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13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6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8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두루 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고는 우리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 그들은 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영접했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 아들 곧 장차 내릴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그들은 말합니다.

 

NIV

for they themselves report what kind of reception you gave us. They tell how you turned to God from idols to serve the living and true God(9절),

 

주석

환난(6절) 상당한 비율의 그리스도인이 이방인 배경에서 회심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훨씬 더 큰 적대감에 직면했다(IVP 성경배경주석).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6절). 또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섰으며(9절),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10절). 데살로니가에 나타난 복음의 역사는 사방에 두루 퍼져 많은 이에게 기쁨과 모범이 되었습니다(7-8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후 완전히 변화된 삶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러 핍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통한 기쁨을 누렸고, 우상을 떠나 하나님을 섬겼으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렸습니다. 복음은 말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나타나게 됩니다(5절). 내 삶에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길 간구합시다.

 

[오늘의 묵상]

1. 모범 성도

바울은 정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랑스러운가 보다. 

그의 편지의 첫 부분은 성도들을 사랑이 꿀 떨어지듯 떨어진다. 

성도들은 환난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님의 도우심, 기쁨, 깨달음, 확신으로 통해 극복했다. 

마치 바울과 그의 선교단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도들도 예수님을 닮았고 본 받았다. 

주목할 단어는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다. 

예수님만 닮은 것이 아니라 바울 선교단을 닮았다. 

이 글을 쓸 때, 바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기쁨이 가득했을 것이다. 

감사가 넘쳤을 것이다. 

사랑이 퍼졌을 것이다. 

예수님을 닮는 것도 너무 귀한데, 그걸 넘어 바울을 닮는다.

자신을 닮아가는 성도들이 너무 좋다. 

웃음이 난다. 

 

그러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다른 지역의 성도들에게 모범이 된다.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성도들에게 귀감이 된다. 

그들이 어떻게 환란 속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말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살아가는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매우 힘든 일이지만, 이 일을 감당하고 있다. 

고난 속에서도 환란 속에서도 과연 기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에게도 던져진다. 

큰 고난은 나에게 없다. 

사실 여러 가지 사역을 진행하는 것이 고난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그러나 사역을 하면서 겪게 되는 정서적 충격은 항상 있다. 

회의를 하면 언제는 반대되는 의견의 충돌이 생긴다. 

의견 충돌은 사실 당연한 것이며, 회의는 그런 것을 하기 위해 있는 자리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 힘이 빠지는 말과 태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면, 여러 가지 생각과 마음이 올라온다. 

과연 그렇게 복잡하고 우울한 생각 속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말씀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바로 그점이 내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다. 

때로는 우울을 즐기는 성향도 있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가면을 쓰지만, 혼자 있을 때는 그 성향을 마주할 때가 많다. 

그러기에 그 마음 속에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오늘도 성령님의 기쁨으로 살아가고 싶다. 

 

2. 소문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 대한 소문이 좋게 퍼지고 있다. 

전문맥에서도 바울이 말한 바, 성도들은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9절과 10절이 그 증거다. 

 

9 그들은 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영접했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 아들 곧 장차 내릴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그들은 말합니다.

 

1) 어떻게 ~~ 영접했는지 => 사랑의 수고 

2)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롤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 => 믿음의 행위 

3) 어떻게 ~~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 => 소망의 인내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성도들은 바울 선교단을 최선을 다해 영접했다. 

마음과 물질로 섬겼다. 

바울 선교단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들의 말씀을 듣는 것을 기뻐했다. 

맛있는 식사를 나누는 것도 좋아했다. 

이 모든 시간이 환대다. 

환대는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가능하다. 

 

성도들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 믿음이 우상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만을 섬기게 했다. 

이방인들이 그들이 섬기던 우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평생 섬기던 신이었다. 

가족 친지들이 모두 섬기던 신이었다. 

그 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자신의 뿌리와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 일을 해냈다. 

