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11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3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4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5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6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7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석

아우구스투스 황제(1절) 아우구스투스는 자기가 온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안겨주었다고 선포했고, 자신을 “신의 아들”로 칭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호적 등록(1절) 아우구스투스의 재위 기간 동안 로마인들은 과세를 목적으로 새로 인구 조사를 실시하였다(IVP 성경주석)

 

구유(7절) 예수님은 일반 관행대로 강보에 싸여서 “구유”, 아마 여물통에 뉘였을 것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세금을 걷을 목적으로 호적 등록을 명령합니다(1-3절). 이로 인해 다윗 가문의 요셉 역시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갑니다(4-5절). 임신 중이었던 마리아는 이 고된 여정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6-7절). 이 아이는 포대기에 싸여 여물통에 놓입니다(7절). 이것이 온 세상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왕위에 앉아 야곱의 집과 나라를 영원히 다스릴 왕이 나셨습니다(1:32-33). 왕이라면 크고 화려한 성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베들레헴의 한 작은 여물통에 누이십니다(7절). 예수님은 로마 황제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닌, 자신의 낮아짐으로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는 왕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극히 낮아지심이 내게 어떻게 다가옵니까?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을 닮아가는 하루를 보냅시다.

 

[오늘의 묵상]

요셉과 마리아는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야만 했다. 

그 상황을 생각하면 참 답답해진다.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함에도 어쩔 수 없이 긴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임신을 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몸과 마음이 크게 바뀐다. 

더 예민해지고, 입덧도 하게 되고, 더 많이 피곤하다. 

게다가 상황을 보아하니, 베들레헴으로 갔던 시기가 임신 말기다. 

베들레헴에서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가 나온 상황에서 여행을 시작했다는 말인데, 이것 참 답이 없다. 

장거리 여행을 배가 불쑥 튀어 나온 임산부가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요셉도 그렇고 마리아도 그렇고 참 대단해 보인다. 

아니, 그런 사람들 모두를 고향으로 보낸 아우구스투스 권력의 무서움인가. 

 

여행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온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제일 컸을 것이다. 

물론 남자와 성관계를 맺지 않았던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아기는 예사롭지 않다. 

사도신경으로 외우는 바, 성령님으로 잉태되었다. 

그러기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는 확신이다. 

하나님이 이 아기와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안정감이다. 

다른 하나는 부담이다. 

자기가 이 아이를 잘 지켜야 한다는 부담과 걱정이다. 

이 둘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하루 하루 여행을 했을 것이다. 

동물을 타고 여행하든지, 걸어서 여행을 하든지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다. 

 

최근에 열심히 걷고 있다. 

힘에 부치더라도 걷기를 통해 잘 안 쓰던 근육들을 다시 깨운다. 

걷는 중에 방송도 듣지만, 기도의 시간도 늘어난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기도. 

나를 위한 기도, 가족을 위한 기도. 

할 일이 많고, 그래서 내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 방법은 하나다. 

기도를 통해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 

걷기는 여행의 기본이다. 

빨리 걷는 것은 몸에 좋다. 

천천히 걷는 것은 몸과 영혼에 좋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나와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과 그리고 내 미래에 대해서… 

걱정이 왜 없겠는가! 

마리아와 요셉도 여행하면서 걸으면서 그 수많은 생각들을 하나님께로 가져가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미래, 아이의 미래… 

 

뭔가 집중력있게 멋지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말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다. 

말도 어눌하고, 생각은 세련되지 못하다. 

부족한 것 투성이다. 

비교하지 않아야 하지만, 때로 비교되는 것이 사실이다. 

숨고 싶다. 

걷는 중에 이런 생각들이 올라온다. 

피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생각에 파묻히고 싶지도 않다. 

 

태아 예수를 품은 마리아처럼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듯, 예수님도 내 안에 거한다. 

내 육체와 마음에 예수님이 계신다. 

어디를 가든 확신과 부담이 공존한다. 

그분이 내 안에 있기에 드는 확신, 그분이 내 안에 있기에 품어야할 부담. 

