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9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 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서,

10예루살렘을 마흔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할머니는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이다.

11아사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12그는 성전 남창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고, 조상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 버렸다.

13그리고 그는, 자기 할머니 마아가가 아세라를 섬기는 혐오스러운 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기의 할머니를 왕 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아사는, 할머니가 만든 혐오스러운 상을 토막내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14그렇다고 해서 산당이 모두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을 사모하는 아사의 마음은 평생 한결같았다.

15그는 자기의 아버지와 자기가 거룩하게 구별해서 바친 은과 금과 그릇들을, 주님의 성전에 들여놓았다.

16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는,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늘 전쟁이 있었다.

17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고, 어느 누구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였다.

18그러자 아사는, 주님의 성전 창고와 왕실 창고에 남아 있는 모든 은과 금을 모아, 그의 신하들의 손에 들려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시리아의 헤시온 왕의 아들인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면서 말하였다.

19"나의 아버지와 그대의 아버지가 서로 동맹을 맺은 것과 같이, 나와 그대도 서로 동맹을 맺읍시다. 여기에 그대에게 은과 금을 선물로 보냅니다. 부디 가셔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맺은 동맹을 파기하시고, 그를 여기에서 떠나게 하여 주십시오."

20벤하닷이 아사 왕의 청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려고 자기의 군사령관들을 보내어서, 이욘과 단과 아벨벳마아가와 긴네렛 전 지역과 납달리 전 지역을 치게 하였다.

2 바아사는 이 소문을 듣고는, 라마 건축을 멈추고, 디르사로 거처를 옮겼다.

22그리고 아사 왕은 모든 유다 사람에게 명령하여,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할 때에 쓰던 돌과 재목을 가져 오게 하였다. 아사 왕은 이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보수하였다.

23아사의 나머지 행적과 그의 권세와, 그가 한 일과 그가 건축한 모든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는 늘그막에 이르러서, 발에 병이 났다.

24아사가 죽어서 조상들과 함께 잠드니, 그의 조상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도대체 아사는 어떤 인물인가? 

이렇게 개혁적인 일들을 일으킬 용기와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아버지 아비야 왕도 우상을 섬겼고, 그의 할아버지 르호보암도 그릇된 길로 갔는데, 

어떻게 아사는 그 길을 버리고 다윗의 따라 평생 한결같을 수가 있었을까? 

정말 놀랍고 의아한 일이다. 

 

열왕기 저자는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를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가 미친 악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마아가가 아세라 신을 섬겼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눈치를 보느라 아세라 신을 따랐다. 

아사는 유다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사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평생 간직했다. 

그러하기에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강한 할머니의 권력과 영향력을 이겨내고 그 일을 해 낸 것이다. 

정말 어려운 일을 해 낸 것이다. 

성전 남창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냈다. 

우상을 없애 버렸다. 물론 모든 산당을 없애거나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40년동안 그는 유다를 다스리며 마음을 지켰다. 

어찌보면 아사의 개혁과 그의 곧은 마음은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믿음 좋은 사람들보다 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없던 질서와 구조를 만드는 것도 엄청 힘든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구조를 개혁하고 쇄신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고, 때로는 더 힘들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혁에는 항시 반대 세력이 있으며, 기존 권력에게 빌붙어서 단물을 빨아먹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사의 40년 통치는 실로 어마어마한 성과다. 

오롯이 하나님만 사모했던 그의 40년을 기억하고 싶다. 

 

그가 비록 하나님을 사모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다고 하지만, 그에게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이스라엘 바아사의 침략이 있었다. 늘상 전쟁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주님을 잘 섬긴다고 해서 긴장과 갈등, 고난과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한 번 어그러진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열상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아사만 잘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는데, 서로 길이 달라져버리면 그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아사는 어찌보면 계속되는 동족간의 전쟁 속에서 하나님 의지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40년이면 결코 짧지 않는 기간인데, 그 기간 동안 민족간의 통합과 연합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쉽고 안따깝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멋진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 

그렇게 항상 기도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기도를 드린다고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뜻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꼭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계속되는 긴장과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외부의 지속적인 공격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어려움에 처한다. 

그것이 인생이며, 신앙 생활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그분을 붙드는 삶, 그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다. 

그것이 소명이다. 

 

남북한도 마찬가지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반백년 이상을 살았다. 

외부 세력들은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까지 그 길을 추구해야 한다. 

전쟁이 없는 세상, 평화가 깃든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행위가 전쟁이다. 

전쟁 속에 피는 작은 사랑의 행위가 밝게 빛나는 이유는 전쟁이 너무 참혹하게 사람들의 사랑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드려도,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해도, 남북한이 하나가 되고 서로 존중하며 공존/번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타임라인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어찌되었건 아사는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주님, 

평생을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을 사모하며 살았던 아사를 기억합니다. 

비록 어려운 일들이 많았고, 평생 전쟁하며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저도 그런 길을 걷고 싶습니다. 

다윗처럼 정직하고, 아사처럼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져도 다시 정직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매력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성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저의 삶을 평가할 때, 내 앞에서 정직했으며, 나를 사모하던 사람이었다고 말씀해주신다면 그것도 정말 행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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