그 과정에서 환란이 찾아왔지만, 거뜬히 이겨냈다. 

 

성도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소망을 가지고 현재를 이겨내고 있다. 

소망의 인내가 그들의 삶의 스타일이다. 

언제가 그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은 속이 터지고 힘들어도 예수님이 오실 것이다. 

그분이 오시면 새로운 나라가 완성된다. 

하나님의 통치가 하늘에서 바다 끝까지 온 우주를 덮을 것이다.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7살 아들 녀석이 자꾸 죽음에 대해 물어본다. 

묻다가 100년 후에 아빠가 죽게 된다는 말에 울음을 터트린다. 

아빠랑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 죽음에 대한 공포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아님 자신의 존재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에게 우린 영원히 산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믿으면 영원히 그분과 살게 된다고 말했다. 

울음을 그쳤다. 

아들이 그렇게 슬퍼하니, 나도 진짜 아들과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니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겨버렸다. 

사실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 당연한 것이며,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영적 삶이 펼쳐 질 거라 알고 믿기에, 죽음에 대해 담담한 편이며, 때로 주님께서 언제든지 데려가신다면 크게 원망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갈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나의 죽음에 대해 저렇게 슬프게 우니, 이상하게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사랑의 힘인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이런 고민이 사라진다. 

슬픔이 사라진다. 

두려움이 없어진다.

아들에게 확신을 갖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우린 이제 영원히 같이 살게 된다고!

 

아마도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현재의 어려움과 환란을 인내로 이기고 있었을 것이다. 

현실의 즐거움이 아니라, 미래에 올 더 큰 즐거움을 가지고 현실을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셩령님이 주시는 기쁨은 현실을 이겨내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소문이 퍼진다. 

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성도들도 위로와 격려와 도전을 받는다. 

사랑, 믿음, 소망이 정서와 생각에서 머물지 않고 실제 행위와 행동을 낳는다. 

이런 선순환이 생기면 교회는 성숙하고 성장한다. 

 

내가 섬기는 공동체에 이런 선순환이 생기길 소망하게 된다. 

정서와 생각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과 행위로 나아가길…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살아가길… 

오늘도 그런 날이 되길… 

 

[오늘의 기도]

우리의 모범 되신 예수님, 

당신을 따르기 원합니다. 

당신을 본받기 원합니다. 

동시에 제가 본받을 만한 신앙의 선배를 허락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본받고 앞선 신앙의 선배를 본받기 원합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 본이 되는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완전함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도와주소서. 

 

현실은 암울합니다.

정부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경제는 곳곳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외교의 참사가 겹치면 결국 전쟁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주님, 이 땅을 굽어 살펴주소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셔서 그들이 회복되게 해 주소서. 

 

성령님의 기쁨이 모든 성도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허락하소서. 

믿음 위에 행위를 더하시고, 사랑 위에 수고를 더하시고, 소망 위에 인내를 더하소서. 

끝까지 주님께서 하실 일을 믿고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12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2 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3 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5 우리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하여,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NASB

knowing, brothers and sisters,beloved by God, His choice of you;(4절)

 

주석

4절 ‘택하심’(4절)은 유대인들이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적용하는 용어였다. 여기서 바울은 그 말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을 포함하는 교회에 사용한다(IVP 성경배경주석).

 

바울은 감사의 고백으로 편지를 시작합니다(2절).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이며 보인 믿음과 사랑과 소망 때문입니다(3절).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으로 택하셨습니다(4절). 또한 바울 일행은 복음을 말뿐만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습니다(5절).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전한 복음은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라는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열매 뒤에는 하나님과 복음전도자의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뿌린 대로 거두는 농부의 일과 같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

1. 감사의 이유

새로운 편지다. 

고린도교회와는 다른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내는 편지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바울의 권면이다. 

기대가 된다.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어떤 주제와 강도와 뉘앙스로 말씀을 하실지 기대가 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바울의 기도 가운데는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그 교회 성도들은 믿음, 사랑, 소망이 조화를 이룬다. 

