음식을 주섬주섬 가지고 옵니다. 예수님이 음식을 드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죠. 우리는 순간을 상상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요청드리고 싶어요. 이런 상상 속에 오래 머물러 보세요. 예수님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여러분도 마가의 다락방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어떤 행동과 말을 하게 될지 상상해 보세요.  

 

2. 깨달음 

1) 깨달음의 내용 

식사를 마치신 예수님은 드디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 내용을 잠깐 살펴볼까요! 부활하신 후에 전체 제자를 대상으로 가르치신 번째 장면입니다. 무엇을 가르치셨나요? 

 

- 성경 개관(44)

첫째, 구약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44절을 읽어볼까요. 

 

4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를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약의 모든 성경의 예언은 예수님에게로 향하고 있으며, 예언들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모세의 율법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여호수아에서 말라기까지 우리 기독교에서는 역사서와 예언서로 분류하는 책들을 유대교에서는 예언서라고 통칭해서 불렀는데요. 책들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시편으로 대표하는 여러 지혜문학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어떻게 율법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역사서가 예수님을 가리키고, 시들이 예수님을 가리키는지 이해가 있습니다. 모든 책들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의 도래를 한결같이 바라고보고 있다는 에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간략한 구약 개론을 보여주신 겁니다. 

 

- 부활과 회개(46-7)

무엇을 가르치셨나요? 

둘째, 메시야는 죽고 살아나며, 이로 인해 죄사함의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 46, 47절입니다. 

 

46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며, 47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하였다

 

그렇습니다. 구약이 가리켰던 메시야 그리스도는 죽었다 살아나게 되고,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 회개가 모든 민족, 모든 나라에 전파된다는 겁니다. 사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구약개론과 함께 메시야의 사역과 앞으로의 역사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부활과 회개의 소식이 전세계에 전파됩니다. 사실을 분명히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2) 부활 전후의 가르침

-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원리 

완벽하게 구분되진 않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부활 전후로 예수님의 가르침의 강조점 바뀌는 것을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전에는 나님 나라의 도래와 나라의 운영 원리 대한 가르침에 강조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고, 하나님의 통치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는 다르다. 이런 가르침이 많이 등장합니다. 

 

- 죄사함의 회개의 전파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는 죽음과 부활 사건이 만들어 죄사함의 회개 운동이 필요하며, 죄사함의 회개가 전세계로 전파될 것임 강조합니다. 물론 죄사함의 회개라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범주에 속한 부분이지만, 확실히 부분이 크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강조점을 제자들이 깨닫게 되길 바랬습니다. 

 

3) 깨달음의 조건 

그런데 깨달음은 쉽게 이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오히려 쉬웠습니다. 제자들은 오랫동안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선포하는 일은 도리어 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메시야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위한 회개를 통해 들어간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유대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메시야가 죽는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고, 다시 산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심지어는 모든 이방인들까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도 수용하기 힘들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마음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45절을 읽어봅시다. 

 

45 때에 예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성경의 전체 내용을 깨닫는 , 그리고 부활과 죄사함의 회개의 세계 전파를 깨닫는 깨달음은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열려가 가능합니다. 굳은 마음, 닫힌 마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 요소에 다달았습니다. 바로 마음 열기입니다. 인간 전존재가 어떤 가르침을 수용할 있는 상태 의미합니다. 경계와 의심을 풀고, 따뜻한 마음으로 전적으로 수용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3. 마음 열기 

저는 예수님이 가지 단계를 통해 제자들의 마음을 여셨다고 생각합니다. 

1) 진실을 통한 충격

첫째, 예수님은 진실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에 충격을 가하셨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의 실체를 보여주심으로 제자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의 몸은 실로 경이롭습니다. 여기 저기 나타나십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으십니다. 그럼에도 손과 발이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새로운 몸으로 부활했다는 진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마음의 대격변 느낍니다. 이것이 마음 열기의 첫번째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세계 통치라는 진실을 처음에 깨달았을 ,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적, 세계적 통치자라는 사실을 직면했을 , 마음은 요동쳤습니다. 그동안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자책감부터 시작해서 영광스런 통치의 범위의 광활함에 아득해지는 느낌까지 다양한 감정과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진실을 대면할 , 우리는 충격을 받습니다. 충격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같습니다. 