이 둘 다 안고 오늘도 걷는다. 

나의 미래, 공동체의 미래를 내 안에 계신 그분께 건다. 

내 부족함도 한계도 그분께 맡긴다. 

 

[오늘의 기도]

제 안에 계신 예수님, 

주님의 임재를 더 깊이 인식하게 하소서. 

연약함과 부족함을 주님께 고백하고 맡겨드립니다. 

주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파르르 떨리는 풀잎 같은 연약한 성정임에도 주님 덕분에 감당합니다. 

비교 의식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몸이 아픈 사람들, 

마음이 아픈 사람들, 

이들을 돌보소서. 

험난한 여행길,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는 그 여정 속에 함께 해 주세요. 

멈춰 쉴 때 회복이 되게 하시고,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세요. 

 

세계 곳곳에 총성과 미사일 폭발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소서. 

그리고 어서 오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10. 24. 김혁수

 

[본문_창세기 37:5-11_새번역]

5 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서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일이 있는데, 일이 있은 뒤로부터 형들은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6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 보셔요. 7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 8형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형들은 그의 꿈과 그가 때문에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9얼마 뒤에 그는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들어 보셔요.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 10그가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었다. “네가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것이란 말이냐?” 11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말을 마음에 두었다.

 

0. 들어가며 

-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여러분,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 아세요? 그것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은 나폴레옹의 명언에서 나온 말인데요. 약속은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나요. 일상을 살아가면서 약속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럴 없죠. 놀러 가는 것도 약속이죠. 함께 먹으러 가는 것도 약속입니다. 게다가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결심이라고도 하는데, 나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자신과의 약속을 합니다. 이런 것까지 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죠. 최근에 여러분이 하신 자신과의 약속은 무엇인가요? 

 

- 하나님의 통치 

10 동안 통치의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통치의 방향은 에덴 비전의 회복이요, 방식은 부르심과 은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통치의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에 도달했습니다. 바로 약속입니다.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르죠. 구약은 하나님과 인류가 맺은 번째 약속이라는 뜻이구요, 신약은 번째 약속이라는 뜻이죠. 번째 약속과 번째 약속 사이에는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다른 점이 조금 부각 되기에 구약과 신약을 나눴겠죠. 어찌되었건 하나님의 통치에 있어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어떻게 약속을 만들어 가시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요셉의  

1) 요셉? 

요셉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은 많치 않을 겁니다. 고대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던 이집트의 총리까지 지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실 요셉은 어머니들의 시기 질투,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인해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자매 둘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언니는 레아요, 동생은 라헬이었죠. 야곱이 사랑했던 여성은 라헬이었습니다. 

 

20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동안이나 일을 하였지만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 (창세기 29:20)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였기에 7년을 즐겁게 일했습니다. 게다가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7년을 일해야 했습니다. 라반이 언니 레아를 먼저 야곱과 결혼시켰기 때문이었죠. 

 

30 야곱이 라헬과 동침하였다야곱은 레아보다라헬을 사랑하였다. 그는 또다시 동안 라반의 일을 하였다. (창세기 29:30) 

 

야곱의 이런 편애는 아들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레아는 많은 아들들을 낳았지만, 라헬은 뒤늦게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요. 라헬이 낳은 첫째 아들이 요셉이고, 둘째 아들이 베냐민이었는데요, 베냐민을 출산하다가 라헬은 산고로 죽게 됩니다. 야곱은 요셉을 나머지 11명의 형제들보다 아끼고 편애를 하게 됩니다. 

 

2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 열일곱 소년 요셉이 아버지의 첩들인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데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3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4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창세기 37:2-4) 

 

야곱이 어떻게 요셉을 편애하는지 보이시나요?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고 있습니다. 야곱은 그런 그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지어서 입혔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형들은 요셉을 미워할 밖에 없겠죠. 10명의 형들에게 따돌림은 당하고 있었습니다. 

