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25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시장하셨다.  

3 악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4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주석

시험을 받으시다(2절) 이 이야기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 그분의 명령에 대해 그럴듯한 거짓말을 속삭이는 뱀의 모습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잔상이 남아 있다. 광야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의 잔상도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불평했고, 우상 숭배로 재앙을 자초했으며, 하나님을 끊임없이 시험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성령이 예수님을 이끄신 곳은 ‘광야’였습니다(1절). 그곳에서 예수님은 심한 굶주림과 유혹에 맞닥뜨리십니다(2절). 오래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굶어죽겠다고 불평했고, 애굽으로 돌아가 종살이를 하는 것이 났겠다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출 16:3-8). 온 세상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자리에서 친히 시험을 받으십니다(3절).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드시는 대신, 사람이 먹는 것뿐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 8:3)고 선언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실패를 영원한 승리로 바꾸십니다(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제 그 실패를 승리로 바꾸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필요를 위해 돌을 빵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하셨지만, 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시고(눅 9:16), 마지막에는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주셨습니다(눅 22:19). 나는 어떤 빵을 쫓고 있습니까?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 주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서 딱 드는 질문은, '어떻게 성령에 충만한데,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는가'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가?

도대체 사십일 동안 시험을 받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무슨 시험을 받으셨는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십 일 동안 아주 다양한 시험을 받으셨을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시험이 세 가지 시험이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 성전에서 떨어지라는 시험, 사단에게 절을 하라는 시험. 

이 세 가지 시험음 최종적인 시험이다. 

그 사이에 사십 일이라는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시험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시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했던 숱한 율법이 과연 인간들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은 이기적인 분이신 것 아닌가? 그분은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이런 식의 말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받았던 시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안보이니, 우상을 만들자. 

앞날이 깜깜하니 이집트로 돌아가자. 

광야에서 죽느니 차라리 이집트에서 고기 먹다가 죽자. 

가나안 사람들이 이렇게 덩치가 좋으니, 우린 다 죽은 목숨이다.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런 생각들로 사단이 공격한다.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숱한 시험들, 그 시험을 예수님도 받았을 것이다. 

과연 내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곳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생고생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나를 이곳에 보냈는가? 

강고한 예루살렘과 로마의 기득권과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이건 예수님 자신의 생각일 수도 있고, 사단이 주는 시험일 수도 있었다. 

예수님이 이런 생각을 했을지, 안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단이 이런 의문을 품게 하고, 예수님의 소명을 갉아 먹는다. 

 

세 가지 시험의 범주와 유사한 시험이 40일간 계속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육체의 배고픔으로 대별되는 부에 대한 시험. 

명예욕에 대한 시험.

권력욕에 대한 시험.

모든 영적인 존재들이 갖고 있는 욕망에 대한 시험이다. 

사단은 사실 이런 욕망들의 극단에 서 있다. 

사단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물질욕, 명예욕, 권력욕에 의해 일어난다. 

하나님보다 더 많은 풍요로움과 더 많은 명성과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참담하게 무너졌다. 

 

박혁이라는 전도자가 남미를 다니며 축사사역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세련된 동영상이 유툽에 올라온다. 

극단적 평가가 뒤따른다. 

예수님의 사역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부흥운동의 시발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여느 이단들처럼 큰 귀신의 힘으로 작은 귀신들을 일시적으로 내쫓는 사탄의 사역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내 평가는 “열매로 안다”이다. 

그의 사역으로 사람들이 사단과 귀신의 억압으로 사람들이 구출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의 사역이라면, 

1) 귀신으로부터 구출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섬기게 될 것이다. 

2) 구출된 사람들 삶에 성령님의 열매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3) 전도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될 것이다. 

4) 사역자의 사역으로 인해 자신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건강하게 세워지게 될 것이다. 

 

그동안 숱한 이적으로 사람들을 모았다가 그 사역자 개인이 하나님처럼 되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매진하다가, 사단의 시험에 져 버린 경우도 많다. 

사역의 처음의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끝까지 사단의 시험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단의 시험이 도사린다. 

이것을 분별해 내는 것이 기독교 지도자들의 일이다. 

박혁 전도자가 건강한 신학 교육을 받아, 성경과 교회 전통 속에서 건강하게 사역을 하길 바란다. 

나는 하나님의 자유를 믿는다. 

그분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분이시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신으로 둔갑시키는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다. 

사단의 속임수에 속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이 시대에도 당신의 사역자를 통해 신유와 축사를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인기를 얻는 사역자는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올라 갈 수 있음을 알고 항상 겸손하게 사역해야 한다. 

 

아벱이나 송죽이나 언제자 사단의 시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신의 욕망의 수위를 살피고, 그 욕망에 달라붙는 사단의 속임수에 속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욕망의 방향이 오직 예수님이 되게 하라. 

그게 사역자가 살 길이다. 

 

[오늘의 기도]

오랜 기간 사단의 시험을 견디신 예수님, 

이 시험을 이겨내시는 과정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의 소명을 온전히 정리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숱한 사단의 목소리를 성경의 말씀을 통해,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이겨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를 반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반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승리로 우리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당신을 따르고 닮으면 우리도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때로 실패하더라도 잘 이겨내도록 인도해주세요.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더 욕망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27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13 그러나 그들은, 어느새 주님이 하신 일들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14 그들은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었고 사막에서는 하나님을 시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15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습니다.

16 그들은 또한, 진 한가운데서도 모세를 질투하고, 주님의 거룩한 자 아론을 시기하였습니다.

17 마침내 땅이 입을 벌려 다단을 삼키고, 아비람의 무리를 덮어 버렸습니다.

