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平和, 영어: peace)는 좁은 의미로는 '전쟁을 하지 않는 상태'이지만 현대 평화학에서는 평화를 '분쟁과 다툼이 없이 서로 이해하고, 우호적이며,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 이해한다.[3] 인류가 목표로 하는 가장 완전(完全)한 상태이다. 평화는 적대감과 폭력의 부재에서 사회적 우정과 화합의 개념이다. 사회적 의미에서, 평화는 일반적으로 갈등의 부족을 의미하는데 사용된다. (전쟁과 같은) 그리고 개인이나 집단간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역사를 통해, 지도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합의나 평화 조약을 통해 지역 평화나 경제 성장을 이룬 일종의 행동적 자제를 확립하기 위해 평화조약과 외교를 사용해 왔다. 그러한 행동 규제는 종종 갈등의 감소, 더 큰 경제적 상호작용, 그리고 결과적으로 상당한 번영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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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사람은 영장류의 일종이다. 지구상의 사람을 통틀어 인류(人類), 인간(人間, Human)이라고도 한다. 사람은 사유, 언어 사용, 자기반성, 문제 해결을 쉽게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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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결국 평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전쟁과 갈등이 없는 나라.
사랑으로 서로 연합된 나라.
하나님은 그 나라를 완성할 것이다.
최종 완성될 그 나라를 꿈꾸며, 지금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할 것이 있다.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
전쟁을 종식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갈등을 더 큰 갈등 없이 풀어내는 사회.
복음은 평화로운 세상을 증진시킨다.
복음은 전쟁을 반대한다.
복음은 갈등의 심화를 반대한다.
복음은 이질적인 존재들을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 관계로 끌어 드린다.
많은 예언가들이 평화의 때가 올 것을 말했다.
어느 나라가 그 일을 주도할 것인가?
가능하면 복음주의자들이 그 일을 이끌었으면 좋겠다.
한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은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 중재자의 정체성을 아는 사람들, 용서와 용납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평화를 주도했으면 좋겠다.
복음주의자, 회심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 그들이 화해를 주도하면 왜 안되는가?
갈등의 중심에 서서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부인하면서 화해를 주도하고 회복을 이뤄내는 사람들,
이들이 복음주의자가 되면 왜 안되는가?
모든 사안에 대해 날까롭게 비판하는 것이 개혁적 복음주의자의 정체성인가?
아닌 것 같다.
평화적 복음주의자가 진정한 복음주의자가 되는 것은 어떤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회심을 강조하지만, 그 결과로 평화가 오기를 갈망하여 그 운동에 헌신하도록 요청하는 평화적 복음주의자의 탄생이 지금 필요해 보인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평화다.
하나님과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
사랑은 개인적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존재들간의 샬롬 즉 평화를 만들어 낸다.
진정한 사랑은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과 관련된다.
평화적 복음주의자의 등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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