 

2) 꿈과 요셉 

이런 와중에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게 만드는 사건이 생깁니다. 일곱 살의 요셉은 꿈을 꿉니다. 꿈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요셉이 묶은 곡식 단은 일어서 있고, 형제들의 단은 요셉의 주위에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형들은 열받았습니다. 꿈도 꿈이지만,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는 꼬락서니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화를 내는 형들의 모습을 그려 있나요?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해와 달과 11개의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이야기를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하고 말았습니다. 형들의 분노에 꾸지람이 지난 이야기 있었는데, 다시 이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눈치를 밥말아 먹었나 싶습니다. 이번에는 야곱도 안되겠는지, 요셉을 꾸중합니다. 

요셉아, 나랑 어머니랑 그리고 형들 모두가 정말 너에게 엎드려 절한단 말이냐!! 이놈!! 오냐오냐 해주니까 간이 배밖에 나왔구나!’ 야곱도 화가 나서 말이긴 하지만, 혼내지 않으면 형들에게 더욱 미움을 것이 분명해 보였겠죠. 이쯤해서 그만 이야기하도록 막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같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이야기를 속에 담아 둡니다. 원해 고대 사회에서 꿈은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로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야곱도 그의 에서에게 도망칠 , 베델에서 자다가 하늘 사다리 끝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꿈을 꾸었잖아요.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요셉의 이야기에 신경을 곤두 세웠던 겁니다. 야곱은 요셉의 꿈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께 물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번도 아니고 번이나 비슷한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3) 요셉의 이해

저는 형들과 야곱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데, 오히려 요셉의 태도가 쉽게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17세라면 아는 나이고, 고대에서는 결혼도 있는 나이잖아요. 그런데 눈치 없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싫어하니까 이야기로 기선제압하려고 하는 걸까요? 어차피 따돌림 받는 인생, 갈때까지 가보자 이런 태도인가요? 

 

저는 요셉과 야곱의 친밀함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이 사는 , 밧단 아람, 혹은 하란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려고 했을 , 가족들은 다들 힘들어 했을 겁니다. 왜요? 아버지!! 우리가 가나안으로 가야 하나요?’ 이렇게 물어볼 , 야곱은 베델의 하늘 사다리 이야기를 종종 했을 겁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했단다. 하나님께서 다시 베델로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해주셨지 꿈에서 말야 아마도 애정을 가졌던 요셉에게는 자주 하늘 사다리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요셉은 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꿈으로 말씀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의 인생을 이끄셔서 약속하셨던 베델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을 요셉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것입니다.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는 몰라도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해서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것이죠. 요셉은 꿈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해했을 겁니다. 모든 꿈이 하나님의 약속은 아니겠죠. 그러나 인생의 하나님은 꿈으로 약속을 주십니다. 요셉은 개의 꿈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해했습니다. 

 

2. 약속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 중에 가장 돋보이는 개념이 바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약속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명령보다 약속이 하나님의 통치 방식에 맞습니다. 그렇다면 약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1) 인격적 관계의 중심 

첫째로, 약속은 인격적 관계의 중심에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사회화 과정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약속한 것을 배우고 지키면서 자기의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전세계 인류가 지켜야할 약속이 있고, 국가의 시민으로서 지켜야 약속있습니다. 반면에, 각각의 개인들이 서로 맺은 약속도 많이 있습니다. 약속이 없으면 깊이 있는 관계로 발전할 없습니다. 하다못해 만나려면 만날 약속을 잡습니다.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도 약속을 해야 합니다. 건강한 데이트를 위해서도, 건강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도 서로 약속을 합니다. 약속은 상호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심지어 왕과 신하 사이에도 암묵적인 약속이 존재합니다. 약속이 없다면 그것은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 주인과 로봇 종과 같은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약속을 통해 인격적 관계를 맺으십니다. 