18 불이 그들의 무리를 불사르고, 불꽃이 악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19 그들은 호렙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보고 절을 하였습니다.

20 그들은 자기들의 영광이 되신 분을 풀을 먹는 소의 형상과 바꾸어 버렸습니다.

21 그들은 또한, 이집트에서 큰 일을 이룩하신, 자기들의 구원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22 함의 땅에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도, 홍해에서 행하신 두려운 일들도, 그들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23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셨으나, 주님께서 택하신 모세가 감히 주님 앞에 나아가 그 갈라진 틈에 서서 파멸의 분노를 거두어들이시게 하였습니다.

 

NIV

So he said he would destroy them—had not Moses, his chosen one, stood in the breach before him to keep his wrath from destroying them(23절).

 

용서의 은혜를 알고서도 또다시 이스라엘은 주님을 잊어버리고 불순종합니다(13절). 주님의 공급하심에 싫증을 내고 하나님을 시험합니다(14절). 주님이 세우신 권위를 시기하고 반기를 들다가 심판을 받습니다(16-18절). 호렙산에 올라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빨리 잊어버리고,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체해 버립니다(19-22절). 주님은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셨으나, 모세의 중재로 분노를 거두십니다(23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계속되는 죄의 양상을 마주할 때,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신앙의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중재자이신 예수님(히 8:6)은 죄로 인해 나와 하나님 사이에 갈라진 틈을 메우십니다. 또한 주님은 공동체와 세상 가운데 중재자로 당신의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중보해야 할 가정과 공동체의 갈라진 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중보기도는 위대한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출애굽기를 묵상하는 가운데, 시편 106편을 함께 묵상하니 시너지가 생긴다. 

시편기자의 출애굽기 해석이 오늘따라 신선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오경을 자신들의 정경이요 교과서로 삼았다. 

그 이야기들로 시를 만들고 노래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는 계속 기억되어야 하며, 대대로 이어져야 했다. 

시편 106편도 이런 기능을 담당한다. 

사람들에게 과거의 역사를 요약하고, 기억하기 쉽게 압축하고, 시와 노래로 만든다. 

사람들은 시를 외우고, 노래를 부르면서 과거로 돌아간다. 

시와 노래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유효하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새긴다. 뇌리에 박힌다. 

평생 기억하게 되는 노래들은 어린 시절 불렀던 것들이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것들이다. 

만화주제가 같은 것들, 어린 시절 불렀던 CCM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시편 106편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폭로한다. 

엄청난 이적과 기적을 경험하고도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불평과 불만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광야에서 그들은 허망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이집트에서 보기만했던, 누리지는 못했던, 그 호화로운 삶을 광야에서 추구하고 있다. 

광야의 삶에 만족하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즐기지 않았다.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시와 노래가 그치고, 비평과 평가만 남았다. 

시인의 창의성은 사라지고 평론가의 비판만 남았다. 

욕구는 채웠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졌다. 

 

15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습니다.

 

15절이 마음에 꽂힌다. 

욕망이 충족되지만 영혼은 파리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열망하고 노력하는데, 자칫하면 그 욕망과 욕구가 하나님의 뜻을 넘는 경우가 생기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간다.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들의 결말은 거의 좋지 못하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경우도 있다. 

정당한 욕망이 왜 없겠는가!! 

과도한 욕망,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는 욕망은 우리 영혼에 독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그 욕망의 추구가 결국 과거를 잊게 만든다. 

원래 어떤 존재였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구출하셨는지 잊어버린다. 

 

욕구하는 것, 바라는 것이 없을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욕구와 바람이 너무 커지는 것은 아닌지 항상 돌아볼 일이다. 

욕구의 질주를 막아야 한다. 

욕망의 전차를 막아세워야 한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세우는 일에 욕망의 방향을 맞춰야 한다. 

그것도 참 잘하는 일인데, 잘 맞춰진 방향으로 돌진하려는 욕망의 관성과 속도도 조절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보다 앞서서 하려는 인간의 욕심, 욕망을 관찰해왔다면, 속도조절조차 해야 한다. 

방향의 제시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그 방향을 향해 달리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는 그 방향을 향해, 주님의 속도계에 발을 맞추면 걷거나 뛰는 것이다. 

그걸 놓치고 너무 빠르게 달리면 과거를 잊어버린다. 

지금 왜 이렇게 열심히 달리는지 잊어버린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놓치게 된다. 

그게 영혼의 파리함이다. 

 

내 영혼은 건강한가? 파리한가? 

과연 그분에 대한 감각이 계속 살아 있는가? 

그분을 느끼고 경험하게 하는 내면의 감각이 활성화되어 있는가?

그분의 음성과 표정과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잘 작동하는가? 

그분의 음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엠프와 스피커가 내면에 있는가? 

그분의 얼굴 표정에 집중할 수 있는 눈과 안경을 가지고 있는가? 

 

그분은 나와 공동체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오늘도 그분의 음성에 주목한다. 

그분의 사랑에 기대본다. 

욕조에 금이 갔다. 

몇달전부터 집안 리모델링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자꾸 미루는 나의 성격을 주님이 일깨우시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의 게으름이 나와 가족과 아랫집에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이라면 기쁘게 감당하고 싶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 일하셨던 그 모든 순간들을 잘 기억하게 하소서. 

큰 산처럼 각양 좋은 선물들을 주셨던 하나님, 

큰 독수리처럼 날개 아래로 저를 보호하시고 지키셨던 하나님,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끝까지 잘 기억하게 하소서. 

평생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소서. 

 

저의 욕망으로 저의 영혼이 파리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소서. 

제 영혼을 주님으로인해 더욱 풍성해지고, 풍요로워지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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