믿음에는 행위가 따랐고, 사랑에는 수고가 더해졌다. 

소망은 인내를 낳았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한 바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넘친다. 

 

믿음과 행위가 같이 붙어 있다는 것은 신약의 핵심 주제가 통합되었다는 뜻이다. 

믿음과 행위는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자연히 그분의 뜻에 따르는 행위가 이어진다. 

단순히 인식, 지식으로서의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그토록 강조했던 부분이다. 

바울도 믿음과 행위를 언제나 통합해서 강조했다. 

 

사랑은 어떠한가? 

사랑은 수고로 이어진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수고하지 않으면, 그건 말로만 하는 사랑이요, 단순한 감정적 표현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랑은 상대에 대한 민감한 상황 파악과 섬세한 돌봄으로 이어진다. 

수고가 없이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요 속임수다. 

 

소망은 어떠한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당연히 인내를 낳는다. 

하나님 나라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원하는 시간에 완성된다. 

따라서 그 때를 기다리는 행위가 뒤따른다. 

 

믿음, 사랑, 소망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무언가라면, 행위, 수고, 인내는 몸을 통해 외부로 표출되는 행동이다. 

내면의 작용과 외부로의 행동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것인 신앙인의 자세다. 

이 신앙인의 자세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바울로 하여금 감사를 드리게 한 것이다. 

 

나와 주변의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기를 소망하게 된다. 

내면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어떻게 그것이 이뤄질까? 

 

2. 능력, 성령, 큰 확신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전한 복음은 말로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강연을 통한 복음 설명이 아니었다. 

바울이 가르친 복음에는 능력이 함께 했다. 

그 능력은 성령님으로부터 나온 능력이며, 따라서 다른 철학이나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수준의 확신을 넘어선다. 

성령님은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신다.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게 하신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능력이다. 

사람의 마음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음을 닫아 놓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찾아가 말을 거는 것 자체다 곤욕이다. 

하지만, 성령님은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연다. 

그 능력을 보여 주신다. 

그리고 그것은 변화된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큰 확신으로 다가간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으며, 사람들은 그 나라로 몰려 들고 있다. 

 

바울과 그의 선교팀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다. 

전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 

새로운 율법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 

이집트에서 당연히 생각하던 것이 바뀌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도 그와 같다. 

새롭게 바뀐 규정과 질서 속으로 몰려간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통치과 다스림을 기대하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러니 바울은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으니, 더욱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부활절을 지나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숨, 곧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다. 

그분이 사람을 바꾸시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그분이 사람들을 이끄시고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만드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 

회심의 경험이 없으면, 주되심의 경험이 부족하면 능력, 성령, 큰 확신은 사실 거리가 멀다. 

말로 하는 것 말고, 지식으로 전달하는 것 말고, 성령님의 변화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 사역자의 필수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과연 나는 이런 능력, 성령, 큰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숱한 이론들의 경쟁에서 실제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는가? 

누군가의 이론이나 누군가의 욕구가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는 가고 있는가? 

많은 논의와 결정의 끝에는 과연 예수님이 있는가? 

 

[오늘의 기도]

몸소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보여주신 주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그 일을 보여주신 주님, 

제가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주님을 향하고 주님과 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많은 선배들의 믿음의 행위요 사랑의 수고요 소망의 인내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저는 그분들의 뒤를 따라갔을 뿐입니다. 

 

주님, 저에게 주어진 분량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믿음에 행위를 더하소서. 

말만이 아니라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하게 하소서. 

사랑에 수고를 더하소서. 

사랑한다 말만 아니라 그 사랑이 실증이 되도록 수고하게 하소서. 

소망에 인내를 더하소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고 고백이 끝까지 이어지게 인내하게 하소서. 

 

오늘은 말과 신경과 마음을 참 많이 썼습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주님께 나아가도록 도와주세요. 

누구도 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완전히 공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