 

2) 하나님의 자기 제한 

둘째, 약속은 하나님의 자기 제한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설교 처음에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라는 나폴레옹의 명언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약속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권한이 제한됩니다. 당신 맘대로,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약속, 노아에게 하신 약속,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내려놓고 최선의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바로 자신이 인간의 육체가 되어 사람들 속에 거하면서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다리가 되는 이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거기에서도 엄청난 자기 제한이 일어납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3) 상호 신실성 요청

셋째, 약속은 서로 신실할 것을 요청합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도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속을 했으면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실하신 분이라고 찬양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대담한 행동을 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니 우리에게도 신실함을 요청하십니다. 그분을 주인으로 아버지로 받아들인 이상 관계에 신실하길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3. 사단의 통치 vs. 하나님의 통치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과의 약속을 통해 통치하십니다. 자기를 제한하시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나가는 방식으로 세상을 회복시켜나가는 겁니다. 이것이 사단의 통치와 다른 지점들입니다. 

 

1) 정복, 징집, 경쟁, 그리고 확장

그럼 사단의 통치는 어떻게 구성될까요? 사단의 통치의 방향은 정복입니다. 세상을 자기 맘대로 주무를 있는 장난감이 되도록 정복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그가 사용하는 방식은 자기 휘하에 들어올 군대를 징집하는 겁니다. 회유, 강제, 중독 등을 통해 사람들을 징집합니다. 그리고 경쟁 시키죠. 사람들 사이에 미움이 싹트고 죽고 죽이는 살벌한 정글이 되게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무한 확장시켜나갑니다. 끝에는 파국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격성이 파괴되고 사단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2) 회복, 부르심, 은혜, 그리고 약속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전혀 다르게 작동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향은 정복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은 징집이 아니라 인격적 부르심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은혜의 문화 중심이 됩니다. 자기 권한의 무한 확장이 아니라 약속을 통한 자기 제한과 신실한 실천입니다. 에덴의 비전을 회복하기 위한 그분의 방식은 이렇듯 기묘합니다. 인격적으로 부르시고, 그들이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들과 약속을 하시면서 그들과 지속적인 신실한 관계를 맺어가십니다. 이런 방법으로 세상을 다시 아름답고 보기 좋은 에덴으로 회복시키시는 겁니다. 

 

4. 나가며 

-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가?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통치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나요!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요셉으로 하여금 야곱 일가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단순히 부모와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상하 관계의 역전이 일어나리라는 약속이 아닙니다. ‘그동안 형들에게 당한 많으니 이제 반전을 일으켜 네가 형들을 못살게 만들 있는 위치에 올려 놓겠다라는 약속이 아닙니다. 꿈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을 믿었던 요셉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같습니다. 

요셉아 너를 통해 너의 가족을 세계적 기근으로부터 구출하려고 한다. 과정에서 너는 부모와 형들로부터 감사의 절을 받게 것이다.’ 

이런 약속이었던 겁니다. 꿈을 통해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요셉은 엄중한 하나님의 약속을 부모형제에게 말하지 않을 없었던 겁니다. 그들 가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일 수도 있었으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전히 꿈으로도 약속의 말씀을 주실 있는 분이시죠. 하지만, 이미  위대한 약속들을 명시적으로, 분명하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도록 말씀하셨죠. 그것이 역사 예수님이요, 또한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 다시 오셔서 세상을 온전히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을 이미 주셨습니다. 이런 그분의 약속을 우리는 신뢰하고 있나요? 신실하신 그분은 약속을 지켜나가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약속을 신뢰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통치 방식 하나인 그분의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있는 겁니다. 여러분, 다시 그분의 통치로 들어오세요. 

 

이번 그분의 약속을 여러 가지로 되새길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하나님은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나요? 약속을 기억하고 있나요? 약속을 자주 되새기나요? 아님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약속을 기억할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2. 우리 모두 하나님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실하게 지켜날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분과의 교제를 위한 시간을 떼어 놓을 있게, 그분을 예배하는 시간을 지킬 있게, 신실하게 그분과의 관계를 지켜나갈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여러분은 평소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인가요? 약속을 지키는 못한다면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2. 하나님의 통치 방식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약속을 하실 , 그분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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