 

2) 환대 

마음 열기의 두 번째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아주 독특하게 제시되어 있는데요, 바로 환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늦은 시간에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맛있게 음식을 드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배고픈 사람을 환대할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제자들의 마음을 여는 특별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야식, 간식을 들고 찾아올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그럴 있는 분이시죠. 그러나 시간만큼은 제자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섬길 있는 기회를 주신 입니다. 물론 학자들은 예수님의 행위가 자신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충분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삼사일 동안 무력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없었던 자신들을 자책하던 제자들에게 이제 섬길 있는 기회 주신 겁니다. 환대가 제자들의 경계를 풀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고 그분께 다가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환대하는 것은 환대받는 사람이나 환대하는 사람이나 서로의 마음을 여는 최고의 과정입니다. 이번에 390명의 아프가니스탄의 특별기여자들 미성년자의 비율이 거의 50% 가깝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공군의 최정예부대는 수송기에 탑승하는 영유아들을 위해 분유와 젖병을 챙겼습니다. 우리나라 법무부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애착인형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진천의 시민들은 환영의 플래카드를 우리말과 아프간어로 걸어놓았습니다. 이런 환대하는 모습은 환대하는 사람이나 환대받는 사람이나 마음을 열게 합니다. 

 

3) 신비로운

예수님의 마음 열기 번째는 바로 신비로운 힘입니다. 진실을 통한 충격이나, 환대하기도 마음을 여는 기여를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몇가지 단계가 있다고 하더라고 사람의 마음이 열리는 데는 신비로운 작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환대하고 선물을 주어도 여전히 닫혀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특별한 환대나 섬김이 없었지만, 마음이 열리기도 합니다. 이건 특별한 신비로운 힘의 작용 때문일 겁니다. 설명할 없는 힘이 작용합니다. 이를 기독교적 용어로는은혜라고도 하죠.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45절을 다시 보시죠. 

 

45 때에 예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예수님이 적극적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도 구약 성경에 대해 알려주시고,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도 설명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는 제자들이 제대로 알아차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주 적극적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이제 새로운 가르침을 그들 전존재로 적극적으로 수용할 있는 상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때를 파악하는 것이 훌륭한 선생님의 역할이죠.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르칠 없습니다. 단계가 있습니다. 깨달을 있는 때가 있습니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못알아듣고 어벙벙해도 기다립니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었을 ,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최선의 가르침으로 다가갑니다. 예수님의 적극성 바로 순간에 그분만이 가지는 신비로운 힘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여셨다는 사실에 드러납니다. 

 

신비로운 힘이 작동하기를 위해 우리는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는 신비로운 힘이 작동하도록 돕습니다. 신비로운 힘이 적절한 타이밍에 작동하도록 우리는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야 깨달음이 깊어지는 겁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진리를 전적으로 수용할 있게 됩니다. 

 

4. 나가며 

- 우리의 마음은? 

사랑하는 여러분,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과연 그분의 진리를 전적으로 수용하려는 마음 상태인가요 아님 경계하고 의심하고 거부하고 귀찮고 짜증나고 답답한 상태인가요? 

 

혹시 성경의 진리가 여러분 존재를 두드리고 있는 경험을 보셨나요?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이 아닌 성경의 진리가 여러분의 감정과 정서를 흔들어 놓았던 경험이 있었나요? 아주 좋은 일입니다. 

 

혹시 예수님을 알고 싶은 열망에 휩싸여 적이 있나요? 그런 열망 때문에 내가 가진 것으로 그분을 섬겨 보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분에게 환대받는 상상 아니라 내가 그분을 환대하고 싶은 마음의 열망이 생긴 적이 있나요?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혹시 뭔지 모르는 신비한 힘에 이끌려 성경을 마구 마구 읽고 싶었던 ,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고 나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경험을 적이 있었나요?

 

이런 경험들이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마음을 여시고 가르치시는 방법들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길 위해 기도합시다. 그분이 우리 각자에게 알려주시고 싶은 내용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적인 진리입니다. 메시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죄사함의 회개의 세계 전파. 핵심적인 내용이 성경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문입니다. 영적 진리를 우리의 마음을 열어 가르쳐주시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 수용이 아니라 전존재, 그러니까 몸과 마음 전체가 수용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신비한 힘이 작동하도록 기도합시다. 

 

2.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기도합시다. 탈레반의 위협과 박해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더이상의 테러와 폭력, 살해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랑과 정의 그리고 평화가 땅에 임하도록 같이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신앙 생활 하면서 마음이 열린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단순히 지적 동의를 넘어서 전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를 경험해 적이 있나요?   

 

2. 마음을 여는 가르침이 있으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조건들 우리 송청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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